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은 석기시대에서 청동시대에 이르는 매우 긴 시간 동안 바닷가에 터를 잡고 살았다. 그들은 해가 바다에서 떠서, 바다로 지는 것을 보면서 살았다. 그들은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을 잣대로 삼아서, 하늘 밑에서 펼쳐지는 누리와 바다 속에서 펼쳐지는 누리를 삶의 터전으로 여기며, 나름으로 수평선 문화를 일구어 왔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삼국시대부터 중국에서 가져온 <천자문(千字文)>을 배우게 되자, 중국 사람이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을 잣대로 삼아서, 하늘과 땅과 사람을 엮어서 세상의 모든 것을 풀어내는 지평선 문화를 따라가게 되었다. 이로부터 한국 사람은 오랫동안 일구어온 수평선 문화를 점점 잊어버리는 것과 함께 천지현황(天地玄黃), 우주홍황(宇宙洪荒)과 같은 것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게 되었다.
하늘, 크고 높은 것
한국말에서 ‘하늘’은 ‘많고, 크고, 높은 것’을 뜻하는 ‘하다’와 뿌리를 같이 하는 말이다. ‘하늘’은 ‘하늘=하+ㄴ+을’로서 ‘많고, 크고, 높은 것’을 뜻한다. ‘하늘’은 해와 달을 비롯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이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서, 누리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을 만큼 더없이 크고 높은 것을 가리킨다.
오늘날 한국 사람은 ‘많고, 크고, 높은 것’을 뜻하는 ‘하다’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이러한 ‘하다’는 ‘하도 많아서’ ‘하고 많은 일’과 같은 말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하도 많아서’는 ‘많고 많아서’를 뜻하고, ‘하고 많은 일’은 ‘많고 많은 일’을 뜻한다.
사람들이 ‘많고, 크고, 높은 것’을 뜻하는 ‘하다’를 쓰지 않는 것은 나름의 까닭이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아래아( ∙ )를 쓰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많은 것’을 뜻하는 ‘하다’와 ‘무엇을 하는 것’을 뜻하는 ‘’를 모두 ‘하다’라고 쓴다. 사람들은 ‘무엇이 많은 것’을 뜻하는 ‘하다’와 ‘무엇을 하는 것’을 뜻하는 ‘하다’가 서로 헷갈리기 때문에 ‘무엇이 많은 것’을 뜻하는 ‘하다’를 모두 ‘많다’로 바꾸어 쓴다.
‘하다’와 ‘많다’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이다. ‘하다’는 어떤 것이 많은 것을 넘어 크고 높은 것까지 아우르는 것을 뜻하는 반면에 ‘많다’는 어떤 것이 불어나거나 늘어나서 가득 차게 된 것을 뜻한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이 ‘하다’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되면서, ‘많고, 크고, 높은 것’을 하나로 싸잡아서 일컫는 것이 어려워졌다.
바다, 바른 것
한국 사람은 오랫동안 바닷가를 살림살이의 터전으로 삼아왔다. 그들은 해가 바다에서 떠서 하늘을 날아서 바다로 지는 것을 보면서, 하늘과 바다가 함께 하나의 큰 누리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한국말에서 ‘바다’는 ‘바르다’와 뿌리를 같이 하는 말이다. ‘바다’는 끝없이 바르게 펼쳐져 있는 것으로서, 사람들이 높은 것이나 깊은 것을 헤아리는 일의 잣대로 삼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다를 잣대로 삼아서, 높이나 깊이를 재는 것을 ‘해발(海拔)’이라고 말한다.
