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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선생님, 국어 문법은 너무 어려워요.” 아이들이 문법 단원의 내용을 배울 때면 하는 푸념이다. 어떤 내용을 설명할 때는 영어 문법을 연결해서 설명해야 알아듣는다. 실생활의 언어에서 예시를 들어주고, 문법을 좀 더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해도 여전히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문법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사실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이미 생활 속에서 언어를 자연스럽게 쓰고 있기에 문법적인 부분을 굳이 왜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이다. 사실 문법은 어렵다. 국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문법적으로 명확하지 않으면 관련 규정을 찾아보고 그래도 의문이 생기면 국립국어원에 질의해 가르치곤 한다. 문법 비중 약화에 대한 우려 아이들 말대로 ‘몰라도 잘 쓰고 있는데 왜 배워야 하나’라고 할 수도 있지만, 문법이야말로 학교 교육을 통해서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다시피 통신매체의 변화에 따라 언어의 파괴가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언어의 경제성 측면에서 줄여 쓰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지만, 원칙과 기준을 알고 변형해서 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SNS 공간에서 자신들만 알고 있는 은어로 소통하고, 줄임말을 쓸 때 재미와 사용자 사이의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문법적인 요소를 알지 못하고 쓰는 일이 많아지면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있다. 단문 중심의 문장이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필수 성분까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글보다는 말에 가까운 특성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원래 문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조차 잊고 쓰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필수 성분이 필요한 이유는 정확한 의미의 전달과 이해를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생략에만 익숙해지고, 무엇을 생략했는지 알지 못한다면 오해가 생긴다. 무엇보다 어휘 차원의 문제가 심각하다. 신조어의 탄생은 언어의 창조성과 관련하여 당연한 현상이지만 기존의 문법 체계를 파괴하고, 초성 자음만 사용하여 표현하거나 비속어에 어원을 둔 어휘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낱말은 나름의 어원과 역사를 갖고 있다. 정확한 의미를 알고 써야 바르게 쓸 수 있다. 끝으로 문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데 문제가 크다. 외국어의 표기를 발음 나는 대로 편하게 하면 안 되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외국어 표기규정은 발음을 정확히 적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통일된 쓰기를 통해 혼란을 줄이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처럼 문법의 본질적인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고와 가치 형성에 큰 영향 현재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치를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국어 영역은 공통국어(독서와 문학)와 선택 과목(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으로 분리된다. 선택 과목에 있어 ‘화법과 작문’에 대한 부담을 적게 느낄 가능성이 크다. 두 과목의 난이도 차이에 따라 점수 보정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문법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학습 부담을 줄여준다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시험에 출제되지 않는 과목으로 인식되면 지금보다 소홀하게 다룰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바른 언어 사용을 통해 올바른 사고와 가치를 형성시켜 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고 그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구미 산동초등학교(교장 정미옥)는 지난 7월 22일(월)에서 7월 26일(금)까지 대구경북영어마을에서 5~6학년, 50명을 대상으로 4박 5일 글로벌문화체험활동을 실시하였다. 구미시는 글로벌교육특구의 위상에 걸맞게 2008년부터 매년 대구경북영어마을 체험학습을 지원해오고 있으며 금년도에도 산동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의 영어체험학습을 지원, 학생들의 영어능력향상을 유도하여 학생 및 학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산동초등학교 학생들은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우수한 시설과 교사진이 갖추어진 대구경북영어마을에서 실제 영어권문화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였고, 다양한 나라 출신의 원어민 교사들과 함께 학교에서 학습한 영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하는 뿌듯한 기쁨도 가졌다. 또한 부모님과 떨어져 급우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협동심, 공동체 의식 그리고 자립심을 키울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교육에 참가한 조○○ 학생은 “평소 영어에 관심을 갖고 영어공부를 하였지만 영어로 대화하는 시간은 많이 가지지 못했다. 영어마을에 와서 좋은 원어민 선생님들을 만나고 영어로 의사소통하니 보람되었고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2019 자유학기제 수업콘서트가 8일 서울 서초구 바우뫼로 더케이호텔에서2일차 수학·과학·영어교과시간에 참석한 교사들이 대전 가오중 윤이나 선생님(왼쪽 두번째)의 안내로 '드림수업 콜라쥬'를 체험하고 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자유학년제는 무엇인가요? 전 말괄량이 삐삐를 떠올렸습니다. 삐삐처럼 엉뚱하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우리 아이들이 생각났어요. 틀에 박힌 수업이 답답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죠. 자유학기제를 통해 삐삐 같은 아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19 자유학기제 수업콘서트(이하 수업콘서트)’가 7일 더케이호텔 서울에서 개막했다. 사흘간의 일정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교원과 교육전문직, 학생, 학부모 등 3500여 명이 참석했다. 수업콘서트는 자유학기제를 통해 수업 변화를 이끈 현장 교사들의 축제였다. 교육과정 재구성과 수업 개선, 학교 운영 등 교실을 바꾸기 위한 과정과 비결을 나누고 배우려는 교원들로 행사장은 가득 찼다. 자유학기제 실천사례 연구대회 시상식과 입상자 좌담회, 전문가 특강, 수업 나눔, 일대일 맞춤형 컨설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참여한 입상자 좌담회에선 자유학기제에 대한 가감 없는 이야기가 오갔다. 학교 교육과정 분과에서 입상한 대구 경서중의 곽상순 교장은 “아이들의 꿈과 끼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업을 개선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교사들에게 줘야 한다”면서 “이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게 주효했다”고 전했다. 이어 “학교 실정에 맞는 운영 방법과 생활기록부 기록 문제 등은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라고 짚었다. 유 부총리는 “열정적인 교사에 대한 학교장의 지원은 큰 힘이 된다”며 “학교 여건과 실정에 맞는 맞춤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참가자들의 인기를 끈 건 수업 나눔이었다. 첫날에는 연구대회 입상작의 수업 시연이 진행됐고, 둘째·셋째 날에는 다시 보고 싶은 연구대회 입상작 수업 시연과 교육청 추천 수업 명장의 수업 시연이 이뤄졌다. 제4회 연구대회에서 최우수작으로 국무총리상을 받은 장유영 울산 진장중 교사의 ‘수학으로 세상풀기 프로젝트’(교과수업 분과), 조창현 인천 만수북중 교사의 ‘수학으로 3D영상(이미지) 만들기’(자유학기 활동 분과) 등도 만나볼 수 있었다. 교과수업 분과에서 입상한 손경진·어혜림·이재은 강원 원주삼융중 교사는 국어와 영어, 미술 교과를 융합한 ‘융합 및 프로젝트 수업으로 ‘생’, ‘생’한 교실 만들기’를 소개했다. 손 교사는 “자유학년제 하면 삐삐와 삐삐같이 엉뚱한 우리 아이들이 생각난다”며 “이 엉뚱함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든다는 걸 알게 됐다”며 설명했다. 이들은 자발적인 교원학습공동체를 구성하고 여러 교과를 재구성, 활동 중심 수업을 운영해 참가 교원들의 관심을 끌었다. 수업콘서트에서 소개된 입상작은 자유학기제 홈페이지 ‘꿈끼(www.ggoomggi.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명인정보고등학교(교장 남덕우)는 ‘매력적인 직업계고 육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8월 1일부터 10일까 9박 10일 일정으로 호주 멜버른 지역으로 '매직 글로벌 인재육성 호주 멜버른 캠프'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명인정보고는 1학년과 2학년 재학 중인 학생 15명과 인솔교사 3명 등 총 18명이 참여한 이번 캠프는 국제이해 증진과 세계사회 시민으로서 역량을 강화하고 국제적 능력 배양을 통한 글로벌 리더십을 함양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추진됐다. 9박 10일 일정동안 오전에는 국제교류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맞는 영어수업을 자매결연교인 PAX에서 현지 교사에 의해 토론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오후에는 호주지역문화 체험과 현지 취업처를 방문해봄으로써 해외 취업에 대한 견문을 넓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밖에도 바리스타 관련 수업을 진행하고 호주에 있는 카페나 호텔에 취업을 연계시켜 줄 Universal Learning Group, 학생들의 일자리 구직 및 육가공 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Whales와 협약을 맺어 학생들의 해외 취업을 길을 더욱 넓게 다졌다. 남하윤 교사는 "명인정보고는 지난해부터 학생들에게 해외 체험 활동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다양한 해외 업체와의 협약을 통해 해외 취업의 문을 넓히고 있다"면서,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에게 국제적 감각과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업은 언제나 어렵다. 4년째 세계시민교육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가르치는 학년이 달라지기도 했고, 같은 학년도 매해마다 다른 내용으로 수업을 채우게 되어 늘 첫 해 같은 마음으로 수업을 고민하게 된다. 세계시민교육 프로젝트를 고민하게 된 것은 세계화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상호의존성이 심화되면서 우리의 삶이 단일 국가의 경계를 넘어 긴밀하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이 전 지구적 차원의 협력 없이 는 해결하기 어려우므로 개별 국가의 이해관계를 넘어 인류가 전 지구적 공동체로서 온전히 기능하도록 개인과 사회의 관점을 변화시키고 필요한 소양과 역량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세계시민교육의 수업목표는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 다름의 인정과 존중에서 출발하여 빈곤·인권·환경·평화 등의 글로벌 이슈에 관해 배우고, 이를 통해 세계시민으로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며,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역할의식과 책임의식을 갖게 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으로 구성된 학급에서 한 학기동안 진행한 ‘세계시민교육 교과 융·복합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이번 호에서는 수업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다음 호에서는 본 수업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PART VIEW] 2019년 상반기 수업 이야기 올해 1학기 전반부 수업주제는 ‘정체성·자아존중감 → 타인에 대한 이해, 다름의 인정, 상호존중’ 이었다(표 1 참조). 첫 시간에 자신의 영어실력·만족도·필요성 등에 대한 자각 정도와 간단한 모의고사 유형의 지필평가를 활용하여 진단평가를 해보니 우리 학교 학생들은 영어 실력이 높은 학생들도 자신감이 매우 낮고, 영어 공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외거주 경험이 많은 극상위권 학생들을 주변에서 보고 자라온 강남권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유창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기가 죽고, 자신감을 잃으면서 오히려 학습의욕이 꺾이는 경우가 많아서 타지역이라면 중간은 할 텐데 오히려 일찍부터 영어를 포기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다. 그래서 첫 수업의 교재는 영어라는 것이 시험성적대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례를 알려주는 TED Talk를 준비했다. ● 수업교재 ① _ TED Talk(테드 토크) 영어 레벨이 높아도 자신감이 없고 틀리지 않게 말하는 것에만 신경 쓰는 사람보다 레벨이 낮아도 자기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감 있게 소통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내용의 연설이며, 다양하고 재미있는 여러 상황이 제시되어 있다. 이 연설을 배우는 학생들이 학교 영어시험에서 따지는 정확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영어공부를 포기하지 않기를, 영어학습자로서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영어학습자의 자존감을 찾을 수 있기를, 영어성적이 부족한 친구를 무시하지 않기를, 그리고 언어가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느끼기를 바라며 교재를 만들었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마치고 쓰게 한 성찰록에 바로 이 내용을 적은 학생이 있었다. 영상에 등장하는 ‘영어 레벨은 낮아도 자신감 있게 소통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인물’이 Faizal인데 ‘Faizal과는 달리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없던 예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자신감과 흥미가 생겨서 스스로 영어공부를 찾아서 할 정도가 되었다’라며 ‘수업 외적으로, 수업시간에 다룬 지문들이 제 생각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는 학생의 소감이었다. 영어라는 교과가 영어라는 언어 지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교과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도구이길 바라는 수업의도를 알아준 말이라 참으로 기특하고 고마웠다. ● 수업교재 ② _ The Rabbit and The Turtle, New Version(토끼와 거북이 새로운 버전) 두 번째 다룬 수업교재는 ‘The Rabbit and The Turtle, New Version’이다. 다들 알고 있는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의 새로운 버전으로, 자만한 토끼를 이긴 거북이를 보며 꾸준히 성실한 사람이 이긴다는 교훈을 얻는다는 원래 이야기에 뒤 이어 세 번의 경주를 더 하게 되는 내용이다. 경주에서 진 토끼는 자신이 재능이 있음에도 졌다는 사실이 분해서 다시 경주를 제안하고, 이번에는 잠들지 않아 당연히 이기게 된다. 