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소년은 오후 내내 얼음판에서 뛰놀다 해거름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어……? 선생님!!” “그래, 너 오랜만이구나. 얼굴 보기 되게 어려운데, 도대체 이게 몇 달 만이지?” “네에……” “어머님, 그런데 세숫대야는 어디에 있어요?” “글쎄……. 우물가에 있겠죠.” 소년은, 어머니의 대답소리로 봐서 선생님은 이미 오래전에 집에 오셔서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난 다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너 이리 와봐. 나하고 같이 세수부터 하고 이야기 좀 하자.” 선생님은 부엌으로 들어가시더니 미리 끓여놓은 물을 한 바가지 퍼들고 나오면서 아이의 손을 막무가내로 끌고 우물가로 향했다. 아이는 사실 날씨가 워낙 춥고 집안 사정도 어수선해서 며칠씩 세수를 안 하고 지내기가 일쑤였다. 당연히 손등과 목덜미에는 까만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선생님은 소매를 걷고 연신 더운 물을 떠오면서 아이의 손과 얼굴, 그리고 목덜미의 때까지 모두 깨끗이 벗겨 내고는 머리를 감겼다. 그리고 아이와 어머니 옆에 앉아 집안 사정을 자세히 물었다. 이야기를 끝내고 일어서면서 선생님은 다시 한 번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씻겨 놓고 보면 이렇게 미끈한 신사인데,
30여 년 전 어느 가을, 결혼 6년 차에 두 아이와 한 여인을 먹여 살리고 있던 나는 서울 금호동의 가파른 언덕길을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대학시절의 스승을 찾아가 인생 상담을 해보고자 함이었다. 당시 나는 영등포지역의 한 제조 기업에 근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일하는 재미로,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으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래서 조금의 성과도 있었고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 이상 회사생활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칠 년이 지났을 때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친구를 만나거나 선배도 찾아가 보고 책도 여러 권 읽었다. 그러나 시원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시절 가장 많은 소통을 했던 스승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고 향후 진로에 대해 지도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여러 달 동안 그 스승의 전화번호를 다 눌러 놓고도 신호가 울리기 직전에 그냥 내려놓곤 했다. 스승의 기대에 어긋나 있는 내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드러내 공연한 걱정을 끼치는 것도 싫었고,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도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그것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
“헌구야, 학교 가니?” “선생님!” “그래, 서리가 와서 춥지?” “네, 손이 시려요. 가방 때문에요.” “그래, 손이 많이 차겠구나, 어디 한 번 만져보자.” “네……?” “음, 장갑이 없구나.” “네, 동생이 가져갔어요.” “그런데 추워도 손을 깨끗이 씻어야지. 병균도 그렇고 다른 애들이 보고 게으르다고 흉보면 어쩌지?” “네, 알겠어요.” “너는 학교에선 글짓기도 하고 붓글씨도 잘 쓰고 선생님 말도 잘 듣는데 집에서 엄마 말씀도 잘 듣지?” “아니에요. 동생들이랑 매일 싸워요. 그래서 혼나요.” “잠은 어떻게 자니?” “가게 뒷방에서 여섯 명이 같이 자요.” “음, 그렇구나. 너 이번 토요일에 선생님 집에 놀러오지 않겠니?” “네? 좋아요. 가고 싶어요. 그런데 선생님 댁은 멀다고 그러던데요?” “그래도 선생님하고 이야기하면서 가면 금방 갈 수 있단다. 우리 같이 가서 선생님하고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또 같이 자고 놀자. 오늘 가서 엄마한테 토요일은 선생님 집에 가서 자고 온다고 미리 말씀드려라. 알겠니?” “네, 선생님 알겠어요.” 털장갑을 끼신 선생님은 한손으로는 도시락 봉투를 드시고 다른 한손으로는 코 묻은 내 손을 잡고 걸어가셨다. 가끔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