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으로 돌아가 질문하는 것은 늘 유효한 전략이다. 우직한 지성이 내딛는 첫걸음이자, 전투적인 혁명가의 선정적인 공격 수단이고 노회한 보수의 효과적인 방어 수단이기도 하다. 차원이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담아낼 새 질서가 필요한 시대, 인류를 위협하는 전 지구적 문제에 대한 해법이 난망한 시대에는 더욱 필수적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화폐란 무엇인가? 학교란 무엇인가? 비로소 열린 생경한 문명의 개화기처럼 모두가 근본을 묻는다. 물어야만 한다. 겨우 ‘교육정책 기획’ 따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면서 너무 거창한가?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다. 겨우 ‘교육정책 기획’ 따위가 아닌 것이다.
난타당하는 공교육, 교육행정기관의 전통적 역할 정체성이 부정되는 상황, 학교가 인생을 책임져줄 것이라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각자도생의 현실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그렇다. 소풍처럼 기다려지는 미래가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고 경쟁을 종용하는 두려움의 미래가 유통되는 현실의 부당함 때문에 그렇다. 화석화된 채 현장을 표류하는 교육정책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더욱 그렇다. 기획의 방법을 묻고 싶은가? 백방을 제시해도 결국은 온전히 질문한 사람 몫으로 남을 테지만, 일단 묻는 것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기획, 정책기획이란 무엇인가?
기획의 온도 - 머리를 뛰게 하는 논술, 가슴을 뛰게 하는 기획
1987년 직선제 대통령 선거. 대척점에 섰던 후보 두 명과 직선제의 단초를 제공한 대통령까지 세 명이, 작년 한 해 세상을 떠났다. 천지개벽할 것 같았던 그 대선판 분위기에 고무되어 유세장을 기웃거렸다. 직선제를 쟁취한 시민의 힘을 이야기하면서, 흰머리 휘날리며 일갈했던 후보의 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판을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사람이다!’
그렇다. 그 판, 판을 까는 행위가 기획이다. 판이 깔려야 뭐가 되어도 될 것이 아닌가? 그러나 기획은 양가적이다. 선한 의도만으로 판은 깔리지 않는다. 사기판, 도박판도 있고, 흔히 이야기하는 기획부동산, 기획수사처럼 사심을 채우려는 부당한 의도의 판이 열리기도 한다. 그러나 ‘정책기획’의 의도는 철저하게 공익적이어야 한다. 세상을 개선할 목적으로 판을 설계하는 행위가 정책기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