그러자 이번에는 거북이가 곰곰이 생각한다. 지금의 경주 포맷에서는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토끼에게 다른 루트로 경주해보자고 제안한다. 달리다 보니 결승점이 강 건너편이어서 토끼는 망연자실, 더 이상 진행을 못하고 느리게 오던 거북이는 유유히 강물을 쌩하니 헤엄쳐 건너가 이번에는 거북이가 이기게 된다. 이 경주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자기의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알고, 자기에게 유리한 경주를 제안할 수 있어야 이긴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토끼와 거북이는 여러 번의 경주를 하면서 각자가 잘하는 영역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 경주를 하게 되는데, 육지에서는 토끼가 거북이를 업고 달리고 강물에서는 거북이가 토끼를 업고 헤엄쳐 갔더니 결과는 놀라웠다. 그 어떤 때보다 놀라운 성과, 신기록이 나왔고 둘은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이 부분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나의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이든 모든 영역에서 우수할 수는 없으니 다른 사람의 핵심역량이 무엇인지도 알아서 함께 협업하는 팀워크가 바로 성공의 열쇠라는 것이다. 협업해야 한다.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는 백 마디 말보다 이런 교재로 수업을 하는 것이 훨씬 학생들에게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수업을 진행하면서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늘 토끼에게 유리한 경주장을 세팅해 두었으며, “토끼는 빠르다, 거북이는 느리다”라고 선언하지 않았는지 반성하였다. 거북이는 느린 것이 아니라 ‘물에서 빠른 것’인데 말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하고 있는 교육과 평가가 일방적으로 일부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었는지, 다양한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평가는 무엇인지 많이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 수업교재 ③ _ Multiple Intelligence(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 이어서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배운 후, 자신의 강점 지능 테스트를 하고 각각의 다른 강점지능에 따라 어떤 학습법이 도움이 되는지도 공부했다. 수업 평가하기 ● 평가 ① _ 초안 작성하기 이번 평가과정에서 새롭게 적용한 것은 초안 작성의 틀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예전에는 말로 설명하고, 학생들이 알아서 쓰게 했다면 이번에는 아예 문단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주고 서론과 본론, 결론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충분히 학습을 한 후 공간을 분할해 주었더니 학생들의 글이 좀 더 에세이 형식을 갖춘 글이 되었다. 학생들 글의 서론에서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질문들이 많이 등장하고 마무리에 자신들이 배운 내용을 요약·정리하는 등 결론다운 결론을 작성한 완성된 형태의 글이 예년보다 많아졌다. 학생들의 초안은 교사와 동료들의 피드백을 받은 후 수정·보완 작업을 거쳐 다음 차시에 최종안을 다시 작성하게 되고, 최종 결과물뿐만 아니라 각 단계가 평가에 반영된다. 교사의 피드백은 상세하고 구체적인 것이 이상적이겠으나 너무 깊숙이 개입하는 것이 최종 결과물에 대한 형평성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서 필자는 핵심적인 내용이 누락되어 있거나 크게 눈에 띄는 내용에 대해서만 글로 남겨주고 수정사항이 많은 경우는 직접 불러 이야기하기도 한다. 시간절약과 업무절감을 위해 잘한 학생들은 교사의 글 대신 칭찬스티커를 활용하기도 한다. ● 평가 ② _ 동료 평가(상호피드백) 동료의 글을 채점 기준표에 대입해서 읽어보며 평가해보고, 피드백을 주는 것은 본인의 역량 신장에 매우 도움이 되는 방법이므로 교육적 평가에서 꼭 필요한 단계이다. 하지만 항상 시간이 부족해서 제대로 하기 어렵고, 본교처럼 학생들의 학력격차가 큰 경우 상호피드백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서 글쓰기를 동일한 시간 내에 끝낸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끼리라도 교차점검 해보도록 하였다. 초안 작성과 피드백 점검 후 역시 수업시간 내에 최종안을 작성하고 대본 점검이 끝나면 내용을 외워 일주일 후 청중 앞에서 발표하는 말하기 평가를 하게 되는데, 이때 한 번 더 내용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본교는 학생들이 외부의 손길을 탈 가능성이 유난히 많은 지역이라 모든 평가는 수업 시간 중에 진행하려 하고 있어서 수업 시간 중에 작성한 대본과 똑같지 않으면 남이 수정해 줄 수 있는 여지가 있으므로 아예 수정 없이 그대로 외우게 하는게 어떨까 하는 논의도 있었다. 하지만 평가의 공정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평가과정을 통한 학생의 배움과 성장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말하기가 그대로 외우는 것보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대본의 원래 내용과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조금씩 달리 표현하는 것도 허용하기로 했다. 이번 수행평가를 하면서 같은 내용이어도 글로 만나는 학생과 말로 만나는 학생이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수업시간에 늘 떠들어서 수업을 방해하고 말대답을 해서 참 미웠던 학생인데 발표할 때 유창한 영어가 아니어도 생글생글 웃으며 적절한 손동작으로 청중의 주의를 모으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매력을 발산하니 글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장점이 보여서 흥미로웠다. ● 실제 학생 작품 소개 다음은 영어 성적이 중하위권인 학생의 글이다. 간혹 적절하지 않은 어휘의 선택이나 어색한 표현들이 보이지만, 네 문단의 글을 구조적으로 잘 써내려갔다. 도입부에서 “여러분, 똑똑해지고 싶은가요? 당신은 똑똑하고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똑똑합니다. 지능은 우리를 고유한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고유합니다. 그것이 이 발표에서 저와 제 파트너의 특별한 능력을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라고 적었다. 매끄럽지 않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가 잘 드러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긍정적이고 예뻐서 다음에 이어질 글이 궁금해졌다. 서론에 인사만 한 줄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역시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가르치는 친절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성찰록 작성하기 중간고사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를 마치면서 학생들에게 성찰록을 작성하게 했다. 존 듀이가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대한 성찰을 통해 배운다고 말했듯이, 자기가 틀린 문항을 분석해보고 앞으로의 공부 방법, 현재까지 하고 있는 수행평가 준비도 등을 점검해 보도록 하는 것은 학습자의 메타인지역량 향상을 위해 꼭 필요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올해부터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학습현황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내가 학부모가 되어보니 내 아이의 학교생활이 매우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어떤 내용을 배우고 있는지, 아이의 수업태도는 어떤지, 어떤 것들을 평가하고 있고, 그런 것들을 꾸준히 성실하게 잘 준비하고는 있는지…. 아마 아들 가진 부모님들은 더 궁금하실 것 같았다. 그리고 사교육 비중이 워낙 높은 지역이라 수업시간에는 태도가 매우 안 좋고 열심히 하지 않는데 시험 성적은 좋은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 학생들의 경우 부모님들이 더더욱 아이가 잘하고 있으리라 믿고 학교생활기록부도 당연히 잘 적히리라 기대하고 있을 것 같아 상황을 미리 알려드리고 가정에서 함께 지도하여 아이의 학습태도를 조속히 개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예 다 포기한 학생들은 성찰록도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고, 부모님 확인도 당연히 받아오지 않았고, 부모님 사인을 위조해 낸 학생들도 많았지만, 단 몇 명이라도 긍정적인 기회가 된다면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위로해본다. 세계시민교육 프로젝트 영어과 수업의 연간계획 막상 1학기 융합수업을 운영해보니 여러 교과가 서로 수업시기를 절묘하게 맞추기 어려웠고, 자아성찰이라는 주제를 짝과 공유하기 힘들었던 점 등 매끄럽게 서로 맞물려 진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 주제를 각 교과 방식으로 다루면서 학생들은 좀 더 깊이 있는 학습이 되었으리라 기대해본다. 1학기에 아쉬웠던 점들을 보완해서 2학기 수행평가는 여러 교과가 서로 도움이 되도록 구상하려고 한다. 올해 세계시민교육 프로젝트 영어과 수업의 연간계획은 다음과 같다.
“솔직히 처음엔 조금 불안했어요. 그런데 한 학기 만에 애가 달라지더라고요. 학교 가는 게 즐겁대요. 그 어렵다던 CAD 자격증도 거뜬히 따내고. 이젠 애 아빠도 네 꿈을 맘껏 펼쳐보라며 토닥여줍니다.” 서울 강서공고가 운영하는 학부모 평생교육프로그램에서 만난 우종선씨(50)는 “특성화고를 선택하기를 참 잘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 씨는 자녀가 일반고에 진학해 대학생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아이는 자꾸만 특성화고를 고집했다. 아빠까지 나서 만류해 봤지만 소용 없었다. 대학 졸업장보다 미래를 밝혀주는 자격증을 더 갖고 싶다는 당당한 소신에 결국 두 손 들 수밖에 없었다. 우 씨는 그러면서 자신도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이다 뭐다 하는데, 이제는 학력보다 능력이 우선인 시대가 오는 거 아닌가요. 대졸 백수가 넘쳐나는 세상이고 실력으로 승부하는 시대라는데 교육을 보는 가치관도 달라져야죠.” 특성화고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아직도 후진성을 띄고 있다. 대학 간판을 중시하는 학벌주의가 여전한 탓이다. 기성세대에게는 실업고란 단어에 더 익숙하다. 70~80년대 산업화 시대,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가는 학교로 이미지가 남아있는 것도 한몫한다. 하지만 세월이 변하고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는 특성화고로 우수한 학생들이 몰린다. 일찌감치 진로를 정하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려는 청춘들이 늘었다. 기회의 폭이 넓다 보니 직업 선택도 다양하다. 일반 기업체는 물론 공무원이나 공기업으로 진출도 활발하다. 대학 진학도 일반고보다 유리하다. 마음만 먹으면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게 특성화고의 매력이다. 서울 강서구 방화대로 47길 강서공업고등학교. 건축과, 친환경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과, VR콘텐츠디자인과 등 모두 4개과 600여 명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 미래를 개척하는 직업교육의 산실이다. 내년에는 4차 산업혁명에 맞춰 학과 재구조화를 추진, 친환경에너지화학과를 스마트케미컬과로 개편한다. 새로운 산업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 직업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함이다. 학생·학부모 만족도 최우수 … 학생들 자격증 3개는 기본 서울 외곽에 자리 잡은 작은 학교지만 성공한 특성화고로 정평이 나있다.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는 수치로 확인된다. 1년에 한 번씩 하는 학교운영만족도 평가는 5.0 만점에 학생은 4,15, 학부모는 4.32, 교직원 4.66점을 각각 기록했다. 대부분 학교가 3점대에 머무르는 것과 비교하면 월등한 수치다. 입학 당시 가졌던 학부모의 불안은 3년 만에 신뢰와 만족으로 변했다. 가장 큰 원동력은 학생들의 변화였다. “교사들도 놀라요. 졸업 때 의젓해진 모습을 보면 저 아이들이 정말 우리가 가르친 애들이 맞는지 감탄하곤 하죠.” 이주암 교장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모든 교사들이 지극정성을 쏟는다고 했다. 직업인으로서 갖춰야 할 기능은 물론 인성교육과 기초소양교육까지, 시쳇말로 끼고 앉아 가르친다. 이 교장은 한 아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강서공고의 최대 강점으로 꼽았다. “조금 더 감싸주고, 챙겨주고, 인정하고, 공감하면서 교사와 학생이 동행하는 교육, 그것이 강서공고”라고 말했다. 사실이다. 이 학교는 신입생이 들어오면 일주일 정도 단축 수업을 해가며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학생 상담에 나선다. 한시라도 빨리 학생을 파악, 각자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다. 교사 1명 당 3~5명의 학생을 묶어 수시로 영화 보고 운동하고 밥도 같이 먹으며 진로 상담을 통해 고민도 들어준다. 진로가 명확해야 목표의식이 생겨 공부도 열심히 한다는 생각에 교사들은 학생들과 교감을 무척 중시한다. 정관용 교사는 “우리나라를 떠받치는 산업역군을 길러낸다는 사명감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들이 사회에 나가 행복한 생활을 누리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침마다 반가운 인사 건네는 ‘등교맞이’… 행복한 학교로 탈바꿈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고 했던가. 제자들을 향한 교사들의 마음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대표적인 게 등교맞이 행사다. 아침마다 교장, 교감 및 교사들이 교문앞에서 학생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며 간식을 제공한다. 지적하고 지적받는 아침등교 대신 교사와 학생이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으로 탈바꿈 했다. 김민용 교감은 “학생들에게 행복이 넘치는 학교, 등교하고 싶은 학교, 함께하는 학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마련했는데 효과는 기대 이상”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학생들은 학교 가는 게 즐겁다고 입을 모았다. 자신들을 믿고 맡겨주는 학교, 자치활동을 충분히 보장해주는 학교이기에 더욱 그렇다고 했다. 지난 3월 4일 강서공고 입학식은 순전히 학생들이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날 행사에는 이례적으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까지 참석, 학생들을 멋진 솜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에너지 전문가가 꿈이라는 김민영 양(고3)은 “학생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학교가 충분히 뒷 받침 해 주고 있다”며 “이런 활동들이 사회에 나가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극복해 내는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작지만 강한 학교 강서공고의 또 다른 강점은 내실 있는 교육이다. 학생들의 졸업 후 진로 실적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작년 취업률은 자그마치 61%, 대학 진학률은 30% 가까이 된다. 비공식 집계이기는 하지만 취업률은 서울시내 1위다. 교사들의 열정과 학교의 전폭적 지원, 그리고 학생들 수준에 맞춰 기초부터 탄탄히 다져가는 체계적인 교육과정이 삼위일체를 이룬 결과다. 이뿐 아니다. 이 학교 졸업생들의 자격증 취득률은 300%. 학생 한 명 당 3개의 자격증을 가진 셈이다. 비결이 뭘까? 