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생활 30여년! 녹록지 않았던 교단생활에서 힘겹고 외로울 때마다 잡은 손을 놓지 않던 아이들이 있었기에 힘을 낼 수 있었고, 어려운 일들이 해결됐던 것 같다. ‘사랑’이란 이름표를 달고 내 곁을 맴돌던 아이들에게 할 수만 있다면 무한 행복을 영원토록 리필해주고 싶다. 새내기 교사 시절부터 되도록 학교 이동시 열악한 학군을 선택했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갈 나의 역할이 보이기 시작했고 다사다난한 교직생활은 수없이 이어져갔다. 전세금을 갖고 도망친 아이를 데려오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무지한 엄마가 만들어준 보건증을 들고 대구의 티켓다방에 가있는 아이를 데려오기도 했다. 정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겪었다. 난이 역시 처음에는 나를 무척 힘들게 했지만 마음을 다잡은 이후부터는 시종일관 나를 믿고 따라주었기에 기적은 이뤄질 수 있었다. 사랑과 믿음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나 역시 행복할 수 있었고, 하나 된 우리는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 난이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굴하지 않고, 끝없는 도전정신으로 기적을 만들어낸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제자로 내 가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나와 같은 사도의 길을 걷고 있는
수업하러 가는 발목을 잡는 수화기 너머로 “대장님! 난이예요, 제가 임용고시에 붙었어요”하는 순간! 온몸이 감전된 듯 전율이 느껴졌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기쁨과 감격으로 뒤섞여 한참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때는 1999년. 부산 영도구에 위치한 영도여중 학생부장을 맡으면서 스카우트 창단 준비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낼 때였다. 교내․외 문제서클로 불리우던 해양소년단 간부들이 찾아와 “2년 동안 지도자가 없어 표류하는 해양소년단을 좀 맡아주세요”하며 사흘간 눈물로 매달렸다. 그 간곡한 요청에 못 이겨 ‘영도바이킹 414선대’ 대원 70여명을 떠맡게 되면서 주변 선생님들의 우려와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그러나 16년간 청소년단체를 맡아온 나로서 그냥 무심히 모른 체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양소년단 대원이었던 난이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고 조용했던 1학년 난이는 무엇 때문인지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을 보이더니, 9월에는 남녀 혼숙 문제로 학생부에 불려 왔고, 이어 11월에는 교내 상습 흡연 문제로 조사받던 중, 함께 벌서고 있던 아이들을 충동질해 무단이탈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추적 조사 중 가출을 모의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