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자 애가 왜 그렇게 덤벙대니?” “여자답게 얌전히 좀 있어.” “남자 애가 저렇게 수다스러워서야, 원.” “남자가 그렇게 소심하고 눈물이나 흘리면 되나.” 집에서나 학교에서 한 번쯤 들어봤던 소리다. 많은 어른들은 무의식중에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며 종종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무엇이 남자답고 무엇이 여자다울까? 생각해보면 이말 속에는 남자는 씩씩하고 용감해야 하고 작은 일에 눈물을 보여선 안 되고, 여자는 조신하고 얌전하며 고분고분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내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말을 자주 듣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들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생각과 행동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게 된다. 그러나 결국엔 사회에서 정해놓은 ‘여자다운’ 여성, ‘남성다운’ 남성이 되어가게 되어 자연스럽게 남녀의 사회적 역할을 구분 짓게 한다. 그렇다면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말에 여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부분 수긍하는 반응을 보인다. 며칠 전 아직 서른이 안 된 여성 동료에게 여자다워야 한다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동료는 ‘그거 좋지 않아요? 여자가 여자다우
아이들 경제교육은 어릴 때부터 시키라는 말이 있다. 어릴 때의 습관이 어른이 돼서도 지속되기 때문이다. 많은 가정에선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면 그 쓰임을 기록하도록 교육시키고 있다. 예로 용돈을 주면 적금을 한다든가, 용돈 기입장을 만들어 수입과 지출의 관계를 알게 한다. 하지만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부모에 대한 투자를 교육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은미성(44) 씨는 고등학생인 아들과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딸을 두고 있다. 미성 씨 부부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한 가지 경제 교육만은 철저히 시켰다. 먼저 부모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되면 꼭 기억하여 챙기라는 교육을 시켰다. 엄마 아빠 생일이 되면 꼭 선물을 하게 했다. 결혼기념일에도 마찬가지이다. 며칠 전 생일 땐 미성 씨는 아들에게 10만 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 딸에게는 5만원을 받았다. “엄마, 엄마가 마음에 드는 것 사세요.” 미성 씨 아들과 딸은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 탓인지 해마다 그동안 받은 용돈을 조금씩 모아서 부모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선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어릴 땐 주로 작은 선물이었지만 요즘엔 아이들이 부모의 마음에 꼭 맡는 선물을 살 수가 없어 현금으로 준다고 한다. “
가끔 사랑이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고 상상할 때가 있다. 일반적으로 심리학에서 사랑의 종류를 말할 때 아가페, 에로스, 플라토닉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이야기하지만 그걸로 사랑을 다 표현했다고 볼 수는 없다. 또 종교적인 의미에서 자비니 사랑이니 하는 것들도 살펴보면 추상적인 것이지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건 아니다. 사실 우리는 늘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 사랑 속에는 미움이라는 가시도 들어있다. 그러고 보면 사랑과 미움은 한 나무에서 자라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미움도 사랑이라는 열매 앞에선 바람에 흩어지는 연기가 될 수 있다. 3년 동안 쓰고 다듬고를 반복했다던 심규완의 엔 그 오롯한 사랑들이 가슴 진하게 울렁댄다. 그 사랑의 모습을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은지에 대한 외할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다. 바이올린을 잘 켜는 은지는 부모의 이혼으로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다. 그런 은지는 운동회 날 친구의 잘못으로 사자탈춤을 추다 한쪽 눈을 실명한다. 그런 은지를 위해 할머니는 500개의 목각 보살을 만들기 시작한다. 천 개의 눈동자를 만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망을 갖고 있는 할머니는 은지의 눈을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에 용트림하며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겨울밤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안고 들었던 옛날이야기다. 저녁을 먹고 예닐곱의 꼬맹이들은 이웃집으로 몰려가곤 했다. 그 이웃집엔 이야기꾼으로 소문난 할머니가 계셨다. 우리들이 달려가면 할머닌 귀찮은 표정보다는 생고구마를 한 소쿠리 내다놓았다. 그리고 우리들 손에 손수 깎은 고구마 하나씩을 들려주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엔 무서운 이야기도, 배꼽 빠지는 이야기도, 슬픈 이야기도 있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 밤엔 측간에 갈 때도 깨금발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이야기 속의 도깨비나 몽달귀신 같은 것이 갑자기 나타나 ‘네 이놈!’ 하고 뒷덜미를 잡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이야기엔 수더분한 입담이 살아있다 요즘 동화책을 보면 구어의 냄새보다는 문어체의 냄새가 많이 나는 게 사실이다. 특히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를 정리한 책들도 ‘~습니다.’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고 아이들은 그렇게 읽는다.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전해주는 듯한 구수한 입말보단 읽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서정오의 철따라 들려주는 옛이야기·겨울 -‘범아이’는 아이들을 옆에 두고 말하는 입말로