강서공고는 매력적인 직업계고 육성사업 즉, 매직 프로그램은 드론 레이싱 대회를 비롯 50여 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영미문화체험, 인문학 아카데미, 화장품 만들기, 인성캠프 등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들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공부만 시킨다고 생각하면 오산. 매직 프로그램에는 학생들의 마음껏 끼를 발산할 수 있도록 취미 활동도 골고루 담겨있다. 체력 향상을 위한 배드민턴반부터 1인 1악기 다루기, 동아리 밴드 활동, 사랑의 하모니란 이름의 합창대회까지 풍성하다. 학교 본관 건물엔 학생들이 언제든 공연할 수 있는 쉼터라운지가 설치돼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 각종 댄스와 노래, 랩, 그룹사운드 공연이 펼쳐진다. 눈여겨볼 만한 것 중에는 FDA 프로그램이란 것도 있다. 학생들의 기초역량을 탄탄히 다진 후 자격증 취득과 취업까지 연계시키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이다.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영어와 수학에 대한 기초학력 다지기. 학생들 눈높이에 맞춰 교사들이 자체 제작한 교재를 이용, 인증제를 통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간다. 졸업할 때쯤이면 웬만한 ‘생존영어’는 구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이 같은 노력이 알려지면서 강서공고는 교육부 지정, 특성화고 영어 시범학교로 운영되기도 했다. 다양한 전공동아리 활동도 학생들의 취업과 진학에 결정적 도움을 준다. 전문교과의 프로젝트 수업 활성화로 발표수업, 협동학습 등 자기주도적인 전문능력을 배양해 나가는 것이 특징. 취업에 성공한 학생들은 특히 전공동아리 활동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청에 근무하고 있는 강민우 씨. 그는 2학년 때 공무원 대비반에 들어가 공부한 덕에 명문대 출신도 어렵다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방과후에 한두 시간씩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 것이 효과가 컸어요. 무엇보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시험에 그대로 출제되는 바람에 깜짝 놀랐죠” 그는 “시험장에서 강서공고 선생님들의 실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며 “참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졸업성적이 내신 60%대였다는 강 씨. 그는 특히 중3과 고1 담임선생님 두 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고교시절 공부가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민우야 넌 잘 할 거야”라며 늘 격려해주던 고 1학년 담임선생님. 그리고 고등학교 선택을 놓고 고민할 때 자신의 손을 잡고 강서공고까지 직접 데려다준 중학교 선생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삼성전자에 입사한 송하명 씨. 그 역시 중학교 땐 공부에 흥미가 없는 중하위권 학생이었지만 강서공고에 진학해 완전히 새사람이 된 케이스다. 송 씨는 공부에 대한 의지가 흔들릴 때마다 “미래의 너를 상상하라”는 선생님 말씀을 새기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매일 학교에 20분씩 일찍 오는 성실한 자세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지금 국내 최고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서울 변두리 작은 학교에서 신흥 명문 특성화고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처럼 제자 사랑에 전력투구한 88명의 교직원들이 열정이 밑거름됐다. 이 교장은 지구를 떠받치는 아틀라스처럼 헌신적인 선생님들이 있기에 늘 든든하다고 했다. “학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최대한 밀어주는 게 학교의 역할이죠. 저희에게 아이를 맡겨주시면 우리 학교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지 않게 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이 교장은 “학생들의 능력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3년이면 충분한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특성화고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언제든 강서공고를 찾아 달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1. 용감한 여자들 지리교사가 된 여자 셋이 모였다. 한 명은 동기였고 한 명은 선배였다. 넘치는 열정으로 여행지를 논의하던 중 지리교사라면 아프리카 대륙 한번 밟아 봐야 한다는 생각에 이집트를 택했다. 하지만 털털한 성격이 매력인 우리 셋은 6개월 전 비행기티켓만 구매해놓고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전공을 살려 이집트 지도를 펴놓고 여행사 패키지 코스와 가이드북을 참고하여 카이로-바하리야 사막-아스완-아부심벨-룩소르-후르가다-다합-카이로 이렇게 경로와 루트맵(route map)만 작성해 놓고 방치해두었다. 그리고 대망의 여행 당일, 1월 1일 새해 첫 일출을 비행기 안에서 맞이하고 카이로(Cairo)의 한인 민박 이름만 달랑 알아온 우리는 어두컴컴한 밤에 낯선 도시에 떨어져 헤매고 말았다. 당시 제일 무식하게 용감했던 내가 길을 물어보고 다니고 술병을 든 아저씨가 길을 알려줘 겨우 민박을 찾았는데, 나중에 일행 두 명과 민박 주인아주머니로부터 걱정 어린 질책을 잔뜩 들었다. 민박에 빈방도 없어서 셋이 나누어져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우리가 딱했는지 주인아주머니가 이집트의 길 다방을 체험하게 해줬다.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는 술집을 대신해서 길거리 찻집을 많이 볼 수 있다. 첫 숙소를 한인 민박으로 정한 덕분에 편하게 한국어로 여행 정보를 압축해서 들으며 주인아주머니의 추천으로 물 담배인 시샤(shisha)를 체험해보았다. 숯을 넣어 향료(주로 과일 향)를 태우고 물을 이용해 담배연기를 한번 걸러 흡입하기 때문에 담배 냄새는 나지 않았다. 이집트는 하루에 2천만 개비의 담배가 소모되는 엄청난 애연 국가인데 시샤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도 즐겨찾기 때문에 히잡(hijab)을 쓰고 흡연하는 여성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다음날에는 다행히 세 명이 한방을 잡고 이집트의 지하철을 이용해보았다. 두 개의 라인이 운행되고 있었는데 지하철을 타니 남자들이 “쓰읍- 쓰읍” 소리를 내며 눈치도 안 보고 끝까지 시선을 떼지 않아서 너무 부담스러웠다. 옆 칸을 보니 여자들만 있는 것 같아 이동했는데 내려서 살펴보니 바로 여성 전용 칸이었다. 전동차 외벽에는 여성 전용 칸을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있고 혹시나 남자가 잘못 타면 여자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이집트의 여자들도 점점 용감해지고 있나 보다. #2. 한국 여자라면 25살의 나이차도 극복? 첫날 도착한 한인 민박의 주인아주머니와 얼핏 봐도 아들 뻘인 이집트 남자와의 결혼 예정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그 남자분의 친구는 내 이름을 ‘젊은 나’라는 뜻의 영어로 해석하고는 영~미~ 영~미~ 계속 부르며 내가 좋다고 카이로에 있는 내내 졸졸 쫓아다녔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안 사실인데 이집트에서는 남자가 결혼하기 위해서 여자 집에 결혼 지참금인 마흐로(mahr)를 보내야 한다고 한다. 평범한 가정의 남자들은 결혼하기 위해 평생 돈을 모으기도 한다니 적은 금액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외국 여성을 아내로 맞이할 때는 결혼 지참금을 보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난한 남성들은 국제결혼을 탈출구로 생각한다고 한다. 날 탈출구로 이용하려 했다니 괘씸한 이집트 남자! #3. 그곳에 가면 고정관념이 깨질 것이다! 바하리야(Bahariya) 사막에 가면 사막은 모래로만 이뤄져 있다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다. 보통 카이로에서 1박 2일의 현지 투어를 이용하는데, 사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오아시스, 화산재가 사막을 덮은 흑 사막, 석회석으로 덮인 백 사막, 앨러배스터(alabaster)라는 돌로 이뤄져 유리처럼 반짝이는 크리스털 사막, 샌드 보드를 탈 수 있는 사구, 버섯 바위 지대를 탐방한다. 저녁에는 베두인(Bedouin)이 들려주는 음악과 함께 식사를 하고 쏟아지는 별을 보며 사막의 아찔한 일교차를 밤새 몸으로 학습하고 덜덜 떨며 일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보기 힘들다는 전갈과 사막여우도 볼 수 있었다. 이집트의 랜드마크(landmark)인 스핑크스(Sphinx)는 상상의 동물로,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가지고 있으며 왕의 권력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런데 룩소르(Luxor)의 카르나크 신전(Karnak Temp)에서 양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를 보고 검색해보니 지역과 시대에 따라 모습과 성격이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숫자가 많고, 길거리에 널린 것이 스핑크스였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스핑크스는 카이로의 기자 지구에 있는 것으로, 가이드북의 설명에서 카프라 왕의 피라미드 앞에 있다고 되어 있고,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상으로도 피라미드 앞에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런데 피라미드 근처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스핑크스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선배가 몇 년 전 이집트에 홍수가 나 수몰 위험이 있기 때문에 스핑크스를 카이로 국립 박물관으로 이전했다는 논리적인 헛소문을 이야기해준 덕분에 스핑크스를 못 보고 돌아갈 뻔했다. 쿠푸 왕, 카프라 왕, 멘카우라 왕의 피라미드를 보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데 여자의 직감인지 여행자의 집착인지 왠지 스핑크스가 있을 것 같아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해본 결과, 우리의 생각보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거리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피라미드라고 다 규모가 큰 것이 아니었다. 유명한 세 개의 대 피라미드 주변에 우습게 장난처럼 쌓아진 세 개의 돌무더기들은 멘카우라 왕의 왕비들 피라미드라고 한다. 또한 가자 지구의 유명 3대 피라미드들은 평균 2.5톤의 돌이 230만 개나 쌓아 올려 있고 각 능선이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으며 파라오의 미라가 놓이는 무덤이 정확히 무게 중심점과 일치해 불가사의한 건축물로 꼽힌다. 왕의 권력이 얼마나 강했으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이 크고 무거운 석재들을 옮기고 쌓았을까? 건축 과정에서 더운 날씨에 강도 높은 노동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많았을 테니 당연히 강제 동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피라미드 건설은 일종의 국가사업으로 나일강의 범람 기간 동안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농부들을 구제하는 정책이었다고 한다. #4. 걸레 빵과 코샤리 건조기후 지역인 이집트는 식재료의 한계로 다양한 음식을 맛보기 힘들었다. 대표적인 음식을 두 개만 뽑으라면 에이쉬(aish)와 코샤리(koshary)를 들 수 있다. 이집트 국민 음식인 에이쉬는 밀이 발효되고 화덕에서 익으며 부풀어 올라 겉으로는 두툼해 보이지만 안이 비어있는 빵이다. 무슬림(Muslim)들이 식사를 할 때 음식이 식지 않도록 에이쉬로 감싸기도 하고 손에 묻은 기름기를 닦는 것을 보고 걸레 빵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백반 정식의 쌀밥처럼 어디에나 빠지지 않고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코샤리는 쌀, 마카로니와 렌틸콩 위에 튀긴 양파와 마늘을 올려주고 토마토소스나 고추소스에 쓱쓱 비벼 먹는 음식인데, 향신료에 민감한 내 입맛에도 잘 맞았다. ‘핀잔’의 잘못된 표현인 일본어 ‘쿠사리’를 연상케 하여 여행 내내 우리의 말장난 대상이 되었다. #5. 뭐니 뭐니 해도 머니 이집트에서는 더러운 돈은 받지 말아야 한다.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찢어진 돈을 받았다가 그 돈을 다시 사용하려고 하면 돈 상태가 안 좋다며 받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낙타, 배, 택시 등 교통수단을 타고 잔돈이 없으면 큰돈을 통째로 받으려는 ‘못된 심보’의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소액 지폐도 꼭꼭 챙겨야 한다. 피라미드 근처의 낙타 몰이꾼도 1달러만 달라고 하다가 점점 멀리 낙타를 몰고 가 10달러를 요구하고 큰돈을 내면 잔돈을 안 준다고 하니 조심할 것! 그리고 이집트에서는 유럽 식민지의 영향도 있고, 기독교의 11조와 비슷한 무슬림들의 의무 중 하나인 사회적 기부, 쟈카드(救貧稅) 영향도 있어서 여행 중에 쉽게 ‘박쉬쉬(Bakschisch)’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팁 문화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화장실을 갈 때도 박쉬쉬! 이집트의 기념품 구입의 성지인 칸 엔칼릴리(Khan al-Khalili) 시장에 가서도 박쉬쉬! 돈을 내고 배를 타도, 내릴 때 박쉬쉬! 심지어 지나가던 꼬마가 그냥 빈손을 내밀며 박쉬쉬! #6. 파란 나라, 이집트 국토의 95%가 사막인데, 이집트 여행 후에 내 뇌리에 강하게 남은 이집트의 이미지는 파란색이었다. 파란 나라 이집트의 면모를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4대 문명을 발생시킬 정도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나일강(Nile river)! 연중 내내 마르지 않는 나일강은 이집트에겐 선물 같은 존재다. 하지만 석회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식수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물값이 기름값보다 비싸다. 둘째, 이집트에서는 물이 물을 부른다. 배수구 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에, 연 100mm도 안 되는 강수량이지만 비가 조금 많이 오면 물이 넘쳐나서 난장판이다. 보통은 금방 그치기 때문에 아무도 우산을 쓰지는 않았다. 셋째, 아스완(Aswan).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는 야간 침대 기차(호텔 열차)가 있어 자면서 이동한다면 여행시간을 벌 수 있다. 아스완댐으로 유명해진 이곳은 ‘하얀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라는 드라마 대사를 연상시킨다. 카이로에서 본 매연에 휩싸인 회색빛 나일강이 아닌 이집트 전통 돛단배인 펠루카(felucca)의 흰 돛과 대비되는 파란 나일강물을 볼 수 있다. 넷째,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 대륙을 나누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지중해와 인도양 사이의 홍해를 느낄 수 있는 후루가다(Hurghada). 이곳에는 고급 리조트들이 많고, 각 리조트들은 전용 비치를 지니고 있어 한적함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룩소르에서 육로로 이동했지만, 시간이 없고 여행경비에 여유가 있다면 카이로와 후루가다를 연결하는 항공편이 하루에도 여러 편 있으니 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 근처의 재래시장 수크(souk)에 들러보면 시골 장터의 정겨움과 이집트의 향취도 느낄 수 있다. 끝으로, 이집트 시나이반도 남동쪽에 위치한 다합(Dahab). 시나이반도의 경비가 삼엄해 버스로 통과하며 총을 들고 보초 서는 군인들의 모습에 잔뜩 긴장했었는데, 세계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 불리는 이유를 곧 깨닫게 되었다. ‘다합'은 아랍어로 금을 의미하는데 해안이 황금빛 모래로 덮여있어 이런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깨끗한 물 아래로 새하얀 산호초와 물고기들이 보여 스노클링을 하기 좋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윈드서핑을 즐기기에 적합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 블루 홀(Bule hole)이 있어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 없는 구멍(hole) 같은 관광지이다.
