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곧 그 사람이다(Style is life itself). 한 편의 글을 읽어 보면 글쓴이의 지식과 사고가 드러날 뿐만 아니라 내면의 미묘한 마음까지도 알 수 있다. 나아가 글은 그의 사람됨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도구다. 세계 각국이 대학입시에서 에세이나 논술을 앞 다퉈 부과하는 소이가 거기에 있다. 미국의 에세이, 일본의 소논문, 그리고 유명한 프랑스의 바깔로레아 논술이 모두 그 나라마다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전형적인 논리적 글쓰기의 유형들이다. 우리의 경우도 늦게나마 입시의 다양화와 함께 고전 자료제시형 논술을 정착시켜가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논술은 특정교과목의 지식을 물을 수 없으므로 통합교과형 논술인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논란이 일고 사회적 갈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연 그 논란이 교육적인가.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이 정착된다면, 그것은 공교육의 본령에 걸맞으며 우리 교육이 기본에 입각해 제자리를 찾는 모멘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논리적인 글쓰기는 민주시민이 지녀야 할 건전한 사회의식과 비판정신을 함양하는 기제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입시에서 교과서 지식만을 반복 암기하고 신문 한 줄 읽지 못하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범교과
공은 학교로 넘겨졌다.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2008학년도 이후의 대학입학제도 개선방안은 대입선발의 실질적 역할을 대학과 고교로 옮기겠다는 의도를 확실히 드러냈다.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9등급으로만 제공하여 그 비중을 현저히 약화하겠다는 것은 대학의 선발권을 보다 자율화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학교생활기록부의 반영 비율을 강화하면 학교교육이 보다 중심이 되고 상대적으로 사교육으로부터 고교교육의 역할이 강화된다는 논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안만으로 망국적 사교육의 극성에서 벗어나고 공교육이 정상화 되며 대학이 21세기형 인재를 양성해 낼 수 있다는 담보가 되는 것인가? 대학입시 개선방안에 대한 평가는 관련 당사자별로 현저히 다르다. 아니 서로의 입장에 따라 각양각색의 상반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평등주의에 기운 측은 수능을 더욱 약화하기를 요구하고 수월성을 말하는 측은 대학별고사나 고교등급제를 꺼내들고 있다. 심지어 사교육 관련자들은 변함없이 강남 불패를 유도하려는 아전인수식 언행을 늘어놓고 있다. 이제부터다. 이 안은 완성된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머리만 제시된 그야말로 시안이다. 이안이 다리를 내리고 튼튼히 자리 잡도록 이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