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별력은 갖추되,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소위 ‘킬러 문항’은 학생과 학부모의 눈높이에서 철저히 배제하겠다.”
지난 8월 7일 취임한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어느 때보다 수능시험에 대해 우려와 걱정이 큰 시기에 중책을 맡게 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다가오는 2024학년도 수능이 공정하고 엄정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출제 및 시행 관리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소위 킬러문항이 출제돼 전임 이규민 원장이 중도 사퇴하면서 평가원은 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세간의 시선은 킬러문항 또는 준킬러문항도 출제하지 않으면서 수능의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모아진다. 평가원장 자리는 ‘독이 든 성배’로 불린다. 그만큼 힘들고 위험하다는 의미다. 역대 원장 중 3년 임기를 제대로 마친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오 신임원장은 “자신 있다”고 말했다.
현장교사들을 중심으로 공정수능 평가자문위원회를 구성·운영하고, 교육부가 추천하는 공정수능 출제 점검위원회가 출제단계에서부터 문항을 집중점검하면 수능 시험문제가 공교육 밖에서 출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사교육을 받아야 풀 수 있는 고난도 문항은 철저히 배제하겠다는 것이 기본 목표”라고 각오를 피력했다.
임기동안 평가원 운영 방향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먼저 국가수준 교육과정 개발과 창의적 교실수업 혁신을 통해 단순암기식 수업에서 탈피하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또 학업성취도의 정확한 진단 역시 평가원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AI 디지털교과서 개발과 현장 교사연수에 평가원이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성취평가제가 신뢰성을 갖도록 현장 밀착형 지원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불과 두 달 전만해도 오 신임원장은 교육부 책임교육실장을 맡아 초·중등교육을 총괄했다. 최근 초등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권회복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교육이 한 단계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오 신임 원장은 “무엇보다 교사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세워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학교현장에서 교사들이 얼마나 힘든 고통을 당하는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수많은 교사가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에 모이는 것은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터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교단이 무너지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들이라는 사실을 학부모들도 인식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보다 좋은 교육을 만들기 위해 교사는 물론 학생과 학부모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신임원장은 “법과 제도로만 문제를 푸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교권을 존중하고 교사와 학부모가 건강한 소통관계를 형성하는 사회·문화적 변화가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중등교사 출신이 평가원장에 선임된 것은 오 신임원장이 처음. 경기도 파주 출신으로 서울난우중·자양고·창덕여고 교사와 서울시교육청 장학사, 교육부 학교정책관·교육복지정책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국교육원장, 잠실고 교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