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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디지털 도구를 지구과학 수업에 활용한 계기 2018년, 임용에 합격하고 첫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의 수업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수업시간마다 엎드린 학생들을 보며, 마치 고요 속에서 외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교과내용을 아무리 열정적으로 전달해도 학생들의 반응은 미미했고, 수업은 늘 교사 중심으로 흘러갔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수업에 끌어들일 수 있을까?’ 수업과 관련된 직무연수를 찾아다니고 배우며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것이었다. 나의 첫 디지털 수업은 스마트폰을 활용해서 자료를 조사하고, 수업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활동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한 형태였지만, 놀랍게도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디지털 기반 수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지구과학 교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지구과학은 다른 교과에 비해 시공간적 제약이 크다. 주상절리·습곡·단층과 같은 지질 구조를 실제 지형에서 확인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학교현장에서는 시간·비용·안전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정규수업시간에 지질답사를 운영하기 어렵다. 결국 교사는 사진·영상·텍스트 중심의 간접 경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수업은 교사의 경험을 중심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한 ‘온라인 지질공원 답사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 디지털 도구를 적절히 활용하여 교과내용을 다각적으로 제시하면, 학생들은 교실 안에서도 지질공원을 생동감 있게 체험할 수 있고, 주도적인 학습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주도적인 학습을 위한 플랫폼 구성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학생이 깊이 있는 학습경험을 바탕으로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학생의 삶과 연계된 학습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지구과학 교수·학습방법에서는 학생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유발하며, 구체적인 조작 경험과 활동이 가능하도록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등 다양한 플랫폼과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권장한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방향을 반영하여 메타버스 플랫폼을 구성했다. 단순히 교과내용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질공원 여행정보와 지역문화를 포함한 자료를 구성함으로써 학생들이 삶과 연계된 과학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학생들이 디지털역량을 바탕으로 학습내용을 웹툰·애플리케이션·가상현실 콘텐츠 등으로 재구성하면서, 지식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설계했다. [PART VIEW] ● 교육과정 연계 수업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성취기준과 탐구활동에 기반하여 구성했다. [12지과Ⅰ02-01] 지층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퇴적 구조와 퇴적 환경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12지과Ⅰ02-02] 다양한 지질 구조의 생성 과정과 특징을 설명할 수 있다. [탐구활동] 우리나라 국가 지질공원 중 한 곳을 골라 현장학습 떠나기 ● 메타버스 플랫폼 구성 메타버스 플랫폼은 ZEP을 활용했다. 회원가입 없이 링크나 QR 코드를 통해 바로 입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성이 우수하고, 공간 내에 설치된 오브젝트를 통해 패들렛·유튜브·카훗 등 다양한 외부자료와 쉽게 연동할 수 있어 수업의 유연성도 확보할 수 있다. 학생들은 게임 화면처럼 구성된 공간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조작해 자유롭게 이동하고, 원하는 학습콘텐츠를 선택하여 학습시간과 경로를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탐색하고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직접 지질공원을 답사하며 촬영한 사진과 영상, 360도 이미지 등을 편집해 공간에 탑재했다. 한탄강·울릉도·독도·청송·제주도 지질공원을 중심으로 지질 명소와 관광 명소, 지역 먹거리 등 다양한 정보를 포함했고, 각 지점을 지도상의 실체 위치와 유사하게 배치하여 학생들이 지질공원을 더욱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지질공원 여행에 필요한 항공권 요금표, 여객선 정보, 숙박 정보 등 생활정보를 함께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학습을 삶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학생들은 답사활동을 진행하며 빈 양식에 답사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진행하게 된다. 관심사와 디지털역량에 따라 지질공원의 특징을 웹툰·증강현실·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의 형태로 제작하는데, 처음 도구를 접하는 학생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제작 도구 활용 방법을 담은 동영상 교육자료를 플랫폼에 탑재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 학습하고,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을 주도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온라인 지질공원 여행’ 수업과정 ● 메타버스 플랫폼과 친해지기 학생들은 ZEP 플랫폼에 접속해 아바타를 설정하고, 친구들과 함께 공간을 자유롭게 탐색하며 조작방법을 익혔다. 게임처럼 구성된 환경에서 공간을 탐색하고, 곳곳에 배치된 오브젝트와 상호작용하면서 플랫폼에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갔다. 이를 통해 학습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고, 활동에 몰입할 수 있었다. ● 온라인 지질 답사 개인별로 방문할 지질공원을 선택한 뒤, 메타버스 공간에서 지질 답사를 진행하였다. 학습 속도에 따라 2~4곳의 지질공원(총 10개의 활동 맵)을 자유롭게 탐색하며 활동지에 답사 보고서를 작성했다. 360도 이미지와 영상자료를 통해 현장의 지질 구조를 입체적으로 경험했고, 각 지점에서는 실제 답사처럼 지질 명소에서 스탬프를 찍거나, 지질공원 관련 문제를 해결해야 다음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 콘텐츠 제작 및 공유 답사 활동을 마친 뒤, 보고서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질공원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별 협의를 통해 주제를 선택한 뒤, 투닝(Tooning)·앱인벤터(App Inventor)·코스페이스 에듀(CoSpaces Edu) 등의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콘텐츠를 제작했다. 이후 완성된 결과물을 공유하고,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며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제작한 콘텐츠를 설명하며, 지식의 소비하는 학습자에서 콘텐츠를 창작하는 생산자로서 성장하는 경험을 했다. ● ZEP QUIZ 활동 지질공원에 대한 이해도를 점검하고 학습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메타버스 공간 내에서 퀴즈활동을 진행하였다. ZEP QUIZ는 문항별 응답시간과 정답률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어서 학생이 어려워하는 문항을 파악하기 쉽다. 디지털 기반 수업에서의 유의점 ● 디지털 격차 고려 요즘 학생들은 디지털기기와 환경에 익숙해 보이지만, 디지털활용역량은 개인차가 크다. 학생 간 격차는 수업 참여도와 학습성취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플랫폼에 원활하게 접속하고 도구를 다룰 수 있도록 사전 안내와 개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 수업목표를 명확하게 설정 디지털 도구는 목적이 아니라 학습을 지원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흥미 위주의 활동이 중심이 되면, 정작 교과의 핵심 개념에 대한 학습은 약해질 수 있다. 도구 자체가 수업목표가 되거나, 사용 방법이 너무 복잡해도 학습목표를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된다. 도구 선정 단계에서부터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지, 학생에게 어떤 경험을 해주고 싶은지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 학생 주도 활동 설계 디지털 콘텐츠를 단순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학습효과가 크지 않다. 학생이 탐색하고, 선택하고, 표현할 수 있는 활동이 포함되어야 디지털 기반 수업이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학습목표에 부합하는 사고와 결과물을 산출할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해야 한다. 디지털 수업은 처음에는 의도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수업상황에서 활용하기보다는 필요한 상황에서 필요한 도구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학생 주도성뿐만 아니라 교사의 전문성과 수업철학을 반영한 교사 주도성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학교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의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수업이 학생들의 성장을 지원할 수 있다면, 사용하는 도구를 떠나 교사의 노력과 고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함께 고민하고 성장하며, 우리 학생들을 위해 조금 더 나은 교실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수업에 활용한 에듀테크 소개 ● ZEP(https://zep.us) 메타버스 기반 플랫폼으로, 별도 설치나 회원가입 없이 링크로 접속할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 아바타 조작을 통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공간을 탐색하고, 오브젝트를 통해 다양한 자료(영상·이미지·링크 등)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 ● 투닝(Tooning _ https://tooning.io) 웹툰 형식의 콘텐츠를 쉽게 제작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캐릭터·배경·말풍선 등을 Drag Drop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다. 학생들이 지질공원 답사 내용을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하여 과학 개념을 창의적으로 표현했다. ● 코스페이스 에듀(CoSpaces Edu _ https://cospaces.io/edu/) VR/AR 기반의 콘텐츠를 직접 제작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학생들은 지질공원의 구조와 특징을 입체적으로 재현했다. ● 앱인벤터(App Inventor _ https://appinventor.mit.edu) 앱 제작 플랫폼으로, 블록 기반 코딩을 통해 간단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다. 학생들이 지질공원을 소개하는 앱을 직접 기획하고 구성했다.
5학년 수업시간, 박○○ 학생이 나에게 던진 한마디의 말은 나의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선생님, 왜 책을 읽어야 하나요? 책은 재미도 없고, 책만 지식을 주는 게 아니잖아요!” 학생의 말처럼 책에서 지식을 얻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 우리는 다른 많은 매체를 통하여 정보를 얻고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아직도 단순히 ‘책’을 매개로 한 수업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독서란 텍스트와 독자의 상호작용 과정이다. 책과 상호작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독서의 질이 결정된다. 학생들은 아직 미숙한 독자인 경우가 많기에 교사는 학생들이 책과 올바른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올바른 독서가 가능하다. 교사는 학생이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는 기회를 제공하여, 독서를 통해 인격을 형성하고 건전한 태도와 지식·능력·흥미·기술·습관을 기르는 독서교육을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책 대신 신문·잡지·포스터·라디오·TV·영화 등 레거시 미디어를 넘어 인터넷·SNS·스마트폰 등 뉴미디어가 학생들을 사로잡은 지금, 독서는 아이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제시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도 독서를 좋아하는 학생은 39.6%에 불과하며 독서의 장애요인으로는 ‘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책 이외의 매체를 이용해서’ 등의 응답이 이러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나는 독서수업을 고민하며 2023년 국민실태조사에서 독서의 장애요인 중 하나인 ‘책 이외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다’는 응답에 주목했다. 책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재미있어하는 다양한 매체와 연계한다면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흥미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는 독서로 연결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에 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과시간에 ‘동식물과 함께하는 나의 생활’을 주제로 책과 함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수업을 진행하였다. [PART VIEW] 1차시 _ 텍스트·오디오·영상 비교를 통한 매체의 특징 알아보기 매체란 ‘정보를 담는 그릇이자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 또는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전달을 위해 사용되는 모든 형태의 채널’을 의미한다. 1차시는 텍스트·오디오·영상 비교를 통하여 이러한 각 매체의 특징을 알아보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언급되는 퀴디치 설명 부분을 텍스트·오디오·영상으로 준비하여 학생들에게 제공하였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동일한 내용이 텍스트·오디오·영상으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경험하며, 각 매체가 가지는 특징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아가 각각의 매체가 가지는 특징·장점·단점 등을 서로 이야기하여 매체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2차시 _ 그림책 함께 읽기와 배경지식 확장하기 2차시는 5학년 실과 ‘동식물과 함께하는 나의 생활’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4번 달걀의 비밀 그림책을 함께 읽은 후, 닿소리표를 활용하여 알게 된 내용을 키워드로 적어보도록 지도하였다. 이후 빅카인즈를 활용하여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한 후 관련 키워드를 확인하고 배경지식을 확장하는 시간을 가졌다. 3차시 _ 신문기사와 유튜브를 찾아보고 정리하기 3차시는 지난 시간에 작성한 닿소리표를 활용하여 수업을 진행하였다. 학생들이 각각의 키워드를 활용하여 신문기사와 유튜브를 검색하고 관련 내용을 확인한 후, 준비된 활동지에 관련 내용을 작성하도록 하였다. 신문기사의 경우 기사내용을 요약하고, 왜 이 기사를 선택했는지, 검색 관련 키워드와 기사 관련 키워드를 적게 하였다. 유튜브의 경우 유튜브 제목과 채널명·시청일·영상정리 등을 기록하게 하였다. 학생들은 이러한 활동지를 작성함으로써 매체에서 정보를 선택하고 이해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었다. 4차시 _ 캔바를 활용하여 포스터와 SUNO를 활용한 노래 만들기 4차시는 학생들이 그동안 자신이 수집했던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생각을 포스터로 제작하는 활동을 시작하였다. ‘캔바’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학생들이 접속한 후, 자기 생각에 맞게 포스터를 제작하고 홍보하게 함으로써 단순히 정보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서 활동을 유도하였다. 그리고 만든 포스터와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담당교사에게 키워드와 노래 양식 등을 제출하면 SUNO를 활용하여 노래를 만들어보는 활동도 함께 진행하였다. 5차시 _ ‘4번 달걀은 필요한가’로 토론하며 자신의 생각 정리하기 5차시는 지금까지의 학습활동을 바탕으로 ‘4번 달걀은 필요한가’로 토론활동을 진행하였다. 학생들은 책·신문·유튜브 등을 활용하여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였고, 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하였다. 책을 단순히 읽는 과정에서 벗어나 책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니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짐을 경험했다. 학생들은 재미가 없던 책이 다양한 매체를 활용할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음을 알았고, 이에 도서관에 와서 다양한 책들을 살펴보며 다음 시간에는 이 책으로 정보를 찾고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이제 독서수업을 할 때, 나는 학생들의 의욕 없는 모습이 아닌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수매체의 변화는 학생뿐만 아니라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에게도 큰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학생들이 책을 통해 바른 인격과 건전한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독서수업을 운영할 것임을 다짐해 본다.
