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녀 1명을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2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80% 이상이 대학가는 사회가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지를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자녀를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부모들은 이 거액의 돈을 벌기 위해서 아이들을 돌볼 틈도 없이 열심일 일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벌어서 학교나 학원을 보내는 것이 부모로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가? 학교와 학원은 가정에서 만들어 놓은 틀 속에 지식을 채워가는 공간에 속한다. 진정 자녀의 인생 기틀을 세워줘야 하는 사람은 학교나 학원과외 선생님이 아니라 바로 우리 부모라는 것이다. 이런 부모 역할을 남의 손에 맡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이 세상에서 부모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교육은 부모 어느 한쪽의 몫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버지는 바깥에서 돈벌어다 주는 사람이고 자녀교육은 엄마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아이가 편식을 하면 부족한 영양소 때문에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어머니와 아버지 즉 부부가 함께 힘을 합쳐 자녀교육을 할
요즘 아이들 가르치기가 점차 어렵다고 하소연 하는 선생님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교사의 가르침,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학생인권 조례를 제정하면서부터 학생과 교사간의 갈등이 더 깊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분명히 아이들은 엄청난 변화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더 좋은 흥미로운 자극을 주는 요소는 학교가 아니라도 세상에 널려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정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도와주면서 살아본 경험의 결핍은 학교라는 공동생활을 하는데 여러 가지로 연결되지 못하는 점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선생님들의 아이들에 대한 이해 수준의 차이와 과거에 가르쳤던 아이들 생각이 머리 속에 차 있으니 갈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제하기 어렵다. 그래서때로는 감정의 폭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도 하나의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게임에서 이긴 선생님은 수업목표를 제대로 달성한 것이다. 게임은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학교에서도 무수하게 일어난다. 운동장 뒤뜰, 사무실, 교실, 식당 등... 그러나 승리가 이루어지는 곳은 단 한 곳 뿐이다. 바로 승자, 교사의 마음 속이다. 선생님이 게임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면
저성장 경제 속에 젊은이들의 취업난이 가중되고 불안정 고용이 확대되면서 안정적인 교사직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교육대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줄을 잇고,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실력이 있다는 고등학교에서도 최고 수준의 성적을 받아야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의 직업적인 자부심도 예전에 비해서 많이 올라갔다. 이같은 배경에는 교원들에 대한 처우가 많이 개선된 것도 일정 부분 작용할 것이다. 이 모든 변화는 교육의 질적인 향상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요즈음 교사들은 진정으로 행복한가. 수업을 진행하고 아이들을 만나는 일에서 기쁨을 얻고 있는가.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교사는 많지 않은 듯하다. 수업 이외에 처리해야 하는 사무의 과중함, 사교육 중심의 입시 공부에서 무시되는 학교 교육, 교사의 권위가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느낌 등이 교직의 보람을 반감시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교사들은 단지 직장의 안정성에 만족하면서 큰 보람을 찾기보다는 일상적인 자세로 교육에 임하고 있는 현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교사 노릇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맥락을 짚어보자. 그것은 근본적으로 사람들 사이
필자는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우리나라 민족운동을 공부하면서, 인도 민족운동의거장 마하트마 간디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나 '위대한 영혼'이라는 칭호에 걸맞지 않은 성장기를 보냈다. 19세기 후반 인도의 부호 집안에서 태어난 간디는 13세에 결혼해 성에 눈을 뜨면서 향락에 빠져들게 되었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고 당시 인도의 금기였던 육식과 음주를 하면서 마약에 손을 대는가 하면 돈을 훔치기도 했다. 이처럼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배경엔아이들 간의분위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어떤 친구들과 사귀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곧 그는 자신의 지난날을 고백하고 뉘우치는 장문의 편지를 아버지께 쓰고 용서를 구했다. 보통의 부모라면 심하게 꾸짖을 상황에서 간디의 아버지는 그를 조금도 야단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편지를 찢어버리고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아들을 껴안았다. 