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중 전사하신 외삼촌을 국가보훈 대상자로 신청하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는 면사무소 직원에게 외할아버지께서는 “자식 팔아 돈 받으라고?”라며 단번에 거절하셨다. 나의 수기가 은상을 받고 분에 넘치게 상금까지 받았다. 혹시 학생들이 이 글을 보고 학생들을 팔아 돈을 받는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부끄럽고 두려웠고 투고를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러나 명예퇴직을 신청한 한 선생님의 “한 번이라도 제대로 수업을 해보고 싶었어요”라는 말에, 교단에서의 고백을 글로 남기는 것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리를 빌려 학생들에게 변명을 하고 싶다. “너희들은 모두 소중한 인간이고 난 너희를 가식 없이 존중했다. 결코 너희의 이야기를 팔기 위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내가 무엇이라도 해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그것들이 쌓여 우리 같은 현실의 학교들이 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또 하나, 교단에서 좌절을 경험하신 선생님들께 나의 부끄러운 교단 고백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학생들 앞에 이 글을 내놓는 부끄러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방해하는 학생이 있으면 다가가 두 손을 잡고 선생님 수업준비 열심히 했고 준비한 만큼 열심히 할거 거든, 그러니 잘 들어줬으면 고맙겠다”고 했다. 한 학생이 묻는다. “그래도 떠들면요?” “그러면 또 다가가 꼭 껴안고 또 한 번 똑같이 말하겠다.” “그 다음은요? 키스? 그럼 그 다음엔 빠구리?” 할 말을 잃었다. 이정도까지인가? 이 학생들 데리고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문득 작년 일이 떠올랐다. 첫 동아리 시간에 여학생 다섯 명이 늦게 들어왔다. 보통은 늦게 들어오면 미안한 마음에 조용히 자리에 앉는데 그 학생들은 달랐다. 계속 하던 얘기를 하면서 교실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앉으라고 했는데도 소용이 없다. 급기야 큰 소리를 냈다. “앉아!” 그러자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참 이상한 사람이야.” 그 소리를 듣고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충격에 다른 수업시간에도 완전히 손을 놓아버렸다. 교실은 죽은 교실이 돼버렸다. 뒤늦게 바로잡으려 해봤지만 이미 속수무책, 전혀 수업을 할 수 없었다. 교사의 생명은 수업인데 수업을 못하니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패배감, 절망감, 자괴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면서 반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