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는 끊임없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의 신경계 구조를 변화시키는 활동을 해나간다. 이를 구조 접속(structural coupling)이라 부른다. 인간은 환경과의 구조 접속이 이루어지면서 자기 생성을 위한 에너지원을 얻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에너지원의 유입을 통해서 생명체로서의 고유한 특성을 생성하게 되고 결국 전반적인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구조 변화는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며 고통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살아 있는 한 계속되는 미완성의 작업이기도 하다.
구조 접속을 통해 자기를 생성하는 과정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상호작용을 주고받는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는 마치 산 꼭대기에서 한 양동이의 물을 쏟는다고 가정할 때, 쏟아진 물이 어느 방향으로 어떤 흔적을 내며 흘러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왜냐면 물은 장애물이나 땅의 굴곡 상태에 따라 예측 불허의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자취를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그가 만나는 인간과 시간과 공간이 남긴 얼룩과 흔적의 합작품이다. 누구와 어디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생각이 만들어지고, 그에 상응하는 개념적 사유가 생기면서 놀라운 각성이 일어난다. 이른바 ‘성장 체험’을 하는 것이다. 성장 체험은 물리적 시간과 공간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인간이 이전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거듭나는, 방향 전환이 일어나는 각성을 일컫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각성 포인트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함으로써 자신만의 신념이 잉태되고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식생태학자인 유영만 한양대 교수는 《책쓰기는 애쓰기다》를 통해서 10가지 성장 체험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기를 탄탄하게 지탱할 수 있는 10가지 구조 접속이기도 하다. 여기에 한 꼭지를 간략하게 요약하여 필자의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생태학적 구조 접속이다.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한 조치다. 인간의 신체 구조는 사시사철 자연환경과의 구조 접속을 통해 그에 적합하게 적용이 된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에서 농사를 짓고 그리고 한겨울에 산에서 땔감을 마련하는 것과 같은 노동을 통해서 야생에서 몸을 움직이는 체험은 야성과 지성의 관계, 또는 야성 없는 지성의 극단적인 폐해를 극복할 수 있다. 이는 현실적으로 건강한 신체보다 똑똑한 머리를 개발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하는 우리 교육의 문제점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대안을 찾아야 하는가? 정신 심리학자 칼 융은 “창의성은 지성에서 비롯되지 않고 놀이 충동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의 언어,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기성세대가 사용하는 언어의 그물에 걸려 틀에 박힌 사유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생태학적 구조 접속의 중요성은 충분히 힘이 있다. 둘째, 이질적 구조 접속이다. 이는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는 묘책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다양한 시도로 인한 실패는 깨달음이란 체험적 상상력을 창출하여 창조로 연결될 수 있다. 즉, 체험적 상상력은 공상으로 흐르지 않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불굴의 의지와 만나 새로운 창조를 일으킨다. 성공한 작가 조앤 롤링은 하버드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진짜 상상력은 비록 자기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어도 타인의 처지에 자신을 놓고 그 사람의 아픔을 가슴으로 이해라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이질적인 자신의 경험이 타자의 경험과 만날 때 상상력은 시공간을 넘어 공명하기 시작한다. 셋째, 우발적 구조 접속이다. 이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의 익숙한 생활 속에서 무언가와의 우연한 만남이란 정말로 가슴을 뛰게 한다. 필자는 대학시절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이라는 고시 합격자들의 수기를 읽고 공부에 대한 우발적인 구조 접속이 일어났다. 그 후 필자의 학습 방법에 관한 뇌의 구조가 바뀌었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는 필자의 체험과 《새로운 인생》을 쓴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의 말이다. 독서 전후를 비교한 명문장으로 다음에 지시하는 니체의 명언과 함께 독서의 위력을 한층 높여준다. “인간에게는 방황하는 밤이 있을 것이다.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읽기는 무의미하지 않다.” 이렇게 책과의 만남은 운명을 바꾸는 만남을 남긴다. 넷째, 정신적 구조 접속이다. 이는 새로운 정신을 잉태한다. 《논어》는 우리에게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을 버리고 자신의 성장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을 가르친다. 위인지학을 위한 정신적 괴로움은 위기지학을 위한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다. 이른바 공부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여기엔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자기를 돌보는 자기 배려의 공부가 진정한 기쁨을 주는 공부라는 엄기호의 《공부 공부》의 주요 메시지다. 다섯째, 언어적 구조 접속이다. 이는 문화의 가교가 된다. 필자는 카투사(KATUSA)라는 주한 미군에 배속된 한국군 증원군으로 복무할 때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자기와의 싸움을 했다. 낯선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기도 했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영어라는 언어와의 구조 접속은 필자의 뇌력을 길러주었을 뿐만 아니라 영미문학과 철학에 대한 이해를 선물로 가져다 주었다. 여섯째, 실천적 구조 접속이다. 이는 체험적 지혜를 낳는다. 체험이 없는 개념은 관념이다. 관념적 지식의 무력함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많은 책들은 생각보다 생동, 관념보다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중에 신영복 교수의 《강의》에서 “책상에서는 한 가지이지만 실제로 일해 보면 열 가지도 넘는다.... 머리는 하나지만 손가락은 열 개나 되잖아요.”라고 진술하고 있다. 일곱째, 학문적 구조 접속이다. 이는 지식의 지평선을 확대한다. 이론적 지식과 실천적 지혜를 버무려 미래의 직장인이 될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교육공학을 매개로 인문적 통찰력을 더 얻기 위해 다양한 책과 논문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다양한 체험과 풍부한 생각은 학문적 입지를 높여줄 수 없다. 여덟째, 융합적 구조 접속이다. 이는 새로운 지식 창조의 원동력이다. 자신의 전문성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학문적 한계를 인식하고 현장성과 실천성을 높이기 위한 융복합적 접목을 부단히 시도해야 한다. 예컨대 《건반 위의 철학자》를 쓴 프랑수아 누델만은 사르트르와 니체, 그리고 롤랑 바르트를 대상으로 음악과 철학을 피아노 건반 위에서 만나게 함으로써 새로운 사유를 창조하고 독보적 세계관을 소유하게 한 것이다. 아홉째, 한계와의 구조 접속이다. 이는 경계를 뛰어넘게 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나를 바꾸려면 내가 자주 가는 곳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 가봐야 하고, 내가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다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험의 한계는 생각의 사고의 한계를 불러온다.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지금 살아가는 행동반경을 넓히길 시도해야 한다. 열 번째, 개념적 구조 접속이다. 이는 색다른 사유를 잉태한다. T.S. 엘리엇은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에서 “세상에 오리지널은 없다. 모든 창작은 뒤섞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창작은 색다른 체험과 남다른 개념이 만날 때 일어나는 스파크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개념은 또 다른 개념과 우발적으로 접속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개념을 잉태한다.
세상을 사는 지혜는 다양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세상을 백지로 놓고 고민하면 우리의 머리도 백지가 된다. 하지만 백지 위에 흔적이 있으면 그 흔적을 배경으로 다른 흔적을 남기기가 수월하다. 왜냐면 놀라운 연상(Association)작용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낯선 생각과의 부단한 접속을 통해 우리의 생각은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밝힌 10가지 구조 접속에 의한 성장의 비결이며 우리는 이를 기반으로 풍요롭게 살아가고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미래의 삶을 건강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모두가 되고 이것이 교육의 목표와 가치를 함유하는 소중한 자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