가르침의 출발, 마음의 문 열기 교수법 강연 중에 한 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했다. “열심히 가르쳤는데 중간고사에서 절반 가까이가 빵점을 받았습니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비유로 답을 대신했다. “물 한 통을 물병에 부었는데, 붓고 보니 물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뭘 잘못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병뚜껑이 닫혀 있었을 수도, 물을 붓는 위치가 잘못되었을 수도, 혹은 병이 깨져 있어서 물이 샜을 수도 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병뚜껑을 열어야 물이 들어간다. 가르침이 배움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학생 마음의 문을 먼저 열어야 한다. 유사한 우화가 있다. 한 나무꾼이 무딘 도끼로 큰 나무를 자르려 애쓰는 우화가 있다. 지나던 행인이 도끼날을 갈아보라고 권했지만, 나무꾼은 곧 날이 저무는데 도끼날 갈 시간이 어디 있냐며 쏘아붙였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쓰지 못한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수업 중에 다룰 내용이 너무 많다고 학생들과 눈 맞추며 이름 부르는 시간조차 아까워하는 것은 병뚜껑 여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것과 같다. 병뚜껑과 달리 마음의 문은 억지로 열 수 없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있다’라고 했다. 학생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나와서 배우고자 할 때에만 가르침은 배움으로 이어진다. 첫 수업에서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을 하는 이유는 학생들이 스스로 마음 문을 열고 나오도록 돕기 위함이다. 매 수업 시작점에서 수업주제에 적합한 동기유발 활동을 하는 것도 이를 위함이다. 첫 수업에서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을 하는 이유, 수업마다 동기유발 활동을 실시하는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학습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생성 AI가 등장함에 따라 수업 특성에 맞는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이나 수업 주제에 적합한 동기유발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조금은 더 쉬워졌다. 학생들의 바람 다음으로 관심 가져야 할 것은 학생들의 바람이다. 병 입구에 정조준하여 물을 부어야 하듯이, 수업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해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것, 꼭 배워야 할 것, 학생들이 이해하기 힘들어할 내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학생 각자의 내적동기를 이해하고 이를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듀이(John Dewey)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강연에서 청중의 기대와 무관하게 준비한 내용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는 것은 병 입구에 신경 쓰지 않고 다른 곳에 물을 쏟는 것과 같다. 청중의 배경 특성, 강연 요청자의 기대를 사전에 파악할 뿐만 아니라 연수생의 반응을 보아가며 강연 내용을 조정해야 한다. 열심히 준비한 내용이더라도 불필요하다 싶으면 과감히 생략하고, 반응에 맞춰 강의 내용 순서를 바꾸며, 필요한 내용은 즉각 추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즉문즉설형의 수업을 하면 병 입구에 정조준하여 물을 부을 때처럼 물병을 쉽게 채울 수 있다. 이는 학습자 중심 수업설계, 비구조화된 과제, 개인화된 경험 제공 등을 강조하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 이론에 부합한다. 깨어진 병과 학습 토대 정조준해서 병에 물을 붓는 데도 차지 않는다면, 깨진 곳은 없는지 찾아 때워야 한다. 학습이 이뤄지려면 학습의 기본 토대가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 학습토대 형성에 대한 예로는 아들러의 ‘삶의 틀’과 원동연의 ‘수용성 틀’을 들 수 있다. 아들러는 삶의 틀(life style)을 세 가지 개념으로 정리한다. 첫째는 자기개념, 즉 내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세계상으로 세상이 나에게 어떤 곳인지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다. 셋째는 자기 이상이다. 내가 마땅히 그래야 하는 어떤 모습이 그것이다. 학생 교육과 ‘삶의 틀’ 관계는 곡식 기르기와 논밭 지력(地力)의 관계와 같다. 곡식을 심어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논밭의 지력을 튼실하게 해주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씨앗을 골라 심고 최고의 농법으로 기른다고 하더라도 척박한 땅에서는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없다. 농부들은 곡식을 심기 전에 논밭에 퇴비를 주고, 쟁기질하는 등의 노력을 먼저 기울인다. 학생의 관심에 초점을 맞춰 교육내용을 선택하고, 맞춤형 교수법을 동원해 학생들을 가르치더라도 삶의 틀이 깨져 있는 학생들에게서는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다. 맞춤형교육의 기대효과로 거론되는 사회·정서적 발달은 학습 기본 토대 형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을 위한 맞춤형교육을 설계하고 추진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정서적 발달이다. 아들러가 삶의 틀을 강조하는 것처럼 원동연은 다섯 가지 수용성 요소(틀)를 강조한다. 그가 밝힌 인간의 능력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수용성 요소는 지력·심력·체력·자기관리능력·인간관계능력이다.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이 다섯 가지의 본질적 요소들을 골고루 길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다섯 가지 요소를 ‘수용성 틀’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카이스트, 2015: 210-211). 수용성 틀이란 학습과 성장을 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틀(요소)을 의미한다. 뇌과학으로 본 마음의 문 열기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생존정보 → 감정정보 → 학습정보 순서로 들어온 정보를 처리한다(이찬승, 2019). 수면·식욕 등의 생존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 불안·걱정 등이 뇌를 지배하는 상태에서는 학습정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 교사는 학습자가 학습이 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 여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생존정보와 부정적인 감정정보가 학습정보처리를 방해하고 있다면 이를 해결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이는 학생 마음 문의 빗장을 풀게 하는 것과 같다. 다음 단계는 제공하는 학습정보에 감정이라는 당의정을 입히는 것이다. 교사의 경험, 학습주제와 관련된 최근의 사건, 학생들이 관심 있어 하는 예시 등으로 버무려진 학습정보에 학생들은 더 잘 반응한다. 이러한 노력은 학생이 마음의 빗장을 풀고 학습의 장으로 나오게 한다. 마지막 단계는 학생들이 마음의 문을 계속 열고 있게 하는 것이다. 10~15분 단위로 설명형, 학생 참여형, 학생 주도형 등으로 수업 모드를 전환하고, 마무리 단계에서 배운 내용을 꺼내는 인출작업 등이 그 예이다. 최고의 스승은 영원한 학생이다. 오래 가르치면 더 배울 필요가 없는 최고의 교수가 될 줄 알았더니 가르칠수록 배워야 할 것이 늘어난다. 더 이상 배우지 않는다면 하산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5.31 교육개혁, 왜 여전히 중요한가? 1995년 김영삼 정부가 내놓은 5.31 교육개혁 방안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교육체제 대전환’ 구상이었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물결이 본격적으로 밀려오던 시기에, 국가 중심의 일방적 통제에서 벗어나 학교와 지역의 자율을 확대하고자 한 점이 특징이었다. 또한 교육개혁위원회를 설치하여 전문가·교원·학부모 등의 의견을 비교적 폭넓게 수렴하고,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수립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오늘날에는 양극화된 정치와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교육정책의 일관성이 과도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이럴 때 5.31 교육개혁이 보여준 ‘종합 설계도+사회적 합의’ 방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그 결과물이 항상 완벽했던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교육은 단기간에 정치적 이념에 기반한 선동과 이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정책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원칙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교사 관점에서 돌아보는 5.31 교육개혁의 핵심 정책들 ● 학교 자율화와 학교운영위원회 5.31 교육개혁의 큰 골자 중 하나는 ‘학교 자율화’였다. 이와 맞물려 학교운영위원회가 본격 도입되면서, 학부모·교원·지역사회 구성원이 학교 운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급식부터 방과후학교, 시설 개선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사안을 협의·결정하는 기구가 생기게 되었다. 이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학부모와 교원의 협력 구조를 조성하고, 학생과 지역의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다. 더 나아가 학교가 단순히 행정적 지시를 따르는 수동적 기관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율적 공동체’라는 인식과 문화를 교육공동체에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과 학교별로 학부모 참여도와 재정 여건에 큰 차이가 존재해, 학교운영위원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거나 일부 소수 집단이 주도하는 경우가 생겼다는 비판도 있다. 또한 자율화 범위에 대한 세부지침이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가지 서류 업무나 행정 부담이 교사에게 과도하게 전가되는 문제도 드러나, 자율화의 이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사례가 동시에 나타난 점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성과급제와 교원능력개발평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 도입된 교원 성과상여금제도(성과급제)와 이후 이어진 교원능력개발평가는 5.31 교육개혁의 핵심 방향인 ‘경쟁력 강화’와 ‘성과 중심 문화 확산’이 교원 인사·평가제도에 반영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른바 ‘교사 전문성 제고’를 내세우는 취지였기 때문에 일부 교사들이 자기계발이나 교수·학습방법 개선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수업개선이나 학생 생활지도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발적 학습공동체가 형성되는 긍정적 변화도 있었다. 하지만 교사 집단을 중심으로 평가 지표가 실제 수업의 질이나 학생 성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교사 간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고,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이 노동 조건과 교권 문제로 비화해 현장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이 거듭 제기되었다. 성과제도 자체가 교사를 더 열정적으로 만들기보다, 오히려 불필요한 비교와 서열화를 고착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 특목고·자사고 확대 5.31 교육개혁 이후 강조된 학교 다양화 정책은 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확대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예술·외국어·과학 등 특정 분야에서 재능 있는 학생들에게 적합한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획일적 교육을 넘어 학교별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구상은, 실제로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일부 학교들의 성공사례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특목고·자사고가 단기간에 ‘입시 명문’ 이미지로 굳어지면서, 일반고와의 격차가 심각해지는 문제점도 발생하였다. 일부 학교가 입시 위주의 프로그램을 더 강화함으로써 외부 사교육이나 고액 과외와 연계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결과적으로 경제적 여건이 좋은 학생들에게 유리한 교육환경이 고착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또한 특목고·자사고 존폐논쟁이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되면서, 일선 학교현장과 교사들의 혼란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 수능 도입과 입시제도 변화 5.31 교육개혁은 초·중등 교육체제 개편뿐만 아니라 대학 입시 체제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으로 1994학년도부터 시작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도입은 과거 본고사나 학력고사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상대적으로 객관화·체계화하려는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와 함께 학생부 전형이 강화되는 등 다양한 입시 방식을 도입하면서, 단순 암기식 학습을 지양하고 논·서술형 평가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본격화되었다는 점은 어느 정도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수능 역시 입시 경쟁을 근본적으로 줄이지 못했고, 오히려 사교육 시장이 더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학생부종합전형의 확산도 ‘깜깜이 전형’, ‘스펙 쌓기 경쟁’을 유발한다는 의혹이 잇따르면서, 공정성 시비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상황이 이어졌다. 입시 구조가 아무리 바뀌어도 경쟁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교육격차와 사교육 의존도는 되레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 다시금 확인된 셈이다. 5.31 교육개혁의 ‘빛과 그림자’, 교사가 체감하는 의미 결국 5.31 교육개혁이 제시한 여러 정책과 제도는 ‘자율성 확대와 경쟁력 강화’라는 기치 아래 추진되었으나, 동시에 ‘지나친 경쟁체제’를 고착화하고 ‘교육격차’를 오히려 심화시켰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교사 관점에서 보면 학교운영위원회나 교원 성과급, 능력개발평가 같은 장치는 의도 자체는 좋았어도, 현장을 지원하는 제도적·재정적 뒷받침이 부족해 오히려 업무 부담만 늘린 경우로 기억되기도 한다. 반면 제도가 올바르게 안착된 곳에서는 ‘학교 주인의식’을 높이고 교사 전문성을 강화하는 긍정적 효과가 확인된 사례도 존재한다. 결국 이러한 차이는 각 학교의 환경, 교원 및 학부모의 적극성, 지역사회의 관심과 협력 정도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이는 곧 자율화 정책이 성공하려면 좀 더 세밀한 제도 설계와 균형 잡힌 지원방안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래교육을 위한 다층적 논의와 지원 5.31 교육개혁이 주는 핵심 교훈 중 하나는 ‘교육제도 개혁은 단발성이 아니라 종합적 시야와 장기적 투자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정권마다 달라지는 정치공학적 공약에 따라 교육정책이 빈번히 바뀌는 현실을 극복하려면, 교사·학부모·학생·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민주적 논의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교원 역량 개발과 교권보호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단순히 경쟁체제나 성과 평가에만 집중하기보다, 교사 간 협력과 전문적학습공동체가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교사 본연의 역할을 지켜줄 법·제도적 안전장치도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아울러 다양화와 공정성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특목고·자사고, 학생부종합전형 등의 정책을 재점검하고, 선택권을 존중하면서도 교육기회의 불균형이 심화되지 않도록 촘촘한 장치를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교육은 국가 미래를 책임지는 핵심 영역인 만큼, 눈앞의 정치적 이해관계보다 장기적 비전과 사회적 합의를 우선해야 한다는 사실이 거듭 강조된다. ‘전문가+현장+정부’가 협업하여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했던 5.31 교육개혁의 장점을 오늘날 현실에 맞게 재설계하는 작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5.31 교육개혁 30년,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5.31 교육개혁이 발표된 지 30년이 흐르면서, 우리는 그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교육현장이 얼마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놓여 있는지 다시금 실감하고 있다. 교사들은 매일 교실과 학교라는 공간에서 그 변화를 몸소 체감하고 있으며, 새로운 제도와 정책의 요구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최전선에 서 있다. 이제는 한 세대를 넘어선 5.31 교육개혁의 성취와 한계를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실질적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교원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공교육의 공공성과 형평성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수할 것인가’ 등과 같은 근본적 질문에 대해 폭넓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교육개혁’의 핵심 과제일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요. 교육지원청을 두고 ‘교육 방해청’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게요.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리던 이 말이 이제는 제법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습니다. 그만큼 대부분의 교사는 교육지원청을 교사로서 지원을 받는 곳으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교육지원청은 학교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기관, 교사가 보고하고 지시를 따르는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은 외롭고 고립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업보다도, 각종 보고와 회신 그리고 민원대응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행정과 실적 중심의 정책이 반복되면서 불필요한 업무량은 늘어나고, 무엇보다 학생과 학부모의 민원이나 악의적인 공격에도, 심지어 교사가 학부모·학생에게 폭행당해도, 제대로 된 대응이 어려운 교실은 점점 배움의 터가 아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곳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교육청과 교육부는 교사 개인의 입장이 아닌 ‘교육 전체’를 조망해야 하는 곳입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목소리를 함께 듣고 반영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교사와 학생·학부모 사이의 관계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교사가 여유를 가지고 수업에 몰입할 수 있는 교실에서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웃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교사의 행복과 학생의 행복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상생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처럼 서로 협력하는 관계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요구가 다른 누군가에겐 부담이 되기도 하고, 한쪽이 만족하면 다른 쪽이 상처받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교육적 판단보다는 학생이나 학부모의 요구를 우선시해야 할 때가 많고, 그 과정에서 교육적 소신을 접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학교나 교육청의 결정이 외부 민원으로 인해 번복되거나 약해지는 일도 흔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경험이 누적되면서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은 점점 줄어들었고 우리의 직업효능감과 개인으로서의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습니다. 이건 단순히 교육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지금 사회 전반에서 관계와 역할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는 현상이 교육현장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교육정책은 이런 변화를 이해하고, 교사들이 중심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체험학습만 봐도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힘들어도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줄 생각에 떠나는 날이 설레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돌아오는 길은 늘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한 걱정부터 떠오르고, 그 책임이 전적으로 교사에게 돌아올까 긴장하게 됩니다. 교육청과 교육부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야 소극적으로 대응할 뿐, 사전에 교사를 보호하는 역할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출발부터 귀가까지 신경을 곤두세운 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교육적 의미를 돌아볼 여유도 없습니다. 서이초의 비극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교사 보호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사들은 “우리를 지켜줄 사람은 없다”는 말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교사들 사이에서 진심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교직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자조적 표현도 어쩌면 모두의 마음속에서 무언의 동의를 얻고 있었습니다. 또 요즘 2030 교사들은 승진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승진을 위해서는 본연의 수업 외에도 다양한 업무를 맡아야 하고, 실적·문서·결과물을 위한 활동들이 쌓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과연 교육적인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늘 따라다닙니다. 이미 기본 업무 중에서도 불필요한 행정업무와 ‘과연 이것이 교사가 할 업무가 맞는지?’ 의문스러운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승진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기보다는, 그 시간에 수업을 좀 더 충실히 준비하고 싶다고 말하는 교사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승진체계 자체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그 안에서 요구되는 역할과 방향이 교육의 본질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데서 오는 괴리감입니다. 또 무엇보다 교권추락으로 인해 나 스스로도 자부심과 존경을 가지기 힘든 조직 안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승진이라는 말이 더 이상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많이 지쳐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사들이 지금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거창하거나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첫째도 교권입니다. 둘째도 교사 보호입니다. 교사로서 교육현장에서 아무 문제 없이 교육하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교사들의 가장 기본적인 바람입니다. 이러한 안정된 환경이 마련될 때, 비로소 교사들은 수업을 깊이 연구하고, 수업의 질도 자연스럽게 향상될 수 있습니다. 2023년 여름, 수많은 교사가 거리로 나섰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외침은 “수업 좀 제대로 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호소였습니다. 승진도, 수당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이들과 마주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가르칠 수 있는, 기본 중의 기본을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2025년, 지금도 여전히 바뀐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선생님은 교실에 남아 아이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다음 수업을 고민하고, 자료를 정리하고,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방과후에 남은 시간도 쪼개어 수업을 준비합니다. 화려한 성과나 이름이 아니라, 전국 곳곳의 평범한 선생님 한 사람 한 사람이 사실은 지금 교육을 움직이고 있다는걸, 매일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꾸준함이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이 버텨나가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마치며 선생님들을 떠올립니다. 특별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수많은 얼굴들. 함께 같은 공간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같은 고민을 나누는 선생님들께, 말 대신 마음으로 깊이 고개 숙입니다. 존경합니다.
