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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거대한 신들의 영지

문득 가여워진 내 삶

라싸에서 갼체로 가는 길, 구절양장같이 아찔한 고갯길을 달려 이른 언덕 정상 캄바 라(4750m). 거기에 이르러 굽이굽이 산허리를 휘어감고 있는 얌드록 초(해발 4488m, 둘레 250㎞, ‘초’는 우리말로 ‘호수’란 뜻)와 호수 저 너머로 노진캉창산(7191m)의 설산 이마와 마주합니다.

큰 기대를 한다면 찾지 말라던…. 현상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느끼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아름다움일 뿐입니다. 그 아름다움은 또한 모든 이를 즐겁고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간혹 아름다움 이면에 있는 또 다른 아름다움. 혹여 겉으로 아름다워 보이진 않지만 속에 깃든 진정한 아름다움. 간과되고 있는 아름다움. 그것에 생의 또 다른 진리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였습니다.

티베트의 신비는 현상적 아름다움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야크의 배설물에도, 씻지 않은 머리와 검게 그을린 유목민의 낯빛에서도, 남루한 그들의 차림에서도 향기처럼 배어나는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두드러진 것이, 남들보다 앞선 것이, 세상의 기준보다 높이에 위치하는 것이 항상 부러운 눈이었지만 그럴수록 목마른 자신을 돌아볼 줄 몰랐던 세상에서의 내 삶이 문득 가여워지곤 했습니다.

 

 

고원지대임에도 유난히 경작지가 많아 부농이 많다는 갼체에 이르니 높은 언덕 능선을 따라 마치 서구의 어느 중세 성처럼 보이는 갼체종이 우뚝 나타납니다. 1903~1904년 신식무기로 무장한 영국 원정대가 통상을 강요하며 시킴으로부터 쳐들어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티베트인들은 구식 무기로 3개월간이나 용감하게 항전했으나 결국 함락되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티베트 전사들이 포로가 되어 수모를 당하느니 차라리 절벽에서 투신해 죽는 길을 택했다는 비운의 성입니다.

 

 

이곳은 또한 티베트 최고의 스투파(불탑), 갼체 쿰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8층(기단 포함해 9층)에 그 높이가 35m에 이르며, 층층마다 법당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답니다. ‘쿰붐’이라는 이름은 숫자 10만을 의미하는데, 이 이름에 걸맞게 어머어마하게 많은, 깨달음을 얻은 티베트 불교의 성인들, 보살들, 탄트라 불교의 수많은 신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티베트에 이른 지 여러 날. 이미 여러 사원을 둘러보았습니다. 라싸에 있는 포탈라궁은 물론 조캉사원, 세라 사원, 내일은 시가체의 타쉬룬포 사원과 거기에 모셔져 있다는 높이 26m의 세계 최대 금동미륵좌상을 보게 됩니다. 이젠 너무 많이 유포되어 가히 식상한 비유일 수도 있는 ‘신들의 땅’이라는 표현이 실감 날 법도 한, 보는 이를 압도하는 웅대하고도 섬려한 사원들과 상상을 초월하는 승려의 숫자들. 급기야는 그 웅대함에 저절로 다소곳 옷깃을 여밀 법도 합니다.

 

포탈라궁에 있는 5대 달라이라마 초르텐은 가로 14m 규모에 무려 3700㎏의 금을 들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금빛 찬란한 지붕이며 육중한 궁궐과 사원의 위압적 권위. 그러나 티베트의 정신은 고형(固形)화된 그런 물리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님을 나는 거듭 깨닫습니다. 1000㎞를 마다하지 않고 성(聖)의 세계에 대해서는 숭배를,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는 낮춤을 오체투지의 자세로 삶 속에서 실천하는 티베트인(Tibetans)들의 불심. 그 속에 신들이 깃들어 있고, 급기야 티베트는 거대한 신들의 영지가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처로 모셔지고, 신격화되어 금으로 치장된 초르텐을 권력과 권위의 화신으로 폄하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러한 웅대함 또한 진심 어린 티베트인의 신심(信心)의 발로라는 데에 이르면 권력의 수탈로 보일 수도 있는 그런 위압적인 불상과 사원들에도 숙연할 정도의 외경이 어느새 깃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식상한 표현이 되고 말겠지만, 진리는 단순한 문장 속에서도 발견됩니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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