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어느 가을, 결혼 6년 차에 두 아이와 한 여인을 먹여 살리고 있던 나는 서울 금호동의 가파른 언덕길을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대학시절의 스승을 찾아가 인생 상담을 해보고자 함이었다.
당시 나는 영등포지역의 한 제조 기업에 근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일하는 재미로,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으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래서 조금의 성과도 있었고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 이상 회사생활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칠 년이 지났을 때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친구를 만나거나 선배도 찾아가 보고 책도 여러 권 읽었다. 그러나 시원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시절 가장 많은 소통을 했던 스승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고 향후 진로에 대해 지도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여러 달 동안 그 스승의 전화번호를 다 눌러 놓고도 신호가 울리기 직전에 그냥 내려놓곤 했다. 스승의 기대에 어긋나 있는 내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드러내 공연한 걱정을 끼치는 것도 싫었고,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도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그것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에 당시 그의 집이 있었던 금호동 고개를 걸어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 강군이 웬일인가, 이쪽으로 앉아서 커피나 한잔 하게”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래, 무슨 일인가?”
“지금 다니는 회사가 더 이상 제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활로를 열어 볼까 하는데 도무지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지 막막해서 왔습니다.”
“언젠가 만났을 때는 자네 지금 그 회사에서 아주 잘 적응해 능력도 발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무슨 문제가 생겼는가, 뭐가 문제인가?”
“네, 회사에서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힌 것은 아닙니다. 또 무슨 사고가 난 것도 아니지만 다만 회사 대주주의 재산을 증식시키기 위해, 그리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저의 가치관이나 적성에 맞지 않는 일, 그리고 창의성을 살리기보다는 그냥 주어지는 일을 해야 하는 제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해서입니다.”
“하아, 그런가? 얼굴을 보니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역력하구먼. 사람마다 고유장점이라는 것이 있는데 인생의 행복이란 그것을 잘 살리는가, 못 살리는가 하는 것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이라네.”
“교수님, 바로 그것이 문제인데요. 저는 좀 더 저다운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보다 더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명성이나 업적을 쌓을 수 있는 일에 청춘을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하 드디어 올 사람이 왔군. 오늘이 바로 그날이로군!”
“네? 그날……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래, 오늘이 그날일세. 사실 난 자네가 언젠가는 그 문제를 들고 나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다네. 그러니 오늘이 그날이지. 처음에 졸업하면서 은행에 취직하려고 내게 재정보증을 부탁할 때도 그랬고 또 지금의 그 회사에 취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네. 그런 일들은 자네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자네가 한 번 해보겠다고 하니 경험 삼아 해보라고 잠자코 있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