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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조건, 지구촌 ‘한글학교’

1935년에 발표된 심훈(沈熏, 1901~1936)의 장편소설 <상록수>에는 ‘학교’가 등장합니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온전한 학교는 아닙니다. 여주인공인 전문학교 학생 채영신이 기독교 여성 연합회의 파견으로 청석골이라는 빈촌에서 문맹퇴치 활동을 하기 위해 운영하는 한글 강습소입니다. 학교 공간이 따로 없어 마을 교회에서 밤낮으로 아이들에게 한글 강습을 하고 있는데, 뜨거운 배움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분명 학교의 범주에 듭니다. 


소설 속 채영신은 당시의 실재 인물 최용신을 모델로 했다고 하니 <상록수> 이야기는 허구로만 만든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채영신의 학교는 일제 당국에 밉보이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일제는 교회 건물이 낡았다는 구실로 학생 인원을 제한합니다. 배움에 목마른 아이들이 이제는 학당에 들어올 수 없게 되자, 교회 학당 담벼락 뒤에서 얼굴만 마당을 향한 채 한글 문장을 울부짖듯 외치는 대목이 기억에 남습니다. 


오는 아이들 다 들여서 가르치려면, 비록 초가집 흙벽돌로 짓더라도 어딘가 학교 건물을 지어야 합니다. 채영신의 학교가 필요로 하는 가장 절박한 조건입니다. 다행히 그녀의 학교는 마을 주민의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한글 강습뿐 아니라, 청년들에게 시대를 일깨웁니다. 여성들을 계몽하여 생활 개선에 나서기도 합니다. 주민들은 채영신 학교를 간절히 바랍니다. 


채영신의 학교가 가진 ‘학교의 조건’을 생각해 봅니다. 학교의 학교다움을 지탱하는 학교의 조건은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현실 학교의 악조건도 물론 학교의 조건에 속합니다. 오늘 우리의 학교는 그녀의 학교가 갖지 못한 조건들을 갖추었는가요? 혹 그녀의 학교가 잘 갖춘 것 중에, 지금 우리는 그러지 못해서 보이지 않게 결핍감을 느끼는 것은 없는지요? 

 

나의 어머니(이숙영, 1930~2019)가 남겨 놓으신 산문 기록을 들추어 보니 이런 학교도 있습니다. 이 학교가 현실로 지녀 가진 학교의 조건은 무엇이겠습니까. 아픔과 연민이 가득 느껴지는 식민지 학교의 학생을 ‘학교의 조건’이라는 주제로 응시해 봅니다.
  
1939년, 나는 서울의 교동소학교 3학년이 되었다. 교실은 3층 중간이다. 월요 조회 때는 손톱과 손수건 검사를 담임선생이 일일이 한다. 지나사변(중일전쟁) 중이라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남산 꼭대기에 신궁참배도 가고, 봄소풍도 갔다. 학교생활이 변한 것은 없지만, 수업이 끝나고 오후 늦게 10여 명 정도 남아서 전선의 일본 군인에게 위문편지를 썼다. 


3학년이 되니까 조선어는 2학년까지만 배우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일어를 배운다. 공부시간이나 노는 시간에도 일본어로 대화를 했다. ‘국어(일본어) 상용’을 강요하면서, 일본어를 잘하면 사구라꽃이 그려진 배지와 상장도 준다. 일본 천황 생일(天長節, 덴초세쓰)에는 일황기를 본뜬 빨갛고 하얀 둥근 찹쌀떡을 두 개 준다. 


3학년 2학기가 되었다.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으면 어리지만 수군거린다. 일본이 창씨개명(創氏改名)을 요구한단다. 이윽고 어느 날 아침 첫 시간에 담임선생이 말한다. 우리는 황국신민(皇國臣民)이요 내선일체(內鮮一体)니까, 모두 성을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두어 달 후 우리는 차례대로 나가서 칠판에다 창씨개명한 자기 이름을 썼다. 김본영은 ‘金本英子(가네모도 에이코)’로 쓰고, 최숙현이는 ‘(山本順, 야마모토 준)’으로 썼다. 나는 이름을 갈지 않았다. 교무실로 불려가서 아버지를 모셔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숙영, <경성에서 학교 다니기>, 미발간 

  
내 땅의 내 학교인데, 남의 나라, 남의 학교가 되어 있다면, 이런 조건 아래 놓인 학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요. 외양을 갖추고 서 있는 학교라고 다 학교가 아님을 느낍니다.

 

전쟁과 궁핍이 ‘현실 학교의 조건’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도 더듬어 봅니다. 1956년 내가 입학한 초등학교는 6.25 전쟁의 상흔이 가득했습니다. 흙벽돌 채로 노출된 교실 내벽들, 나무 서까래 위를 군용 텐트 천으로 덮은 교실 지붕, 그 틈새로 드문드문 보이는 하늘, 비가 오면 수업을 못 하고 아이들을 돌려보내곤 했습니다. 이때 당면한 ‘학교의 조건’은 학교의 건물을 제대로 세우고, 교구와 교과서를 마련해 주는 데에 있지 않겠습니까. 