일본 마다하고 조선인 최초로 스웨덴 유학 택해 5개 국어 능통… 간디 등 인도 민족운동가와도 교분 기층 민중 삶 지향하며 헌신하다 28세 나이에 요절 “강인한 민족정신·도전정신에 무게 있는 인격자” 최영숙은 한국 근대사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최영숙은 중국과 스웨덴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스웨덴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조선인 여성이었다.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영어, 독일어, 스웨덴어, 중국어, 일본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했으며 중국,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 등지에서 유학과 체류를 통해 당시로는 매우 드문 국제 감각과 인맥을 가진 인물이었다. 스웨덴 유학에서 돌아와서도 여성과 노동자, 농민에 바탕을 둔 살아 있는 경제학의 실천을 주장하면서 경제운동과 노동운동의 영역에서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다가 불행히도 28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최영숙은 1905년 경기도 여주의 중류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최창엽은 일찍이 농사를 정리하고 포목상을 차려 상당한 재산을 모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8살 연하라는 사실만 알려지고 있다. 최영숙은 1914년에 고향인 여주에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부모가 여자가 보통학교나 졸업했으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으로 상급학교에 보내기를 주저하자 두 사람의 친구와 함께 백일기도를 시작해 부모의 승낙을 얻어내 서울에 있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1922년 이화여고보를 졸업하고 이천에서 교사 생활을 잠깐 하다가 같은 해 9월 중국의 남경으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 조선과 학제가 달랐기 때문에 중국에서 최영숙은 명덕학교를 거쳐 회문여자중학교에서 다시 중학과정을 거쳐야 했다. 회문여학교 재학 시절 최영숙은 뛰어난 영어, 독일어 능력을 보였고 아울러 성악과 피아노 연주에도 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회문여중에 다니면서 최영숙은 흥사단에서 활동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이 선택하던 일본 유학을 남달리 싫어했던 사실에서 보듯 민족정신이 투철하고 총명한 그녀를 안창호는 남달리 아꼈다. 이 시절에 그녀는 흥사단이 주재한 음악회 행사의 하나로 개최된 ‘국교단절’이라는 연극에서 남자 노비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26년 7월에 그녀는 4년 동안의 중국 생활을 정리하고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에는 낯설었던 스웨덴을 선택한 이유는 엘렌 케이(Ellen Karolina Sofia Key)에 대한 호감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스웨덴 출신 엘렌 케이는 1920년대 동아시아에서 연애론과 자유이혼론, 그리고 모성주의 등과 관련한 여권론자의 대명사로서 많은 영향을 미친 사상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스웨덴 유학 무렵 최영숙은 엘렌 케이가 주장한 연애의 자유보다도 사회주의 사상을 배우는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사실 스웨덴 유학을 떠나기 전 중국에서부터 그녀는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했으며, 1926년 7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가기 위해 상하이에서 다렌을 거쳐 하얼빈으로 가던 중 사회주의 서적을 과다하게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다렌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스웨덴에서 그녀는 여성,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 노동자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스웨덴의 전반적인 사회 사정과 조직을 연구하면서 실제 삶의 현장을 경험하고자 한 것이다. 이 시기 그녀는 스웨덴 신문에 글을 싣기도 하고 민중공회당에서 ‘동양여자의 해방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남녀평등이 보장돼 자유롭고 즐거운 가정생활과 사회활동을 구가하는 스웨덴 사회에서 그녀는 많은 것을 배웠다. 1927년 스톡홀름대학에 입학한 후 황태자 도서실에서 동양 사료의 정리 업무를 위한 연구보조원으로 일한 인연을 계기로 1935년 스톡홀름대학 자연과학부 학장 스텐 베르크만 박사가 동식물 표본을 수집하기 위해 조선을 방문했을 때 그녀의 안부를 물었던 사실에서 보듯이 그녀는 유학 중에 스웨덴 지식인과 폭넓은 교유 관계를 형성했다. 최영숙의 국제주의적 인맥은 스웨덴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인도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스웨덴에서 공부할 때 그녀는 뱅골지방 브라만 명문가 태생의 시인이자 사회운동가이며 정치가로서 인도 국민회의 최초로 여성 의장을 지낸 나이두(Sarojini Naidu)와 잘 알고 지냈고, 이 인연으로 1931년 7월 초순 인도 국민회의 연설 집회에 참석해 간디와 대면하고 교유했다. 향후 귀국해서도 그녀는 “몇 년 전까지도 몹시 우매했던 인도 여성들이 지금은 한갓 국민운동뿐만 아니라 계급 타파 운동을 겸한 국민운동에 전력하고 있다”고 인도의 현황을 피력했다. 1931년 4월 스톡홀름대학에서 경제학사 학위를 받은 최영숙은 곧이어 귀국길에 덴마크, 러시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이집트, 인도, 베트남 등 세계 20여 개국을 여행했다. 평생을 가난에 시달리던 최영숙은 여정의 중간에서 여행 경비가 떨어져서 인도에 일정 기간 체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에 머무는 동안 최영숙은 간디나 나이두 같은 저명한 민족운동가들과 교분을 쌓았다. 아울러 그녀는 인도 청년과 사랑에 빠지게 됐다. 최영숙이 스웨덴에서 잘 알고 지냈던 나이두 여사의 생질인 이 청년은 1931년 그녀가 스웨덴을 떠나 유럽 각국을 거쳐 이집트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같은 배에서 만난 사이였다. 아마 이 청년의 권유도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의 여행 경비도 마땅치 않았던 최영숙은 인도에 일정 시간 머물면서 다음 여정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인도에 머무는 동안 이 청년과 가까워져서 현지에서 결혼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미루어 보면 현지에서 아주 정착할 생각이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쨌든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이길 수 없었던 최영숙은 귀국길에 올랐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귀국 당시에 아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전통 가부장제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당시의 사회 실정에서 외국인과의 결혼은 당사자의 부모는 물론이고 일반사회의 관습으로 보더라도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결혼은 생전에 알려지지 않다가 그녀의 죽음 이후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신여성이 외국 청년과 연애를 하고 사생아를 출산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선정적 언론의 집중적 주목을 받았으며 의례 그렇듯 무수한 악의적 왜곡과 비방이 뒤따랐다.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은 사랑의 실천은 그녀의 국제주의적 지향이나 세계에 대한 진정성 어린 탐색과 문화 상대주의의 체현 등으로 평가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신문과 잡지들은 이런 사실에 대한 평가에 무지하거나 인색했다. 아울러 이 사건이 조선 사회에 야기하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의 하나로 인도 청년의 아버지가 조선인이라는 이야기가 유포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 청년의 이름도 애초의 마하드 젠나에서 한국식 이름인 로(盧, Row) 씨로 소개되기도 했다. 최영숙의 절친한 친구 임효정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 이야기의 진위는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다. 1931년 11월에 귀국한 최영숙은 비록 6개월 정도에 지나지 않는 짧은 시기를 살다 갔지만 크게 세 부문의 영역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하나는 일제 강점기에 보편적으로 당면한 민족문제다. 일본 유학을 혐오할 만큼 일본에 대한 반감이 컸으며 흥사단에서의 활동이나 스웨덴 유학 중에도 그녀는 늘 민족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다. 귀국 이후에도 그녀는 조선 민족의 경제생활을 옹호하고 보장하는 데 기초를 둔 민족적 중심 단체의 조직을 주장했다. 두 번째로는 여성 운동 영역에서의 활동이다. 스웨덴에서 귀국하기 이전인 1931년 1월 그녀는 동우회에 가입해 귀국한 후인 1932년 경성 여자 소조에서 활동했는가 하면, 낙원동 여자소비조합을 인수해 교남동에 매장을 개설해 소비자 운동을 전개했다. 나아가서 여성들의 경제 지식과 의복 제도의 개량, 시간 경제 관념을 실천할 것을 주장하는 계몽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앞의 민족운동과 여성 운동의 영역에서 최영숙은 김활란이나 박인덕, 황애시덕과 같은 민족주의 계열 여성들과 주로 교유하면서 교육과 지식 보급, 소비자 운동이나 의복 개량, 시간 준수 등의 합법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계몽운동에 노력을 기울였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주된 관심은 민중에 대한 헌신에 있었다. 중국과 스웨덴 유학 시절 그녀는 사회주의가 지닌 매력에 빠져들었고 스웨덴에서 여성 노동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귀국한 이후 그녀는 “경제 운동과 노동운동에 헌신해 살아 있는 과학인 경제학을 현실에서 실천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히고 있다. 그녀는 경제학의 정당한 연구는 프롤레타리아 경제학에 있다고 믿었다. 여성 문제와 아울러 노동자와 농민 문제에 특히 관심을 가진 까닭이다. 1930년 4월 2일의 일기장에서 그녀는 “조선의 걸인들을 모아놓고 노동의 신성을 가르치며 크나큰 작업장을 열어 놓고 그들에게 일을 주겠다”면서 나아가 자신이 직접 공장 노동자가 돼 이들과 함께 노동운동을 할 의지를 피력했다. 비록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1980년대 이후 이른바 노학연대에서 학출 노동자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아울러 그녀는 가난한 농민의 교육에 관심을 두고 노동하는 청년 남녀의 몸과 정신을 수양해 삶의 길을 찾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공민학교 설립이나 공민독본, 농민독본의 편찬에 착수했다. 낙원동의 여자소비조합이 경영난 등으로 곤란을 겪게 되자 개인적인 손해를 볼 줄 뻔히 알면서도 돈을 빌려 인수한 다음 교남동에 매장을 개설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최영숙은 당시로는 매우 드물게 국제적 지향과 비전을 지니고 이를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문화 상대주의에 입각해 자민족 중심주의나 배타적 인종주의를 거부한 열린 세계인이기도 했다. 사회주의 사상에 매료돼 프롤레타리아 경제학을 주창하면서 여성과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과 함께 하는 삶을 지향했다. 6개월에 지나지 않는 짧은 시간을 돌아온 고국에서 보낸 그녀의 삶은 주위의 평판이나 사회적 명망, 자신의 이해는 말할 것도 없고 스스로의 생계조차 돌보지 않는 전폭적인 헌신의 나날이었다. 일상의 굶주림과 결핍, 그로인한 영양부족과 각기병, 완고한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절망, 그리고 아이의 출산과 주위로부터의 시선 등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이 아마도 그녀를 때 이른 죽음으로 몰고 갔을 것이다. 예기치 않은 요절로 자신의 꿈과 비전을 실현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녀는 강한 민족정신과 끊임없는 도전정신, 강인한 의지를 통한 인간성 실현의 전범이 됐다. 그녀가 죽은 지 2개월이 지난 1932년 6월 ‘동광’지(제34호)는 “최영숙 여사의 열정과 용단과 자립성은 한 가지 큰 뜻을 위해 통일 조화돼 있다. 재주는 일·중·영·불·서(일본어·중국어·영어·프랑스어·스웨덴어)에 능통하고 연구는 경제학에 깊다. 이 모든 것보다도 그를 여자로서 여자답게 하고 세상으로 하여금 장래의 촉망을 갖게 하던 것은 실로 그의 무게 있는 인격”이라고 평하면서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⑨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 1865년 9월 19일 미국 뉴욕주 셜리번카운티의 작은 마을 리버티에서 한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름, 그러나 익숙해져야 할 이름 로제타 셔우드(Rosetta Sherwood)다. 로제타는 리버티와 오스웨고에 있는 사범학교를 졸업해 초등과 중등 교사 자격을 얻은 후 1년 동안 체스넛 릿지(Chestnut Ridge)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886년 펜실베니아 여자의과대학에 진학한 것은 그녀의 새로운 꿈인 의료선교사가 되기 위해서였다. 1889년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로제타는 1년 간 뉴욕의 빈민가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중 훗날 남편이 된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 Hall) 박사를 만난다. 그의 청혼을 잠시 물리친 로제타는 자신의 꿈을 위해 1890년 8월 첫 봉사지역인 조선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자신의 25번째 생일을 배에서 맞으며 제물포항에 도착한 것은 그해 10월 13일이었다. 이튿날 가마를 타고 그녀가 그때까지 본 도시 중에서 가장 더럽고 보잘 것 없는 도시 서울에 도착했다. 그녀를 맞이한 사람은 조선 최초의 여학교 이화학당의 설립자 매리 스크랜튼(Mary Scranton, 1832-1909)이었다. 로제타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전문병원 보구여관(保救女館)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서양의 경우 교회 옆에 학교가 세워지는 모습으로 근대교육이 시작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선교사들이 세운 근대 학교 옆에 교회와 병원이 세워지는 모습으로 근대가 시작됐다. 로제타의 진료를 도왔던 첫 조선인은 당시 이화학당에 머물던 26명의 소녀 중 한 명인 김점동이다. 점동은 일본인 친구 오와가와 함께 통역과 심부름으로 로제타의 진료를 도왔다. 로제타는 점동에 대해 “날이면 날마다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배우게 한다”고 일기에 쓸 정도로 그녀를 정말 사랑했다. 훗날 한국 최초의 여자 의사가 된 박에스더가 바로 점동이다. 로제타가 진료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 화상으로 손가락 세 개가 손바닥에 붙어버린 열여섯 살 조선 여자아이의 수술을 위해 자신의 피부 세 조각을 떼어냈다. 조선 아이의 피부에 서양 백인의 피부를 이식한 최초의 일이었다. 여자 아이이 손은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고 조선인들의 마음은 로제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로제타는 조선 여성에 대한 치료 활동 이외에도 주일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1891년 초부터는 의학교실을 열었다. 조선에서 여성을 위한 첫 서양 의학교육은 이런 모습으로 시작됐다. 그 즈음 로제타는 감옥에서 나온 조선 여성 하나를 데려와 입원시켰다. 과부였던 그녀는 노비인 조카가 도망쳐 사랑하는 이와 결혼하는 것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체포돼 감옥에 갇혔고, 남자 죄수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사경을 헤매던 상태였다. 이를 지켜본 로제타는 조선인들의 문명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이 곧 자신의 사명이라고 다짐했다. 1891년 12월 17일 밤 로제타는 윌리엄 제임스 홀과 서울에서 재회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 6월 27일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됐는데 이는 서울에서 행해진 첫 서양인들의 국제결혼이었다. 윌리엄은 결혼 3개월 후에 새로운 선교지를 개척하라는 선교본부 지시에 따라 평양으로 떠났다. 당시 평양은 기독교 선교는 물론 외국인 거주가 금지된 위험 지역이었다. 두 사람이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사랑을 나누던 시절인 1893년 11월 10일 서울에서 아들 셔우드 홀이 태어났다. 1894년 4월 윌리엄 홀은 평양에 광성학교를 창설해 교육활동을 시작했다. 남쪽에서 전봉준이 중심이 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해 무장 봉기를 막 시작한 시점이었다. 윌리엄, 로제타, 셔우드가 평양으로 출발한 것은 광성학교가 문을 연지 한 달여가 지난 1894년 5월 8일이었고, 동학교도들이 북진을 시작할 즈음이었다. 청일전쟁이 본격화됐고 평양은 전쟁터였다. 전쟁을 피해 로제타와 윌리엄은 서울로 내려왔다. 9월 15일 평양전투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전쟁은 막을 내렸고, 윌리엄은 다시 평양으로 복귀했다. 폐허가 된 평양에서 윌리엄은 환자 치료, 선교활동, 광성학교 운영에 열정을 쏟았다. 윌리엄은 과로로 이질에 걸렸고 서울로 이송되는 배에서 발진티푸스에 감염됐다. 