‘바르다’의 뜻을 또렷하게 알려면, ‘바르다’와 ‘곧다’를 서로 견주어 보아야 한다. ‘바르다’는 어떤 것이 주어진 잣대에 맞게 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예컨대 사람들이 ‘동그라미를 바르게 그린다’라고 할 때, 바르게 그리는 일은 어떤 것을 동그라미라는 잣대에 맞게 그리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곧다’는 어떤 것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바로 나아가서 닿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예컨대 사람들이 ‘금을 곧게 그어라’라고 말할 때, 곧게 긋는 일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바로 나아가서 닿는 것을 말한다. 이러니 ‘동그라미를 바르게 그리는 일’은 말이 되지만, ‘동그라미를 곧게 그리는 일’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이 ‘바다’를 곧게 펼쳐진 것으로 보지 않고, 바르게 펼쳐진 것으로 보는 것은 ‘바다’를 둥그렇게 생긴 어떤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바다’에서 배를 타고서, 먼 곳까지 오가는 일을 하면서 바다가 둥그렇게 생긴 것을 깨달았다. 바닷가에 터를 잡고 살아온 한국 사람은 일찍부터 바다가 둥글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해, 하는 것
한국말에서 ‘해(옛말은 )’는 ‘무엇을 하는 것’을 뜻하는 ‘하다(옛말은 다=+다)’와 뿌리를 같이하는 말이다. ‘해’는 ‘하+이’로서, ‘스스로 무엇을 하는 것’이면서 ‘다른 것이 무엇을 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해’는 엄청나게 센 불과 빛을 뿜어내는 것으로서, 온 누리를 밝게 비추고, 따뜻하게 만들어서, 갖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생겨나고, 벌어지게 하는 바탕이 된다.
하늘 아래서 생겨나는 모든 것과 바다 속에서 생겨나는 모든 것은 ‘해’에서 비롯하는 불과 빛에 기대어서, 나고 살고 죽는 일을 거듭한다. 사람들이 온갖 것이 나고 살고 죽는 일에 눈을 뜨게 되면, 이는 ‘해’가 ‘스스로 하는 것’으로서, ‘다른 모든 것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한국 사람은 ‘해’가 끊임없이 나고 지는 것을 낱낱으로 갈라서 ‘날’이라고 부른다. ‘해’가 한번 나고 지는 것을 ‘한 날’ 또는 ‘하루’라고 부른다. 그리고 ‘해’가 나고 지는 일을 거듭해서,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온전히 지나게 되면, 그것을 ‘한 해’라고 부른다.
한국 사람은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을 따로 정해서, ‘설’이라고 부른다. ‘설’은 ‘설다’와 뿌리를 같이 하는 말로서, ‘한 해’가 아직 설익은 상태에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설익은 ‘한 해’의 첫날이 ‘설날’이고, 설익은 ‘한 해’의 첫 달이 ‘섣달’이다. 설익은 ‘해’가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지나서 완전히 다 익게 되면, ‘한 해’가 되고, ‘한 돌’이 된다.
달, 다는 것
한국말에서 ‘달’은 ‘달아서 헤아리는 것’을 뜻하는 ‘달다’와 뿌리를 같이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잣대로 삼아서, 나날이 흘러가는 날짜를 달아서, 몇 달 몇 날인지 헤아려왔다. 이는 마치 사람들이 저울에 물건을 달아서 무게를 헤아리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의 모양으로써, 날짜를 달아서 어떤 것을 헤아리는 일은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사람들이 달의 모양을 달아서 몇 달 몇 날을 헤아리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 달의 모양을 달아서 밀물과 썰물의 때와 크기를 헤아리는 일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표나 책으로 만들어서 날과 달과 해를 헤아리도록 한 것을 ‘달력’이라고 부른다.
땅, 닿는 것
한국말에서 ‘땅’은 ‘닿아서 자리하는 것’을 뜻하는 ‘닿다’와 뿌리를 같이 하는 말이다. 땅은 어떤 것이 닿아서 자리를 잡는 바닥이 되는 곳으로서, 하늘 아래에 있는 온갖 것들이 터전으로 삼는 곳이다.
‘땅’에는 ‘흙’ ‘돌’ ‘바위’ 따위와 같은 것들이 널려 있다. ‘흙’은 낱낱으로 흩어질 수 있는 것을 말하고, ‘돌’은 굳은 것이어서 돌아가게 하는 것을 말하고, ‘바위’는 바닥이 위로 솟아서 밖으로 드러난 것을 말한다. 바닥을 이루는 ‘바위’가 깨지면 ‘돌’이 되고, ‘돌’이 깨지면 ‘흙’이 된다. 이러한 ‘땅’을 바닥으로 삼아서 풀·나무·벌레·짐승·사람과 같은 온갖 것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