또 다른 국어의 숭례문 될 수 있어 새 해 들어 좋은 소식보다는 우울하고 안타까운 소식들만이 들려옵니다. 새 대통령이 당선되면 그래도 기쁜 소식,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소식들이 들려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갑자기 영어몰입교육이란 말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여 많은 학부모와 아이들을 고민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11일엔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우리 눈앞에서 잿더미로 변하는 참혹한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하나의 유행어가 된 ‘오렌지? 아니죠. 어륀지, 맞습니다.’는 희화화가 되어 냉소적 유희어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 영어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쩌면 영어에 안달 난 국민이 우리나라 국민인지 모릅니다. 세계화 국제화를 떠나 영어를 못하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를 배우는 목적을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배우기보단 삶의 수단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생존수단으로서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영어는 생존의 필수로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여고생들의 아침 교실은 늘 시끌벅적하다. 기밀시험이 끝난 후론 더하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책가방을 책상 위에 던져놓곤 난로가로 모여든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열여덟의 숙녀들은 금세 참새처럼 종알댄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밤새 숨겨둔 언어들을 쏟아낸다. “야, 들었니? ○○이 남친하고 깨졌데.” “뭐야, 엊그제 100일 됐다고 자랑하고 다니던데… 가시나 자랑깨나 하고 다니더만….” “아침 등교하는데 ○○ 없데. 으이구 그 눈초리. 보기만 해도 몸이 오싹하다 오싹해.” “맞아. 걸릴 것 없는데도 뭐가 꼭 꼬투리 잡아 ‘너 이리와!’ 할 것 같아.” “야, 말도 말아. 난 어제 단추 하나 풀어졌다고 걸렸는데 가슴이 턱턱 막히고 오금이 저리더라. 그리고 꼭 이런다. 다 너희들 위해서라고. 말이나 말지.” “맞아 맞아. 왕재수야 정말!” “흐흐, 우리 담임 잘 삐지는 것 같지 않냐?” “삐지긴 한데 쪼깨 귀엽징. 콕 깨물어주고 싶을 때도 있어야. 깔깔깔.” “징그런 가시나. 늙은 남탱이 깨물어서 뭐하게. 나처럼 포동동 하면 모를까.” 아이들의 말은 직설적이다. 빙빙 돌려서 하지 않는다. 거칠기도 하고 때론 비어들이 섞여 조금 거북하기도 하지만 듣고 있노라면 은근히
가난하고 눈물나지만 되돌아보면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되어지는 게 있습니다. 우연히 길을 가다 마주친 사금파리가 햇빛에 반짝거리는 것처럼 반가운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중년의 나이 쯤 되고 시골에서 자랐던 사람들은 누구나 경험했던 아련한 것들. 도시의 각박한 삶 속에서도 모처럼 코 흘리게 불알친구들과 만나 막걸리나 소주 한 잔을 걸치면 늘 웃음 안주로 나오는 것들. 그런 것들을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바로 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온 김택근의 '동화가게' 입니다. 동화가게. 왠지 이름부터 정겨운 냄새가 납니다. 그 정겨운 냄새가 나는 구멍가게에 들어가 보면 눈물도 있고, 행복도 있고, 웃음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이 주는 슬픈 아름다움도 가게 한쪽에 먼지를 닦은 고운 모습으로 진열돼 있습니다. 진열된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내 추억 속에 집어넣자 고스란히 되살아옵니다. "그런데 우리 촌뜨기들을 보자 누나들이 갑자기 작업장을 뛰쳐나와 우리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주머니마다 가득가득 과자를 채워주었습니다. 뒷주머니, 안주머니, 윗주머니…… 심지어 쓰고 있는 모자를 벗겨 그 안에도 과자와 사탕을 넣어주었지요. 나중