그는 결국 서울에 도착한 며칠 후인 1894년 11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조선 땅에 묻은 로제타는 만1살이 된 셔우드, 뱃속에 든 태아, 그리고 결혼한 에스더부부와 함께 1894년 12월 미국으로 향했다. 고향에 도착해 낳은 둘째는 여아였고 이디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로제타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다시 조선 땅을 밟은 것은 3년이 지난 1897년 11월 10일로 조선은 사라지고 대한제국이 선포된 지 한 달이 되어갈 즈음이었다. 겨울을 서울에서 보낸 로제타가 가족과 함께 다시 평양으로 향한 것은 따듯한 봄 1898년 4월 29일이었다. 평양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5월 23일 윌리엄의 마지막 선물 이디스는 아빠를 데려갔던 병 이질에 걸려 고생을 하다 “이제 됐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엄마 곁을 떠났다. 이디스의 몸은 서울로 보내져 아빠 곁에 잠들었고 마음은 엄마 가슴에 남았다. 로제타는 이런 슬픔을 딛고 1898년 6월 18일 북쪽 지방 첫 여성전용 병원 광혜여원을 열었다. 로제타는 조선으로 돌아오기 전 미국에 있는 동안 모금을 해 1년 전에 남편을 기념하는 기홀병원을 열었었다. 훗날 이 두 병원은 합해져 평양연합기독병원이 됐고 김일성종합대학 부속병원을 거쳐 평양의학대학병원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어린이에 대한 로제타의 관심과 사랑은 이디스가 떠난 후 더욱 커졌다. 이즈음 훗날 여성독립운동가로 유명해진 황애덕의 어머니가 동생 황신덕을 출산한 후 사경을 헤매던 차에 로제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렇게 태어난 황신덕은 훗날 여성운동가가 돼 이태영, 이희호 등과 함께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생을 바치게 된다. 이디스가 떠나며 지갑에 남겨놓았던 2불 12.5센트를 종자돈으로 해 이디스 마가렛 어린이 병동 설립 모금이 시작됐고, 1899년 여름 병원이 착공됐다. 평양에 최초로 세워진 서양식 건물이었다. 이즈음 로제타의 교육자로서의 꿈은 1900년 평양외국인학교 설립, 그리고 맹인소녀들을 위한 수업으로 이어졌다. 로제타가 맹인교육을 처음으로 시도했던 것은 1894년 첫 평양 시절이었지만 당시에는 전문적 지식이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본격적으로 점자를 배웠고, 한글 점자를 개발했다. 평양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물렀던 서울에서 편찬한 한글 점자 교재로 본격적인 맹인교육을 할 수 있었다. 이 나라 특수교육의 초석을 놓은 것이다. 1901년 6월부터 1903년 3월까지 로제타는 셔우드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 긴 휴식을 취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간호사 마가렛 에드먼즈와 함께 1903년 12월 보구여관 부설 간호원양성학교를 창설했고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식 간호사 교육기관이 됐다. 로제타는 평양에 세운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오지로 의료여행 다니기를 멈추지 않았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여성,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맹인, 가장 추운 곳에 있는 어린이들을 찾아 다녔다. 로제타의 의료와 교육 활동을 10년 정도 지켜본 조선인들의 입에서 그녀를 “평양의 오마니”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병합 되던 그 해 4월, 20년 동안 로제타를 가장 사랑했던 조선 여성이었고, 조선인들이 ‘우리 의사’라고 불렀던 박에스더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서른넷의 나이였다. 박에스더의 죽음은 로제타의 아들 셔우드로 하여금 의사가 되려는 꿈을 꾸게 했고, 훗날 그로 하여금 우리나라 최초의 결핵요양병원 해주 구세병원을 세우게 했다. 조선의 가난한 여성으로 태어났던 김점동이 낳은 기적이다. 로제타가 세운 평양맹아학교의 맹남자부와 맹녀자부에는 평양뿐 아니라 전라남도에서도 유학을 올 정도였고, 매일신보는 특집 기사(1914. 2. 11)에서 이 학교를 평양의 행복이라고 칭했다. 로제타 홀의 가장 크고 오래된 꿈은 조선의 여성들에게 의학교육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여자의과대학을 설립하기 이전인 1914년에 조선총독부의원 부속의학강습소에 청강생 자격으로 세 명의 여학생들을 입학시킨 것도 로제타였다. 이때 입학생 세 명은 4년 후 조선에서 최초로 의사면허증을 받은 여성이 됐다. 광혜여원에서 로제타를 도와 간호사로 일하던 이그레이스는 의사 면허시험에 합격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개업의사가 됐다. 보구여관은 1912년에 동대문에 새로 세워진 해리스기념병원(현 이대부속병원)과 통합됐고 로제타는 1921년에 이 병원의 원장에 취임하며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이즈음 YMCA 총무를 맡고 있던 윤치호가 로제타를 자주 방문했고 1918년 일시 귀국하는 로제타를 남대문역에서 환송하기도 했다. 1926년 10월에 명월관에서 열린 로제타의 회갑연에 서울 각계각층의 조선인 대표들이 참석했던 것을 보면 로제타는 동갑인 윤치호뿐 아니라 조선인 모두의 친구였다. 윤치호는 그의 일기에서 로제타는 “아무런 사심 없이 맹인과 농아를 교육하고 여자의사를 양성한 개척자”라고 기록했다. 미국 유학을 마친 아들 셔우드 홀과 며느리 메리안은 1926년 조선으로 돌아왔고, 로제타는 1933년에 조선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떠난 1년 후 여자의학강습소의 첫 졸업식이 열렸고, 졸업생 중 5명이 의사 면허시험에 합격했다. 이 강습소는 1938년에 전문학교로 승격했고, 이후 우석대 의과대학을 거쳐 지금의 고려대 의과대학으로 발전했다. 한국을 떠난 로제타 홀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5일 85세를 일기로 소천했고, 지금은 양화진에 남편과 딸 곁에 묻혀 있다. 로제타가 떠난 조선에서 그녀의 정신을 이어간 것은 아들 셔우드 홀 부부였다. 그들은 결핵요양소의 운영비 마련과 결핵 계몽을 위해 1932년에 남대문을 그려 넣은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했다. 일본인들은 실에 그려진 그림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 색동옷을 입고 있는 조선 남녀 아동들, 배경으로 그려진 높은 산, 심지어는 실에 표시된 서기 연호도 삭제를 요구받았다. 스파이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던 셔우드 부부는 1940년에 아끼던 병원을 한국인들에게 넘겨주고 인도로 갔고 그들의 이름과 한국생활은 잊어져 갔다. 1978년에 셔우드 홀은 ‘With Stethoscope in Asia: Korea’(청진기를 들고 아시아에서: 한국)이라는 자서전을 발간해 그의 가족이 보여준 한국 사랑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이것이 한글로 번역돼 간행된 것이 1984년이었고 그들의 이야기가 한국에 비로소 알려지게 됐다. 당시 91세와 88세였던 이들 부부는 오랫동안 그리던 고향 한국을 다시 방문하는 감격을 누렸다. 이들은 한국 방문 직후인 1991년에 5개월 사이로 모두 세상을 떠났고 현재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부모, 누이동생과 함께 묻혀 있다. 로제타 홀과 그 가족은 분단된 이 땅의 북쪽과 남쪽에 많은 것을 남겼다. 통일이 된다면 남북이 함께 기려야할 첫 번째 외국인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이 땅에 남긴 것은 몇몇 의료기관과 학교만이 아니다. 그 속에 숨겨진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랑이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교육의 출발이며 본질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그녀의 아들 셔우드 홀 부부를 변호하던 한 조선인 변호사는 이들이 비록 서양인이지만 “청진기로 우리 백성의 심장을 진찰할 때면 자기 심장도 우리와 함께 뛰었던 사람, 우리와 똑같이 느끼고 사랑했던 진정한 조선의 시민”이라고 변호해 일본인들까지 감동시켰다고 한다. 로제타 홀과 그 가족이 우리의 초기 근대교육 속에서 실천했던 정신,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랑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야말로 21세기 우리 교육이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이다. 이번 주말에는 양화진을 찾아 로제타 가족을 만나봐야겠다. 글=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 사진=다산북스, 박정희 작가 제공
중국의 초등학교가 일제히 긴 방학에 들어갔다. 중국은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는 만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시험은 6~7월에 실시된다. 이와 함께 졸업식도 6월 말 경에 주로 이루어진다. 더불어 초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등 각 학교 1학년의 학급 구성원과 담임선생님이 결정되면 입학부터 졸업할 때까지 학급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이 함께 진급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중국의 선생님들은 엄격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우리의 80~90년대 교실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중국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가서 또 늦은 시간에 하교한다. 그리고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느라 늦게 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중국 엄마들은 억척스럽다.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까지 데려다준다. 등하교 시간이 되면 학교 앞에는 고급 승용차들로 혼잡을 이룬다. 빈부의 격차 수준이 이런 부분에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중국과 우리나라 모두 자녀에 대한 사랑과 교육열은 대단하다. 중국에 있는 한국국제학교는 대한민국 교육부와 중국 교육부가 승인하여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갖춘 학교가 많다. 그래서 중국과는 달리 한국의 학제를 따른다. 기본교육과정은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국제학교로서 영어와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하며, 미래 글로벌 인재로서의 기본품성과 전문소양을 갖출 수 있는 다양한 교육활동을 실시한다. 7월부터 8월까지는 중국 전역이 관광객들로 붐빈다. 많은 가족이 학생들의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휴가를 떠난다. 이 기간에 움직이는 중국인들이 10억 명에 이른다. 문화유산이 많은 중국 곳곳의 역사 유적지에는 외국인뿐 아니라 자국민들로도 가득하다. 비행기로도 4~5시간에 이르고 시속 300km의 고속열차로도 7~8시간 걸리는 대륙 곳곳에서 자국의 우수한 문화유산을 관람하기 위해 오는 그들의 관심과 노력이 대단하다. 필자가 있는 중국의 요녕성 대련시에는 요동 땅 대부분을 차지했던 고구려, 그 위풍당당하고 용맹스럽다고 어릴 때부터 배워왔던 고구려의 흔적, 비사성이 대흑산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한 교육을 하는 교사로서 컵스카우트 담당 선생님들과 역사체험 장소를 이곳으로 정하였다. 6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컵스카우트 대원들과 대흑산을 등정하였다. 산으로서 가벼운 코스도 있지만 초등학생이 가기에는 아찔한 코스도 꽤 있어 조심스럽기만 하였다. 무더운 날씨에도 한 사람의 낙오도 없이 끝까지 씩씩하게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며 안중근컵스카우트 대원들의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비사성(卑沙城)은 고구려 역사에 있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비사성은 발해만 우리나라의 서해가 보이는 전망을 갖고 있고, 이 비사성으로부터 안시성, 백암성 등등으로 이어지는 고구려 천리장성의 주요 거점이기도 하다.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 세력을 이곳에서 규합하여 우리의 고구려, 발해 역사와 매우 인연이 깊은 곳이다. 대흑산 입구에서 올려다 보이는 곳이 비사성이다. 비사성은 삼면이 병풍처럼 절벽으로 둘러쳐져 있어서 성 함락이 쉽지 않았다. 오로지 서문을 통해서만 성에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 요동반도의 천연 요새였다. 산꼭대기에 다다를수록 선명하게 보이는 성벽들을 학생들에게 주의 깊게 보도록 하였다. 한 시간 남짓하여 올라간 비사성 서문 입구 한쪽에 대흑산 산성이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원래 이름인 ‘비사성’ 대신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대흑산산성’이라고 바꿔 써 놓은 것이다. 서문을 지나면 저 멀리 누각이 보인다. 고구려 장군이 병사들을 지휘하던 장소라고 하는데 중국은 이곳을 옥황상제를 만드는 옥황전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옆에는 돌로 만든 당나라 기마와 기병들을 양옆으로 배치해서 고구려 유적지를 당나라 도교 유적지로 바꿔버렸다. 우리 역사의 현장 속에서 대한민국의 학생을 인솔하고 온 교사로서 자랑스러움과 착잡한 마음이 함께 들었다. 학생들과 내 인생에서 중요한 단체 사진을 찍고 비사성 누각 곳곳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누각 뒤편으로 바라보면 바로 아래는 절벽이라 매우 아찔하다. 우측으로 가면 발해만과 우리나라의 서해를 볼 수 있다.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천리장성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비사성을 방문하여 고구려인의 기상과 흔적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경기 소안초(학교장 장수열)는 7월 10일 영어실에서 찾아가는 학생평가 역량강화 연수를 실시했다. 부천 덕산초 김미겸 수석교사를 강사로 초청, 학생 평가 방안과 학업성적관리위원회 규정에 대한 연수를 받고 단위학교 학업성적 관리위원회 규정에 대한 컨설팅도 받았다. 연수는 최근 학생들의 평가 방법과 규정이 강화됨에 따라 단위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의 성적을 평가하는 교사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날 연수를 받은 K 교사는 "그동안 알고 있었던 학생평가 방법에 대해 더욱 구체적이고 실제적 내용을 알게 되었다"며 "이러한 연수가 정 기적으로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교육청에서는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를 강조하며 학생들의 교육력 강화를 위해 교사 대상 온오프라인 다양한 연수와 컨설팅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 유튜브로 학생들과 소통하는 교사 유튜버가 늘고 있다. ‘달지’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래퍼 이현지 교사는 구독자만 28만 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교실에서 랩을 부르는 영상은 조회 수만 400만 회를 넘어섰다. 허준석 교사가 제작한 영어 콘텐츠를 올리는 채널 ‘혼공TV’, 박준호 교사를 주축으로 초등학교 교사들이 만드는 교육 콘텐츠 채널 ‘몽당분필’도 인기다. 교원들의 유튜브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복무지침이 나왔다. 교육부는 9일 교원 유튜브 활동 증가 추세에 발맞춰 관련 복무지침을 마련했다. 광고수익 취득, 겸직 기준 등에 대한 논란으로 인한 학교 현장의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교육부가 발표한 유튜브 활동 교원 수는 지난 4월 1일 현재 총 934명이다. 이들이 운영하는 채널은 총 976개로 조사됐다. 복무지침에 따르면 유튜브 활동은 ▲영상 촬영, 편집, 탑재 등 직접적인 활동과 본인의 영상에 답글을 게시하는 행위 ▲다른 유튜브 채널 영상을 본인 유튜브 채널에 공유, 활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유튜브 활동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국가공무원법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교육활동 등 본연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활동할 수 있다. 교육부는 공익 성격의 교육 관련 유튜브 활동은 장려한다는 방침이다. 자기주도적 학습 지원, 학교 교육과정 운영 지원, 학생교육 활동 사례 공유 등을 예로 들었다. 근무시간 외에 취미, 여가, 자기계발 등 사생활 영역의 유튜브 활동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다만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유튜브의 특성을 고려해 교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하는 활동은 금지한다. 광고수익이 발생하는 최소 요건을 충족할 때는 겸직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재 구글이 인정하는 최소 요건은 유튜브 채널 구독자 1000명 이상, 영상 총 재생시간 연간 4000시간 이상이다. 영상을 만들 때 학생을 등장시키려면 학생 본인과 보호자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학교장은 영상 제작 목적과 사전 동의 여부, 내용의 적절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촬영 허가를 결정해야 한다. 완성된 영상을 유튜브에 게시하기 전에도 학생 본인과 보호자의 최종 동의가 필요하다. 또 학생 평가의 공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는 내용은 영상에 담지 못하며, 학생 의사와 관계없이 교육적인 목적으로 의무 시청이 요구되는 영상에는 광고를 탑재해선 안 된다. 교원 유튜브 활동 복무지침은 국·공·사립 교원뿐 아니라 계약제 교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교육부는 오는 8월까지를 계도기간으로 운영하고, 올해 하반기에 실태조사를 추가로 실시할 예정이다.
