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교단수기 동상] 1991년 10월의 그 밤
하필이면 만우절이었다. 열일곱 살 소녀들의 다소 짓궂은 장난에도 선생님들은 기꺼이 속아주셨다. 유랑극단의 변사처럼 첫사랑 얘기를 풀어내는 선생님의 유려한 말솜씨에 사춘기 여고생의 마음은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터를 탔다. 눈부시게 만개한 벚꽃 같은 소녀들의 웃음으로 교정이 들썩였다.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이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금방이라도 별들이 쏟아질 듯 맑은 밤이었다. 흥겨운 콧노래도 절로 났다. 현관문을 열 때까지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나의 역할일 것이라 상상도 못 했다. 씩씩하게 엄마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볼일의 해결이 급선무인지라 일단 화장실로 향했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검붉은 피로 범벅이 된 옷가지가 변기 옆에 쌓여있었다. 너무 놀란 탓인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달려오신 옆집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아 거실로 나왔다. 아주머니께서 막냇동생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갔다고 말씀해주셨다. 담담 하려 애쓰셨지만, 목소리의 떨림이 느껴졌다. ‘귀한 자식은 귀신이 탐한다더니.’ 짧은 설명 끝에 한숨처럼 내뱉는 아주머니의 낮은 혼잣말이 귀에 꽂혔다. 사고가 심상치 않다는 걸
- 이용희 충남 남포초 교사
- 2022-08-27 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