임태희 경기교육감의 광폭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2032 대입 개혁안을 발표, 교육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하는가 하면 미국 하버드와 MIT대학에서 초청 강연을 하는 등 경기교육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높이고 있다. 부드러운 매너와 진지한 태도, 댄디맨의 멋스러움이 여전한 임 교육감을 만나 체험학습 등 교육현안과 함께 우리 교육이 나갈 방향에 대해 의견을 들어봤다. 임 교육감과 인터뷰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교육청 남부청사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임기 3년 차를 맞아 그간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경기교육은 모든 학생이 ‘나의 미래는 학교에서 준비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바꿔나가고 있다. 이를 위해 제1섹터 학교, 제2섹터 경기공유학교, 제3섹터 경기온라인학교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한 학생도 소외되지 않고 모든 학생의 교육이 이뤄지는 ‘경기미래교육 플랫폼’을 마련했다. 모든 것을 공교육 안에서 소화하는 하나의 시스템인 셈이다.” 임태희 하면 최근에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2032 대입 개혁안이다.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데. “정답 맞히기식의 경쟁과 사교육비 부담에 따른 저출생 문제, 교육격차 심화 등 사회적 문제들의 중심에는 대입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우리나라 유·초·중등 교육정책도 대입 앞에서 무너지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 교육의 3분의 1을 책임지고 있는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의 미래교육을 준비하면서 대학입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교육감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마련했다.” (임태희 교육감이 제시한 대입 개혁안은 학생 내신평가 5단계 절대평가 실시, 2026학년도 중학교 1학년 입학생부터 서·논술형 지필평가 점진적 확대, 2032학년도 수능부터 전면 절대평가 적용 및 서·논술형 평가 도입, 수능 시기 조정 및 수시·정시 통합전형 운영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감으로는 최초로 하버드와 MIT에서 초청 특강을 해 한국 교육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다. “하버드대 특강은 미국의 교육전문가인 페르난도 레이머스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하버드대의 공식 요청에 따른 것이다. 특강에서 ‘한국(경기도)의 교육개혁을 주제로 학생 맞춤형교육과 인공지능의 역할’에 대해 영어로 발표했다. 우선 대한민국 교육의 특징과 문제점으로 강한 교육열과 그에 따른 과도한 입시경쟁을 짚었고, 그러한 교육방식은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과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 적성에 맞는 교육, 창의적인 문제해결능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경기교육은 모든 학생에게 동등한 기회를 똑같이 부여하는 ‘공평의 교육’을 넘어, 학생의 관심도와 역량에 따라 개별 맞춤형 기회를 확대하는 ‘공정한 교육’을 추진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강 이후 격찬을 받았다는 후문인데. “하버드대 학생들은 경기교육의 인공지능 교수·학습 플랫폼 ‘하이러닝’과 ‘경기공유학교’, 그리고 대한민국의 입시제도를 바꾸려는 경기교육의 노력에 특히 관심이 높았다. ‘교실 속 자존감’의 저자 조세핀 킴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사회가 급격히 발전하고 세계화되는 시점에 변화를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경기교육의 노력이 감동적이며, 그 용감한 도전에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고 하더라.” 법원 판결 이후 현장체험학습 중단·폐지 요구가 많은데. “현장체험학습에서 안전사고 발생 시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 법의 과도한 적용이다. 일부에서는 안전 보조요원 채용을 제안하는데, 이것 역시 교사의 업무를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안전요원의 과실도 결국 관리 잘못’이라며 교사에게 책임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 보호에 대한 무게를 온전히 교사 홀로 감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전국 교육청마다 교육예산이 줄어 힘들어한다. 정상적인 교육활동마저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인데. “정부는 학생수가 줄었으니, 교육예산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 교육환경과 맞지 않는 억지 논리다. 교육예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교사 인건비와 학교 시설비다. 학생수가 준다고 해도 정해진 교사 인원이 있기 때문에 인건비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더구나 경기도는 인구 유입으로 학교 신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교육재정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줄이겠다는 것은 교육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경기도교육청은 학교폭력과 교육활동 침해 등 학교구성원 간 갈등을 처벌과 징계가 아닌 대화와 이해를 바탕으로 해결하는 화해중재단을 운영, 큰 호응을 받고 있다. “화해중재단은 경기도 내 25개 교육지원청에 설치되어 있다. 전·현직교원, 갈등조정 전문가, 변호사, 경찰관0, 상담사, 지역 인사 등 1,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폭력, 학생인권 침해, 교육활동 침해 등 다양한 갈등 사안에 대해 예비중재, 본중재, 사후관리 등 3단계 절차를 거쳐 문제를 해결한다. 2024년 한 해 동안 화해중재 신청은 1,803건. 이 중 1,620건이 실제 중재로 이어졌고, 중재 참여자의 83%가 만족을 나타냈다. 단순한 조정이나 타협을 넘어, 실질적인 관계 회복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성과이다.” 올해 경기형 과학고 4곳이 신규 설립 허가를 받았다. 지역 할당은 어떻게 운영되는가. “최근 성남시는 2027년 과학고로 전환 예정인 분당중앙고 신입생 선발 시 모집인원의 40%를 관내 학생으로 선발해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지역 학생 우선 선발을 입학전형에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고는 지자체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만큼, 지역 학생 선발 할당을 충분히 검토할 계획이다. 아울러 미래형 과학고의 학생 선발 방법 개선을 위한 정책연구를 진행해 다양한 지역과 배경의 학생들이 과학적 역량만으로 입학하는 제도를 수립하겠다.” 경기공유학교는 미래형공교육 모델로 각광받고 있지만, 기존 학교와의 조화나 지역에 따른 교육기회 제공에 차이가 난다. 이에 대한 대책은. “올해를 기점으로 학교(교육1섹터), 경기공유학교(교육2섹터), 경기온라인학교(교육3섹터) 체제를 운영해 학생이 주도적으로 교육자원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생태계 전환을 추진한다. 특히 올해는 ‘경기온라인학교’를 본격 운영한다. 학생의 개별 수요에 따라 전일제와 과목선택형 학습이 가능하도록 구성하고, 온라인수업과 학점 인정 그리고 학생 맞춤형 콘텐츠 등을 제공하게 된다. 이를 통해 다문화학생, 특수교육 대상자, 학교 밖 청소년까지 폭넓은 학습권을 보장할 방침이다.”' 경기도교육청의 AI 기반 교수·학습플랫폼 ‘하이러닝’은 해외에서조차 놀라움을 표시할 정도로 학교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 계획은. “현재 ‘하이러닝’의 기능 고도화를 진행 중이다. 핵심은 수업설계안 복제·공유 기능과 논술문항 생성 기능이다. 교사들은 이를 활용해 우수한 수업자료를 공유하고, 학생 맞춤형 평가준거(루브릭)를 구성할 수 있다. 이 외에 초등학교 5~6학년 수학교과 전 차시 콘텐츠와 고등학교 공통영어Ⅰ 영상자료 등 교수·학습자료를 확장하고 있다. 아울러 AIDT와 연계하는 기술적인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향후 학습자료와 평가준거 데이터 등을 누적시켜 학교현장과 대학도 인정하고 공감하는 시스템으로 개선하려 한다.” 최근 들어 저경력 공무원들의 이탈이 심화되고 있다. “일할 자리는 있는데 살집이 없어 떠난다는 현실은 심각하다. 실제로 신규교사나 저연차 공무원들을 만나보니 주거에 대한 부담이 가장 크다고 한다. 주거 부담 해소를 위해 관사 매입, 신축, 장기 임대주택 임차 물량을 확보하고, 지역 내 저경력 공무원에게 우선 배정해 실질적 도움을 주고자 한다. 맞춤형복지 지원액도 저경력 교직원을 대상으로 추가 지원하고, 40세 이상 교직원에게 지원하던 1인당 20만 원의 건강검진비도 연령제한 기준을 폐지했다. 인사발령 때는 생활권과 근무희망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저경력 공무원이 업무상 단순 실수를 한 경우 처분 요구를 감경 적용하는 기준을 신설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의 정치적·사회적 분열과 이념 간, 세대 간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교육에는 진보와 보수가 없다. 대립하고 반목하기보다 서로 융합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경기교육에서 자율·균형을 강조하는 게 그런 의미이다. 교육이 극단과 극단을 계속 오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학생들에게 주입식 교육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성장하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보이텔스바흐 협약’과 같은 숙의형 토론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학생토론회를 개최해 공존의 가치를 실현하는 교육을 하고자 한다. 아울러 경기토론교육 일반화 방안 연구 등 학교현장에서 토론교육이 효과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고흐의 초록 자장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라 베르쇠즈(La Berceuse), 1889는 모성애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제목 라 베르쇠즈는 프랑스어로 ‘요람을 흔들어주는 여자’, 즉 ‘자장가를 불러주는 이’를 뜻한다. 고흐가 프랑스 아를에서 지내던 시절, 가까이 지내던 우체부의 아내이자 다섯 아이의 어머니였던 어거스틴 룰랭 부인을 모델로 그린 초상화이다. 아이를 재우는 자장가를 떠올려보자. 조용히 흥얼거리는 엄마의 노랫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든다. 요즘같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많은 시대에, 위안이 될 수 있는 작품이다. 고흐는 이 포근한 순간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작품 배경을 살펴보면, 초록빛 색채와 부드러운 선율 같은 문양에서 ‘어머니의 사랑과 위로’를 그려냈다. 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눈앞에서 초록빛 자장가가 은은히 흐르는 듯하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우리 선생님들과 이 그림은 뭔가 공통되는 점이 있어 보인다. 이제 천천히 그림 속으로 들어가, 고흐가 전하는 이야기를 함께 느껴보자. 초록빛 요람을 흔드는 어머니 실제로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며 ‘지금 우리에게는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행복·희망·사랑이 필요하다’고 편지에 적었다. 말 그대로 힘겨운 삶 속에서 희망을 북돋워 줄 마음의 자장가를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초록 벽지 배경에 앉아 있는 어거스틴 룰랭 부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두 손으로 보이지 않는 아기의 요람과 연결된 밧줄을 쥐고 있다. 살짝 아래로 향한 시선과 다소곳한 자세에서 아이를 재우는 어머니의 헌신이 느껴진다. 화면에는 아기 모습이 직접 나오지 않지만, 밧줄 끝 너머에 있을 아기를 향한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고흐는 아기의 존재를 이렇듯 암시함으로써 감상자가 장면을 자연스레 상상하게 만든다. 고흐는 이 작품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그는 완성된 그림을 자신이 그린 길쭉한 해바라기 그림 두 점 사이에 걸어 마치 세 폭 제단화1처럼 전시하기도 했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그린 제단화 대신, 현실 속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을 세상 속 성인(聖人)처럼 표현했다. 그는 친구 고갱과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폭풍 이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고된 사투를 벌이는 가난한 어부들이 선실에 이 그림을 걸어두면, 배의 흔들림이 마치 요람처럼 느껴져 어린 시절의 자장가를 떠올릴 것’이라고 썼다. 그만큼 이 초록빛 자장가에 모두가 공감하고 위로받기를 바랐던 것이다. 색과 선이 만들어낸 서정적 자장가 그림을 감상할 때 무엇보다 먼저 색이 눈에 들어온다. 라 베르쇠즈에서는 한눈에도 초록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배경 벽지와 모델의 옷은 짙은 초록색이다. 대비되는 색으로 벽지에는 붉은빛이 도는 꽃들이 만개해 있다. 초록과 붉은색은 서로 보색 관계여서 나란히 쓰이면 서로를 더욱 선명하게 돋보이게 한다. 고흐는 이 보색 대비를 적극 활용해 강렬한 인상을 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묘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초록 배경 속에 붉은 점 문양과 꽃송이들이 리드미컬하게 흩어진 모습은 마치 색채로 연주하는 잔잔한 자장가 같다. 실제로 미술평론가들은 고흐의 이 그림이 색으로 빚어낸 자장가처럼 보는 이를 편안하게 감싸준다고 말한다. 색채만큼이나 선과 형태도 중요한 요소다. 룰랭 부인은 전체적으로 두꺼운 검은 선 테두리로 비슷한 초록 배경에서 부각되도록 하였고, 배경의 꽃과 잎사귀도 뚜렷한 색면으로 단순화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은 대상을 단순화하던 그의 스타일이다. 머리 부분의 사실적 묘사도 있고, 몸을 단색으로 채색하여 평면화하는 대범한 형식이다. 고흐는 당대 유행하던 일본 판화처럼, 평면화하여 선명한 스타일과 과감한 구도로 그렸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부인의 손에 들린 줄은 화면 아래에서 위로 대각선 방향으로 뻗어 있는데, 이 시선을 유도하는 사선의 밧줄은 그림에 잔잔한 움직임을 더해준다. 밧줄을 통해 우리 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요람이 흔들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림 전체가 앞뒤로 흔들리는 동세를 품은 듯하여, 보는 이에게 자장가의 포근한 리듬감을 준다. 고흐의 트레이드마크인 질감 역시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고흐는 두꺼운 유화 물감을 나이프와 붓으로 듬뿍 떠서 캔버스에 올리는 기법을 즐겨 썼다. 그래서 그림 표면에는 울퉁불퉁 도드라진 입체적인 질감이 남는데, 이를 미술용어로 ‘마티에르(matière)2’라고 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룰랭 부인의 녹색 치마와 벽지의 꽃무늬 곳곳에 물감이 톡톡 찍혀 있다. 작가가 물감을 찍으며 붓 터치를 넣었을 그 순간을 상상해 보자. 마치 자장가의 리듬을 시각화한 것 같다. 어머니가 아이를 재우며 불러주는 자장가의 잔잔한 리듬이 눈앞에서 그리고 요람으로 이어질 듯 우리 마음도 흔들린다. 고흐는 이러한 미술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각뿐 아니라 마음에 말을 건다. 그림을 한참 바라본다면, 초록색의 차분함과 붉은색의 온기가 어우러져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고 흔들어주며 “잘 자라”고 속삭이는 듯한 시각적 자장가가 우리를 토닥여주는 것이다. 고흐 자신도 이 그림에서 큰 위안을 얻었는지,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을 때, 자기도 모르게 자장가를 불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만큼 이 작품은 작가에게도, 감상자에게도 치유와도 같은 힘이 있다. 교실에서 만나는 따뜻한 위로 이 그림이 전하는 무언의 감동은 자연스럽게 ‘엄마’라는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 각자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힘들 때 기대어 쉴 수 있는 심리적 안전기지가 되어준 분이 아닐까. 흥미로운 것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교사에게도 이러한 어머니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흔히 교사를 ‘제2의 부모’라고 부르는데, 그만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지식 전달을 넘어 아이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살피고 보듬는 일과 맞닿아 있다. 아이들이 힘들 때 언제나 찾아와 기대어도 좋은 존재, 바로 엄마와 선생님이 그렇다. 요즘같이 바쁘고 어려운 학교현장에서, 선생님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아이들을 위해 애쓰고 있다. 때로는 교실 한편에서 상심한 제자를 다독이고, 때로는 말없이 지켜봐 주면서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준다. 학생들은 그런 선생님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얻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곤 한다. 라 베르쇠즈 속 룰랭 부인의 모습은 우리 교육현장의 선생님들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아이들의 친어머니는 아니지만, 아이들을 위해 흘리는 땀과 눈물, 그리고 가슴 속 깊은 애정은 부모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흐가 그린 어머니가 항상 아이를 생각하며 시선을 그곳으로 돌리듯이, 그리고 요람에 연결된 따스한 손길에서 한없는 사랑이 느껴지듯이, 교사들의 헌신에서도 아이들을 품는 깊은 사랑이 전해진다. 화면 속 짙은 초록색 배경은 어둡고 깊지만, 결코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밤하늘처럼 포근하게 우리를 안아줄 것 같다. 그 위에 반짝이는 점들과 꽃들은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별 같다. 먼 우주 속 공간 같지만, 뒤돌면 우리 바로 뒤편에 있는 평평한 벽 같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엄마의 사랑과 함께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가 오랫동안 희망의 빛으로 남을 것이다.