영화 ‘기생충’을 본 관객들의 관람평이 차고 넘친다. 세계 최고의 영화축제로 꼽히는 칸영화제에서 한국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영화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극장을 찾는다. 개봉 20일만에 840만 관객을 돌파했다(6월 18일 기준).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늘 많은 이야기들을 양산해왔다. ‘살인의 추억’(2003)이나 ‘설국열차’(2013), ‘옥자’(2017) 때도 그랬고, 흥행에 실패한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 영화 ‘기생충’은 그의 전작들에 비해 확실히 달라졌다. 세 가지 면에서 그렇다. 우선 봉준호는 이 영화를 통해 과연 ‘일가’(一家)를 이뤘다는 점이다. 봉준호 감독은 미장센의 교과서로 불린다. 영화 속 소품, 배경과 빛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꼭 있어야 할 자리에 피사체를 배치하기 때문이다. ‘기생충’에서 봉준호는 배우의 연기 합마저 ‘미장센’ 해내는 경지에 도달했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인 송강호가 홀로 이끌어가는 원톱 영화가 아니다. 박 사장(이선균 분)의 4인 가족과 기택(송강호 분)의 4인 가족의 역할이 적절하게 분배돼 있다. 여기에 문광의 가족 2인이 더해지며 영화는 10명의 배우가 각자의 자리에서 끌어간다. 우리는 모두 기생한다? 배우들의 에너지는 넓은 스크린에서 때론 격렬하게 충돌하고 때론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게 조응하며 130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도무지 멈춰 세울 수 없는 맹렬한 희비극 속으로 끌어들인다. 속도감을 가진 기차가 배경이었던 ‘설국열차’가 아니라, 오히려 집이라는 부동의 물성을 가진 정적 공간임에도 관객들은 지루함은커녕 손에 땀을 쥐고 영화에 집중한다. 그렇게 봉준호는 배우들의 서로 다른 연기를 거의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지휘하는 데 성공했고, 미국 영화매체인 인디 와이어는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됐다”고 선언했다. 봉준호 감독 자체를 장르로 명명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봉테일’이다. ‘봉준호+디테일’을 줄인 이 별명은 현장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서 먼저 나왔다. 그는 각도, 조명, 비율에 대한 모든 것을 계산해 그린 콘티북을 현장과 공유해 가장 효율적으로 촬영한다. 영화 ‘괴물’에서는 가장 중요한 괴물 CG를 영화 전체에서 125컷이 나오도록 치밀하게 사전준비 후 촬영에 들어갔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숏의 변화를 시도하는 감독들과는 다른 스타일이면서도 ‘천재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는 이유는, 첫째로 첫 촬영인 크랭크인 이전에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완성된 영화 한 편의 모든 컷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요, 둘째로는 머릿속 영화를 현장에서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낸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뽑아낸다는 것이 그가 천재 감독인 마지막 이유다. 대부분 감독들에게 촬영 현장은 포기의 연속이다. 늘 부족한 예산, 배우와의 기 싸움, 숙련되지 않은 스태프와의 갈등에 변덕스러운 날씨까지. 수많은 좌절을 거치며 그들은 타협을 시작한다. 봉준호는 그렇지 않다. 영화 ‘마더’(2009)에서 국민엄마 김혜자에게 사람을 죽이게 하고 따귀를 맞게 한다. 조연의 이름을 불러주고 식사 때를 지킨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봉 감독을 두고 “자신의 100% 이상을 이끌어내는 감독”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생충’에는 온통 계급과 자본에 대한 클리셰들로 가득하다. 반지하방, 배설물이 역류하는 다세대주택의 반지하방, 전깃줄로 뒤덮인 골목길, 가파른 언덕 위 2층집 등 한국적인 배경에서 벌어지는 두 가족의 희비극은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기생충’에는 요즘 한국영화에 흔한 외국 배우도 없다. 짜파구리 같은 소품도 한국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물론 이런 부분들은 한국영화에 조예가 깊은 평론가 달시 파켓의 적절한 번역으로 해외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본 홍콩의 한 영화감독은 ‘이건 홍콩의 이야기!’라고 공감했고,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영국 감독은 ‘당장 세트만 바꿔 영국에서 리메이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극히 한국적인 배경과 설정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훔쳤다는 것이 그가 ‘기생충’을 통해 달라진 두 번째 지점이자 이 영화가 이룩한 놀라운 성취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그의 마지막 변화.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관을 나서며 자신을 영화에 대입한다. 박 사장 만큼 부자는 아니지만 기택처럼 루저는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발걸음 멈춰도 자신과 스스로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한국 사회 어디에 ‘기생’하고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먹고 살기 위해 누구에게 기생하고 있나? 점점 가슴을 채워오는 ‘묵직한’ 모욕감. 아마도 이런 점이 개봉 당시 빨랐던 500만 관객 돌파 이후 주춤했던 상승세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영화의 영어 원제는 데칼코마니였다고 한다. 박 사장 가족과 기택 가족이 똑같이 포개진다는 것이다. 뒤집어보면 상류층인 박 사장이 기택 가족에 기생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봉 감독은 질문한다 “서로 다른 처지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생 또는 공생이라는 인간다운 관계가 무너져 내리고, 누군가 누구에게 기생해야만 하는 서글픈 세상 속에서는 더더욱. 그런 세상 한복판에서 발버둥치는 어느 일가족의 난리법석 생존투쟁을 지켜보면서 그들에게 ‘기생충’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서민들의 서글픈 자화상 사실 자본과 계급에 대한 그의 천착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인 ‘지리멸렬’(1994)에서부터 확인된다. 도색잡지를 즐겨보는 교수, 아침 조깅을 하며 남의 집 배달 우유를 습관적으로 훔쳐 먹는 신문사 논설위원, 만취해 노상방뇨를 하려다 경비원에게 들키는 검사의 에피소드가 10분씩 이어진다. 에피소드의 제목들도 의미심장하다. 교수 에피소드는 ‘바퀴벌레’, 논설위원 편은 ‘골목 밖으로’, 검사 편은 ‘고통의 밤’이다. 세 주인공이 TV 시사 프로그램 출연자로 한 자리에 모이는 에필로그.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위에 군림하는 엘리트 계급의 민낯과 공허한 대화들이 교차되며 영화는 비로소 완결성을 갖춘다. 그렇다면 봉준호의 달라진 점은? 더 이상 봉준호는 계급 이동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현남(배두나 분)은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고, 윤주(이성재 분)는 1500만원을 주고 교수가 된다. ‘옥자’에서 미자(안서현 분)는 수많은 슈퍼돼지를 구하진 못했지만 옥자만이라도 탈출시켜 강원도 산골에서 함께 산다. ‘설국열차’도 남궁민수(송강호 분)도 결국 꼬리칸 이들과 함께 열차를 전복시키기까지 했다. 봉준호의 전작 주인공들은 연대했다. 편법으로라도 신분상승을 이뤄냈거나, 자신만의 무릉도원으로 도피에 성공했다. 혁명을 이뤄내기까지 했다. 봉준호가 그려 갈 다음 세계는... 그런데 ‘기생충’에는 없다. 박 사장 가족과 기택 가족의 연대는 술에 취한 공상에서나 가능하다. 함께 연대해야 할 문광네는 서로를 밟고 일어서야 할 경쟁 상대다. ‘기생충’에서는 봉준호 특유의 위트와 블랙 코미디의 적절한 조화가 주는 재미가 사라졌다. 씁쓸하고 치욕적인 웃음만 남았을 뿐. ‘기생충’은 봉준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꾼 첫 영화인 셈이다. 더 음울하고 냉소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은 절대 변할 수 없다고 냉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카메라의 위치와 움직임이 중요하다.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난 영화의 관점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컷에서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카메라가 담아내는 영상이 무엇인지 확인하면 그의 섬뜩한 커밍아웃에 확신이 든다. ‘기생충’을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로 그의 향후 영화들은 더욱 무겁게 변할까? 황금종려상을 받고 그는 말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사이코’나 ‘현기증’을 찍은 게 본인 환갑 무렵이다. 나도 그 나이 때까지 현역으로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으면 좋겠고 남들이 했던 것은 안 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한국영화사 100주년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다가온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물론 반갑지만, 그보다 봉준호의 다음 영화가 궁금해진다.
김애란의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남들보다 빨리 늙는 조로증(早老症)에 걸린 열일곱살 남자아이 아름이가 투병하는 이야기다. 여기에 열일곱에 애를 낳아 지금은 서른네살인 어린 부모가 아름이를 돌보며 성숙해가는 이야기, 아름이가 역시 불치병에 걸린 동갑내기 여자친구와 이메일을 주고받는 이야기가 주요 줄거리다. 소설 속에서 주요 상징 또는 소재로 나오는 꽃을 찾아 그 꽃이 소설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꽃은 어떤 꽃인지 소개하는 것이 필자의 주 관심사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출간 당시 인기 소설이어서 샀더니, 중학생 딸이 먼저 읽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읽으면서 꽃이 나오는지 잘 살펴달라”고 했다. 딸은 다 읽고 나더니 “나오는 꽃이 없다”고 했다. 그다음은 아내가 읽었는데 읽고 나서 역시 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필자가 읽어보니 도라지꽃이 주인공 아름이와 여자친구의 우정 또는 사랑의 상징으로 선명하게 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줄거리에 집중해 읽느라 도라지꽃이 나오는 것을 놓친 듯했다. 도라지꽃을 닮은 소녀 이 소설에서 도라지꽃은 두 번 나온다. 집안 형편상 더이상 병원비를 마련할 길이 없자 아름이는 성금 모금을 위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을 자청한다. 이를 계기로 골수암에 걸린 동갑내기 소녀 서하와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아름이는 이를 통해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어가고, 태어나 처음으로 이성에 대한 설렘을 느끼며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서하와 주고받은 메일들은 너무 예쁘면서도 가슴을 아릿하게 만든다. 어느날, 서하는 아름이에게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낸다. 요 며칠 아빠랑 절에 있었어. 아빠가 요새 대체요법에 관심이 많거든. 근데 거기 스님이 나더러 도라지꽃같이 생겼다고 하더라. 서하는 어떻게 생겼기에 스님이 도라지꽃 같다고 했을까. 아름이는 이 도라지꽃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얼마 후 다큐멘터리 PD 승찬 아저씨가 문병을 왔을 때 노트북을 켜둔 아름이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근데 넌 바탕화면이 그게 뭐냐.” “뭐가요?” “걸그룹도 많은데 웬 도라지꽃이니. 늙은이같이.” “왜요, 뭐가 어때서요?” 도라지꽃을 노트북 바탕화면에 깔 정도로 오매불망 서하 생각을 한 것이다. 도라지꽃이 다시 한번 둘 사이의 우정 또는 사랑의 상징으로 선명하게 드러나기를 바라며 책을 읽었으나 작가는 더 이상 이 꽃을 등장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도라지꽃은 아름이가 유일하게 비밀을 나눈 아이, ‘첫사랑, 혹은 마지막 사랑’이었던 서하를 그리워할 때 등장한 꽃이어서 이 소설을 대표하는 꽃으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심심산천에’ 피는 도라지는 초롱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 전국의 산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도라지꽃은 밭에 재배하는 것으로, 나물로 먹는 것은 도라지 뿌리다. 보통 40~100㎝ 자라고 잎이나 줄기를 자르면 흰 유액이 나온다. 흰색 또는 보라색으로 피는데, 흰색과 보라색 사이에 중간색 같은 교잡이 없다는 것도 특이하다. 별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진 통꽃이 기품이 있으면서도 아름답다. 문일평은 꽃이야기 책 화하만필(花下漫筆·꽃밭 속의 생각)에서 “도라지꽃으로 말하자면 잎과 꽃의 자태가 모두 청초하면서도 어여쁘기만 하다”며 “다른 꽃에 비해 고요히 고립을 지키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적막한 빈산에 수도하는 여승이 혼자 서서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밭에서 피어나는 ‘별’을 닮은 꽃 도라지꽃을 별에 비유하는 글들이 많은데, 가만히 보면 도라지꽃에는 세 개의 별이 있다. 먼저 꽃이 벌어지기 직전, 오각형 꽃봉오리가 별 같이 생겼다. 도라지꽃은 개화 직전 누가 바람을 불어넣는 풍선처럼 오각형으로 부풀어 오른다. 이때 손으로 꾹 누르면 ‘폭’ 또는 '펑'하는 소리가 나면서 꽃이 터져 어릴적 재미있는 놀이거리 중 하나였다. 두 번째로, 꽃잎이 활짝 펼쳐지면 통으로 붙어 있지만 다섯 갈래로 갈라진 것이 영락없는 별 모양이다. 그런데 꽃이 벌어지고 나면 꽃잎 안에 또 별이 있다. 꽃 안쪽에 조그만 암술머리가 다섯 갈래 별모양으로 갈라진 채 뾰족이 내밀고 있는 것이다. 한여름에 오각형의 풍선처럼 부풀다가 다섯 갈래로 갈라진 통꽃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피어난다. 고주환 씨는 책 나무가 청춘이다에서 도라지꽃이 옆으로 ‘돌리며’ 피어나는 것이 이름의 유래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도라지꽃이 개화하기 직전, 부풀어 오른 꽃봉오리가 산처녀의 봉긋한 가슴 같다는 사람도 있지만, 서양 사람들한테는 이게 풍선처럼 보인 모양이다. 그래서 도라지의 영어 이름은 ‘Balloon flower(풍선꽃)’다. 도라지꽃이 필 때 수술 꽃가루가 먼저 터져 날아간 다음에야 암술이 고개를 내미는데, 자기꽃가루받이를 피하기 위한 전략이다. 아름이는 자신으로 인해 잃어버린 부모의 청춘을 돌려주고 싶다. 그래서 부모의 만남과 사랑부터 자신이 태어날 때까지 이야기를 글로 써서 부모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고 있다. 이메일을 주고받은 서하가 누구인지에 대한 반전이 있다. 꽃과 식물에 관심을 갖고 소설을 읽다 보니 다음과 같은 문장도 좋았다. 어디선가 까르르 박꽃 같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돌아보니 젊은 레지던트 하나가 간호사들에게 농담을 걸고 있었다. 나는 내 속 단어장에서 ‘추파’라는 낱말을 꺼내 만져보았다. 가을 추, 물결 파. 가을 물결. 나이 많은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수천장의 잎사귀를 나부끼며 고독하고 풍요롭게.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게로, 그 나무가 또 건너 나무에게로, 쉼 없이, 은근하게. 그러고 봄 추파는 사람만 보내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두근두근 내인생은 김애란의 첫 장편이다. 김애란은 특유의 젊은 감각, 신선한 문체와 스토리로 문단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작가다. 그의 글은 발랄하고 재미있다. 두근두근 내 인생 곳곳에도 읽다가 절로 웃음이 나오는 구절이 많다. ‘엉뚱한 듯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문장이 흡인력 있다. ‘슬픈 이야기를 누구보다도 경쾌하게 풀어내는 작가’라는데, 두근두근 내 인생에 딱 맞는 평인 것 같다. 이 소설에서도 아름이의 희망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자식이 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가능한가”라고 했다.
