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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만추의 끝자락 초겨울로 들어서는 11월의 숲길을 걷는다. 적요(寂寥)의 숲길, 바래지는 풀숲에 핀 보랏빛 들국화는 향기를 더하고 파란 물감을 쏟아부은 하늘에 비행운의 직선이 차갑게 흐른다.

 

수런수런 한 줄기 바람이 인다. 바람은 아직 화장을 지우지 못한 나무의 이파리를 떨구고 가지 사이를 거쳐 미처 종이에 옮기지 못한 설익은 가을 사랑을 데리고 날아간다.

 

 

문득 길은 언제부터 생겼는지 의문이 떠오른다. 문명의 발달 전에는 야생동물의 길로 오솔길로, 지금은 둘레길로 인위적으로 생기고 넓어졌을 것이다. 숲길을 걸어보면 계절별로 다가오는 의미가 다르다. 진달래 피고 진종일 뻐꾸기 울어 나무에 물오르는 봄의 길은 부드러운 푸석거림 속에 대지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여름의 숲길은 푸르고 젊은 낭만과 열정 새들의 날갯짓 소리 힘찬 성장이, 겨울의 숲길은 곤한 잠 속에 다음을 준비하는 침묵을 적시게 한다. 그리고 이즈음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의 숲은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에 걸어온 흔적을 되새기며 사색에 잠기게 한다. 이 사색은 자기 삶에 대한 반성과 새로움을 준비하고 당부하는 시간이다.

 

겨울 초입 숲길에 서서 한 해를 걸으며 성숙했을 것이라 자부하지만 마음 안팎이 혼란스럽다. 사랑하는 마음을 많이 가졌는지, 미움과 원망 질투와 시기의 마음을 많이 가졌는지 걸음을 멈추어 본다.

 

매일 아침 방송사에서 진행되는 정치 시사 이야기는 사람의 판단에 대한 혼란을 몰고 온다. 정치인의 비도덕적 언행과 타인 존중의 부재,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지금의 현실이 얼음 왕국에 서 있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를 거부하는 자신 또한 이들과 별반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 마음속에 포옹하고 받아들이는 사랑의 마음보다는 비판하고 책망하는 마음이 떨어지는 낙엽만큼이나 많으니 누구를 탓한단 말인가? 자꾸만 움츠러드는 마음에 나뭇가지를 비접고 쏟아지는 감빛 햇살에 오점을 남긴 일들에 청옥 같은 눈물이 파란 하늘을 이지러지게 한다.

 

우리 마음은 물론 내 마음에도 언제부터 이렇게 도덕성을 잃어버린 차가운 안개가 강을 이루고 있었는지 흐느낀다. 모난 생각의 디딤돌을 사랑으로 다듬어 징검다리를 놓고 소중한 본성으로 서고 싶다. 가을 숲길은 이런 회한과 사랑의 소중함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사랑에 참 인색하다. '사랑해요'라는 말과 그 분위기가 우리 삶에 일상화되기는 진정 어려운 것일까? 경쟁에서 이기고 더 좋은 직장과 부를 추구하며 남보다 더 편하게 살려고 한다. 이런 세상에서 선한 마음은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비교의 안경을 끼고 살아간다.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이야기는 소셜 미디어를 타고 우리 사회 전체인 양 색칠하고 혐오감을 재생산하고 있다. 그러니 마음은 더 푸석거린다. 정말 사랑이 결핍된 세상이다.

 

다시 늦가을과 마주한다. 숲길이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가져온 보온병의 커피를 따른다. 눈과 귀와 생각을 닫으니 마음의 평화가 온다. 진한 커피 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가는지도 모르는 세월 앞에서 노을 한 자락에도 추억이 숨을 쉬는 가을 마음이 된다. 나 혼자 붉어지고 꽃이 지고 사랑이 온 마음을 채우고 다시 빈 배가 된다.

 

우리 삶의 변곡점은 언제나 사랑에서 비롯된다. 나를 깎아 내야 올바른 삶을 찾고 닳아져야 행복을 준다. 남의 생각을 바꾸려 말고 먼저 자기 생각을 그리움으로 물들이는 노을처럼 바꾸면 된다. 좋은 생각을 하면 어긋난 일 없고, 좋은 말을 하면 다툴 일 없고, 겸손하게 행동하면 비난받을 일 없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면 마음 상할 일도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랑에서 출발한다.

 

사랑은 마음이라는 화분에서 진실이라는 물을 먹고 더딘 시간 속에서 어린싹을 올리고 잎을 피우며 아름다운 꽃이 된다. 자신을 성찰하고 남을 나보다 귀히 여기고 존중하고 배려할 때 살고 싶은 세상이 된다.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받았던 지난 삶을 불러들여 용서를 구하고 마음속 앙금을 훌훌 털어 내며 걷는 참회 길을 걸어보자. 헐뜯고 시기하는 질투보다 양보하며 신뢰하는 한 걸음의 사랑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가을 숲길을 벗어나 주름처럼 겹쳐 휘어진 들녘을 본다. 텅 빈 들엔 마늘이 자라고 김장을 준비하는 채전菜田엔 탐스러운 푸른색이 생을 사랑을 소중하게 느끼게 한다. 밭 언덕 은빛 억새는 살랑이며 사랑의 소중함을 풀어 놓고, 해 질 녘 노을은 산등성이에 불고 소리 없이 눈물로 흐르고 산 그림자 그리워 속으로 운다.

 

욕심을 비우면 별빛이 반짝이고 미움을 버리면 미소가 따뜻하게 손을 내민다. 이제 우리도 사랑하고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해 내 마음의 한 귀퉁이라도 사랑으로 내어 주면 어떨까? 사랑은 하늘이 내려준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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