얼마 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이 책은 어떤 대상에 대한 긍정적 기대와 칭찬이 어떻게 적용되고 변화시키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고래를 통해 칭찬의 효과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하고 함께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선 부정적인 행동보다 긍정적인 행동을 중시하고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해서 부정적인 행동을 보일 때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지적을 하고 질책을 한다. 지적을 당하고 질책을 받은 아이는 자신의 행동에 주의를 하지만 일시적이다. 오히려 지나친 질책은 아이들을 주눅들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러한 방법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무조건적인 칭찬은 좋지 않다. 그러나 아이들이 긍정적인 행동을 했을 때 거기에 맡는 구체적 칭찬을 하면 훨씬 좋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실 현장에서 아이들의 행동을 말할 때 좋은 행동뿐만 아니라 눈에 거슬리는 것도 긍정적 측면에서 이야기 하면 아이들의 얼굴이 환해지고 행동도 개선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칭찬도 지나치거나 입바른 소리로 하
나에게 용순검이 있으니 번쩍이는 칼날 길이가 삼 척이로세. 황금으로 갈고리를 만들고 녹련(綠蓮)으로 칼끝을 만들었네. 문득 괴이한 빛을 내뿜더니 두우(斗牛)를 서로 다투며 쳐다보도다. 바다에서는 기다란 고래를 베고 뭍에서는 큰 이리를 잡을 수 있네. 북녘으로 픙진의 빛을 돌아보니 연산(燕山)은 아득히 멀기만 한데 장사가 한 번 탄식을 하니 수놓은 칼집에 가을 서리가 어리누나. 정조가 세손일 때 지었다던 '보검행'이라는 시다. 보검을 치켜들어 자신을 괴롭히던 세력들인 고래와 이리를 베고 새로운 조선이라는 원대한 꿈을 실현하겠다는 이산의 포부가 잘 드러나 있다. 실제로 이산은 24살에 조선의 22대 왕에 오른 다음 세손 시절에 꿈꿨던 이상을 현실로 보여준다. 그 첫 행사가 을묘원행이다. 왕 위에 오른 지 19년만이다. 을묘원행은 조선시대 최대의 행차로 1795년 윤 2월 9일 서울에서 출발하여 사도세자의 묘인 현릉원 참배와 화성행궁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고 16일 창덕궁으로 돌아오기까지 8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행사이다. 그렇다면 왜 정조는 이런 행사를 감행했을까. 효심이 지극하기도 소문난 정조지만 단순히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고 어
오늘 그 녀석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아침, 교실에 들어서자 녀석의 자리만 쓸쓸하게 비어있다. 언제부턴가 반 아이들은 녀석의 자리가 비어도 ‘왜 안 와요?’ 하고 묻지 않았다. 아이들의 세계는 그렇다. 잠시 동안의 호기심이나 관심은 보이지만 지속적이지 않다. 며칠 씩 결석해도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니면 잘 묻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늘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하다가도 금세 시들해지는 경향이 있다. 창가를 내다보았다. 거무튀튀한 모습으로 외로이 서있는 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오랫동안 서있었을 감나무. 봄의 파릇함은 어디 갔는지 생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꼭 그 녀석 같았다. 지금 녀석은 겨울의 복판에 서서 외롭게 서있는 감나무와 같았다. 휴대폰을 꺼내들고 감나무 같은 녀석에게 ‘어디 있니?’라고 문자를 보냈다. 답이 없다. 어쩌면 지금쯤 녀석은 거리를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님은 방구석에 쳐 박혀 이불 뒤집어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답이 없는 녀석에게 다시 ‘학교에 오거라.’라고 문자를 보냈다. 여전히 답이 없다. 답이 없이 4교시가 흘러갔다. 점심시간, 자리에 앉아있는데 익숙한 얼굴이 교무실 문을 빼죽 열고 두리번거린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활짝 웃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장애아를 키우지 않은 부모는 장애아를 두고 있는 부모의 마음 또한 알지 못한다. 정상인은 장애인의 마음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그 일부분일 뿐이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두 종류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과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든 장애를 입은 사람은 늘 고민 속에 살아간다. 사소한 일에도 상처를 받고 아파한다. 그렇다고 아파하는 마음을 이해하려드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저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지 않으면 다행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다. 온 가족의 문제가 되고 만다. 마음대로 걷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누군가가 항상 곁에 있어야 한다. 대소변도 늘 가려주어야 한다. 내 조카아이도 그랬다. 지금도 그러고 있다. 이제 열두 살인 조카아이는 혼자 힘으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연필 힘겹게 잡고 글씨를 쓰든가 그림을 그리는 경우를 빼곤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도 가족들은 감사하며 살아간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먹고 자랄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답도 없는 막연한 질문을 던져놓고 생각의 허공을 휘젓다 보면 거미줄에 걸린 여러 마리의 날벌레처럼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사랑? 관심? 질책, 지식?, 강요? 이해? …’ 단어의 벌레들이 윙윙거리지만 딱히 어떤 한 가지라고 말하기가 뭐하다. 어찌 보면 이런 모든 것들이 상황에 따라 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아이에게도 그랬다. 이야길 나누면 스스로 ‘저 철 하나도 없어요.’ 하던 그 아이는 한 마디로 문제 학생이라는 찍힘을 당한 아이다. 많은 이들이 그 아이를 두고 말한다. 말을 안타는 아이, 눈 뻣뻣이 뜨고 대드는 아이, 뉘우침이 없는 아이, 개선의 기미가 전혀 안 보이는 아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아니야, 많이 좋아졌어. 표정도 얼마나 밝아졌는데.’ 하면 말하는 사람만 이상하게 되는 아이다. 그 아이가 이번에 나를 무색하게 만든 사건이 또 일어났다. 흡연하다 근신 받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걸린 것이다. “저 전학가래요. 용서할 수 없데요.” 아이는 울면서 말했다. 그러면서 ‘저 갈래요.’ 한다. 전학을 가겠다는 소리이다. 그 아이를 데리고 오랫동안 이야기를
