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오피니언

[2022 교단수기 동상] 1991년 10월의 그 밤

 

 

하필이면 만우절이었다. 열일곱 살 소녀들의 다소 짓궂은 장난에도 선생님들은 기꺼이 속아주셨다. 유랑극단의 변사처럼 첫사랑 얘기를 풀어내는 선생님의 유려한 말솜씨에 사춘기 여고생의 마음은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탔다. 눈부시게 만개한 벚꽃 같은 소녀들의 웃음으로 교정이 들썩였다.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이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금방이라도 별들이 쏟아질 듯 맑은 밤이었다. 흥겨운 콧노래도 절로 났다. 현관문을 열 때까지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나의 역할일 것이라 상상도 못 했다.
 

씩씩하게 엄마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볼일의 해결이 급선무인지라 일단 화장실로 향했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검붉은 피로 범벅이 된 옷가지가 변기 옆에 쌓여있었다. 너무 놀란 탓인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달려오신 옆집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아 거실로 나왔다. 아주머니께서 막냇동생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갔다고 말씀해주셨다. 담담 하려 애쓰셨지만, 목소리의 떨림이 느껴졌다. ‘귀한 자식은 귀신이 탐한다더니.’ 짧은 설명 끝에 한숨처럼 내뱉는 아주머니의 낮은 혼잣말이 귀에 꽂혔다. 사고가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쩐지 하루 종일 즐겁더라니.
 

사흘만에 얼굴을 마주한 아버지는 너무 낯설고 초췌했다. 트럭에 부딪힌 막냇동생은 뇌를 다쳤다고 했다. 두 번의 수술을 했지만 회생의 가능성이 희박하니 포기하라 했다며 우셨다. 아빠가 그렇게 섧게 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리 딸 넷을 낳고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할아버지께서 나를 향해 매섭게 소리치셨다. 귀한 장손의 운을 딸인 내가 모두 앗아갔기에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며 책망하셨다.
 

벚꽃이 지고 장미가 시들고 낙엽이 졌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은데 동생과 엄마는 돌아올 줄을 몰랐다.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절망감,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집안 분위기는 숨을 막히게 했다. 엄마와 막내가 없는 공간 속에는 나의 자리도 없었다. 내가 죽어야만 동생이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일 자살의 유혹에 시달렸다. 
 

수업 시간이면 누워 있거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무기력했다.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면 아프다는 핑계로 빠져나오거나 학교 담장을 넘었다. 외줄 위를 걷듯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10월이 끝나가던 그 날 밤, 달빛에 홀렸을까? 담장은 넘는 대신 미술실 앞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술 선생님께서 부르셨다. 도망치긴 글렀다 싶어 순순히 미술실로 갔다. 
 

"놀고 싶은 밤이지?"

 

싱긋 웃으시더니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셨다. 선생님의 목소리에 실린 온기 때문이었을까? 오랫동안 외면했던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다시 마주하게 되어서였을까? 가슴에 켜켜이 쌓아두었던 죄책감과 그리움의 둑이 와르르 무너졌다. 무슨 노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건만 한참을 꺽꺽대며 울었던 것만은 선명하다.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주시던 선생님이 손에 가만히 책 한 권을 놓아주셨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였다.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다고 하더구나. 너보다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을 어머니와 동생에게 네가 희망이 되어주렴."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동생의 사고를 핑계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인 척 반항을 정당화하고 있는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당연히 누릴 권리라도 행사하듯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매 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있을 동생을 생각하지 않았다. 퇴원을 종용하는 병원에서 물러서지 않고 동생의 치료를 계속하며 희망을 붙잡고 있는 엄마는 안중에도 없었다. 난 정말 이기적이었다.
 

