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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라이프&경제] 문맹보다 더 무서운 금융문맹

 

"한국에 와보니까 모든 게 돈 있으면 다 되는 거예요. 내가 돈을 벌어야 내 자식을 데려올 수 있겠구나 싶어서 뼈 빠지게 돈을 벌었어요. 그러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쉽게 벌어보자 싶어서 돈을 여기저기 정신없어 투자했다가 한 푼도 남김없이 잃었어요. 수익이 얼마 날까? 손해를 보지 않을까? 이런 건 생각도 못 했어요."(북한개발연구소 사례02)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통장에 돈을 넣어줄 테니 갖고만 있어 달라는 거예요. 한 달에 얼마씩 따로 챙겨준다고도 했어요. 그래서 계좌번호를 알려주니까 바로 큰돈이 들어오더라고요. 한 3개월 정도 돈을 갖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다 빠져나갔어요."(탈북민 정ㅇㅇ씨)
 

통일부와 북한개발연구소(2021년)에서 조사한 탈북민 금융사기 피해 사례다. 처음 이 내용을 접했을 때만 해도 ‘아직도 이렇게 금융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탈북민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금융에 대해 무지한 ‘금융문맹자’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북한 주민 10명 중 8명이 은행을 이용한 경험이 없고 대출 거래는 98.6%가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넘어온 탈북민 10명 중 5명이 금융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런 탈북민의 현실을 보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의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맹보다 더 무섭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금융문맹자로 탈북민만 있을까? 2014년 금융감독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개발한 측정 도구를 활용해 다양한 계층의 금융이해력을 조사했다. ‘금융지식, 금융행위, 금융태도’를 묻는 3가지 항목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 일반 성인의 금융이해력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에 67.8점이 나왔다. 이에 반해 탈북민은 51.4점, 다문화는 52.8점, 노인은 59.9점, 저소득자는 63.4점이 나와 일반 성인에 비해 최대 16.4점에서 최소 4.4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약계층 대상 금융교육 필요

 

 '100만원을 예금에 가입했습니다. 이자율이 2%라면 1년 후에 원금과 이자를 합하여 얼마를 돌려받을 수 있습니까?'

 

예금 이자율을 묻는 다음 문항에서 일반 성인은 10명 중 7명이 맞췄다면 취약계층은 10명 중 4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취약계층 중에서도 특히 노인과 탈북민의 정답률이 낮았다.

 

결국 취약계층은 전반적으로 금융이해력이 떨어지지만, 계층별로 취약한 금융 분야와 영역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금융교육에 대한 조사에서도 나타났는데, 취약계층 모두 ‘저축과 투자’에 대한 금융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탈북민과 노인은 ‘금융사기를 당하지 않는 법’, 저소득자는 ‘수입과 지출관리’ 같은 금융교육에 대한 니즈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런 금융교육은 중학교 이전부터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렇다면 2014년 금융감독원 조사 이후 우리나라 성인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올랐을까? 지난 2021년 실시한 금융감독원의 ‘2020 전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 우리나라 성인의 금융이해력은 평균 66.8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4년에 비해 오히려 1점이 줄어든 결과다. 
 

그렇다면 조기 금융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던 청소년들은 어떨까? 2020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초·중·고등학생 1만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경제이해력 조사 결과, 평균 점수는 53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중학생은 49.8점에 그쳐 충격을 줬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20년 3월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면서 국가의 금융교육 지원을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이 법 제7조를 보면 금융소비자의 기본적 권리를 위해 ‘합리적인 금융소비생활을 위하여 필요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포함돼 있다. 물론 이 법 공포 전에도 민간금융회사 중심으로 청소년과 취약계층을 포함한 금융교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금융회사는 순수한 목적의 금융교육보다는 자사의 상품이나 브랜드 홍보에 더 관심을 보여 이해상충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도 이런 사실을 아는지 2020년 5월 서민금융진흥원, 금융감독원 같은 유관기관과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 같은 교육단체 중심으로 ‘금융교육협의회’를 발족했다. 금융교육협의회가 출범한 후, 2020년과 2021년 실시한 금융교육은 89만 건이 넘었고, 필자가 속한 서민금융진흥원(이하 서금원)에서도 2022년 2월까지 179만 명이 넘는 인원을 대상으로 금융교육을 실시했다. 
 

특히 서금원은 다른 기관보다 취약계층과 청소년 금융교육에 적극적이어서 탈북민과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맞춤 교육과정 개발과 보드게임 ‘꿈이머니’, 초·중·고 금융교육 워크북 4종을 자체 제작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올해 정부의 금융교육 방향은 어떻게 될까? 2022년 12월 금융교육협의회는 2023년부터 교육 대상을 ‘아동·청소년, 청년, 중장년, 고령, 특수계층(취약계층)’으로 세분화해 생애주기별 맞춤 금융교육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도 생애주기별 교육 추진

 

그중 기존 금융교육에서 소외되었던 탈북민, 다문화, 장애인, 저소득·저신용자 같은 취약계층은 금융 거래 특성을 반영한 기관과의 연계 교육이 강화될 예정이다. 특히 이들 취약계층은 특수성을 고려한 전문 강사 양성과 교육 콘텐츠 개발이 중요한데, 서금원이 앞으로 핵심 역할을 할 것 같다.
 

서금원은 지난 2019년부터 학자금대출 이용자, 군장병, 보호종료아동, 탈북민. 저신용자 등 다양한 취약계층의 금융교육을 실시한 경험과 전문강사 풀(Pool) 보유, 맞춤 콘텐츠 제작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2022년에는 아동권리보장원, 대한사회복지회, 북한인권정보센터, 남북하나재단 등과 협업해 실제 취약계층 대상자가 경험한 사례를 직접 발굴해 ‘내 돈을 지키는 사기피해 예방법’ 교육 영상을 제작했다. 특히 취약계층이 주로 타깃이 되는 금융사기 예방을 위해 보이스피싱, 스미싱, 메신저피싱, 파밍, 유사수신, 불법사금융, 대출사기, 대포통장 같은 수법을 드라마 형식으로 제작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서금원이 제작한 온라인 동영상 교육 중 ‘생애재무설계’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16편 모두 수화(手話), 자막을 제공하며 차별화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청소년과 시니어 등 다양한 취약계층 대상 금융교육 영상도 서금원 금융교육포털(https://edu.kinfa.or.kr)에 준비되어 있으니 많은 이들이 접속해 이용했으면 좋겠다.
 

끝으로 한국금융교육 학회장을 지낸 한진수 경인교육대학 교수의 말을 되뇌며 금융강사로서의 역할과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돈 관리하는 법을 모르면서 사회생활 하는 것은 수영할 줄 모르면서 바닷가에 뛰어드는 것과 똑같다. 밖에서 펼쳐지는 금융 세상에 대한 무서움을 모르고 ‘그거 뭐 나중에 돈 벌어 천천히 배우면 되지’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물에 뜨는 법은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안 가르치고 사회에 내보내는 건 어른들의 책임이다."
 

결국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금융생활의 지혜를 알려주는 것도 아이들이 금융 세상에서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선생님으로서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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