사교육에 시달리는 많은 수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과도한 학습량과 숙제로 인해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교실에는 이틀에 한 번씩 보는 학원의 영어 단어 시험을 위해 매주 300~500개의 단어를 외우고 있느라 쉬는 시간에도 쉴 틈이 없는 학생들이 존재한다. 말끝마다 “힘들어요.” “피곤해요”를 달고 사는 아이들도 늘어만 간다. 요즘 아이들에겐 헐렁하게 쉴 수 있는 ‘빈틈’이란 게 없다. 이렇게 쌓인 예민함·우울·피로 누적이 학교폭력으로 분출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왕따와 학교폭력문제를 놀이와 우정을 제쳐두고 푸는 길은 없다. 2019년 한국 교육의 진실 이렇듯 우리나라 청소년은 어른이 되기도 전에 세상 살기가 참 힘들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는 9년째 ‘자살’이다. 성적 스트레스에 따른 우울증과 싸우는 청소년이 4명 중 1명꼴이고, 하루 평균 1.5명의 청소년이 성적 때문에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있다. 사교육 스트레스로 나타날 수 있는 가장 흔한 증상이 우울증인데,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서울시 미성년자 우울증 환자의 38%가 학원이 밀집한 5개 구(區)에서 진료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교육전문가는 이러한 아이들 고통의 뿌리를 ‘놀이 없음’에서 찾고 있다. 놀면서 길러지는 생기와 힘을 오늘을 사는 부모와 교사는 철저히 무시한다. 험한 길을 헤쳐나가는 데 꼭 필요한 생기와 놀면서 만나는 재미와 우정이 있어야 아이들은 살 수 있다. 놀면서 수도 없이 지고 이기고, 죽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지 않은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무언가에 좌절했을 때 어떻게 그것을 넘어설 수 있을까? 놀이는 패배와 좌절을 넘어서는 수많은 상황과 만나게 해주고 그것들을 넘어설 수 있는 긍정의 힘을 길러준다. 이러한 수많은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가정에서 요구하는 학교의 기능은 오로지 ‘배움터 혹은 돌봄의 공간’이라는 목적만 강조되고 있다. 이를 위해 학교는 각종 ‘캠프’와 ‘OO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돌리고 있고, 맞벌이부모를 대신하여 저녁 늦게까지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봐주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학교를 일컫는 라틴어 ‘슐레’의 뜻은 ‘한가한 곳’이다. 학교 현장에서 생기는 이런저런 문제는 학교라는 곳이 ‘아이들이 친구를 만나고, 만나서 놀기 위해 가는 곳’이라는 존재 이유를 망각하는 데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동맹을 맺고 가상의 적을 만나 대결하는 스마트폰 게임, 컴퓨터 게임과 SNS는 어찌 보면 함께 할 놀이 공간과 시간, 친구를 확보하지 못한 아이들의 마지막 피난처인지도 모른다. 여학생들은 유행하는 패션과 브랜드 제품, 화장품 구입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남보다 비싼 제품을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해하고 소비를 놀이로 인식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무턱대고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책은 추상의 세계를 다룬다. 아이들은 구체적인 경험과 체험을 충분히 해야 하며, 이게 부족함이 없어야 추상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독서영재교육’에 대한 부모와 교사들의 높은 관심, 게임과 SNS 몰입, 과도한 소비행위가 아이들의 ‘놀 터’와 ‘놀 시간’과 ‘놀 동무’를 대체하고 있다. 초등 놀이중심교육과정,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러한 아이들에게 무엇을 회복시켜 주어야 할까? 아이들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떨쳐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냥 ‘놀기’이다. 놀이는 ‘즐거움과 행복’을 ‘미래’가 아닌 ‘오늘’ 당장 만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놀면서 자유와 해방을 만나 그 속에서 행복을 몸으로 느낀 아이라야 행복을 더듬어갈 수 있다. 행복을 찾아가려면 행복할 때 느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것이 놀이의 힘이다. 아이들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자유에 목이 마르다. 아이들은 자유놀이를 할 동무와 텅 빈 시공간이 너무나 절실하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해 보고자 교육부와 교육청이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학교의 공간·시간·수업을 놀이중심으로 새롭게 디자인한 점’은 현장에서 많은 공감과 호응을 받았다. 아이들의 놀이시간을 늘리고 놀잇감을 살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해 주었으며, ‘놀이학습 놀이활동’ 관련 각종 연수 추진, 놀이 장학자료 제작·배포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초등 놀이중심교육과정’은 이제 현장에서 어느 정도 연착륙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놀이의 중요성과 놀이시간을 확보해 주고자 하는 운영 취지에 교육공동체가 모두 공감하고 있으며,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다양한 ‘놀이학습방법’을 활용하여 학생들이 서로 소통하고 함께 문제를 풀고, 자기주도적으로 짬짬이 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또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실내 놀잇감’을 사용하며 즐겁게 놀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이제 어느 교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간놀이시간 운영의 문제점 놀이중심교육과정의 연착륙에서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중간놀이 운영’ 이다. 일반 교사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중간놀이 운영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9시 등교와 맞물려 일과표 운영상 불편함이 발생한다. 늦게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교육청이 권장하는 ‘30분 중간놀이 시간’을 확보해 주면, 점심시간이 12시 30분으로 늦춰지면서 아이들은 배고픔을 호소한다. 뿐만 아니라 2시 30분이던 하교 시간도 자동적으로 10분 정도 뒤로 밀려 2시 40분이 되어버린다. 이는 학생들을 교육·관리하는 시간이 늘어남을 의미하며, 아이들 하교 후 교사들이 준비하는 수업준비시간 감소를 초래한다. 또한 대부분의 교육청 연수가 3시에 시작함을 고려할 때 연수 참여 어려움이 생기므로 교사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30분이 아닌 20분의 중간놀이 시간을 운영하고 있다. 하교시간을 2시 30분으로 맞추기 위해 1~2교시나 3~4교시를 블록타임으로 묶어 운영하거나, 쉬는 시간 10분을 없애는 학교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3~6학년은 교과전담교사가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담임수업 한 시간을 끝내고, 다음 시간 수업인 교과교실로 이동하는 시간이 확보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수업시간 40분 중 일부를 교실이동시간으로 허비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둘째, 많은 교사가 안전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중간놀이시간에 학생들이 한꺼번에 운동장으로 몰려나와 신체활동놀이를 하다보면 다치는 경우가 잦고, 이는 학생들을 안전하게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는 교사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안전사고는 학부모 민원 1순위이며 교사가 합의금을 주고 해결하거나, 민사소송으로까지 번지는 경우도 있다. 사고 방지를 위해 교사들이 당번제로 번갈아가며 운동장에서 학생활동을 관찰하지만, 수백 명의 학생들을 모두 살펴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당번을 하고 있는 동안 운동장에 나오지 않고 담임교실에 잔류하고 있는 학생들에 대한 안전사고 위험도 공존하게 된다. 셋째, 대부분의 학교 운동장이 전교생이 나와 놀기에는 놀이공간이 태부족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학교에서는 학년별로 요일을 정해 특정 학년만 운동장에 나와 놀게 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교실에서 실내놀이를 하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운동장 활동을 매우 선호하고 있다. 또한 학급마다 잘 어울리지 못하는 부적응학생은 늘 있기 마련인데, 이 학생들에게 있어 놀이에 끼지 못하고 혼자 보내야만 하는 긴 중간놀이시간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다. 중간놀이시간 운영방법 개선을 위한 제안 첫째, 중간놀이시간 운영 관련 우수사례를 발굴하여 일반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부 학교에서는 별다른 계획이나 프로그램 없이 쉬는 시간의 연장처럼 형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우수사례 일반화’가 시급하다. 강동구 소재 S 초등학교에서는 중간놀이시간에 전통놀이를 베이스식으로 아홉 군데 설치하고, 처음 시작할 때 한 학년이 이틀씩 돌아가면서 체험을 하게 한다. 어느 정도 활동에 익숙해지면 모든 활동을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는데, 놀이기구 설치 및 운영을 위해 5·6학년에서 한 학급이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봉사활동을 한다. 놀이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자유롭게 노는 학생들도 많다. 수요일은 격주로 조회대에서 장기자랑을 하는데, 이때 놀고 싶은 학생은 놀고 구경할 학생은 자유롭게 구경을 한다. 이 사례는 교육신문에 실렸으며 인근 학교에서 필요한 자료 공유요청과 현장답사를 하게 만든 우수사례였다. 둘째, 학생들의 일과시간을 놀이중심으로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교육청 차원의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 아침활동시간·중간놀이시간·점심시간을 최대한 놀이시간으로 확보해줌과 동시에 교사들의 업무량 증가를 막고, 안전사고에 대한 불안감을 감소시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 또한 비가 오거나 미세먼지가 많은 날은 학생들이 실내에서 놀이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좁은 공간인 교실과 복도에서 할 수 있는 실내놀이활동 안내와 놀잇감 확보를 위한 교육청 차원의 예산 지원은 계속되었으면 한다. 셋째, 학교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해 ‘놀이공간’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복도 끝 여유 공간, 중앙현관, 건물과 건물 사이 공터, 운동장의 자투리 공간 등…. 반드시 운동장을 고집할 필요 없이 학생들이 친구들과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다양한 활동 활동을 하면서 놀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넷째, 학교 단위에서는 놀이운영에 대한 학교·교사·학생 간 소통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무슨 놀이를 하고 싶은지,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하는지, 필요한 놀잇감은 무엇인지 등과 같은 ‘중간놀이 운영방식’에 대해 놀이 당사자인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며 협의하는 일이 필요하다. 학생자치회를 통해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반영하여 중간놀이시간을 운영한다면 학생들의 만족도는 크게 높아질 것이다. 놀이시간 운영과 관련된 학급규칙 마련을 통해 안전사고의 위험성을 낮추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다섯째, 부적응학생에 대한 관심과 참여 방안 강구 노력이 필요하다. 중간놀이를 권장하는 기본 취지도 교우관계 개선이 크다. 하지만 놀이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거부당하는 학생들의 경우는 놀이시간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으므로 이 학생들을 위한 학교 차원의 해결방법 모색, 담임교사의 조치(마음에 맞는 소그룹 친구 구성 기회 제공 등)가 절실히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놀 틈’과 ‘놀 터’와 ‘놀 동무’를 찾아주자. 놀이가 살아나야 아이들도 산다. 그리고 비로소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공부 잘한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공부를 못하더라도 나중에 뒷심을 발휘해 큰 인재가 될 수 있다. 모두에게 격려와 사랑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난 6월 20일, 학교에 큰 행사가 있었다. 아이들의 진로 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직업인과의 만남’을 개최한 것이다. 자랑스러운 동문을 비롯하여 사회 저명인사들을 초청, 창의적 체험활동시간을 할애해 학생들과 한 시간 동안 대화의 시간을 마련했다. 이날 초청된 강사들의 면면을 보면 이름만 들어도 금세 알 수 있는 공중파 방송국의 유명 PD를 비롯해 관세사, 회계사, 의사, 판사, 장군, 변호사, 조종사, 금융인 등 대기실은 그야말로 별들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필자의 제자 K군이었다. 20년 전 K군은 공부를 썩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남들처럼 공부를 잘해서 특별반에 소속되지도 않았고, 모의고사를 치르고 나면 교실 게시판에 이름이 내걸리는 특출난 학생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빛만은 항상 살아있었다. 목표 의식도 뚜렷했고 무엇보다도 장래희망으로 CEO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20여년이 지나 멋진 강사가 되어 다시 모교에 나타난 것이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근황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활짝 웃으며 “선생님, 저 성공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하는 일을 물어보니 본인이 직접 유통판매업 회사를 설립하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연간 매출액이 무려 100억 원이 넘는다고 했다. 이날 초빙된 강사들 중 재력으로 치면 K군이 단연 1위였다. 평소 자신이 원하던 일을 생업으로 삼아 세계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K군을 보며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아 돈도 벌고 취미생활도 즐기는 일석이조의 사람이라지 않던가. 