나에게는 여행에 관한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자금 사정이 허락하는 한, 방학마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되, 이미 발 디뎠던 나라는 두 번 다시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규칙에는 예외가 있는 법. 내 확고했던 여행 원칙을 무너뜨린 유일한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드넓은 초원과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지는 땅, 몽골이다. 드넓은 초원에 거대한 바위 하나, 타이하르 촐로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하늘길이 열리자 바로 몽골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몽골의 풍경은 대부분 지평선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초원을 얼마나 달렸을까. 지루함이 느껴질 때쯤, 거짓말처럼 거대한 바위 하나가 시야에 불쑥 들어왔다. 주변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우두커니 홀로 솟아있는 존재감, 바로 타이하르 촐로(Taikhar Chuluu)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몇몇 몽골 사람들이 바위를 향해 힘껏 돌을 던지고 있었다. 저 거대한 바위 너머로 돌을 넘기거나 꼭대기에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거나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전해진다고 했다. 작은 돌멩이에 간절한 염원을 담아 던지는 그들의 모습은 자못 진지했다. 하지만 상당한 높이 탓에 성공하는 이는 많지 않아 보였다. 우리는 그 신기한 풍경 옆에 차를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촐로 주변으로는 새하얀 염소 무리가 그림처럼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시간은 더없이 평화롭게 흘렀다. 그리고 그 평화로움 속에서, 우리는 잊지 못할 식사를 했다. 드넓은 평원을 병풍 삼아 라면을 끓여 나눠 먹었다. 타이하르 촐로의 강렬한 인상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몽골은 전형적인 내륙분지 지형에 건조기후가 나타나는 곳이다. 그래서 여행 중 마주치는 풍경은 대부분 광활한 초원이나 사막지대이고, 간혹 호수를 만날 수 있는 정도다. 그런데 그런 몽골 땅에서 예상을 뒤엎는 풍경과 마주쳤으니, 바로 촐로트 협곡(Chuluut Canyon)이었다. 마치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을 축소해 놓은 듯, 깊고 거대한 협곡이 눈앞에 아찔하게 펼쳐졌다. 건조한 기후 속에서 어떻게 이토록 깊은 협곡이 만들어지고 저 아래로 제법 유량도 풍부해 보이는 강이 힘차게 흐를 수 있는지, 지리교사인 나로서도 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몽골의 자연이 품은 또 다른 얼굴, 그 장엄하고도 예외적인 모습 앞에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 거대한 호수, 햐르가스 호수 촐로트 협곡의 장엄함을 뒤로하고 서쪽을 향해 얼마나 더 달렸을까. 어느 순간, 익숙했던 초록의 초원이 점차 자취를 감추더니 이내 창밖으로 자갈과 모래만 끝없이 펼쳐지는 진짜 사막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건조기후는 연 강수량에 따라 사막(BW)과 스텝(BS)으로 나뉘는데, ‘아, 이제 스텝에서 사막기후대로 들어섰구나’하는 지리교사로서의 직감이 강하게 왔다. 문득 궁금증이 일어 쾨펜의 기후 구분 지도와 현재 위치를 대조해 보고 싶어 인터넷 연결을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신호는 잡히지 않았다. 명확한 데이터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황량한 자갈과 모래사막의 풍경만으로도 이곳이 틀림없는 사막기후(BW) 지역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책에서만 보던 기후경계선을 실제로 몸으로 가로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황량하지만 강렬했던 사막의 첫인상. 그 메마른 풍경의 끝에서 드디어 햐르가스 호수(Khyargas Nuur)를 마주하게 되었다. 호숫가에는 우리 일행을 제외하면 대부분 현지인으로 보이는 몽골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아직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들만의 휴양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그들 틈에 끼어 조심스럽게 발을 담갔다. 그리고 이내 몸 전체를 물에 맡겼다. 이곳의 물은 짠맛이 나는 게, 마치 바닷물과 같았다.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물 위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둥둥 떠다녔다. 분명 끝없는 사막을 기대하고 온 몽골이었는데, 나는 지금 바다처럼 짠 호수 위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발밑의 뜨거운 모래와 자갈 대신, 온몸을 감싸는 시원하고 짭조름한 물의 감촉. 사막 한가운데서 예기치 않게 마주한 ‘바다’에서의 수영. 그 기분 좋은 부조화 속에서 느꼈던 해방감과 감격은 햐르가스 호수를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기억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물 위에 둥둥 떠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지리교사로서의 호기심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도대체 이렇게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 이토록 거대한 호수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햐르가스 호수는 이 지역을 흐르는 자브항 강(Zavkhan River)의 물이 모여 만들어진다고 한다. 보통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기 마련이지만, 몽골의 자브항 강은 바다까지 닿지 못하고 이곳 햐르가스 호수에서 여정을 멈춘다. 몽골과 같은 내륙분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륙 하천(endorheic basin)의 종착점인 셈이다. 비록 건조한 기후지만, 아주 적게나마 내리는 비와 주변의 높은 산들(아마도 항가이산맥 등)에서 흘러내리는 눈 녹은 물(융설수)이 꾸준히 모여 이 광활한 ‘사막의 바다’를 유지시키는 것이었다. 메마름 속에서 생명을 품고 있는 햐르가스 호수의 비밀을 조금이나마 엿본 기분이었다. 만년설과 빙하를 품은 위대한 산, 타왕복드 햐르가스 호수가 준 푸른 감동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서쪽으로 차를 몰았다. 이번 몽골 재방문의 가장 큰 이유이자 최종 목적지를 향해서였다. 그곳은 바로 몽골 서부 국경지대에 자리한, 만년설과 빙하를 품은 위대한 산, 타왕복드(Tavan Bogd)였다. 그리고 이 웅장한 자연의 성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 같은 도시가 있었으니, 카자흐족의 문화가 숨 쉬는 올기(Ölgii)이다. 올기는 타왕복드로 향하는 여행자들에게 마치 네팔의 포카라와 같은 존재였다.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탐험하려는 이들이 포카라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마지막 숨을 고르듯, 우리도 올기에서 타왕복드로 들어갈 만반의 채비를 갖춰야 했다.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부터 먼 길을 달려오며 혹사당했을 차량을 꼼꼼히 정비하고, 앞으로 며칠간 버텨낼 식량과 필수품들을 보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며칠간의 고된 여정으로 지친 몸을 도시에 있는 호텔에 뉘이며,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올기에서의 시간은 다가올 장엄한 자연과의 본격적인 만남을 위한, 설레면서도 경건한 준비과정과도 같았다. 올기에서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타왕복드를 향해 출발했다.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마침내 차강 골(Tsagaan Gol), 이름 그대로 ‘하얀 강’ 앞에 섰다. 정말 강물은 우유나 탄산음료 밀키스를 풀어놓은 듯 뽀얀 흰색이었다! 이 신비로운 색은 저 멀리 보이는 타왕복드 산군의 거대한 빙하가 수천 년에 걸쳐 산을 깎아내며 만들어낸 미세한 돌가루가 물에 섞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눈앞의 하얀 강물은 이제 곧 마주할 장엄한 빙하 지형이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분명한 신호탄과 같았다. 몽골 하면 흔히 떠올리는 사막과 초원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빙하가 빚어낸 또 다른 풍경을 만나고 싶었던 이번 여행의 목적이 서서히 달성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경이로운 하얀 강 옆에 마련된 게르에 짐을 풀고 잠을 청하려던 순간, 나는 예상치 못한 습격에 할 말을 잃었다. 게르 안을 가득 메운, 아니, 문자 그대로 공기 중에 떠다니는 모기떼였다. 어림잡아 수백, 아니 수천 마리는 족히 되어 보였다. 아마도 하얀 강이 주변에 만들어 놓은 크고 작은 습지들이 모기들에게는 최적의 서식 환경을 제공한 모양이었다. 피할 곳도, 뾰족한 방법도 없었다. 그날 밤, 꼼짝없이 내 피를 그들에게 ‘수혈’해 가며 모기떼의 극성스러운 공격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길고도 고통스러운 밤이었다. 타왕복드의 장엄함으로 가는 길은 이토록 혹독한 신고식을 요구하는 것일까. 드디어 타왕복드 입구에 도착했다. 그날 밤은 참으로 매서웠다. 간밤의 폭풍우가 남긴 흔적은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하늘은 여전히 잔뜩 흐렸고, 바람은 밤새의 기세를 완전히 거두지 않은 듯 매서웠다. 설상가상으로 현지 가이드는 “이 날씨로는 타왕복드 안쪽 빙하지대까지 진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빙하 아래에서의 하룻밤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실망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우리는 일단 국립공원 매표소가 있는 곳까지 이동해 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날씨가 개기를 조금 더 기다려보고, 끝내 하늘이 열리지 않으면 아쉽지만, 그날의 일정은 포기할 참이었다. 매표소 앞에서 초조하게 하늘만 바라보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말 거짓말처럼, 마치 누군가 연극의 막을 올리듯, 짙은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구름은 걷혔고, 눈 부신 햇살이 밤새 얼어붙었던 땅 위로 쏟아져 내렸다. “와!” 우리 일행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 안도의 환호성을 터뜨렸다. 간밤의 고생과 아침의 불안감이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마법처럼 열린 하늘 아래, 우리는 드디어 만년설과 빙하가 기다리는 타왕복드의 심장부를 향해 감격스러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타왕복드의 속살로 들어서자마자, 숨 막히는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싼 것은 온통 눈부신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거대한 설산(雪山) 봉우리들이었다. 그리고 그 장엄한 설산들 사이의 골짜기를 따라,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거대한 얼음의 강, 포타닌 빙하(Potanin Glacier)가 유유히, 그러나 위압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접하던 압도적인 대자연의 파노라마. 그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풍경 앞에서 우리 일행은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못하고, 그저 경이로움에 넋을 잃은 채 서 있을 뿐이었다. 만년설과 빙하,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날카로운 암봉들이 즐비한 풍경은 마치 알프스나 히말라야의 어느 고산지대를 떠올리게 했지만, 놀랍게도 이곳 역시 틀림없는 몽골의 땅이었다. 그 증거는 바로 우리 곁에 있었다. 관광객들을 태우기 위해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대기하고 있는 여러 필의 말들이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말을 빌려 타기로 결정했다. 저 거대한 포타닌 빙하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느끼기 위해, 우리는 말 잔등에 몸을 싣고 얼음의 심장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말에서 내려 빙하가 잘 보이는 곳을 물색했다. 다른 여행자들이나 우리 일행들의 게르에서 조금 떨어진, 그러면서도 밤새 빙하의 숨결을 바로 곁에서 느낄 수 있을 만한 곳. 마침내 적당히 넓고 평평한 자리를 찾아 배낭에서 텐트를 꺼내 익숙하게 펼쳤다. 이제 정말 오롯이 나 혼자였다. 다른 일행들은 따뜻한 게르에서 안락한 밤을 보내겠지만, 나는 처음 계획했던 대로, 아니 어쩌면 이 여행을 다시 결심한 이유였을지도 모를 그 꿈을 실현할 참이었다. 바로 이 차가운 빙하 아래서 홀로 밤을 맞이하는 것. 침낭 안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쉬이 잠들기는 어려웠다. 사방은 깊은 어둠과 정적에 잠겨 있었지만, 오히려 모든 감각은 더욱 예민하게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예민해진 귓가로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쩍…쩍…콰르릉…’ 깊은 밤의 침묵을 깨고 간헐적으로, 하지만 분명하게 들려오는 빙하 갈라지는 소리. 수만 년의 시간이 압축된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몸을 뒤트는 듯한, 낮고 육중한 파열음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살아 숨 쉬며 미세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자연의 맥박 소리, 혹은 인간의 시간이 가닿지 못하는 태고(太古)의 외침처럼 느껴졌다. 텐트라는 얇은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지금 위대한 대자연의 맨얼굴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대자연이, 바로 이런 거구나!’ 설명할 수 없는 경외감과 함께 원초적인 두려움이 온몸을 감쌌다. 그 밤의 소리와 감각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 몽골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초원의 바람과 사막의 별, 그리고 예기치 못한 소금 호수에서의 유영을 지나, 마침내 마주한 타왕복드의 빙하. 그 빙하 아래에서 홀로 보낸 밤, 텐트 너머로 들려오던 얼음의 속삭임은 왜 내가 그토록 몽골을 다시 찾고 싶어 했는지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들려주는 듯했다. 몽골은 단지 광활한 초원과 사막의 땅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혹독하고, 때로는 경이로우며, 늘 살아 숨 쉬는 맨얼굴의 자연. 그 예측 불가능한 다채로움 속에서 인간의 왜소함을 깨닫고, 동시에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곳. 어쩌면 나는 또다시 몽골로 향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죠? 푹 자고 나면 몸이 개운해짐을 느낍니다. 학창시절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잠은 죽어서 실컷 자라”며 잠자는 시간을 줄여 공부시간을 늘리라고 강조하셨는데, 사실은 우리 건강을 지켜주는 ‘보약’이었나 봅니다. 그렇다면 왜 나이가 들면서 보약같은 ‘꿀잠’ 자기가 힘들어지는지, 점심 먹고 나면 어쩌자고 졸음이 밀려오는 것인지, 이번 달에는 ‘피곤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이언스뷰’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Q1. 왜 우리는 졸음이 오는 거죠?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도어락이나 리모컨 등에는 AA 건전지를 쓰지 않습니까? 그 건전지 안에 있는 전기에너지를 사용해서 작동하는 거죠. 우리 몸에도 이런 배터리가 있습니다. 이 배터리 역할을 하는 분자의 이름은 ATP입니다. ATP가 무슨 뜻이냐 하면, A는 아데노신이고 TP는 트라이포스페이트(Triphosphate)라고 해서 아데노신에 인산기가 3개 붙어있다는 뜻이에요. 이 인산기가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에너지가 방출되고, 그 에너지를 우리가 쓰는 거죠. 인산기 3개가 모두 떨어져 나가면 아데노신 분자만 남습니다. 즉 우리 몸속에 아데노신이 많아졌다는 것은 에너지를 많이 썼다는 뜻이고, 몸의 배터리가 거의 방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럴 땐 무리하지 않고 잠을 자거나 쉬어 줘야 해요. 그래서 우리 뇌세포 표면에는 아데노신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있는데, 아데노신이 이 수용체에 결합하면 졸음이 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몸이 일부러 피곤을 느끼게 해서 쉬도록 유도하는 거죠. Q2. 그럼 아데노신이 많아지면 졸음이 오고, 이때 잠을 자면 아데노신이 사라지고 피곤이 풀리면서 개운해지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잠을 자면서 아데노신이 분해되어 피로가 사라지고, 우리 몸의 배터리인 ATP 분자가 다시 합성됩니다. 즉 배터리가 다시 충전되면서 힘이 나는 거죠. Q3. 그럼 피곤할 때 커피를 마시면 졸음이 깨는 이유가 카페인의 각성효과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왜 그런 거죠? ATP가 방전된 형태인 아데노신이 아데노신수용체에 붙으면 졸음이 온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커피 속 카페인분자는 아데노신과 굉장히 비슷한 구조로 되어있어요. 그래서 카페인이 몸에 들어가면 아데노신이 붙어야 하는 아데노신수용체에 카페인이 대신 붙어 졸음이 오는 것을 방해하는 거죠. 정리하자면 아데노신이 많아 졸음이 와야 하는 상황에서 카페인이 이 작용을 방해하니까 졸음이 사라지고 오히려 잠이 깨는 겁니다. 여기서 하나 팁을 드리자면, 평소엔 권장하지 않지만 정말 급할 때, 시험 벼락치기나 급한 일을 밤새 마무리해야 할 때, 초집중모드를 만드는 ‘커피냅(Coffee Nap)’ 전략을 소개해 드릴게요. 커피는 우리가 마시는 커피이고, 냅(Nap)은 낮잠을 뜻합니다. 보통 커피를 마시면 카페인이 뇌에 작용하기까지 약 20분 정도 걸립니다. 그래서 커피를 마신 직후 20분 정도 짧게 낮잠을 자면, 그사이 뇌에 쌓인 아데노신이 분해됩니다. 이 상태에서 카페인이 뇌에 작용하면 아데노신이 사라진 빈자리에 빠르게 결합하여 매우 효과적인 각성효과가 나타납니다. 즉 커피를 마시고 20분 정도 자고 일어나면, 집중력이 뛰어난 상태가 되어 4시간 정도 초집중모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몸의 피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체력을 빌려 쓰는 거라서 나중에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옵니다. 결론적으로 건강에는 좋지 않기 때문에 정말 급할 때만 가끔 사용하시는 걸 추천드려요. 결국 가장 건강하게 피로를 푸는 방법은 충분한 수면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Q4. 그럼 체력을 빌려 쓰는 방법 말고, 양질의 잠을 자는 방법에는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우리가 잠을 잘 때 뇌 속 송과선에서 멜라토닌이라는 숙면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그런데 이 멜라토닌은 10대에 가장 왕성하게 분비되기 때문에 청소년기에는 매우 깊고 양질의 수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반면 노년층, 특히 60대 이상에서는 멜라토닌 분비량이 10대 대비 약 90% 이상 감소하여 숙면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양질의 수면이 어려운 노년층에게는 멜라토닌 섭취를 권장합니다. 멜라토닌은 일반적인 수면제와 달리 내성이나 의존성이 없어서 자기 1시간 전에 꾸준히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연령층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숙면 팁은 자기 전에 야식을 금지하고, 낮에 가볍게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수면 환경이 중요한데 ‘조온습’을 기억해 주세요. ‘조’는 조명으로, 잘 때 백색 조명보다는 주황색 조명이나 조명을 꺼주는 것이 좋습니다. 백색 조명은 멜라토닌 생성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온’은 온도인데, 너무 따뜻하면 수면이 얕아져 자주 깨므로, 18~22도 정도로 약간 서늘하게 유지하세요. 마지막으로 ‘습’은 습도인데, 겨울철에는 실내 습도 40%, 여름철에는 60%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수면에 도움이 됩니다.
