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청소라면 옛날 초등학교 다닐 때 무엇을 잘 못하거나, 가져오라는 물건을 잊고 온 경우에 벌로 주어지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화장실 청소가 학교에서 어렵고 힘들다고 용역을 주어야한다느니, 그래도 교육적으로 아이들이 직접 실시해야한다느니 등 논쟁의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본 큐슈 오이타현에서는 화장실 청소를 통해서 마음을 닦자는 취지에서 학교나 공원 등의 화장실을 청소하는「오이타 청소로 배우는 회」(야노대표)의 활동이 5월 18일, 100번째를 맞이하였다는 것이다. 이 활동은 자동차부품판매회사「옐로우 핫」(본사 토쿄)의 창시자로 현 상담역인 가기야마씨가 제창하였다. 「겸허한 마음이 되고, 감사의 마음이 생겨난다」라고 기업의 리더들이 솔선하여 시도해 국내외로 확산되고 있다. 오이타의 회는 1997년 다케다시 공원의 화장실을 22명이 청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매월 제 3일요일을 중심으로 활동하여 매회 20-30명이 모였다. 10년간 연 참가 인원은 6천명을 넘어섰다. 이러한 활동이 알려져 현지 중학교나 자치단체 등으로부터「화장실 청소 방법을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요청이 늘어나 학생과 직원이 일체가 되어 청소하는 등 현 내
"산에서 멧돼지로부터 피해를 예방하려면?" "가급적 2명 이상 함께 등산하고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산에서 멧돼지를 만났을 때 대처요령은? ▲뛰거나 소리지르지 말고 침착하게 멧돼지의 눈을 쳐다볼 것 ▲겁먹은 모습을 보이지 말 것 ▲멧돼지 새끼를 만지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절대 하지 말 것 ▲멧돼지가 흥분했을 때는 주위 나무나 바위 등 은폐물에 몸을 신속하게 숨길 것 수원시 장안구청은 최근 구청 및 시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수원 광교산(光敎山. 528m)을 찾는 등산객과 시민의 안전을 위해 '멧돼지 발견 시 대처 요령' 이라는 제목의 알림 글을 올렸다.지난해 10월 30일 새벽 광교산과 인접한 장안구 조원동 한일타운 아파트에 멧돼지 3마리가 출현했다 광교산으로 도망간 일이 있은 후 장안구는 광교산으로 올라가는 주요 등산로 15곳에 '멧돼지 발견시 대처요령'을 알리는 현수막을 설치했다. 그러나 이후 멧돼지가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최근 광교산에서 멧돼지 발자국을 봤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어 광교산을 찾는 등산객과 시민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지난 3월 7일 수원.성남.의왕.용인시에 걸쳐 있는 광교산의 용인시 관내에서 멧돼지 포획작전이 벌
보리타작을 시작한 강마을에는 연일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기압이 낮은 날이면 빵 굽는 냄새 같기도 하고, 누룽지 냄새 같기도 한 매캐한 연기가 온 들을 휘감아 희뿌옇습니다. 황금빛으로 출렁이던 보리밭이 가뭇없이 사라진들판에는 모심기를 한 논이 보입니다. 연초록 어린 모들이 줄을 맞추어 선 무논에서 개구리 소리가 들립니다. 참으로 싱그러운 계절입니다. 운동장에는 동아리체육대회 준비를 하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땀을 흘리면서 이단뛰기 연습를 하느라 붉어진 은실의 볼이 사과처럼 어여쁩니다. “은실아, 연습은 잘 되니?” “아니예, 집에서 맨날 하는데 잘 안되예!” “선생님도 예전엔 이단뛰기를 잘 했는데!” “한번 해 보이소예.” 은실이의 줄넘기를 받아 몇 번의 이단뛰기를 하니, 어지럽고 숨이 찹니다. “아이고! 나이는 못 속이겠다. 예전에는 50개도 쉽게 했는데....” 은실이는 다섯 개도 못 하고 힘이 들어 하는 선생님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못믿어 하는 은실이를 뒤로 하고 운동장 주변을 산책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향기로운 바람이 코끝을 스칩니다. 실습지 주변 길가 울타리 사이에 희고 노란 인동꽃이 피어있습니다. '금은화(金銀花)'라고도 불리는
5월 30일 본교 세미나실에서 교직원 연수가 있었다. 1교시에는 서산여고 김숙영(영어) 선생님의 '2007개정교육과정 및 학업성적관리'에 관한 설명이 있었고, 이어 2교시에는 윤기수 서산고등학교장의 '수업혁신방안'에 관한 강연이 있었다. 강연에서 윤기수 교장은 '변화하는 여건에 적응하는 생물만이 살아남는다.'는 찰스 다윈의 말을 인용하며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 지식의 발생은 12초마다 변화하므로 이에 적응하려면 혁신만이 살길임을 강조했다.
도자기전쟁 규슈 답사 마지막은 조선도공 이야기입니다. 주지하시다시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 땅으로 많이 잡혀갔습니다. 왜 수많은 도공들을 일본으로 끌고 갔을까요? 마침 그때 일본에서는 다도(茶道)가 한창 유행했습니다. 16세기 후반 센노리큐라는 사람이 일본의 차문화를 다도로 발전시켰던 것이죠. 하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제대로 된 찻잔 하나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조선이나 중국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는 인기 절정이었습니다. 특히, ‘이도다완’으로 불리는 조선의 찻사발은 평범한듯하면서도 오묘한 멋으로 인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것도 있습니다. 도자기는 재정적자에 허덕이던 영주들에게도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도자기를 팔아 이익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도공들을 잡아가는 데 더더욱 혈안이었습니다. 그래서 도공들을 집단적으로 거주시키며 감사와 함께 파격적인 대우까지도 보장하면서까지 하이테크 기술의 응집인 도자기를 만들도록 했던 것이죠. 7년여의 전쟁으로 인해 조선의 도자기산업은 크게 위축되었던 반면, 일본은 조선도공들로 인해 도자기산업이 싹트게 되었고 이후 국제적 정세를 잘 이용하여 중국을 대신하여 유럽에
BC 490년. 아테네의 밀티아데스는 아테네 북방의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군 1만과 플라테이아군 1천을 이끌고 2만 5천여 페르시아군에 맞섰다. 페르시아의 기병이 주력군과 떨어져 있음을 확인한 밀티아데스는 페르시아군의 측면을 공격한 후 포위하는 데 성공했으나 결국은 참담한 패배로 마라톤전을 끝냈다. BC 480년. 아테네해군은 8일 전 아테네를 정복하고 약탈한 페르시아군과 살라미스 해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였으나 역시 대패했고, 그로 인해 최초의 동양과 서양의 전쟁으로 운위(云謂)되기도 하는 페르시아전쟁도 10여 년 만에 막을 내렸다. 물론 사실은 그 반대였다. 그리스는 마라톤전과 살라미스해전을 값진 승리로 장식했다. 하지만 만약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세계가 페르시아에 패했더라면 고대 그리스의 역사, 아니 서양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서양문화의 뿌리, 고대 그리스 1820년대에 그리스인들이 400여 년에 이르는 오스만 제국(현 터키)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운동을 일으켰을 때 영국 시인 셸리는 “우리의 법률, 우리의 문학, 우리의 종교, 우리의 예술, 그 모든 것의 뿌리는 그리스에 있다. 그리스가 없었다면… 우리들은 아직까지도 야만인과 우상숭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