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살쾡이와 묵사발
아침부터 좁쌀 남편이 시답지 않은 일로 김영숙 교장의 기분을 내리꽂게 만든다. 아직도 평교사인 주제에 웬 도덕 군자처럼 잔소리는 그렇게도 많은지. 그 씨알도 안 맥히는 도덕 도덕 하니까 환갑이 다 되도록 아직도 평교사 신세를 못 벗어나지. 원로 교사라는 전혀 명예롭지 않은 이름하나 달고 젊은 교사 축에 끼이지도 그렇다고 나이에 걸맞게 관리자 축에 끼이지도 못해 어벙하게 무시나 당하면서 사는 주제에 무슨 놈의 얼어죽을 도덕 타령인지 남편만 보면 답답하다는 소리가 저절로 난다. 뭐 세상은 그렇게 사는게 아니라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라 그러지. "되도 안한 소리를 지껄여서 오늘 아침부터 기분을 잡치느냐"고 버럭 소리지르고 나오긴 하였지만 기분은 영 개운치가 않다. 평소에 "그러면 안뎌" 느린 충청도말로 어눌하게 읊조리다마는게 남편의 습성인데 오늘은 그 강도를 지나쳐 훈계조로 넘어가 있다는게 그녀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한 것이다. "나한테 감히 훈계를 하다니" 잔소리와 훈계는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가. 나이가 먹더니 영감탱이가 망령이 났나 싶다. 그녀가 하는 일을 그냥 지켜만 보고 사는게 남편의 몫이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은 감히 훈계라니.
- 정명숙 서울유석초 교사
- 1999-03-0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