윤성희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에 ‘블랙홀’이라는 단편이 있다. 이 소설에 쌍둥이 자매가 고속도로 옆에 핀 하얀 꽃 군락이 이팝나무꽃인지 조팝나무꽃인지를 놓고 티격태격하다 내기하는 장면이 있다. 고속도로 옆으로 하얀 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었다. 나는 자동차 창문을 내렸다. 향긋한 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아무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언니는 그 꽃이 이팝나무꽃이라고 했다. 나는 조팝나무꽃이라고 했다. “내기할까?” “응, 내기하자.” 우리는 무엇을 걸지 한참을 생각했다. (…중략…) 나는 휴대폰을 꺼내 이팝나무와 조팝나무를 검색해 봤다. 세상에.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이고 조팝나무는 장미과였다. “이름만 봐서는 쌍둥이 같은데 말이야.” 내 말에 언니가 쌍둥이들도 얼마나 성격이 다른데, 하고 받아쳤다. “그건 그렇고 그래서 저 꽃은 뭐야?” 언니가 물었다. “잘 모르겠어. 너무 멀어서 그런가. 똑같아 보여.” 우리는 확실해질 때까지 당분간 고속도로 옆에 핀 흰 꽃을 이조팝나무꽃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팝나무와 조팝나무는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이름이 비슷한 데다 둘 다 흰색 꽃이 피어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는 나무다. 더구나 둘 다 꽃이 예뻐서 산과 들에서는 물론 도심에서도 흔히 볼 수 있기도 하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팝나무는 키가 큰 교목이고, 조팝나무는 키가 작은 관목이라는 것이다. 교목은 보통 5~6m 이상의 나무를, 관목은 2m 이내의 나무를 가리킨다. 두 나무는 자생하는 나무지만 이팝나무는 도심 가로수로, 조팝나무는 산울타리 또는 화단용으로도 많이 심는 나무다. 키 큰 이팝나무, 키 작은 조팝나무 이팝나무는 서울 가로수의 9%를 차지하는 나무다. 은행나무·플라타너스·느티나무·왕벚나무에 이어 다섯째로 많다. 부산의 경우 왕벚나무·은행나무·느티나무에 이어 이팝나무가 넷째로 많다. 4월 말부터 서울 시내에서는 이팝나무 가로수가 하얀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팝나무는 이른 봄 공원이나 화단에서 새하얗게 피는 꽃이다. 서울 청계천 등 공원이나 화단에서 새하얀 가지들이 너울거리면 조팝나무꽃일 가능성이 높다. 조팝나무는 산울타리로 많이 심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럼 윤성희 단편 ‘블랙홀’에 나오는 하얀 꽃 군락은 어떤 나무일까? 조팝나무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고속도로를 가다 보면 조팝나무 군락이 피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팝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서 흔히 자라는 나무다. 다만 확률이 낮지만, 이팝나무를 무리로 심어 놓은 걸 보았을 수도 있으니,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겠다. 가까이 가서 보면 이팝나무꽃은 꼭 이밥(쌀밥)을 얹어 놓은 모양이다. 이팝나무라는 이름도 거기서 나온 것이다. 조팝나무라는 이름은 하얀 꽃잎에 노란 꽃술이 박힌 것이 좁쌀로 지은 조밥 같다고 붙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옛사람들은 이팝나무꽃에서나 조팝나무꽃에서나 밥을 연상한 모양이다. 조팝나무는 영어로 ‘신부의 화관(bridal wreath)’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졌다. 그러고 보니 조팝나무꽃을 보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5월의 신부를 연상할 수도 있겠다. 조팝나무꽃이 피었을 때 가지를 떼어 화관을 만든 다음 머리에 쓰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 이팝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해온 나무다. 전통적으로 우리 조상들은 이팝나무꽃이 피는 것을 보고 한 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짐작했다고 한다. 꽃이 풍성하게 피면 풍년, 드문드문 피면 흉년이 든다고 점쳤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이팝나무를 가로수로 심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서울시가 청계천을 복원(2003~2005년)할 때 가로수로 이팝나무를 선택하면서 가로수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팝나무는 개화기간도 긴 편이고 봄꽃이 들어가는 초여름에 꽃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 후 회화나무·메타세쿼이아 등과 함께 새로운 가로수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이 나무를 많이 심는 이유로 “봄에 피는 하얀 꽃이 아름다우며, 다른 수목에 비해 병충해에도 강해 관리가 용이하고, 생육속도가 빠르지 않다 보니 간판 가림 등 민원 발생이 적어 상가·지역 주민들이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근래 이팝나무를 많이 심다 보니 서울 시내에도 이팝나무 가로수길이 부쩍 늘어났다. 서울시가 몇 년 전 시민들이 찾을만한 ‘봄꽃 길 160선’을 선정했을 때 이팝나무길이 19곳이나 들어있을 정도다. 청계천 양방향 외에도 남산3호터널 남단, 미아사거리~월계2교, 상도역~봉천고개, 은평구 진관2로 등이 서울시가 선정한 찾을만한 이팝나무길로 올랐다. 조팝나무에서 아스피린 추출 봄에 서울 청계천에 가면 화단에서 새하얀 조팝나무 가지들이 너울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4~5월 도로변 산기슭이나 언덕, 공원 화단에서 흰 구름처럼 뭉게뭉게 핀 꽃이 있다면 조팝나무꽃일 가능성이 높다. 조팝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들에서 흔히 자라는 나무다. 흰색의 작은 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는 가지들이 모여 봄바람에 살랑거리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흰 구름이나 솜덩이처럼 생겼다. 봄에 시골길을 가다 보면 산기슭은 물론 밭둑에도 무더기로 피어 있고, 낮은 담장이나 울타리를 따라 심어놓기도 했다. 풍성한 꽃이 보기 좋아 공원에 조경용으로 심어 놓은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아파트 앞 화단에도 해마다 봄이면 조팝나무꽃이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다. 특히 바람이 불 때 함께 오는 조팝나무 꽃향기는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상쾌하다. 고전소설 토끼전에도 조팝나무가 나오는데, 자라가 토끼 간을 구하기 위해 육지에 올라와 처음 경치를 구경하는 대목에서다. ‘소상강 기러기는 가노라고 하직하고, 강남서 나오는 제비는 왔노라고 현신(現身)하고, 조팝나무에 비쭉새 울고, 함박꽃에 뒤웅벌이오띵.’ 무엇보다 조팝나무는 인류에게 매우 고마운 식물이다. 전 세계 인구가 하루 1억 알 넘게 먹는다는 진통제 아스피린은 ‘아세틸살리실산’이라는 물질로 만드는데 이 성분이 바로 버드나무와 조팝나무에 들어 있다. 1890년대 독일 바이엘사는 조팝나무 추출물질을 정제해 아스피린을 만들었다. 아스피린이라는 이름은 조팝나무의 속명(屬名) ‘스파이리어(Spiraea)’와 아세틸의 머리글자인 ‘아’를 붙여 만든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앞으로 이팝나무와 조팝나무의 꽃을 보고 헷갈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감정 소모 심한 역할이라도 연기할 때 가장 행복해요!” 여기 지독한 흙수저 여고생이 있다. ‘인영’(이레)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60년 전통의 국악단에서는 단비를 내지 못해 친구들의 멸시를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로 엄마마저 세상을 떠나며, 인영은 하늘 아래 혈혈단신 고아가 된다. 참았던 눈물이 터지는 날엔, 아이들 비타민을 만병통치약이라며 건네주는 동네 약사(손석구)가 있다. 원래부터 씩씩했던 인영은 다시 더 씩씩해진다. 월세를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는 상황에서도 돈 될 만한 물품들을 당근에서 ‘쿨하게’ 거래한다. 학교에 숨어 산 지 일주일 만에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실력만이 최고’라 믿는 마녀 단장(진서연)에게 발각당하는 인영. 마녀 단장이 ‘무한긍정’ 여고생 인영을 집으로 데려가며 둘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자신이 갇혀 있던 편견의 울타리를 깨며, 결국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간다. 2월 26일 개봉해 열흘 만에 누적 관객 수 7만 명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 신호탄을 쏘아 올린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감독 김혜영, 이하 괜괜괜!) 이야기다. 괜찮지 않은 것만 같은 나날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주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인데, 그것을 가능하게 한 주역은 다름 아닌 ‘산뜻 발랄 무한긍정’ 에너지를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 밖으로까지 뿜어내는 이레 배우임이 틀림없다. 2006년생인 이레 배우는 어린이 모델로 활동하다가 2012년 드라마 굿바이 마눌의 ‘민서’ 역으로 데뷔했다. 이듬해 이준익 감독의 영화 소원에서 ‘임소원’ 역을 맡아 풍부한 감정 연기를 펼쳐 제4회 베이징국제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대중에게 ‘천재 아역 배우’ 이미지를 각인했다. 이후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반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지옥, 무인도의 디바 등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여왔다. 연기로 인한 잦은 전학으로 결국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검정고시로 졸업했고, 또래보다 2년 빨리 대학교에 입학했다. 이제 막 생일이 지나 동기 언니, 오빠들과 술집에 갈 수 있다며 웃는 이레 배우와의 인터뷰 현장을 공개한다. 괜괜괜!으로 영화감독에 데뷔한 김혜영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주인공 인영이 꿋꿋한 인물인 만큼 인영을 연기하는 배우에게도 그런 밝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이레 배우는 제가 생각하는 이 나이대에 가장 훌륭한 배우다”라고 말하며 이레 배우의 연기력을 극찬한 바 있다. 그런데 괜괜괜!은 2025년에 개봉하긴 했지만, 촬영은 4년 전에 했다. 4년 전 미성년자였던 자신의 연기를 커다란 스크린에서 보는 건 어떤 기분일지, 이레 배우에게 물었더니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서 그런지 촬영하면서 제가 굉장히 성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왜 그때 현장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이 저를 보고 ‘아기’라고 하는지 알겠더라고요”라며 특유의 해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데뷔했죠. 연기를 너무 잘해서인지, 이후 어두운 역할이나, 톤이 무겁거나, 장르영화에 많이 출연했습니다. 최근 작품인 괜괜괜!에서 오랜만에 본인 나이에 맞는 사랑스러운 배역을 맡은 거 같아요. “맞아요. 데뷔작부터 장르적 특성이 강한 작품들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혹시 내가 장르적 영역에 특화된 배우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그런데 이번에 괜괜괜!을 촬영하면서 인영이에게서 뭔가를 배웠습니다. 제가 분석한 인영이는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 웃음으로 세상에 맞서는 느낌이 드는 아이였어요. 그래서인지, 촬영하면서 인간 이레 역시 웃음이 늘었습니다. 밝아졌고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인영의 무한긍정 에너지처럼 ‘아니면 말고~!’ 하는 마인드도 생겼죠.(웃음)” 그렇게나 밝은 인영이가 영화에서는 두 번 웁니다. 한 번은 지칠 대로 지쳐서 들어간 약국에서 약사가 건네준 막대사탕을 보고 엄마가 생각난 장면이었고요. 또 한 번은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무너져 내리듯 우는 장면이었죠. “인영이는 분명 밝은 성격이지만, 아직 슬픔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의 교통사고 소식을 전화로 들은 순간 아슬아슬하게 버틸 수 있게 해줬던 마지막 끈이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겠죠. 저는 아직 가족을 잃은 경험이 없지만, 인영이 그 전화로 확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눈물을 보여주려고 극한의 슬픔을 상상했습니다. 또 인영이는 힘들 때면 동네 약사를 찾아가요. 먹으면 기억을 다 잊고 기분이 좋아지는 약을 달라면서요. 그러면 손석구 배우가 아이들 먹는 비타민을 하나씩 주거든요. 그런데 가장 힘들었던 날에 손석구 배우가 비타민 대신 막대사탕을 준 거예요. 엄마 생각이 나면서 ‘으앙’ 하고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그렇게 소리 내서 울어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그런데 그날이 약국 씬을 하루 만에 다 찍어야 하는 힘든 날이었거든요. 육체적으로 지쳐 있다 보니 몰입할 새도 없이 울음이 터졌어요.(웃음)” 일찍 배우 생활을 시작한 아역 배우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이레 배우처럼 데뷔부터 연기력으로 주목받고, 이후 안정적인 작품활동을 하면서 ‘무탈’하게 성공적으로 성인 배우로 성장한, 그리고 대중에게 인정받은 배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름처럼 독실한 신앙인인 이레 배우는 ‘아역 배우 출신’이라는 딱지를 떼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마음가짐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작품 선택의 폭도 넓어졌을까? 궁금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올해 3월, 생일이 지났습니다. 드디어 성인이 되었어요!(웃음) 기분이 어떠세요? “올해가 안 가면 좋겠습니다!(웃음) 너무 오랫동안 스무 살을 기다려왔거든요. 언젠가는 제가 넘어야 할 큰 허들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 지점에 다가온 거죠. 그런데 아역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변신하는 허들은, 제가 넘는 게 아니라 저를 보는 대중에게 있다고 생각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두려고 합니다.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요.” ‘성인이 되면 꼭 해야지!’하고 마음먹었던 것들도 분명 있겠죠? “제가 대학교에 좀 일찍 들어갔잖아요. 두 살 많은 동기 언니 오빠들이랑 다니다 보니, 강의 마치고 술집에 가려다가도 “아, 이레는 술 마시면 안 돼”라면서 치킨집이나 고깃집에 가서 콜라를 마셨어요. 이제는 언니, 오빠들을 만나서 술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여유가 마음에 아주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웃음) 그렇다고 해서 정신이 해이해지지 않고 즐길 수 있을 정도로만 실천해 보려고요. 개강했는데 학교생활이 너무 빨리 끝나는 거 같아서 아쉬워요.” 대학교 생활이 어떤 면에서 재밌나요? “물론이죠! 제가 초·중·고등학교 생활을 제대로 못 한 것도 있고요. 그러다 대학교에 왔더니 좋은 경험을 너무 많이 할 수 있는 거예요. 또 제가 연기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도 느끼게 해 준 곳이 바로 대학교입니다. 그래서 저는 빨리 졸업하기가 싫어요. 할 수 있다면 휴학해서, 혼자나 친구들과 함께 다른 나라로 여행도 가보고 싶어요. 부모님 설득이 좀 어렵겠지만요.” 천재 아역 배우에서 올해 성인 배우가 되었습니다. 마음가짐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이제는 연기를 잘하는 것뿐 아니라, 제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중요해졌어요. 