<마지막 잎새>가 나에게 왔던 그 밤부터였다.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발걸음을 놓은 것이. 수업 시간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가끔 미술실에 들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편안한 미소로 들려주시는 미술 선생님의 이야기가 힘이 되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휘청거렸던 선생님의 어린 시절을 지켜주었던 것들이라며 몇 권의 책을 추천해주셨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허먼 멜빌의 <백경>, J.D.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작품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끝까지 읽었다. 선생님의 신뢰를 잃고 싶지 않았다. 차츰 억지로 읽어 내려가던 글자들이 눈으로 들어와 가슴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주인공과 만나는 기쁨을 선생님과 나눌 수 있었다. 기특하다며 머리를 쓸어주시는 미술 선생님의 손길에 머릿속을 맴돌던 자살의 유혹이 마법처럼 사라졌다. 미술실에 있는 책들을 읽고 또 읽는 동안 겨울을 견딜 힘이 생겼나 보다. 그 해가 끝나갈 때까지도 엄마와 동생은 병원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아빠의 한숨과 담배 연기로 가득한 집안 분위기도 그대로였지만 난 교복을 반듯하게 입었다.
 

일학년을 끝마치던 날, 미술 선생님께서 다른 학교로 가게 되셨다며 인사 말씀을 하셨다. 가슴이 무너진다는 뜻을 알 것 같았다.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떠나시는 선생님의 뒷모습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 당당하고 씩씩하게 인사하겠노라 마음으로만 약속할 뿐이었다. 미술 선생님께 칭찬받는 제자이고자 읽기 시작했던 책이 즐거움이 되었다. 고등학교 삼 년 동안 독서에 빠져 지낸 나를 하늘이 기특하게 여겼는지 대입 제도가 바뀌었다. 수능 1세대, 긴 지문을 읽어낸 후 한두 문제를 해결하는 형식의 언어영역은 교과서보다 문학 서적과 많은 시간을 보낸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언어영역과 사회탐구 영역에서 받은 높은 점수로 부족한 수리 영역과 외국어 영역 점수를 보강할 수 있었다.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을 알고 계신 담임선생님께서 등록금 부담이 없는 몇몇 대학을 소개해주셨다.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교대를 선택했다. 삼 년째 병실을 지키는 엄마께 교대 합격 소식을 전했다. 수화기 너머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울먹이는 엄마의 음성은 슬픔과 외로움에 갇혀 있던 나를 자유롭게 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반년이 지날 무렵 동생은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언어와 운동 능력이 회복되지 않아 늘 부모님이 붙어있어야 하지만 우리 가족 곁에서 건강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도면 ‘마지막 잎새’의 기적이 실현된 것이 아닐까?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깊어가는 가을이 담겼다. 자연이 그린 말간 하늘과 단풍에 가슴이 콩닥거린다. 쉰에 가까이 다가섰음에도 마음은 달빛에 홀려 넋을 잃던 열일곱 살 소녀인가보다. 꼬리를 물기 시작한 생각은 그예 미술실에서 서러운 울음을 토해냈던 1991년 10월의 그 밤에 가서야 멈춘다. 미술 선생님은 알고 계실까? 당신이 나의 ‘마지막 잎새’였음을, 신뢰를 담은 따스한 눈빛이 존재의 가치를 잃고 무너져가던 아이를 일으켜 교단에 서게 했음을. 어린 제자의 아픔과 그리움을 공감해주는 선생님과 함께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음이 새삼 감사하다.
 

‘선생님’하고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코끝이 시큰하다. 아이들과 애정이 일렁이는 눈빛을 나누며 그림책을 읽어주는 호사를 누리는 지금, 빅토르 위고의 말을 온몸과 마음으로 실감한다. ‘삶에 있어 최상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편안하고 인자한 미소로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돌아본다. 미술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내가 실천할 차례다. 나의 아이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며 자신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삶의 한복판으로 씩씩하게 걸어가도록 응원하려 한다. 미술선생님을 뵙는 날이 오면 당신이 주신 신뢰와 애정을 나의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오랜만에 꺼낸 선생님과의 추억이 마음을 주홍빛으로 물들이는 11월의 첫날이다.

 

------------------------------------------------------------------------------------------------------

 

[수상 소감] 방황의 시기를 지켜준 선생님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춘기 시절의 흔들리고 아파하던 모습과 마주했습니다. 따뜻한 눈길과 격려로 사랑받고 있음을 끊임없이 일깨워주시던 은사님이 방황의 시기를 지켜주셨습니다. 마음을 보듬고 읽어주는 은사님이 계셨기에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교사라는 길을 행복하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이라는 낱말의 가치를 돌아보는 감사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 수상으로 이어지게 되어 기쁘고 감사합니다. 아이들과 마주하는 매 순간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기를 다짐하는 시간을 주셨음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