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교단수기 동상] 불비례
대학에서의 4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불비례이다. 한문 투의 문체에 대해 배우던 중 나온 그 단어를 소재로 교수님께서 나지막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교수님께서 당신의 교수님께 편지를 올릴 때면 항상 마지막에 쓰곤 한다는 불비례, 예를 갖추지 못하였다는 의미이다. 예를 갖추지 못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주신 사랑에 비해 예가 부족하고, 모자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스승님께는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워지는지도 모른다. 교직에 나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숨 쉬다 보니 부끄러움이 커져만 간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았음을 알 때 느껴지는 감사함이 함께한다. 나에게는 예를 갖출 수 없는 선생님이 계신다.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1학년 국어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에 공놀이하다가 늦게 들어와 움츠려 있는 아이들에게 호통 대신 "앉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갑갑했을까"라는 말과 함께 등을 두드려주시곤 했다. 선도부 선배들이 두발 검사를 하는 시간에는 약속된 시간보다 일찍 들어와 선배들을 물리시며 우리에게 찡긋 신호를 보내셨다. 제주도로 떠난 수학 여행에서는 녹색지대의 ‘준비 없는 이별’을 열창해 모두를 놀라게 하셨다.
- 이민호 강원 경포고 교사
- 2022-11-24 1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