아버지의 모습에서 간디는 마음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 이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의 사랑과 용서가 없었다면 아마도 세계적인 비폭력주의자 간디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크나큰 시련도 극복할 수 있다.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도 있고, 강한 적을 무찌르기 위한 비책을 강구할 능력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일을 하나씩 차례대로 해나가야 한다.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면 쉽게 용기를 잃는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과중한 부담이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행동에 장애가 된다. 특히 요즘 학생들의 행동 가운데 손 꼽을 수 있는 것이 정리 정돈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지럽게 흩어진 교실과 좁은 책상위에 높게 쌓여진 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와같은 혼돈된 상태라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게 되며, 필요한 물건을 찾느라고 시간만 낭비하고, 머릿속에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 뒤엉켜 혼란만 겪게 될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가정에서부터 기본적으로 청소하는 것도, 정리 정돈하는 것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학교에 와서 이 일을 잘 수행할리가 만무하다. 주변을 혼란스럽게 해놓는 것과 학업에 임하는 태도는 매우 상관 관계가 높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인간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지저분한 곳에는 더 쓰레기를 버리게 되고, 깨끗한 곳에는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양심이다. 주변이 지저분하면 결정을 뒤로 미
대한민국은 한 마디로 ‘공부 공화국’이다. 공부의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밤낮없이 공부한다. 이들뿐이랴. 대학생은 취업을 하기 위해, 직장인은 자기 분야에서 마이스터가 되기 위해 불철주야 공부에 몰입한다. 게다가 이제는 책으로만 공부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걸어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는 시대이다. 이렇게 온 나라가 교실이고 공부방인 이 시점에 우리는 한 번쯤 공부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공부(工夫)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도구를 쓰는 위대한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좀 더 풀이하면 ‘머리라는 도구를 써서 일하는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런 위대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여러 가지 구분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캐기’와 ‘짓기’로 나눌 수 있다. 땅속 깊이 묻힌 것을 뻘뻘 힘들여서 캐내는 일이 곧 공부다. 추리 소설의 주인공이 작은 단서들을 오랫동안 캐고 따진 끝에 마침내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내는 것과도 같은 일을 공부는 해내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원인
인간의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정부는 꼭 필요한 조직이다. 그래서 정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부가 있어야 질서, 재산, 생명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마다 역할이 달라서 정부가 커야 하느냐, 작아야 하느냐, 이 일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이런 논쟁들이 계속적으로 있어 왔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우리가 하는 교육은 무엇을 핵심으로 가르쳐야 하는가를 중심으로미래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살펴 보고자 한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고, 삶의 방식이 변하고, 일하는 방식이 변하는데, 정부는 어떻게 변할까?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이 지역간의 거리를 단축시키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2030년의 뉴욕과 로스엔젤레스는 ‘살고, 일하고, 다니고, 놀고’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될 것이라는 것이 미래학자들의 예측이다. 일하고, 다니고, 놀고, 이런 것들이 융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은 일하는 임무와 장소라는 전통적인 관계로부터 해방 될 것이라는 것이다. 유비쿼터스로 재택 근무가 가능해지면서 정부 부처, 회사, 대학이 거의 없어지는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사이버 대학이 많이 생기
