오늘따라 A 선생님의 표정이 어둡습니다. 평소 교직에 대한 열정으로 싱그러움을 뿜어내던 4년차 고2 담임인 A 선생님의 표정이 출근길 제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A 선생님이 저에게 교내 메신저로 편한 시간을 알려주면 만나러 오고 싶다고 합니다.
“선생님, 아이들 면담을 해보니, 애들이 힘들어해요. 한두 명이 아니에요. 작년보다 학교 다니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해요. 코로나19로 격주 등교를 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선택형 교육과정으로 계속 이동수업을 한 탓일까요? 힘들다는 아이 중 몇 명은 자퇴까지 이야기하고 있어요. 선생님 혹시 제가 문제일까요? 작년보다 더 힘들다는데, 제가 학급운영을 잘못하고 있는 걸까요?”
A 선생님의 표정에서 혼란스러움과 좌절감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A 선생님은 학급에 친구가 있음에도 학교가 재미없다는 아이, 교사가 보기엔 서로 이야기도 곧잘 하는 친구 사이인 줄 알았는데 친구 때문에 자퇴하겠다는 아이, 그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고 모든 아이들과 접촉하지 않으며 ‘떡진 머리’로 점심도 먹지 않는 아이 등 다양한 문제로 힘겨워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합니다.
이런 상황이 A 선생님의 역량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야기한 빈익빈 부익부는 사회적 관계에도 적용됩니다. 격주 등교에도 불구하고 친구관계 형성 역량이 뛰어난 아이들은 나름 안정적이게 친구관계를 형성하고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더 긴장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재미있고 편안하게 학교생활을 하려면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알트만(Irwin Altman)과 테일러(Dalmas Taylor)는 친밀해지는 과정을 4단계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피상적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단계로 서로에게 다소 거리감이 있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좀 친해지면서 감정을 교환하기도 하고 서로 간에 말도 많이 하지만, 아직은 자신에 대해서 많은 개방을 하지 않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상대에게 자신을 더 많이 노출하면서 서로 간에 칭찬과 비판을 자유자재로 하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고 서로의 소유물도 편안하게 나누는 단계로 ‘나’와 ‘너’가 아니라 ‘우리’로서 행동하는 단계입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두 번째 단계 정도만 되어도 학급이 편안할 터인데, 6개월이 지나도 학급에 여전히 첫 번째 단계를 넘지 못한 친구만 있다면, 학급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힘들 것입니다.
예방과 치료에 대한 공중보건모형에 의하면 학생들을 위한 심리·정서적 개입서비스는 3단계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Merrell & Gueldner, 2011). 첫째, <그림 1>과 같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1차 수준의 보편적 예방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 80%의 학생들은 아마도 1차 수준의 보편적 예방으로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A 선생님 학급 학생 중 학급에 친구가 있음에도 학교가 재미없다는 아이는 1차 수준의 보편적 예방교육이 필요합니다.
1차 수준은 학급풍토(classroom climate)를 건강하게 형성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학급풍토란 학급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독특한 사회·심리·정서적 분위기를 말합니다. 긍정적인 학급풍토를 촉진하는 시도를 예로 들면 <그림 2>와 같이 3분 인터뷰를 학급 대상으로 진행하여 서로 간에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을 들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2인 1조로 짝을 이루어 3분 동안 서로에 대해 인터뷰하는 간단한 프로그램입니다. 교사는 예시로 19개 정도의 문항을 만들어 제시하고, 20번 문항은 빈 칸으로 남겨 놓습니다. 아이들은 3분~5분 정도의 시간 동안 서로에게 질문하고 기록을 하며 서로를 알아갑니다. 3분 인터뷰를 촉진하기 위해, 교사는 긍정의 효과 즉, 학급 내에서 서로 편안하고 긍정의 마음을 갖도록 돕는 것이 서로를 돕는 일이라는 점을 교육합니다. 3분 인터뷰와 같이 마음을 나누는 프로그램을 적용할 때는 특히 더 동기유발에 정성을 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폭력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이 학교에서 만난다면
2차 수준에서는 문제가 발생할 위험에 놓여있거나 문제의 징후를 보이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리·정서적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 친구들에게는 학생이 보이는 특정 문제를 중심으로 표제적 예방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교사의 관찰로는 친해 보이지만 사실은 과거 중학교 때 학교폭력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었던 학생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한 반이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피해학생은 다시 중학교 때와 같은 따돌림이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면 2차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때입니다. 이 상황은 면밀하게 살펴보기 전까지는 실제 따돌림이 되풀이되고 있는지, 과거 학교폭력 경험을 했던 피해학생이 확증편향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사는 따돌림이 일어난 상황을 조심스럽게 확인해 보고, 만약 따돌림이라고 한다면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신속한 개입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따돌림이 아니고 피해학생이 과거 상처로 인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해서 발생한 일이라면, 확증편향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확증편향이란 인간이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근거보다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는 근거를 더 열심히 찾는 경향성을 말합니다. 이 경우는 인지적 오류를 수정, 사회적 관계에서 역기능적 요소를 제거해주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위클래스 등의 도움을 받아 학생을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3차 수준이 적용되어야 할 대상은 예를 들면 학급뿐 아니라 학교구성원 그 누구와도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가족 관계도 단절되어 있으며, 오직 소통하는 대상이 게임에서 만나는 아이들이어서 밤새 게임을 하고 위생관리도 못 한 채 등교한 후, 수업 중에 자주 엎드려 자는 등 심각하고 만성적인 문제를 가진 학생입니다.
3차 수준에 해당하는 학생은 학교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자원을 발굴하여 포괄적으로 함께 개입하여야 합니다. 학교 내에서도 협업이 필요하며, 학교 밖 기관들과도 연계해야 할 것입니다. 3차 수준의 학생은 더 많은 인내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1년 내내 교사가 노력하여도, 여전히 호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친구에게는 상당한 시간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아마도 이 친구가 갖고 있는 상처의 골이 깊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 친구에게는 지치지 않고 늘 같은 마음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참 좋은 어른이 필요합니다.
따뜻한 시선과 지속적 관심만이 아이를 지킨다
정리해 본다면, 서먹한 아이들의 관계에 온기가 흐르기 위해서는 먼저 학급 전체를 대상으로 긍정적 학급풍토를 형성해야 합니다. 이를 촉진하기 위해 앞의 예와 같이 3분 인터뷰를 시행해도 좋고, <그림 3>과 같이 감사일지를 적는 이벤트를 진행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감사와 친교 등 긍정적 요소가 학급구성원들 안에 흐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징후를 가진 친구들은 문제에 대한 개별적인 개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문제가 일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만성적인 것이라면 학교 내외의 협업을 통한 개입이 필요합니다. 이 경우 정작 학생이 그 어떤 도움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는 무리하게 개입하려 하기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마치 차가운 바람보다 따뜻한 햇살이 나그네의 옷을 벗게 하는 것처럼 따뜻한 관심만이 방어를 녹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