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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신의 손, 도쿄대 교수를 만든 것은 어머니의 혼이다


의사의 세계에는 '신의 손'이 존재한다. 그의 손이 가는 곳이라면 인간이 불가능하게 여긴 질병의 치료가 이루어지는 이유때문일 것이다. 미국 존 홉킨스 대학 병원에 ‘신의 손’이라는 별명을 가진 소아신경외과 ‘벤 카슨’ 박사가 있다. 그가 이런 별명을 가지게 된 데는 특별한 이력이 있다. 그가 많은 의사들이 포기했던 4살짜리 악성 뇌암 환자를 수술로 완치 시켰고, 세계 최초로 샴쌍둥이 분리 수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하고 어두웠다. 그는 미국 디트로이트의 흑인 빈민가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받았던 탓에 그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싸움질만 하는 불량소년에 불과했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성적도 엉망이어서 초등학교 때 항상 꼴찌만 하는 학습부진아였다. 그런데 이렇게 꼴찌소년이 어떻게 신의 손이라는 칭송을 받는 세계적인 외과의사가 되었을까?

성공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이 모든 것은 나의 어머니, 쇼나 카슨 덕분입니다.”라고 답변했다. 벤 카슨이 자라던 1960년대에는 흑인 차별이 심해 흑인이 대학이나 성공을 꿈꾼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때였다. 그야말로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실패자 취급을 당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 일대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벤 카슨의 어머니는 벤 카슨의 형이 학교에서 가져온 공문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학교에서 내 아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도록 놔두지 않겠어.”  당시 벤 카슨의 형 커티스는 성적이 그다지 좋진 않았지만 끈질기게 노력해서 성적이 크게 향상되고 있었다. 그런데 상담 선생님이 커티스를를 취업반에 배정하기로 결정했다는 공문을 보낸 것이었다. 선생님이 흑인은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 어머니는 학교로 찾아가 “내 아들은 대학에 진학 할 것입니다. 나는 커티스를 취업반에 넣지 않겠어요."라고 강하게 전달하였다. 이 사건을 지켜본 벤 카슨은 흑인이지만 자신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어머니 쇼나 카슨은 초등학교 3학년의 학력이 전부였지만 자녀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 그녀는 독서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벤 카슨에게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두 권의 책을 빌려 읽게 하고,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너도 할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해 주었다.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과 격려 덕분에 벤 카슨은 예일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게 된 것이다. 불과 33살의 나이에 흑인 최초로 존 홉킨스 의대에 소아외과 과장이 되었으며 신의 손이라 불리는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주변에도 이러한 사례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나의 경우 해외 교육기관에 근무하는 기회를 통하여 많은 재일동포들을 만났는데, 어머니의 의지에 따라 아이들이 꿋꿋하게 성장한 사람들이 많았다. 재일동포의 경우 한국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일본으로 이주하여 생활은 돼지를 키우고 고철을 수집하는 직업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 어머니들은 분명히 자기 아이들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자녀 교육에 임한 것이다. 어머니 자신이 글을 배우지 못했기에 배움에 대한 설움이 사무쳤겠지만 여기에 굴하지 않고 자식의 교육만큼은 최선을 다한 것이다. 특히 재일동포의 자녀들은 차별로 인하여 그럴싸한 자리의 취업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아들이 야구선수가 되는 것을 희망하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비록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엄마였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분명히 거기에는 어머니로써의 혼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러한 덕분에 그는 오늘날 외국인으로 도쿄대학의 교수가 되어 재일 동포 사회, 일본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학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그 이름은 강상중, 그는 이같은 어머니의 삶에 대한 기록을 담아 책으로 출간하여 일본에서도 베스크셀러가 되었으며 지금 한국에도 그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신의 손도 만들고 도쿄대학의 교수도 만든 것은 훌륭한 선생님의 손이 아닌 어머니의 혼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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