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작> 연
무릇 세상사가 다 그런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첫 경험은 오래 기억의 창고에 갈무리가 되는가 보다. 특히나 그것이 한창 감수성 강할 때 겪은 일이라면. 학창 시절의 어느 늦은 가을날이었던 듯싶다. 그때 무슨 일로 해서인가 교외로 나갔다가, 줄기까지 다 말라 허물어진 연 밭에서 뿌리를 캐내는 낯선 광경을 목격한 뒤로 한동안 깊은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했었다. 그리고 그날의 일은 긴긴 세월 동안 의식 가운데서 떠나질 않았다. 물 위로 솟은 모습만을 그것의 전부로 알고 있던 시절, 불가(佛家)에서 성화(聖花)로 우러르는 꽃인 연의 뿌리를 캐낸다는 것은 당시 내 정서상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불경스런 행위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몇 차례 더 이런 광경을 만날 기회가 주어졌었다. 하지만 그럴 적마다, 처음 맞닥뜨렸던 그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한 충격은 많이 가시었다. 대신 한결 담담해진 마음으로 연의 삶과 우리들 인생행로의 상관관계를 곰곰이 헤아려 보는 특별한 계기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일을 보는 눈이 세월 따라 시나브로 넓어지고 깊어져 온 까닭에서이리라. 연의 한살이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연만큼 생로병사의 구분이
- 곽흥렬 전 대구 경상고 교사
- 2010-05-04 1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