요즘 청소년 흡연 문제가 다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청소년 흡연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엔 점차 연령수준이 낮아지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초등학교 5,6학년, 심지어 4학년 정도의 아이들도 흡연을 한다는 소식까지 들리는 걸 보면 단순한 문제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얼마 전 한 뉴스에서 청소년 흡연과 음주 및 약물 남용과의 관계를 발표한 컬럼비아대 연구팀의 결과를 본적이 있다. 그 발표에 의하면 10대 때 하는 흡연이 음주 및 약물 남용을 하게 하는데 적게는 5배, 많게는 13배 이상 높다는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심하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의 정신질환까지 발병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나이가 어릴 때 흡연을 할수록 그 위험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요인은 담배 속에 들어있는 니코틴이 한창 발달하는 청소년들의 뇌에 들어가 구조적·화학적 변화를 초래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부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이들의 흡연문제로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징계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흡연이 단순히 흡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제로 번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꼭 흡연이 나쁜 길로 들어서게 하는
겉으론 웃으면서 속으론 우는 아이들이 있다.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 조금씩 곪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그 상처의 요인을 보면 아이들의 잘못이기 보단 어른들의 잘못이다. 무관심이다. 그 상처 속엔 엄마를 잃은 아이들의 상처가 가장 크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 시대가 변하면서 생각들이 변하고 그에 따라 부부의 헤어짐은 일상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상처를 입고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아이들이다. 연약하고 작은 가슴에 커다란 축구공만한 구멍을 내고 살아가고 있다.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아이들은 때론 이탈의 행동을 한다. 그리고 문제아란 이름으로 어른들에게 낙인찍힌다. 그래도 아이들은 똑같은 행동을 한다. 빈 그리움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다. 같은 아픔을 가진 밴드 마녀 은수와 빵공주인 공주 초등학교 6학년인 은수는 밴드마녀라는 별명을 가졌다.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일부러 상처를 내고 습관처럼 밴드를 붙이고 다녀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은수가 이런 이상한 버릇을 가지게 된 것은 엄마와 헤어져 아빠와 새엄마 집에서 살게 되면서부터다. 본래 활발하고 사랑스러웠던 은수는 아빠와 함께 살면서 비뚤어지고 고집 세고 사고뭉치 아이로 변해간다. 옛
무대가 올라가고 풍물 장단이 신명나게 강당에 울려 퍼진다.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가락이 옮겨가면서 구경꾼들의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한다. 가끔 아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손바닥 장단을 치기도 한다. 풍물패가 동아리 발표의 막을 열면서 축제가 시작된다. 이번 동아리발표(축제)에서 아이들은 계발활동시간에 갈고 닦았던 재주와 끼를 모두 쏟아냈다. 교실 속에서만 지내던 아이들은 그동안 틈틈이 배우고 익혔던 풍물과 탈춤, 댄스 등을 통해 자신들의 재주를 마음껏 뽐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신명을 펼치고 있는 아이들은 각양각색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있고 못하는 아이도 있다. 얌전한 아이도 있고 말썽을 피우는 아이도 있다. 예쁨을 받는 아이도 있고 꾸지람을 자주 받는 아이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교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그런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자신들의 숨겨진 끼와 열정과 재주들을 있는 그대로 자신들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신명난 풍물마당이 끝나고 연극패 아이들의 신심청전이란 연극이 펼쳐진다. 연극은 심청전을 소재로 했지만 해학 가득한 웃음판이다. 아이들만의 기발한 발상들이 무대에서 연출된다. 심청이 물에 빠지는 장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