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책을 읽어주어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 읽어주면 된다’입니다. 누가 됐던 책을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 읽어주면 됩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읽어주시면 되고, 가정에서는 엄마가 읽어주시면 됩니다.
집에선 부모, 학교에선 교사가
하지만 아직 가라앉지 않은 주장과 논란이 있습니다. ‘아빠가 읽어주면 좋다’는 것입니다. 한 20~30년 전에 아빠의 목소리를 확대해서 태아에게 들려주는 기계 장치에 대한 신문 광고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아빠의 목소리가 엄마의 심장 박동 소리와 비슷해서 태아가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 장치를 이용해서 책을 읽어주라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임신 후반기 엄마의 배에 그 장치를 대고 행복한 표정으로 태아에게 말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었습니다. 많이 팔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제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남을 정도로 신기하게 봤습니다. 태아에게 책을 읽어주라는 것도, 아빠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는 설명도 신기한 일이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과학적인 사실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엄마(여자)들은 책을 읽어줄 때는 사실과 관련된 질문을 하는 경향이 있고, 아빠(남자)들은 책을 읽어줄 때 다양한 어휘와 상상을 유도하는 질문을 더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아빠들이 경험과 관련된 언어를 사용하여 책을 읽어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아빠가 만 2세부터 책을 읽어줬더니 초등학교 입학 후에 엄마가 읽어줄 때보다 어휘 능력과 읽기 능력이 더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빠가 읽어주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 ‘아빠와 함께 별 보며 책 읽기’라는 행사를 하며, 아빠들에게 책을 읽어주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아빠가 책을 읽어준 가정의 엄마 역할입니다. 그 가정에서 아빠만 책을 읽어줬을까요? 엄마는 전혀 책을 읽어주지 않고 아빠만 읽어줬을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분명히 엄마의 역할이 있었을 겁니다. 아이가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는 부드럽고 따뜻한 가정을 이루었을 가능성이 크며, 온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지 않았을까요? 만약 엄마가 전혀 책을 읽어주지 않았더라도 책을 읽어줄 정도로 아빠가 육아에 참여했고, 사랑이 담긴 엄마 돌봄으로 아이가 잘 자라지 않았을까요?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라는 두 날개에 의해서 자라게 됩니다. 두 날개가 서로 도와 힘찬 날갯짓을 할 때 아이들은 높고 멀리 날아오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책·사람의 영향력 전해져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주는 좋은 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가 더 일찍부터, 많이, 깊게 아이들과 생활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아이들은 태어나기 전에는 엄마와 탯줄로 이어져 있어 한 몸이었고, 태어나면서 엄마의 젖을 먹으며 엄마와 늘 붙어 지냅니다. 아이는 태어나면서 36개월 정도까지는 거의 모든 것을 엄마와 합니다. 현대인의 생활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엄마의 역할이 크게 바뀔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엄마와 붙어있는 이 시기는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입니다. 자려고 할 때, 젖을 먹일 때, 누워있을 때, 안고 있을 때와 같이 마음만 먹으면 기회가 아주 많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책을 읽어주기 가장 좋은 사람은 엄마입니다. 그래서 ‘아빠가 읽어주면 좋다’는 게 아니라 ‘아빠도 읽어주면 좋다’가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엄마가 시작하고 아빠도 읽어주는 것이죠.
가정에서는 엄마가 책을 읽어주기 좋은 사람이라면 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가장 적합한 사람입니다. 엄마와 선생님은 아이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며,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짬짬이 책을 읽어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책 읽어주기는 책의 영향력과 읽어주는 사람의 영향력이 합쳐져서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순간입니다. 엄마와 선생님처럼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책을 읽어줘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떨까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당연히 좋습니다. 책을 읽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시작하면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참여하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 읽어주면 좋다’고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