전쟁이 유실한 폭발물 사고로 아이들이 죽고 다쳤습니다. 이런 사고들을 포함하여 전후의 헐벗음과 굶주림과 전염병은 그 시절 ‘학교의 조건’에 관여했습니다. 그게 만연할수록 학교는 가르치는 일을 제대로 못 했습니다. 학교는 유엔이 보내준 분유나 의류 등 구호제품을 배급하고, 전염병 방역을 했습니다. 학교의 지역·사회적 조건이 생겨납니다.


전후 베이비부머 세대가 태어나면서 학교는 한 학급당 8~90명의 밀집공간이 되었습니다. 수업도 교육공학적 진화를 모색하게 되고, 학교는 산업화 시스템에 생산 인력을 공급하는 조건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잘하든 못하든 공부를 하고 싶은 동기는 강했습니다. 공부가 이 곤궁과 결핍의 탈출구임을 교육이 암시하면서 학교의 조건도 그런 방향으로 잡혔습니다.

  
그런 중에도 학교는 학교였습니다. 배우고 익히고, 그리고 상급학교로 진학합니다. 연중 기념행사들이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지역사회와 학교가 어우러집니다. 학예회를 하고, 운동회를 하고,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예방주사를 맞고, 기생충 검사를 하고, 학교 청소를 했습니다. 실습지를 가꾸고, 교과서를 물려받았습니다. 학교는 훈화에서 애교심·애국심을 강조하고, 이런 프로세스에서 학부모의 위상도 생겨났습니다. 학교가 ‘문화의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음도 자각합니다. 학교다움을 나타내는 ‘학교의 조건’은 더 구체적이고 더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학교도 있습니다. 나라 밖 지구촌 각지에 있는 학교인데도 분명 우리의 학교입니다. 현재 약 1,500개 학교에 15만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14,000여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학생들은 한국어를 잘 모르는, 그곳에서 태어나 살아온 재외동포 한국인 2세·3세들입니다. 물론 우리와 핏줄을 함께 나눈 지구촌 한인들입니다. 


이름하여 ‘한글학교’, 아이들은 월화수목금 주 5일을 그곳 거주국의 일반 학교에 다니다가, 남들 다 노는 토요일에 특별히 이 한글학교에 옵니다. 누군들 주말 휴일에 학교에 오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한글학교는 일단 오기만 하면, 지낼 만합니다. 일반 학교에서는 외모도 피부도 다른 아이들과 생활하지만, 여기서는 서로 비슷하게 생기고, 한국말을 조금씩 하는 아이들끼리 지냅니다. 선생님도 한국인입니다. 무언가 묘한 친밀감이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학교입니다. 


대개는 다른 건물을 빌려 씁니다. 그래서 겪는 설움도 큽니다. 재정이 열악하지만, 어떻게든 학교를 눈물겹게 살려 갑니다. 소풍도 가고 운동회도 합니다. 방학에는 특별 캠프를 합니다. 물론 현실의 불리한 조건들로 문을 닫는 학교들도 꾸준히 생깁니다. 전교생 30명 미만의 학교도 수없이 많습니다. 학교 수효만큼이나 ‘학교의 조건’도 다릅니다. 


미국 보스턴 한글학교의 남일 교장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입니다. 그는 글로벌 지구촌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려면 뿌리가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세계 시민으로 살아가게 하는 진정한 힘은 자신이 지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서 나옴을 몸소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글학교의 존재론적 조건입니다. 그의 말을 들어봅니다. 

 

나는 자녀를 기르면서 나와 아이들의 뿌리 뽑힘의 삶을 막막하게 발견하는 데서 우리말을 새롭게 각성하였다. 우리말에 대한 각성은 한국에서는 잊고 살아도 되었는데, 여기 이민의 나라에서는 그 말을 잊으면 존재의 불안이 다가온다. 아,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나의 2세들은 자라면 나로부터 빠르게 멀어져 갈 것이다. 이 낯선 대륙의 끝과 끝으로 흘러가서, 이 소외로 가득한 이국의 대도시에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남일, <한글의 최전선, 지구촌 한글학교 스토리> 중에서

   
오늘날 지구촌 한글학교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지구촌 한글학교가 모국의 교육과 왕성한 상호성을 갖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한글학교는 동포 차세대를 더욱 단단하고 유능한 세계인으로 길러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인재들이 어찌 동포 사회의 인재만으로 그치겠습니까? 위대한 한국의 인재임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한글학교의 조건은 ‘지금 여기’ 우리 교육의 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우리 교육의 미래 조건임도 자명합니다. 우리 쪽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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