작년 말부터 올해 초를 넘어오면서 이레라는 배우는 무엇을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가는 것이 중요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제는 제가 선택을 내려야 하고, 제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그 길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후회하는 선택은 하고 싶지 않아요. 올곧은 저만의 방향을 찾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다양한 경험도 많이 해보고 싶고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해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저 역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방법을 잘 모르겠으니 가르쳐달라’고요.” 성인이 되었으니, 이제 확실히 폭넓은 분야에서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앞에 잠깐 말씀드린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요. 사실 그런 변화는 제가 주도하는 게 아니고,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올해 성인이 되었지만, 어떤 관객이나 시청자에게 저는 아직 소원의 임소원, 반도의 준이, 안녕? 나야!의 하니로 기억될 수 있잖아요? 저를 바라봐주시는 대로 저를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딱히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저 저를 선택해 주는 분들을 위해, 제게 주어지는 것들에 얼마나 몰두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일곱 살에 데뷔해 인생의 2/3를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연기하며 보냈다. 초·중·고등학교라는 청소년기 학창 시절까지 반납하면서. 이제는 연기가 지겹지 않을까? 연기하다가 회의감이 들 때는 없었을까? 인터뷰 시작부터 시종일관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아니, 마치 괜괜괜!의 인영처럼 무한긍정 바이러스를 주변에 전파하고 있는 것만 같은 이레 배우가 생각하는 연기 인생과 미래 계획을 마지막으로 물었다. 데뷔 이래 연기를 쉰 적이 없어요. 힘들다거나, 회의감이 든 적은 없었나요? “나는 왜 연기를 좋아하는 걸까? 나는 왜 연기를 해야 하는 걸까? 이런 고민은 지금도 하고 있어요.(웃음) 그런데 저는 연기할 때 정말 행복하거든요! 왜 행복한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납득할 만한 멋진 말은 잘 떠오르지 않아요. 게다가 어떤 배역들은 감정 소모가 심해서 힘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엄마를 잃은 딸 역할처럼요. 상상하기도 싫은 역할들을 맡으면 감정 소모가 되는 연기를 해야 해서 너무 힘든데도, 그런데도 연기하면 너무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펼치고 싶은가요? “배우로서는 이번 영화의 인영이처럼 밝은 캐릭터를 또 맡아보고 싶어요. 제가 코미디에 유연한 배우인지는 모르겠어요. 도전해 본 적이 없어서요. 그래도 이번처럼 좋은 감독님을 만난다면 좋은 코미디 작품도 찍을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 이레의 모습으로는 혹시 기회가 된다면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보고 싶기도 해요.(웃음) 영상 찍는 게 서툴긴 하지만, 유튜브 방송을 하면서 팬들과 소통하고도 싶고요. 또 이번에 연기를 같이 한 진서연 배우처럼 책도 쓰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게 참 많아요. 관객·시청자들이 그런 제 모습을 어떻게 받아주실지 고민이 되어서 조금 더 성장했을 때, 좋은 이야기를 전해드릴 수 있을 때 그런 활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사진 제공 _ 괜찮아 스틸컷·포스터: ㈜바이포엠스튜디오, 이레 배우 프로필: 눈컴퍼니
죽음은 통제할 수 없지만 인생은 설계할 수 있다 (비탈리 카스넬슨 지음, 함희영 번역, 필름 펴냄, 448쪽, 2만 2,000원) 성공한 금융가가 발견한 ‘물질적 성공 너머의 삶’ 이야기. 핵심은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는 데 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상황에 집착하기보다 자신의 태도와 선택에 집중하는 것이다. 특히 산책, 충분한 수면, 가족과의 시간 같은 평범한 순간들이 어떻게 삶의 토대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부정적 시각화’, ‘리프레이밍’ 등의 개념을 실제 삶에 적용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에르디아 비경쟁토론 수업을 디자인하다 (에르디아 대화학교 지음, 초록비책공방 펴냄, 240쪽, 2만 2,000원) 승패를 가르는 기존 토론방식에서 벗어나 공감과 경청을 바탕으로 집단지성을 키우는 ‘에르디아 비경쟁토론’을 소개한다. 승리를 위한 논쟁 대신 대화의 안전지대를 만들고 느린 대화를 통해 깊이 있는 사고를 이끄는 토론법이다. 15년간 교육현장에서 구축한 6단계 토론 프로세스를 통해 교사와 학생들이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질문 만들기, 키워드 관점 전환, 성찰하기 등 구체적 실천법을 담았다.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물질 (사이토 가쓰히로 지음, 김정환 번역, 북라이프 펴냄, 260쪽, 1만 7,500원)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12가지 핵심 물질을 통해 역사를 재해석한다.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부터 현대의 바이오 세라믹까지 물질은 문명의 전환점마다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인간이 전분으로 생명을 이어온 과정, 질병에서 해방시켜 준 약의 발명, 기계문명을 탄생시킨 금속은 물론 원자핵과 자석 등의 미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까지 흥미롭게 풀어낸다. 수학머리 키우는 대화법 (정유숙 지음, 로그인 펴냄, 272쪽, 1만 9,000원) 문제풀이 위주의 전통적 학습법에서 벗어나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수학적 사고를 키우는 방법을 소개한다. 저자는 ‘수학을 잘한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며, 관찰하기, 몸으로 생각하기, 유추하기, 규칙 찾기 등 12가지 생각 도구를 제안한다. 또한 귀납·유추·반성·분석·비판·통합 등 6가지 핵심 수학머리를 길러 주는 구체적인 실천방법도 수록했다. 결국, 건축을 좋아하게 될걸 (한수옥·권선영 지음, 뜨인돌출판사 펴냄, 280쪽, 1만 7,000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두 여성 건축가가 세계의 독창적인 건축물을 소개하며, 공간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화장실 위치가 생활패턴을 바꾼 사례나 철근 구조의 발명으로 일어난 공간 혁명 등 일상 속 건축의 비밀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건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뀔 것이다. AI 시대, 불안한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이라야 지음, 미디어숲 펴냄, 144쪽, 1만 7,800원)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1장에서는 자신의 행동 동기를 명확히 인식하는 법을, 2장에서는 독립적인 정체성 확립 방법을 제시한다. 3장 ‘시간 컨트롤’은 바쁜 일상 속 효율적인 시간 관리 전략, 4장은 꿈을 현실화하는 실행 계획 수립법, 5장에서는 인간관계를 매끄럽게 이어가는 기술을 다룬다. 별별 직업 상담소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주니어김영사 펴냄, 120쪽, 1만 5,800원)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시선을 통해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하는지’ 등 일의 본질에 탐구를 유도한다. 별별 특이한 직업들을 소개받으며 서서히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직업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장난감 의사’, ‘독서 감상문 대필 가게’, ‘영감을 파는 가게’ 등 기발한 직업으로 진지한 주제에 유머를 더했다. 구파이와 수학분필 (윤주형 지음, 한동현 그림, 이을출판사 펴냄, 156쪽, 1만 3,000원) 17년 차 수학교사가 쓴 판타지 수학동화. 수학 천재 학교 입학을 위해 떠나는 주인공 구파이의 여정에 수학 핵심 개념을 녹여냈다. 수학 용어를 일상 언어로 풀어, 아이들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수학 개념을 이해하도록 했다. 특히 초등학교 4~5학년 과정에서 중요한 수학 개념과 원리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진짜 미소와 가짜 미소 저자 마틴 셀리그만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부 교수를 지냈다. 정신의학자들은 마음의 부정적인 면에만 몰입한 경향이 있다. 병들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던 것. 그런데 이러한 경향과 달리 마음의 밝은 면을 규명해서 북돋우려는 심리학의 새로운 분야가 바로 긍정심리학이다. 불안·우울·스트레스와 같은 부정적 감정보다 개인의 강점과 미덕 등 긍정적 감정에 초점을 맞춘 심리학의 새로운 연구 동향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밀스대학의 1960년도 졸업생 141명 졸업사진에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짜 미소를 지은 사람은 절반 정도. 이 여학생들이 27세, 47세, 52세가 될 때마다 모두 만나 결혼과 생활 만족도를 조사한다면? 놀랍게도 졸업사진에서 진짜 미소를 짓고 있는 여학생들은 대개 결혼해서 30년 동안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매일 밤 자기 전에 그날 있었던 좋은 일 3가지씩을 종이에 적고 왜 좋았는지 생각해라. 또 자신이 갖고 있는 강점을 찾고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목표를 설정해라. 그리고 상대방의 말에 적극적이고 건설적으로 응해주는 방법을 익혀라. 실험에 의하면 6개월 동안, 이 일을 해 본 사람들은 모두 다 행복해졌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면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진다. 유머를 즐기면 사고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며,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웃는 표정을 연습하는 등 억지로라도 웃으면 사고의 색깔이 밝은색으로 바뀐다. 우리는 옛날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졌을까?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항상 긍정적 사고를 갖고,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사는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이다. 긍정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즐거움, 긍정적 활동에 대한 몰입, 삶의 의미, 이렇게 세 가지 요소가 행복한 삶을 가능케 하는 셈이다. 100년 전과 지금 세상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비교하면? 셀리그만은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100년 전에 비해 더 행복해지지도 덜 행복해지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50년 전에 비해 많은 국가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비유하자면 아이스크림을 처음 한 입 먹을 때는 너무 좋지만, 계속 먹다 보면 맛을 못 느낄 수도 있다. 물질적 풍요로부터 얻는 쾌감에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물질적 빈곤이 해결된 후에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오히려 우울해질 수도 있다. 셀리그만은 행복이란 좋은 유전이나 행운을 타고난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강점과 미덕을 찾고 발휘하는 데서 온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하는 동안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몰입하는 것인데, 이것은 일을 할 때 그 일에 완전히 심취하는 것이다. 취미활동이면 몰라도 근로활동에서 몰입이 얼마나 가능할까? 셀리그만도 몰입이 일하는 내내 유지될 수는 없다고 인정한다. 최적 상태일 때 두세 차례 몇 분간 일어날 뿐이라는 것. 그런 몰입은 ‘해야 할 일과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완벽하게 맞물릴 때 일어난다’고 한다. 셀리그만이 말하는 일에서의 몰입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대표 강점을 확인하고 대표 강점을 날마다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한다. 또한 대표 강점을 더욱 많이 활용할 수 있도록 재교육을 받는다. 기업주 입장에서는 업무에 맞는 대표 강점을 지닌 직원을 채용하고, 업무에 지장이 없는 한 직원에게 재교육받을 기회를 충분히 제공한다. 막중한 책임감에 시달릴 때 우리는 어떤 직종에 종사하든 막중한 책임감에 가위눌리다시피 할 때가 드물지 않다. 한 치 앞도 내다보이지 않은 불확실한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하는 부담감에 잠 못 이룰 때도 있다. 내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좋은 선택일지 고민할 때도 없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마음상태에 깊이 빠져들수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제가 더욱 복잡하게 꼬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할수록 고민의 깊이는 더욱 깊어지고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고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 주변의 사소한 것들, 나를 도와주는 모든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한다. 내가 이루지 못한 것, 이루기 어려운 것, 이루려다 실패한 경험을 떠올리지 말고 내가 가진 것, 내가 이룬 것, 또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을 떠올려본다. 이렇게 하다 보면 ‘지금 겪는 어려움은 지나가 버릴 것이다. 나를 도와주는 분들이 그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이 그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이 바뀐다. 성공과 실패의 관점보다는 배움의 관점에서 세계적인 기업 3M의 최고경영자였던 리비오 데시몬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성공이나 실패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것은 유용하지 않다. 어떤 생각이 처음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그것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반드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인생에서 무슨 일이든 술술 쉽게 풀렸던 적은 별로 없을 것이다. 늘 어려운 고비였고 깊은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런 중에도 많은 사람의 도움과 격려 덕분에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소기의 목표를 이루면서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 실패를 겪더라도 거기에서 뭔가 교훈을 얻으면서 다음에는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셀리그만이 말한다. “긍정정서는 우리의 지적·신체적·사회적 자산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형성하여 위기에 처할 때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활용하게 한다. 긍정적 기분에 취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더 좋아하게 되고, 따라서 우정·애정·유대감이 돈독해질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 또한 부정적 정서에 휩싸여 있을 때와는 달리 정신작용이 활발해지고 인내심과 창의력이 커진다. 그런 만큼 새로운 사상과 낯선 경험에도 마음을 열게 된다.”