유럽의 청년세대가 분노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정부가 긴축정책을 펴면서 노동시장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 이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의 최대 피해자이다. 길거리로 나온 이들은 미래의 희망이기는커녕 절망의 세대다. 영국 칠레 등 유럽과 중남미에서 일어난 폭동의 중심엔 분노한 청년들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청년 백수들이 늘고 있는 우리 사회도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분노 바이러스’가 내포되어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같은 대규모의 폭동과 시위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음을 볼 때, 개별 국가의 문제로만 볼 수 없고 우리나라도 상당히 우려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큰 빈부 격차, 재정 악화, 높은 청년 실업률 등 구조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형편이 영국 등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유럽 국가들이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복지 정책을 펴면서 파탄에 이른 재정 적자는 청년 세대들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전가되고 있다. 최근 우리 정치권에서도 표를 의식한 과도한 복지정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결국 유럽과 같은 청년 분노라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떨쳐버리기 어렵다
폭염가운데서도 지금 달구벌에서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한창이다. 세계 202개국에서 1945명이 참가하여 자기 나라의 명예와 개인의 성취를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니다. 이런 대회를 보면서 예기치 못한 사고로 갈고 닦은 실력이 하루 아침에 쓸모없는 쓰레기가 된 것을 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볼트 선수가 실격당한 것을 보면서 출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한 마디로 출발의 규칙을 어긴 것이 그 이유이다. 무엇보다도 스포츠에 있어서 지켜야 할 것은 규칙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준 사건이 되었다. 스포츠는 우리 인간의 삶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인생은 가끔 마라톤에 비유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삶에도 이와같은 것들이 적용되는 것은 아닐런지? 스포츠 선수들은 누구나 목표가 있다. 목표가 뚜렷하기에 고된 훈련도 마다하지 않고 견디어 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도 일단 선수에 선발되면 게으름을 떨치고 이른 아침부터 훈련에 임한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출생이라는 라인 선상에서 목표를 향하여 달리고 있는 마라톤 선수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마라톤 선수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인생의 마라톤 경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최근 우리 나라 아이들의 특징은 다른 나라 학생과 비교하여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한글만 깨우치면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다. 학교 다닐 때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고 집에 돌아와서 다시 과외 수업을 받으러 간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아이들 성적은 향상되지 않는다. 아이도 최선을 다하는 것 같지만, 성적은 제자리이고보니 학부모도 아이들 자신도 답답하다. 이러한 원인은 학습에 대한 자기 책임의식 즉, 자기주도의 학습이 없기 때문이다. 소위 학습에서 학(學)만 있고, 습(習)이 없다. 많이 배우면 학생은 학습결과가 좋을 거이라 생각하는데 이같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인간의 뇌는 뇌간, 대뇌변연계, 대뇌신피질의 3중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두뇌는 생명을 주관하는 뇌간에 최우선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다음으로 감정을 담당하는 대뇌변연계의 욕구를 충족시킨 후에 비로소 인간적인 특성인 지성, 이성, 사고, 언어 등을 관할하는 대뇌신피질에 에너지가 공급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학습은 지적인 능력으로만 이루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이러한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 많다. 물론 학습에서 지적 능력이 중요한
현대사회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다양한 집단을 만들고, 다양한 의사표현으로 표출한다. 그 가운데 꽃이라 할 수 있는 행위가 '선거'이다. 이 선거는 집단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방법이기에 초등학교에서부터 이루어진다. 그런가하면 국민이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기본적 행위로도 활용한다. 그런데 이번 서울특별시의 급식 관련 투표는 주민의 의사결정을 묻는 행위인데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였다고 판단된다.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신성한 투표 행위를 이른바 ‘나쁜 투표’로 몰고 간 일부 정치권의 행위에 대해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하는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주민투표를 ‘나쁜 투표’로 규정, 투표 거부 행위를 조장한 것은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무너뜨린 그야말로 ‘나쁜 행위’에 속하는 것은 아닐런지! 학교 현장에서 우리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대화와 타협, 민주적 절차에 따른 투표의 소중함 등"을 가르치라는 것이 민주생활교육의 요체이다 그런데 이를 총체적으로 책임지고 가르치도록 교육해야 할 교육감이 ‘주민투표는 나쁜 투표’라며 불참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서울의 교육자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재미가 없다. 