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패러디가 한동안 유행한 적이 있다. 백설공주는 ‘흑설공주’로 다시 태어났고 극장에서는 여러 동화이야기를 유쾌하게 풍자한 ‘슈렉’ 같은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바탕으로 한 그룹 動·시대의 ‘오! 발칙한 앨리스’(극본 김나영·연출 오유경)는 이런 동화 패러디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앨리스의 몸이 커졌다 줄어든다거나 폭압정치를 일삼는 여왕이 등장하는 등 원작과 유사한 설정도 많이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호기심 많은 소녀 앨리스의 모험이 ‘성’이라는 민감한 주제로 재구성됐다는 점은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사춘기에 접어든 앨리스는 언니가 몰래 읽던 ‘빨간 책’을 빼앗아 보다가 이상한 꿈을 꾸게 된다. 꿈 속에서 제일 먼저 앨리스는 한 남녀의 애정행각을 보게 된다. 엿보기가 시원치 않자 투덜대는 앨리스의 모습은 우리 주변 사춘기 청소년들을 상징한다.
“이럴줄 알았어. 늘 이런 식이야. 왜 영화는 늘 결정적인 순간에 어두워지는 거야? 책은 더하지. 온갖 어려운 용어들만 넘쳐나.”
사실 우리 사회의 성교육이라고 하면 몇 년째 반복되는 고리타분한 교재나 성인군자의 말씀쯤을 떠올리기 쉽다. ‘…발칙한 앨리스’는 사람들이 감추려고만 하는 성을 오히려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유쾌하게 풀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계속되는 여행을 통해 앨리스는 바람둥이 수탉, 거세당한 개를 만나고 성에 대해 말도 안되는 철학을 늘어놓는 굼벵이와 열띤 토론을 펼치기도 한다.
다음에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성을 바꾸기로 한 연인이 등장한다. 남자는 초경을 시작했고 여자는 수염이 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앨리스는 평소에는 내숭만 떨던 엄마, 언니, 이모와 고모가 본능에 충실하자는 ‘빨간당’을 결성해 강압적으로 순결만 강요하는 여왕 무리에 맞서는 광경을 목격한다.
솔직하고 순수한, 한편으로는 당돌하기까지 한 앨리스의 모험은 꿈에서 깨는 순간 끝이 난다. 지금까지 앨리스가 경험한 모든 것은 현실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억압받는 성, 과장된 성, 트랜스 젠더 등은 현실세계에 엄연히 존재하기도 한다. 꿈에서 깨어난 앨리스는 다시 책을 집어들고 한 구절을 읽기 시작한다. “아, 모두가 창살 없는 감옥에 갖혀있다.”
‘아름다운 우리 아이들의 성’이라는 제목의 강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호기심 가득한 청소년기, 무조건 덮어버리고 나무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부터 제대로 알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극단 관계자는 “우리 사회의 성은 많이 왜곡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연극을 통해 자연스럽게 청소년 성교육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음달 30일까지 대학로 혜화동 1번지에서. 문의=02)765-7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