대한민국이 건국 70년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것을 두고 지구촌의 기적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한국 경제의 대도약을 견인한 핵심 동력 중 하나는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한 교육시스템이었다. 지속적인 성장과 복지사회 구현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이러한 교육제도가 현재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최근 일부 사회에서 확산되는 ‘반(反)교장주의’와 학부모·사회의 ‘반(反)교사주의’가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교장주의는 최근 몇 년 사이 일부 지역에서 시작되어, 점차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학교조직 내 상호존중 문화를 악화시키고 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일부에서는 정치권과 정부에게만 ‘학교장 존중 문화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장에 대한 불신과 공격이 계속되는 한, 반교사주의의 극복은 물론 공교육의 정상화도 요원하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학교장에 대한 신뢰 회복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구성원의 요구를 반영한 맞춤형 학교경영이 필수이다. 자부심 강한 집단 최근 교직에 대한 선호도가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고, 그로 인해 소위 ‘엄친아’라 불리는 인재들이 교직에 많이 유입되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우수한 집단이라고 여기기에 교직을 의사·변호사·교수처럼 고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받아야 하는 직종으로 인식한다. 물론 사회에서는 과연 교직이 전문직인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변호사·의사·교수와 비교하여 교직이 고도의 직업적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며,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에서의 기간과 내용 그리고 자격요건 면에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초등교직에 들어오기 전 교육대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사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불만1은 매우 높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어떤 학자는 교직을 ‘반(半)전문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수의 교사는 교직을 전문직이라고 믿고 교사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학교행정은 관료제적 속성으로 지시적 방식으로 업무가 추진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교사들은 행정의 관료제적 속성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관료제의 한계로 보기보다 학교장의 리더십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식 차이는 교사와 학교장 간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학교 내 교사들의 세대별 특성 ● 밤의 학교장인 왕언니 ‘왕언니 문화2’는 교사의 대부분이 여성으로 구성된 초등학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특히 대도시의 경우 남교사가 학교당 1명 내외에 불과한 경우가 많아, 초등학교의 여교사 교직문화가 초등학교를 움직이는 핵심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연구결과3에 의하면 초등학교 여교사들 사이에서는 교장-교감-부장교사-교사로 이어지는 계선조직에 의한 위계보다는 교직경력에 따른 왕언니의 서열이 훨씬 더 중시된다. 만약 학교장이 기존의 질서나 관례를 무시한 인사를 단행할 경우, 교장과 교사 사이뿐만 아니라 교사들 간의 관계에도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며, 결국 조직 분위기가 악화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교장은 학교경영에서 왕언니의 의견을 일정 부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학교 내 다수인 여교사들의 안정과 지지를 얻고, 기존의 위계질서를 인정함으로써 상호 간 신뢰를 더욱 돈독하게 하려는 배려의 일환이다. ● Me-ism(나 중심주의)으로 무장한 MZ세대 교사 MZ세대 교사들은 초·중·고 시절부터 대학까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성공한 세대이다. 따라서 이들은 자부심이 매우 강하기에 직장에서 본인들의 능력에 맞는 충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오면서 지쳤기 때문에 이제는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이들은 자신감과 자부심이 충만하여 단순히 지시를 따르기보다는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 이들은 ‘내가 왜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 ‘이 일이 학교와 학년의 성과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나의 성장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만약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가 없다고 느끼거나, 학교의 비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들은 무기력해진다. 따라서 이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하고, 일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사들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경영의 실제 ● 왕언니를 배려하는 소통과 경영하기 왕언니와의 소통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학교장이 학교경영을 잘못하면 낮에는 학교장이 학교경영을 하지만, 저녁에는 왕언니가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교장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며, 왕언니와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소통은 정기적 소통과 비정기적 소통이 있다. 첫째, 정기적 소통은 가칭 ‘오순이 모임’5 등을 통해서 최소 1년에 4회 이상 실시하며, 한 학기에 2회 정도 실시하여 신뢰관계(래포)를 형성하는 것이 좋다. 정기모임은 식사를 함께하되 상대방이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장소와 메뉴 선정에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둘째, 비정기적인 소통은 교사와 관련된 중요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또는 교사와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비정기 모임은 속도가 중요하다. 즉 사안이 발생하면 즉시 소통해야 하며,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여야 한다. ● 참여적 의사결정을 통한 MZ세대 배려하기 MZ세대들은 젊은이의 특성상 학교조직의 관료제에 대해 비판적 성향을 띠고 있어 학교 내에서의 소외감이 더해지면 비판세력이나 불만세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학교에서의 현실은 MZ세대들이 학교경영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들과의 소통도 왕언니와의 소통만큼 중요하다. 그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도 정기적 소통과 비정기적 소통이 중요하다. 첫째, 정기적 소통은 한 학기에 1회 정도 정기모임을 실시하는 것이 좋다. 마찬가지로 장소나 메뉴 선정할 때 그들이 존중받는다는 생각이 들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장소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만족도가 더 높다. 둘째, 비정기적 소통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이 좋다. 이는 학교장이 특정한 프로젝트에서 그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학교가 행정구청에 교육경비보조금을 신청하여 시설을 개·보수할 때,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학교 담장에 페인트를 칠한다든지, 교문을 바꾸는 데 아이디어를 요청한다. 상술하면 학교 담장에 색을 칠하는 경우 담장을 어떤 색으로 칠하고, 어떤 내용으로 칠할 것인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때 그들은 학교 일에 본인이 공헌했다는 점에서 보람과 기쁨,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도움을 청하라! 그러면 우군이 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보다 자신이 호의를 베푼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면, 저 사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왜 나에게 호의를 베풀까라고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상대방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도움을 준 상대방이 오히려 나에게 호의를 느끼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를 ‘벤자민 프랭클린 효과(Benjamin Franklin Effect)’라고 한다. 적을 친구로 만드는 기술로 널리 알려진 ‘벤자민 프랭클린 효과’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주 의회 의원이었던 시절 사사건건 자신에게 시비를 걸고 비방하는 의원이 있었다. 프랭클린은 그와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서 묘안을 생각해 냈다. 그 의원이 매우 귀한 책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책을 며칠 동안만 빌려달라고 부탁했고, 며칠 후 프랭클린은 감사 편지와 함께 책을 돌려주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절친이 되었다고 한다. 학교경영도 마찬가지다. 학교장은 학교구성원들에게 자주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신이 아닌 이상 모두가 부족하다. 고로 인간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상황이 변함에 따라 결정을 변경할 수 있다. 따라서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학교구성원들의 특성과 상황에 맞게 소통하며, 그들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맞춤형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고의 맞춤 경영 비법은 도움을 주려 하기보다, 구성원들에게 학교경영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서울불암초(교장 김병영)는 ‘즐겁게 배우고 함께 어울리며 꿈을 키우는 행복 미래 학교’라는 비전으로 학생들이 미래핵심역량을 가진 창의적인 미래 인재로 성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교육공동체 모두가 소통과 협력을 통해 나눔과 배움이 즐거운 학생, 열정과 긍지가 있는 교사, 신뢰하며 만족하는 학부모가 함께 행복한 교육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학교이다. 김병영 교장은 ‘실력UP·인성UP·꿈UP으로 미래를 여는 학교’라는 학교장 경영관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교수·학습 프로그램을 통한 학생 중심 교육, 학생과 서로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학생 맞춤식 교육, 지성·감성·인성을 갖춘 창의적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국제공동수업 및 AI 디지털교육 활성화를 통한 미래교육을 실현하고 있다. 2024학년도 불암초 주요 교육활동 ● IB 관심학교 운영 불암초는 2024학년도 서울시교육청 지정 IB 관심학교를 운영했다. IB 학습자상을 바탕으로 한 미래 인재를 육성하고, 학생들의 생각을 꺼내는 교육을 하기 위하여 뜻을 함께하는 교사들을 중심으로 IB 교육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으며, 교수·학습 연구문화를 조성하여 학교의 교육력을 강화하였다. 연구팀은 매주 화요일마다 모여 생각하는 교실을 위한 개념 기반 교육과정 및 수업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IB 관련 도서를 읽고 생각들을 함께 나누고 발전시키는 시간을 가졌으며, 탐구 단원에 대한 수업설계 및 공유를 통해 실질적인 수업개선과 실천에 앞장섰다. 또한 선행 연구자들과의 멘토링을 통해 연구결과에 대한 피드백, 사례 나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고 IB 글로벌 교사 리더 양성과정 등 다양한 IB 관련 연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또 IB 관심학교인 제주 토산초를 탐방하여 IB 교육과정 설계 워크숍에 참여하는 등 수업 전문성을 신장하였다. 이러한 교사들의 노력은 불암 행복 교육의 가장 큰 힘이다. ● 생각을 키우는 수학·과학교육 강화 미래 시대를 이끌 수학 및 과학역량 신장을 위해 학생이 중심이 되는 과학한마당과 수학한마당이 학생들의 열띤 참여 속에 운영되었다. 체험 중심 활동을 통해 과학 및 수학에 대한 흥미와 원리를 탐구하고, 관련 책을 찾아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학습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래교육을 선도하는 불암초의 2025학년도 교육방향 ● 국제공동수업의 확대 불암초는 2023년부터 싱가포르 Elias Park Primary School(EPPS)과 3년 연속 국제공동수업을 이어오고 있다. 양교 학생들은 전자책 만들기, 실시간 화상수업 등 다양한 온라인 교류활동을 통해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문화적 상대성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세계 시민의 자질을 함양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EPPS의 개교 30주년을 맞이하여,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주제로 한 ‘에코-헤리티지(Eco-Heritage)’ 프로젝트를 공동 운영할 예정이다. ● 학부모 하브루타(Havruta) 독서 동아리활동 및 교육공동체와의 소통 교육공동체인 학부모는 자발적인 독서 동아리활동을 통해 개인의 성장을 이루는 것과 동시에 올바른 자녀교육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결하고 있다. 월 1회 이상 회원들이 직접 선정한 도서를 읽고, 하브루타식 토의·토론활동을 하면서 책 속에 깊숙이 빠져든다. 토의·토론 결과는 학교홈페이지 ‘학부모 마당’에 게시하여 비회원 학부모에게도 공유하여 학부모교육에 힘쓰고 있다. ●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학생자치문화 불암초는 학생들의 지·덕·체 균형 있는 성장과 미래 인재로서의 역량 강화에 힘쓰고 있다. 학기 초 교장선생님과 함께하는 학생자치회 임원들과의 간담회는 행복한 불암생활을 위한 의견을 나누고, 임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학생자치회 임원은 월 2회 이상 주제 중심 토의·토론활동을 하면서 의견을 개진하고 결과를 공유하는 등 사회 및 학교문화에 적극적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리더십과 학생 주도성을 기르고 있다. ● AI 디지털교육 및 수·과 융합 영재학급 불암초는 디벗과 전자칠판 설치, 신나는 AI실을 활용한 교내 우수한 디지털 인프라를 바탕으로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디지털 기초소양을 강화하고, 미래교육을 선도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또한 5~6학년을 대상으로 수학·과학 융합 영재학급을 운영하여 학생들이 창의적인 문제해결력과 융합적 사고를 키워 미래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내실 있는 맞춤형 영재교육을 지원한다. ● 아침 교문맞이 등교인사 불암초는 교장선생님의 아침 교문맞이 등교 인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교장선생님의 아침 교문맞이는 단순한 인사를 넘어서, 학생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기는 학교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이다. 햇살이 학교운동장을 부드럽게 비추는 시간, 서울불암초등학교의 교문 앞에서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눈을 맞추며 “좋은 아침!”, “오늘도 활기차게 시작하자!”라고 인사를 건네면, 학생들은 교장선생님의 인사에 반갑게 손을 흔들거나 인사를 하며 학교 안으로 들어선다. 때로는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하고, 학생들은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인사 덕분에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한다. 학생들은 교문을 들어서며 자신이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그 따뜻함이 하루 종일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불암초는 2025학년도에도 우수한 교육환경과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함께 여는 미래, 모두가 행복한 교육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학교장으로서 무엇보다 선생님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학교구성원 모두의 의견을 나누고 모으는 과정을 소중히 생각하는 민주적인 학교운영을 하고 있다.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는 인성교육, 독서교육 및 창의성교육, 체험중심 진로교육과 문화예술교육, 학생자치 및 인권교육 등에 중점을 두고 학생들의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미래혁신교육을 통한 글로컬 리더 육성을 위해 늘 존중과 배려의 마음으로 학생·교사·학부모·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학교경영을 하고 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교육지원청에서 열리고, 여기에서 해당 학교폭력 사안의 학교폭력 해당 여부, 피해학생 보호조치, 가해학생 선도조치가 결정된다. 이와 관련한 당사자들의 소송 등 불복도 교육지원청이 담당한다. 아직은 시행 초기라 미숙한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2024년부터는 전담조사관 제도가 도입되어 학교폭력에 관한 학생과 보호자 상담 등의 조사를 교육지원청 학교폭력제로센터에 소속된 학교폭력전담조사관이 담당할 수 있다. 학교로서는 학교폭력 사안에 대한 판단과 불복, 사안 조사라는 학교폭력 민원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교육지원청의 몫이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골치 아픈 부분은 남아 있다. 학교폭력 사안의 인지와 피·가해학생의 분리, 학교장 자체해결 관련 문제들이다. 이번 호에서는 이 중에서 학교폭력 사안의 인지, 분리와 같은 초기대응 부분에 대해 알아보자. 학교폭력에 대한 1차 사실확인 의무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전담기구 또는 소속 교원으로 하여금 가해 및 피해 사실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학교폭력예방법」 제14조 제4항). 그렇기에 이후 학교폭력 사안 조사를 전담조사관에게 요청할 것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학교에서 1차 사실 확인 의무가 있다. 이러한 1차 사실 확인의 범위에 대해 명확하지는 않지만,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에 따르면 학교에서 학교폭력 사안의 발생을 교육지원청에 보고하도록 하면서 ‘학교폭력 사안 접수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접수보고서에 기재될 내용이 1차 사실 확인할 내용이라고 해석된다. 관련 학생들의 기본적인 인적사항, 피해학생 신고의 요지, 그러한 신고에 대한 가해학생의 입장, 보호자 통지과정에서의 보호자 의견 정도가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학교폭력 ‘인지’의 개념 한편 「학교폭력예방법」 규정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학교폭력에 대한 ‘인지’의 개념이다. 인지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사실을 인정하여 앎’이라고 하는데, 이중 ‘인정’에 대해 다시 사전을 찾아보면 ‘확실히 그렇다고 여김’이라고 한다. 이를 토대로 정리하자면 ‘학교폭력 발생에 대한 인지’란 ‘학교가 학교폭력이 발생했다고 확실히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고 하겠다. 학교는 학생들이 모여 지내며 온갖 갈등이 일어난다. 학생들 사이에 사소한 다툼이 벌어졌음을 우연히 담임교사가 알게 되었다면 이것도 학교폭력을 인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모호성이 민원 발생의 시작이다. 담임교사가 학생들 사이를 중재하고 화해시켰는데, 귀가한 학생이 보호자에게 상대 학생과 다툼이 있었던 사실을 말하고, 보호자는 학교로 찾아와 “왜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했는데 제대로 처리를 안 하고 은폐하려고 했느냐”라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다툼을 학교폭력으로 접수하면 반대로 “왜 학교는 학생들 사이의 다툼을 중재 안 하고 전부 학교폭력으로 처리해 교육청에 넘기려고 하느냐”라고 한다. 대체 어쩌라는 걸까? 결국 학교로서는 문제가 된 사안을 학교폭력 절차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① 기본적으로 피해학생 본인과 보호자의 학교폭력 사안 접수 의사에 따르되, ② 만약 피해학생 측이 학교폭력으로 처리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학생의 피해 정도와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두 학생이 학교에서 서로 싸움을 벌여 다쳤다면, 설령 두 학생 모두 학교폭력으로 처리를 원치 않는다고 할지라도, 학생들이 신체적인 부상을 입은 점이나 주변에 목격한 학생들이 다수여서 단순히 두 학생만의 문제가 아닌 점을 들어 학교폭력 사안으로 인지하여 처리함이 타당하다. 