경제도 그렇고 어른들의 정치 이야기는 더 이상 재미를 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다. 특히 전 세계를 눈물로 감동시킨 전설적인 부자 아버지 딕 호이트와 아들 릭 호이트의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행함으로 기적같은 삶을 산 것이다. 날이 갈수록 사회는 변하여 점차 남성의 역할이 위기를 맞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는데, 아이들의 삶에 주춧돌이 되는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아들 릭은 태어날 때 목에 탯줄이 감기는 바람에 뇌성마비와 경련성 전신마비라는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의사는 이 아이를 포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 딕은 결코 아들 릭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수년이 흘러 컴퓨터가 나오고 이를 활용하여 릭은 컴퓨터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달리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표현했다. 그날로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달리기를 시작했고 아들이 15살이 되던 해 그들은 처음으로 8km달리기 대회에 나가 완주에 성공했다. 이 경기가 끝난 후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버지, 아까 뛸 때만큼은 내가 장애인이란 걸 느끼지 못 했어요”
세상살이가 끊임없는 평가의 과정이다. 사람은 누구나 알듯모르듯 다른 사람을 만나면 인상부터 살핀다. 그 인상을 살피는 이유는 내심의 평가를 위해서이다. 특히 사춘기 학생들은 이성의 평가를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선생님의 평가보다도.. 그럼 남학생들은 학생의 모습을 탈피하고 어른의 모습으로 변장한 모습을 좋아하는 것일까? 만일 내가 좋아하는 남학생이 나를 어떻게 평가는지 알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느 정도로 평가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그런 거 관심없어" 하고 잘라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물음은 매우 중요하다. 적어도 우리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한. 사회 속에서의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니다. 남들이 평가하고 기억하는 '나', 다시말해 내가 타인들에게 남긴 인상의 종합물로서의 '나'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매우 한정된 정보에 기초하여 남을 평가하고 그것으로 인상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인상에는 얼굴은 물론이지만 복장도 중요한 한몫을 한다. 교문에 등교할 때 단추를 잘 잠그고 단정한 모습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한 학생의 등교 관찰 결
앞으로 한류(韓流)가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많다. 현재까지는 한류가 지역적으로는 동아시아에서 북미, 러시아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콘텐츠에서도 드라마, 영화, 음악, 게임에서 음식, 화장품, 한글, K-POP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어, 그 지속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K-POP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에게 확산의 속도를 더하고 있다. 이와 연계하여 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이 요청된다. 그런데 최근 인기 중심의 성향때문인지 한국어가 아닌 이상한 언어들이 난무하는 것도 지켜 볼 일이다. 왜냐하면 노래를 통하여 한국어를 접하는 계층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슨 뜻인지 한국사람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인의 정서에 올바르게 반응하는 노래 가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류가 이와 같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바로 국내 문화콘텐츠의 높은 경쟁력 때문이다. 이는 드라마 등 문화콘텐츠에 대한 소비자의 까다로운 소비 행태, 시청률 제고를 위한 공중파 방송 3사의 치열한 경쟁, 풍부하고 우수한 인력, 초고속 정보통신망과 같이 발달된 통신 인프라 등 우리나라의 독특한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같은
K팝의 열풍이 대단하다. 일본을 시작으로 IT기술의 이용과 더불어 중국, 유럽, 몽골 등으로 확산 속도가 매우 빠게 확산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고대에도 한류가 있었다. 1600여년 전인 397년 한자를 일본에 전한 백제의 왕인박사는 일본 고대문화인 아스카문화의 창시자이다. 논어와 천자문 외에 도자기공, 기와공, 직조공을 데리고 건너간 왕인 박사는 일본 태자의 스승이 돼 일본인들에게 글과 기술은 물론 인륜(人倫)까지 가르쳤다. 오늘 한류의 바탕은 대중문화지만 왕인 박사가 전한 한류는 일본의 문화사를 바꾼 고급문화였다. 왕인 박사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는 한·일 양국에서 매년 열린다. 그의 출생지인 영암에서는 올해도 4월 초 ‘왕인문화축제’가 열려 매년 일본인들이 참가하고 있다. 그러나 독도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양국간의 외교 갈등이 일어나는 해에는 교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일본 오사카에서는 매년 11월 3일 ‘사천왕사 왔소’ 축제가 열린다. 1990년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왕인 박사를 비롯해 일본에 문물을 전한 이른바 ‘도래인(渡來人)’들의 행차를 재현한 가장행렬. 행렬이 오사카 번화가를 관통해 사천왕사에 이르는 동안 형형색색의 고대 복장을 한 4000여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