나는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서 대로변에 내걸린 수많은 현수막을 본다. 개중에는 각종 친목회에서 내 걸은 현수막이 몇몇 눈에 띄는데 내용은 이렇다. ‘축! S대학교 의예과 합격, OO고 졸업생 공인회계사 합격, OOO씨 자녀 Y대 공학박사학위 취득, 경축! OOO씨 막내아들 S전자 부사장 승진.’ 충분히 자랑하고도 남을 내용들이다. 주인공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을지 나는 현수막의 행간을 읽으며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감동은 딱 거기까지였다. 운전을 하면서 못내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평생 현수막에 이름 한번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바람에 휘날리는 현수막들은 그렇지 못한 공부 못하는 아이들, 또 그런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너희들은 실패자라고 외치는 듯했다. 현수막을 거는 사람들은 그 현수막을 보며 깊은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자녀를 어떤 식으로 키워야 하고 공부시켜야 한다는 획일적인 잣대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요즘 우리는 너무나 획일적인 성공을 부추기고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만 박수갈채를 보낸다. 공부 못하는 대다수의 아이들 그리고 그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마치 죄인이 된 기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등산을 좋아하는 편이다. 육십 가까이 살다 보니 인생을 등산에 비유한 것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선두 그룹이 있으면 반드시 후미 그룹이 있기 마련이다. 당장은 선두와 후미의 차가 많이 나더라도 결국 정상에서 만난다. 인생도 이와 흡사하다. 아무리 아등바등하며 저만치 앞서가도 결국은 죽음이란 인생의 종착역에서 모두 만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앞서가는 사람은 더 멀리 가려고 안달복달하지 말고 느긋한 마음으로 뒤처지는 사람을 기다려줘도 큰 손해는 없을 것 같다.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미가 있느냐는 어느 작가의 일갈도 있지 않은가. 요즘 학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가진 잠재력이나 적성은 무시한 채 오직 영어와 수학 그리고 명문대 입학을 위해 불철주야 채찍질을 하고 있다. 남보다 앞서지 못하면 영원히 뒤처진다고 생각하여 자녀들을 힘들게 한다. 그러다 보니 부모 자식 관계 또한 소원해지고 있다. 인생은 등산과 같은 것인데 초반에 너무 전력 질주하면 앞으로 남은 긴 인생을 무슨 체력으로 살아갈지 걱정이 된다. 인생이란 꿈틀대는 유기체와 같아서 시시각각 다양한 문제에 도전을 받는다. 특히 요즘과 같이 무한 경쟁 시대에는 더 그렇고 앞으로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심리적 안정과 정서적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심리적, 정서적 안정은 성인이 되어 갑자기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의 끈끈한 유대감에서 나오는 것인데 요즘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어떤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자식이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비록 공부를 못하더라도 나중에 뒷심을 발휘해 큰 인재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학교 공부와 획일적 성공에 너무 집착하여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말고, 자녀가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떤 다국적 기업에서 CEO를 뽑는다고 신문에 광고를 냈다. 이를 보고 많은 나라에서 유명 대학 졸업장과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앞다퉈 원서를 냈다. 이 중에는 우리나라 출신도 있었다. 그는 원서를 내고도 명문대를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떨어질 것이라며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그가 수백대일의 경쟁률을 뚫고 CEO로 채용되었다. 그러면서 그 기업의 인사 담당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기업에 필요한 사람은 유명 대학 졸업장이나 학위가 아니라 바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라고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능력은 학교 공부를 잘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정서적 안정을 바탕으로 타인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사회의 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적응력에서 나온다. 지금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사회의 지도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지금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영원한 실패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과 격려를 받으며 다양한 경험을 할 때 비로소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고 지혜와 능력도 길러지는 것이다. 지금 공부 못하는 나의 제자들은 너무 기죽지 말 것이며, 학부모들은 그런 자녀를 당당하게 키우시라. 그리하여 K군처럼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생업을 찾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격려와 사랑을 듬뿍 주도록 하자.
[한국교육신문 정은수 기자]교원 임용시험의 2020학년도 사전예고 총 인원은 지난해보다 210명이 늘어난 8855명이다. 그러나 유아·특수·비교과를 뺀 교과 교사 임용 규모는 크게 줄어 수급 계획 조정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25일 2020학년도 공립 유·초·중등 교원 신규 임용시험 사전예고 인원을 발표했다. 임용 규모는 총 8855명으로 지난해 사전예고보다 210명이 늘었다. 그러나 늘어난 인원은 대부분 유아·특수·비교과 교사다. 초·중등 교과교사만 보면 사전예고 인원은 6944명(초등 3554명, 중등 3390명)에 그친다. 이는 지난해 사전예고 인원 7268명보다 324명 줄어든 규모다. 지난해 발표한 ‘중장기 교원 수급계획’에서는 올해 지난해 신규 임용 인원에 비해 10~30명밖에 감소하지 않은 것과는 달리 감소폭이 크다. 지난해 인원이 계획 대비 11.9~14.5% 적었던 반면 올해는 15.4~17.9% 차이가 나 격차가 3.5%p 정도 벌어졌다. 퇴직자, 휴직자 등의 소요를 반영한 확정공고 인원은 이보다 늘어나므로 사전예고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수급계획 조정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반면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을 반영한 유아·특수·비교과 임용은 늘어나는 추세다. 유치원 교사는 821명으로 지난해 ‘유치원 임용 절벽 사태’를 부른 499명보다 대폭 늘었다. 특수는 325명에서 431명, 보건은 248명에서 270명, 영양은 112명에서 196명, 사서는 41명에서 47명, 전문상담은 100명에서 146명으로 모두 다소 늘었다. 지역별로는 △서울 1253명 △부산 503명 △대구 215명 △인천 313명 △광주 77명 △대전 140명 △울산 287명 △세종 171명 △경기 1972명 △강원 503명 △충북 312명 △충남 639명 △전북 434명 △전남 602명 △경북 623명 △경남 639명 △제주 172명이다. 중등의 과목별 인원은 인원이 많은 순으로 △체육 372명 △국어 296명 △수학 279명 △도덕·윤리 233명 △영어 216명 △일반사회 197명 △역사 186명 △음악 185명 △미술 166명 △정보·컴퓨터 137명 △기술 123명 △생물 121명 △화학 120명 △지리 120명 △가정 112명 △물리 108명 △지구과학 89명 △기계·금속 69명 △한문 59명 △상업정보 45명 △중국어 32명 △건설 23명 △전기 21명 △전자 21명 △조리 19명 △식물자원·조경 14명 △미용 13명 △동물자원 10명 △농공 4명이다. 최종 선발 인원 확정 공고는 초등 9월 11일, 중등 10월 11일 예정이다. 자세한 사항은 각 시·도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월공원에 걸어 놓은 포크댄스 홍보 현수막 글씨가 틀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영어 단어 스펠링 한 개가 틀렸다. ‘Folk’의 ‘l’이 ‘r’로 표기되어 'Fork'가 된 것이다. 게시되어야 할 올바른 문장은 ‘Shall We Folk Dance?'이 맞는데 ‘Shall We Fork Dance?'로 게시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어떻게 해결하여야 할까? 만약 독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구운동 마을만들기협의회 주관으로 지난 8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6시엔 일월호수공원 원형광장에서는 수원시민을 대상으로 포크댄스 배우고 즐기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구호는 ‘가족, 이웃, 친구와 손잡고 행복 포크댄스’다. 이것을 홍보하기 위해 현수막 두 개를 제작하여 직접 걸었는데 단어 하나 스펠링이 틀린 것이다. 이것 바로 잡아야 한다. 제일 먼저 한 것은 업자에게 보낸 주문 신청한 파일을 확인하였다. 현수막은 소비자가 주문한대로 제작하므로 잘못의 근원부터 찾으려는 것. 주문 원고는 제대로 되었다. 휴, 다행이다. 이게 왜 바뀌었을까? 전화로 확인하니 스펠링이 'Fork'인 줄 알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자와 함께 주문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출력 전 모니터 최종화면을 보여 주었는데 잘못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 이것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마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교직에 있는 애내는 현수막을 빨리 교체하라고 성화다. 호수를 산책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잘못된 것을 가르쳐 주고 있으니 아니 된다는 것. 특히 학생들도 보고 있으므로 잠재적 교육과정 상 비교육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누가 교육자 아니랄까봐. 나도교육자다. 업자는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유심히 보지 않으므로 민원이나 이의 제기가 없으면 그냥 두어도 된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일을 몇 차례 경험한 듯한 발언이다. 현수막 전체 내용으로 보아 내용을 이해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아마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면 다시 출력해야 하기 때문에 성가신 일은 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협의회에 마을 주민의 대화와 소통으로 포크댄스를 제안하고 재능기부를 하기로 했고 실무 작업인 현수막을 직접 주문하고 걸었던 나. 완벽주의자가 실수를 했다. 사람을 믿고 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저 현수막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다시 출력하는 업소 피해도 줄여야 한다. 지구 살리기 차원에서 물자 절약도 해야 한다. 내린 결론은 틀린 스펠링만 고치는 땜질 처방. 땜질할 현수막 천을 출력 받아 작업에 들어걌다. 이런 일 처음이다. 생활철학이 ‘도전은 즐겁다’와 ‘실행이 답이다’다. 인근매장에서 순간접착 본드를 1천원에 구입했다. 가위, 칼, 유리 받침을 갖고 현장에 갔다. 현수막을 떼어 펼쳐놓고 땡볕에서 일을 하니 땀이 비 오듯 떨어진다. 원래 있었던 글자를 덮어 가려야 하는데 그게 아니 된다. 집에서 크레파스를 가져다 흔적을 지워 본다. 모두 두 곳에 게시되어 있어 다른 한 곳에 가서도 현수막을 떼어 같은 작업을 했다. 첫 번 작업보다는 수월하게 된다. 틀린 글자 흔적을 이번엔 헝겊을 오려 안 보이게 붙이고 노란색 크레파스로 땜질 흔적을 안 보이게 했다. 멀리서 보니 그런대로 볼만하다. 그러나 땜질 자체가 흔적이 남으므로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두 시간의 작업이 끝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그룹 산하 회사 신입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우리 아들. 내가 오늘 한 일을 설명하니 현수막의 품격을 생각해 비용이 다시 들어가더라도 새로 제작해 게시하라고 한다. “공원 이용자가 많고 현수막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보는데 땜질한 현수막을 거냐?”고 되묻는다. 아내처럼 당연히 잘못한 업자가 다시 해 주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한다. 괜히 수준 높은 척 영어를 쓰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다. 국어교사 출신답게 “우리 함께 포크댄스 할까요?”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류 발견 즉시 수정하길 잘 했다. 협의회 총무 전언에 의하면 구운동행정복지센터에 공원 현수막 글씨 오류 관련 민원 전화 두 건이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답변은 ‘오류 발견해 수정했다’고 해 해결되었다는 것. 국제화와 다문화 시대를 반영한 표기 때문이지 지난 토요일에는 80대로 보이는 외국인이 공원 포크댄스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말도 조금 할 줄 아는데 천천동에 거주하며 미국인이라고 답한다. 이제 두 개의 현수막 변색이 되어 재제작하게 되면 디자인도 새로 하고 문구도 바꾸려 한다. 영어 문장을 살릴까 아니면 우리말로 바꿀까?
한국영어관련학술단체협의회 제2회 심포지엄1부. 한국영어관련학술단체협의회는 24일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2회 심포지엄‘한국 영어교육의 위기: 유치원부터 대학 너머까지’를 개최합니다. 심포지엄 1부는박종성한국영어영문학회장(충남대 교수)의 사회로 4개의 주제 발표가 이어진다. 첫째 발제자인 이윤 한국외대 교수는‘초등영어는 영양실조, 영어 방과 후 학교는 질주 중’이라는 주제로 영어교육에 대한 공교육의 책무성을 논한다. 이어서 이경옥 강원봄내중 교감 ‘고교 영어선택, 이대로 사라질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2015 개정 영어교육과정 편성 운영 실태의 현황을 다룬다. 김정태 배재대 교수는‘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절대평가제인가? 절대점수제인가?’라는 제목으로 수능 영어시험의 타당성에 대해 논의하고 제언한다. 마지막 발제자 강용순 성균관대 교수는‘대학(교양)영어,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발표한다. 2부는김해동 한국영어교육학회장(한국외대 교수)의 사회로 패널 토론을 한다. 홍선호 서울교대 교수, 한수미 한림대 교수,김영미 경희대 교수, 서홍원 연세대 교수가 패널로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