참고로 학교폭력의 인지에 관한 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교사가 학교폭력과 관련하여 피해학생의 학부모에게 관련 사진을 전송하고, 학생들로부터 진술서를 받았으며 같은 날 피해학생을 만나 이 사건 학교폭력에 대하여 면담하였으므로 그 무렵에는 사건이 피해학생에게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상당한 피해를 수반하는 학교폭력 사안에 해당함을 인지할 수 있었다고 보이므로, 이에 따라 학교장에게 이 사건 학교폭력을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서울행정법원 2018. 12. 14. 선고 2017구합80851 판결 참조)” 이러한 판례는 학교가 단순한 풍문 정도가 아니라 학교폭력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구체적인 사실을 알게 된 때를 인지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으로 이해된다.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분리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분리는 학교폭력 민원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 중 하나이다. 피해학생의 보호를 위해 반드시 분리의 필요성이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학생들 사이의 사소한 분쟁이 학교폭력으로 신고된 경우나 허위의 학교폭력 신고라도 일단 가해학생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학습권이 침해된다는 갈등을 발생시킨다. ● 무조건 발생하는 분리 의무 _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4항에 따른 의무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학교가 학교폭력을 인지한 때에는 지체 없이 가해학생에게 피해학생(또는 신고한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조치를 해야 한다(「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4항). ‘지체 없이’라고 하므로 학교폭력을 알게 된 직후 이루어져야 하며, 분리에 대해 피해학생의 의사를 물을 필요도 없다. 다만 이는 가해학생을 별도 공간으로 분리하는 조치는 아니다. 금지되는 접촉에는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이용해 메시지를 보내는 등의 행동까지 포함되지만, 교육활동이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의도성 없는 접촉까지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가해학생과 그 보호자에게 학교폭력으로 신고당했다는 점과 신고가 있었으므로 상대방과의 접촉에 주의해야 함을 당부하고, 메시지를 보내는 행동 등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안내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학생들이 같은 학급이라면 이를 근거로 모둠이나 좌석의 배치를 변경할 수도 있다. ● 피해학생이 원하는 경우 무조건 해야 하는 분리 _ 「학교폭력예방법」 제16조 제1항에 따른 의무, 관련 규정 개정 예정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르면 학교는 학교폭력을 인지한 경우 피해학생의 반대의사 등 예외가 없으면 지체 없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해야 한다(「학교폭력예방법」 제16조 제1항). 위에서 말하는 ‘피해학생의 반대의사 등’ 예외는 「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에서 규정하는데, ① 피해학생의 반대의사, ② 학교가 교육활동 중이 아닌 경우(가장 대표적으로 방학), ③ 긴급한 학교장의 조치로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분리된 경우(가장 대표적으로 가해학생에 대한 출석정지)를 말한다. 이에 따른 분리는 물리적 공간의 분리를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이 같은 학급인 경우 가해학생을 교실 외에 별도 공간으로 보내거나 가정학습을 시키게 되고, 이때 신고된 가해학생은 그 억울함을 떠나 일정 기간 수업을 들을 수 없게 된다. 이 역시 법에서 ‘지체 없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학생이 분리를 원하는지 확인해야 하며, 가해학생의 분리 기간과 방법을 결정해야 하므로 필연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에서는 ‘24시간 이내에 결정한다’고 하고 있다. 분리의 기간은 ‘7일의 범위 내’라고 한다. 그렇기에 반드시 7일로 결정할 필요는 없다. 피해학생의 보호 필요성과 사안의 경중에 따라 결정하는데, 극단적으로는 ‘1일’로 하여 분리 당일 남은 수업 시간만 분리하는 것으로 정할 수도 있다. 또 위 7일에는 주말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분리 기간을 ‘3일’로 정하고 금요일부터 분리를 시작한다고 하였을 때는 ‘금·토·일’로 3일이 되어 월요일부터 가해학생이 정상적으로 등교하게 할 수도 있다. 분리로 인해 가해학생이 학교를 나오지 않게 된다면 해당 날들은 출석으로 인정한다. 주의할 점은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다른 학년이거나 다른 학급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분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수업은 각자의 반에서 수강하되, 수업시간을 제외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교실 이동시간 등의 동선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으로 정한다. 이러한 분리 규정에 따라 난감한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피해학생이 학급 다수 학생을 신고하는 경우, 피해학생의 신고에 따라 가해학생도 피해학생을 신고하는 쌍방 학교폭력의 경우, 체험학습이나 졸업식 등 특별한 교육활동이 정해진 날 직전에 학교폭력 신고를 하는 경우 등이다. 사실 「학교폭력예방법」에는 분리 의무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고,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라면 관련된 지침도 없는 것이니 충분히 학교에서 유연한 방법으로 처리가 가능하다고 보인다. 해당 분리 규정에 따른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기에 이와 관련한 「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의 개정이 이루어졌고, 2025년 5월 22일 시행될 예정이다. 앞서 설명한 ‘피해학생의 반대의사 등’ 분리의 예외에 ④ 학교장 자체 해결의 4가지 조건(2주 이상의 진단서 발급이 없을 것,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복구된 경우 등, 지속적 학교폭력이 아닐 것, 신고에 대한 보복 유형의 학교폭력이 아닐 것)을 충족하는 경미한 학교폭력 사안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피해학생 측은 법에 근거한 분리를 원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시행령을 근거로 이를 거부하는 셈이 되어 제대로 된 운영이 가능할지 의문이 있다. ● 학교에서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분리 _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5항·제6항 가해학생이 벌인 학교폭력이 심각한 수준이라면 특히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가 긴급하게 되므로 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개최 이전에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를 할 수 있다(「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5항). ‘있다’라는 형식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반드시 해야 하는 조치는 아니다.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제1호), 학교에서의 봉사(제3호), 특별교육이나 심리치료(제5호), 출석정지(제6호), 학급교체(제7호)가 가능하지만, 피해학생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 가해학생 분리는 출석정지(제6호), 학급교체(제7호)가 주로 고려된다. 그런데 한창 학기가 진행 중인 때의 학급교체(제7호)는 가해학생은 물론 학급에 소속된 다른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높기에 현실적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조치는 아니다. 그래서 가장 주요하게 사용되는 것은 출석정지(제6호)라고 하겠다. 출석정지(제6호) 기간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조치결정시까지로 결정할 수 있다(「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7항). 이는 학칙 등을 위반하여 내려지는 징계가 최장 10일로 정해진 것과 차이가 있다(「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제1항 제4호). 「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에서는 가해학생에 대해 우선 출석정지를 하기 위한 조건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학교장이 피해학생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주된 이유가 된다(「학교폭력예방법 시행령」 제21조 제1항 제4호). 이러한 출석정지를 위해서는 학생 또는 보호자 의견을 들어야 한다.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할 뿐이므로 이들이 출석정지를 거부한다고 하여도 이와 관계없이 출석정지가 가능하다. 학교에서 가해학생의 출석정지를 결정하지 않는다면 피해학생 측에서 가해학생에 대한 출석정지를 요청할 수 있다. 이때 학교는 전담기구를 개최하여 피해학생 측의 요청이 타당한지를 검토한다(「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 제6항). 이는 피해학생 측이 가해학생에 대한 출석정지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이지 학교가 이러한 요구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근거 규정 및 내용 가. 근거 규정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11조(시간외근무 및 공휴일 등 근무) 나. 내용 ① 행정기관의 장은 민원 편의 등 공무수행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제9조 및 제10조에도 불구하고 근무시간 외의 근무(이하 ‘시간외근무’라 한다)를 명하거나 토요일 또는 공휴일 근무를 명할 수 있다. ② 행정기관의 장은 제1항에 따라 근무를 한 공무원에 대하여 그다음 정상근무일을 휴무하게 할 수 있다. 다만 해당 행정기관의 업무 사정이나 그 밖의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다른 정상근무일을 지정하여 휴무하게 할 수 있다. ③ 제1항에도 불구하고 행정기관의 장은 임신 중인 공무원 또는 출산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공무원에게 오후 9시부터 오전 8시까지의 시간과 토요일 및 공휴일에 근무를 명할 수 없다. 다만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1. 임신 중인 공무원이 신청하는 경우 2. 출산 후 1년이 지나지 않은 공무원의 동의가 있는 경우 ④ 제1항에 따라 근무를 한 공무원은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 제15조에 따른 시간외근무수당의 지급 범위에서 시간외근무수당을 지급받는 대신에 해당 근무시간을 연가로 전환할 수 있다. ⑤ 제2항 및 제4항에서 규정한 사항 외에 휴무 부여 기준, 시간외근무시간의 연가 전환 절차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인사혁신처장이 정한다. 시간외근무시간 산정방법 근무명령에 따라 하루 1시간 이상 시간외근무를 한 경우, 평일은 1시간을 공제한 후 남은 시간(분 단위까지) 합산하며, 휴일과 토요일은 공제 없이 총 근무시간(분 단위까지)을 합산하여 월별 총 시간외근무시간을 계산한다. 다만 월별 총 시간외근무시간을 계산할 때 1분 미만은 제외한다. ● 평일 정규 근무시간 이후 시간외근무 근무명령에 따라 하루 1시간 이상 시간외근무를 한 경우에 1시간을 공제한 후 매분 단위까지 인정. ● 조기출근으로 인한 정규 출근시간 이전의 시간외근무 근무명령에 따라 정규 출근시간보다 1시간 이상 조기출근하여 담당업무를 수행한 경우, 해당 조기 출근시간은 당일 정규 퇴근시간 이후의 시간외근무시간과 합산. 이때 합산된 총 근무시간에서 1시간을 공제한 후 매분 단위까지 인정. ● 지각·외출 및 반일연가 사용자의 시간외근무 근무당일 지각·외출 또는 반일연가를 사용한 공무원이 근무명령에 의한 초과근무를 한 경우에도 시간외근무는 인정. 이 경우 시간외근무시간 계산방법은 일반적인 평일 정규 근무시간 외의 시간외근무 계산방식과 동일하게 적용. ● 육아시간 사용자의 시간외근무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20조에 따른 육아시간을 사용한 공무원이 근무명령에 의한 초과근무를 한 경우에도 시간외근무는 인정. 이 경우 시간외근무 계산방법은 일반적인 평일 정규 근무시간 외의 시간외근무 계산방식과 동일하게 적용. ● 휴일 및 토요일 근무 근무명령에 따라 휴일 및 토요일에 1시간 이상 근무한 공무원은 실제 근무시간 전체를 매분 단위까지 인정. QA Q. 시간외근무는 어떤 경우 신청이 가능한가요? A.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11조(시간외근무 및 공휴일 등 근무)에 따라 기관장인 학교장이 공무수행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 소속 교원은 근무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때 ‘공무’란 원칙적으로 그 공무원의 법령상 직무를 의미하며, 「초·중등교육법」 제20조(교직원의 임무) 제4항에 따라 교원은 학생 교육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따라서 학습활동 준비나 평가문항 출제 등은 교원의 시간외근무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다만 학교장에게는 초과근무수당이 부당하게 지급되지 않도록 관리할 책임이 있으므로 시간외근무 명령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여야 합니다. Q. 학교장이 생활지도를 위해 매일 30분의 초과근무를 시키고 있습니다. 복무규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요? A. 공무원은 월 근무일수가 15일 이상이면 별도의 근무명령이나 승인 없이 월 10시간분의 시간외근무수당을 정액으로 지급받습니다. 교육공무원의 경우 학교장은 학생 생활지도 및 안전관리 등을 이유로 초과근무를 명령할 수 있으며, 소속 교원은 이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 생활지도 등의 명목으로 30분의 초과근무를 명령한 것은 적법한 근무명령으로 판단됩니다.
교육부는 17개 시·도교육청(경북 주관), EBS와의 협력으로 '영유아 클래스e' 방송 콘텐츠를 제작해 12일부터 매주 월요일에 송출한다고 6일 밝혔다. 이번 방송 프로그램은 영유아 발달과 양육에 대한 전문적이고 정확한 정보 제공 차원이다. 최근 교육계는 불확실한 정보, 사교육 시장의 불안 마케팅 등으로 부모가 신뢰할 수 있는 양육 정보를 얻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영유아 클래스e’는 소아청소년·소아정신과 분야 전문의 및 교수 등 전문가 8명이 참여해 총 24회에 걸쳐 0세부터 6세까지 연령별 발달 특성과 올바른 양육 방법을 체계적으로 다룬다. 특히 사교육 저연령화 및 유아 대상 영어학원 증가 상황에서 부모들이 과도한 조기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도록 영유아 발달에 적합한 양육 방법을 소개한다. 회차별 방송은 ‘주제 강연 → 부모 맞춤형 질의응답(QA) → 정리 및 마무리’로 구성되며 약 30분 분량이다. EBS 영유아 클래스e 홈페이지를 통해 궁금한 사항을 미리 받아 ‘부모 맞춤형 질의응답(QA)’를 제작해 나갈 예정이다. 프로그램은 EBS 1TV에서 12일부터 10월까지 매주 월요일 오전 8시 50분에 방송된다. 재방송은 EBS 2TV에서 14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15분, 토요일 오후 2시 30분, 다음 주 수요일 오후 12시에 방영된다. 해당 방송 프로그램은 클립 영상 등으로 편집 및 다양한 플랫폼에 탑재된다. 시·도교육청(유아교육진흥원), 시군구(육아종합지원센터)·어린이집·유치원 등에서 부모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포할 예정이다. 강민규 영유아정책국장은 “영유아기는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시기로 부모님들이 올바른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시·도교육청 및 시·도와 협력해 영유아 발달에 적합한 양육 및 교육정보 제공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13~15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제7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교육장관회의’를 개최한다고 6일 밝혔다. 21개 회원경제체 교육장관과 대표단 및 국내외 교육 분야 전문가 등 400여 명이 참석한다. 이번 제7차 APEC 회의는 제6차 페루 회의 이후 9년 만에 열린다. 대한민국은 2025년 APEC 의장국으로 교육장관회의를 주재하게 되며, 이는 2012년 제5차 경주 회의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교육장관회의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교육격차 해소와 지속가능한 성장 촉진’을 주제로, 디지털 교육혁신을 통한 미래교육의 방향과 역내 공동 번영을 위한 글로벌 교육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이 논의는 14일 교육장관회의 총회에서 ‘혁신, 연결, 번영’ 분과(세션)로 나눠 진행된다. 인공지능(AI) 및 디지털 대전환과 맞춤형 교육혁신, 글로벌 교육 협력 및 기회 접근성 확대, 양질의 교육 강화와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중심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APEC 교육장관회의 개최 전에는 인적자원개발실무그룹(HRDWG, Human Resource Develipment Working Group) 실무회의도 7~10일 진행된다. APEC 교육장관회의에서 합의를 목표로 하는 공동성명서를 사전에 논의하게 된다. 한편 교육부는 APEC 교육장관회의를 계기로 글로벌 교육개혁 학술대회, 교육혁신 전시관 운영 등 부대행사를 연계 개최할 예정이다. 13일 예정된 글로벌 교육개혁 콘퍼런스는 ‘AI와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교육혁신과 글로벌 협력’을 주제로 국내외 교육 전문가가 논의하며, 13~14일 열리는 교육혁신 전시관에서는 AI 활용 디지털교과서 및 스템(STEM) 교육 체험 등이 소개된다.
정부가 학부모 교육을 확산하기 위해 유관기관 협력 등을 통한 콘텐츠 이수 장려에 나선다. 국립기관 무료 이용 등 인센티브를 내걸 것으로 전망된다. 어린이집에서 보육활동 침해 사안 시 교직원을 보호하는 방안도 마련한다. 정부는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2025 학부모 정책 추진계획’, ‘제1차 어린이집 보육교직원 보육활동 보호 기본계획’, ‘제4차 여성의 경제활동 촉진과 경력단절 예방에 관한 기본계획’, ‘디지털 인재양성 종합방안 핵심관리과제 2024년 하반기 추진현황 점검결과’를 상정했다. ‘2025년 학부모 정책 추진계획’에는 교육자료 영상·웹툰 등 다양한 형태 제작, ‘학부모 온누리’(parents.go.kr) 온라인 학습 거점 개발, 학부모의 학교 참여를 지원하기 위한 교사·학교장 대상 학부모 이해 및 소통 관련 연수 제공, 가족돌봄휴가제 사용 독려 등이 담겼다. 작년 4월 교육부가 ‘모든 학생의 건강한 성장을 위한 학부모정책의 방향과 과제’를 수립하고 기반을 닦았다면 올해는 유관부처 및 부모교육 관련 기관과의 협력 강화, 학부모 정책 추진 지원체계 및 근거 법령 등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 확산과 안정적인 운영 마련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학부모온누리 활용의 경우 중앙부처‧기관 등이 요청하는 학부모 콘텐츠를 게재하고 이수증을 활용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학부모 참여를 독려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학부모온누리에 국립중앙과학관의 학부모 대상 과학진로프로그램을 탑재하고, 이수증 지참 시 국립중앙과학관 무료 입장을 가능하게 하는 식이다. 법령 개정안의 경우 교육기본법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부모 등 보호자의 권리와 책임을 지원하기 위한 시책을 수립‧실시해야 한다’ 조항 등 추가가 이뤄질 전망이다. 작년부터 교육부는 ▲학부모 5대 역량군(자기돌봄, 부모역할기본, 자녀교육, 학교협력, 자녀자립지원) 개발 및 ‘학부모는 처음이라(7종)’ 발간 ▲학부모정책연구소 신규 선정 ▲‘학부모 정책 모니터단(6205명)’ 및 ‘찾아가는 교육정책 서비스’ 운영 ▲교원‧학부모‧학생 소통 ‘함께학교’ 온라인 플랫폼 운영 등을 해오고 있다. 또한 정부는 유치원 교원과 동일하게 보육교직원이 안정적이고 전문적으로 보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제1차 어린이집 보육교직원 보육활동 보호 기본계획(2025~2029)을 수립했다. 지난 2023년 교권 보호 종합방안과 교권보호 4법 개정-시행으로 유·초·중·고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제도가 마련됐으나, 유치원과 동일 연령 아동을 지도하는 보육교직원에 대한 제도는 미비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왔다. 올 상반기에는 ‘어린이집 영유아 생활지도 고시’를 제정해 정당한 생활지도와 아동학대를 구분한다. 또 보호자용 어린이집 생활 안내자료집을 개발·보급해 보호자와 보육교직원 간 상호 이해도를 높이고 원활히 소통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보육활동 침해 사안이 발생한 경우 어린이집에서 초기 대응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해 원장 또는 보육교직원이 요청하면 어린이집 운영위원회에서 심의할 수 있도록 절차를 체계화한다는 계획이다. 독립적 분쟁조정기구인 보육활동보호위원회를 중앙과 시도에 설치하고, 법률에 근거한 신속하고 전문적인 분쟁조정을 추진한다. 이날 ‘디지털 인재양성 종합방안’ 핵심관리과제의 작년 하반기 추진 현황, 성과 점검 내용도 공유했다. 그 결과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케이무크·K-MOOC) 중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분야 강좌를 종전 138개에서 192개로 확대하고, 수준별 디지털 강좌 5개를 개발·운영하고 있다. 이는 총 33개 핵심과제 중 ‘대학 수준의 디지털 교양과정 확대’의 작업이다. 이로써 지금까지 핵심과제는 4개가 완료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