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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선생님도 쉬는 시간] ‘그런데 갑자기’와 만난다면?

교직 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마주할 때가 있어요. 요즘 말로는 ‘갑툭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그런 상황 말이죠. 업무가 많은데 갑자기 우리 반 아이가 전학을 가요. 생활기록부를 정리해서 전학을 보내야 하죠. 생활인권부장인데 퇴근 후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요. 학교폭력 신고가 들어왔다고요.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반 아이가 아직 안 들어왔다는 학부모님의 전화를 받아요. 갑자기 분주해져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아이를 찾기 시작해요. 그런데, 아이는 감감무소식. 퇴근은 안녕!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일어나는 상황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어요.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는 그런 ‘갑툭튀’에 대한 이야기를 단편 소설 『어느 관리의 죽음』에서 그려냈어요. 이반 드미트리치 체르뱌코프. 이름도 엄청나게 긴 회계원이에요. 그는 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앞자리 대머리 노인의 반질반질한 머리에 재채기하고 말았어요. 반짝이는 머리에는 침이 튀고, 노인은 투덜거리면서 머리와 목을 닦기 시작했죠. 안타깝게도 그 노인은 운수성의 고위급 장군이었어요.

 

체르뱌코프는 사과를 했고 장군은 괜찮다고 말해요. 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은 그는 몇 번이나 다시 사과하고 급기야는 장군의 사무실에 찾아가기까지 해요. 장군은 짜증이 나서 꺼지라고 말해요. 체르뱌코프는 공포에 질리다 집에 와서 죽었어요. 재채기 하나 때문에, 조마조마하는 조바심 때문에요.

 

이야기의 전개가 너무 뻔해서 소설을 읽고 나서 살짝 실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어떻게 재채기 하나 때문에 사람이 죽어요?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어쩌면 이런 이야기가 삶의 진실을 비춰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왜냐하면, 소설 속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고민할 만한 화두를 찾아낼 수 있으니까요. 훅 들어오는 ‘그런데 갑자기’ 때문에 한없이 나락으로 빠져드는 건 소설 속의 주인공뿐만은 아닐 거예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보면 '작은 일로 너무 많이 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기란 쉽지 않은 일. 객관적으로 보면 별것 아닌 일도 우리는 개개인의 주관에 함몰돼 좁쌀만 한 것을 하나의 우주로 보기도 해요. 그리고 좁쌀 속에 숨어 있는 블랙홀에 한없이 빠져들기도 하죠. 거대한 중력에 이끌려서요.

 

난데없이 툭 튀어나오는 민원.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학부모님의 짜증 섞인 목소리(특히, 아이들의 싸움과 관련한 전화). 수업 시간에 대드는 학생. 업무를 수행하다 서로 감정을 상하게 되는 일. 예상하지 못했던 일 때문에 우리는 한없이 나락으로 빠져들기도 해요. 짜증 섞인 민원 전화에 마음이 상해서 며칠을 기분 나쁘게 지내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대드는 학생에게 버럭버럭해서 자괴감이 들기도 하죠. 업무 때문에 혹은 사소한 다툼 때문에 동료 선생님과 감정이 상해서 ‘얼른 전근 가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기도 해요. 소설 속의 주인공이 너무 심했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내가 주인공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에요. 갑자기 다가오는 일에 너무 몰두하게 되면 답답한 마음은 커지게 되니까요.

 

안톤 체호프는 소설에서 이렇게 이야기해요. “이 ‘그런데 갑자기’와 자주 마주치게 마련인데, 작가들이 그러는 것도 당연하다. 인생이란 그처럼 예기치 못한 일로 가득 차 있으니까.” 우리가 사는 일이 소설은 아니에요. 하지만, 주인공 체르뱌코프처럼 ‘갑자기 그런데’와 조우하며 자신도 모르게 블랙홀에 빠져들 때, 딱 한 걸음만 멀찍이 떨어져서 자신을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지면 좋겠어요. 그럼, 우리의 삶은 조금 더 편안해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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