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79,660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
김대식 여의도연구원장이 31일 오후 서울 우면동 한국교총 회관을 방문해 하윤수 교총 회장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현직 여의도연구원장으로는 처음이다. 이날 김대식 원장과 하윤수 회장은 정책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향후 교육 발전을 위한 연구 활동에 협력키로 뜻을 모았다.
교육격차 확대·포퓰리즘 우려 교육청 권한 비대해지지 않게 학교 자율 운영권 보장해야 교육부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달 28일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에서 교육자치정책협의회를 열고 교육청의 예산, 인사권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시도이양은 교육감 권한 비대화가 아닌 시도에 내려간 권한을 학교에 넘겨주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첫 회의를 갖고 출범한 교육자치정책협의회는 초중등 교육정책의 시·도 이양을 심의, 의결할 기구로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이재정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이 공동의장을 맡았다. 이 자리에서 김 부총리는 “그동안 학교 현장에 부담을 줬던 각종 규제적 지침을 정비하고 이를 통해 시도교육청과 학교의 교육자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 등 교육관련 법률 42개, 시행령 및 규칙 119개, 행정규칙 89개 전체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또 시·도교육청의 재정 자율권 확대를 위해 특별교부금의 비율을 4%에서 3%로 낮추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약 4000억 원의 예산을 시·도교육청이 자체적으로 쓸 수 있게 된다. 이밖에도 교육부가 행사하던 교육청 4급 이상 정원 승인권을 없애 교육감의 인사 재량권을 늘리기로 했다. 이에 반해 시·도교육청 정량평가를 축소하고 시·도교육청 자체 평가를 도입하기로 했다. 시·도교육감에게 예산과 인사의 권한을 대폭 보장하고, 교육부의 역할을 줄임으로써 초중등 교육 분야의 정책 주도권을 시도에 넘기겠다는 뜻이다. 당장 교육감들은 환영하고 나섰다. 공동의장인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교육부와 교육청이 마주앉아 교육자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단군 이래 처음있는 일”이라며 ‘감동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방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시·도 자율 운영의 확대로 국가 교육운영의 안정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 지역별 교육격차가 더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다. 또 인사와 재정의 권한은 커지는데 비해 자치라는 명목으로 견제나 관리 감독 기능은 약하게 만들어 자칫 ‘제왕적’ 교육감의 전횡을 막을 장치가 없다는 것도 보완사항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육학과 교수도 “주민 직선으로 교육감이 선출되는 상황에서 진보냐, 보수냐의 이념성향에 따라 교육정책이 크게 바뀔 수 있는 불안정성이 커졌다”며 학교 교육을 이념에서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총은 “이전 정부에서 교육부의 권한은 시·도에 대폭 이양됐다”며 “이제는 시·도에 내려간 권한을 학교에 주는 것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시 등교제 등 학교의 권한을 교육청이 틀어쥐고 좌지우지 하는 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교육자치정책협의회 위원 구성이 편향됐다는 지적도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협의회 위원 14명 중 당연직 6명의 교육감이 모두 진보성향의 교육감인데다 민간위원인 강민정 위원의 경우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만든 징검다리 교육공동체 상임이사를 맡고 있으며, 이진철 위원은 충남도교육감의 인수위원을 지낸 바 있다. 또 최창의 위원 역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 진보진영 단일후보 경선에 참여하는 등 상당수가 전현직 진보 교육감과 연관돼 있다.
하늘이 맑고 깨끗하다. 오랜만이다. 그야말로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깨끗하다. 티가 없다. 흠이 없다. 가을이 깊숙이 내 곁에 다가온 느낌이다. 좋은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일까?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는 선생님이다. 요즘은 일교차가 심하다. 이럴 땐 면역력은 떨어져 감기에 걸리기 쉽다. 선생님이 감기에 걸리면 모든 학생들에게 피해를 준다.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잘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건강이 건강한 수업을 이끈다. 감기가 들고 나면 적어도 보름 이상 시름시름 고생을 해야 한다. 그러기에 건강에 유의하는 선생님은 지혜로운 선생님이다. 부지런한 선생님이다. 부지런한 선생님은 학교에서도 쉴 틈이 없다. 그렇다고 집에가서도 푹 쉬지 못한다.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이들을 하나하나 처리해 놓고 밤을 맞이한다. 그야말로 늘 바쁜 가운데 생활한다. 하지만 게으른 선생님은 학교에서도 할 일이 별로 없고 집에 가도 할 일이 없다. 아니 보이지 않는다. 아니 뒤로 미룬다. 이런 선생님은 학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한다. 가정 주부가 가정에서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듯이, 농부가 논에서 들에서 손으로 일하듯이 어부가 바다에서 손으로 일하듯이 자기의 학교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다. 근면한 선생님은 근면한 제자를 길러낼 수가 있다. 선생님의 영향력은 영원하다.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선생님만큼 많은 이도 잘 없다. 그러기에 애들에게 근면의 학생으로 키워보자. 좋은 선생님은 학생들을 믿어주는 이다. 학생을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면 학생들은 설 자리가 없다. 학생들을 믿어주면 장래가 밝아진다. 지금은 보잘것없어 보여도 장래를 위해 신뢰를 무한히 보내면 그 학생은 선생님의 신뢰에 보답하게 된다. 전혀 시인이 되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애가 장차 훌륭한 시인이 되어 시집을 보내는 오는 것 보면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의 가능성만 보여도 아니 전혀 보이지 않아도 장래를 위해, 비전을 위해 믿음의 말을 던지면 그 학생은 잠재력을 발휘해 놀라운 학생으로 성장하게 된다. 성악을 하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조금만 목소리가 좋으면 성악을 하도록 권하기도 하고 지도하기도 해 교수님보다 더 훌륭한 성악가가 되게 한다고 하였다. 학생 모두는 선생님을 능가하는 잠재적인 능력이 있기에 늘 믿어주는 역할을 하고 희망의 말을 던지는 선생님이 되면 좋을 것 같다.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이층 계단에 하얀 꽃잎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손으로 주우려는 순간 꽃잎은 나비가 되어 팔랑 눈앞에서 날아갔습니다. 날아가는 나비를 한참동안 바라보면서 꽃잎이라고 생각했던 사물이 나비였다는 사실이 신기하였습니다. 어떤 요정이 꽃잎에 요정가루를 뿌린 것이 아닐까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무심코 보는 사물에 대해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아주 깊은 곳까지 사유하여 쓴 책을 읽었습니다. 『김선우의 사물들』은 숟가락, 거울, 의자, 반지, 못, 걸레 등 어디에나 보이는 일상적인 물건들이 그 소재로 등장합니다. 푸른 감자를 긁던 어머니의 기억에서 시작된 사유는 숟가락이 가지는 본질적인 둥근 부드러움과 섬김으로 이어지면 작가의 추억과 버무려져는 글은 감칠맛을 더하며 읽힙니다. 그곳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나뭇잎 몇 장이 쓸려오고 고양이가 걸어가고, 길 잃은 풍뎅이 한 쌍이 의자 밑 그늘 속에서 사랑을 나눈다 해도, 매번 등을 구부려 의자 밑을 확인해보지 않는 한 그곳은 비밀스러운 파동을 유지한다. 게다가 그 비밀스러운 통로는 우리들의 엉덩이 바로 밑에 존재하는 것이다!/의자 스스로를 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스스로일 뿐이라는 것을 그는 온몸으로 보여준다./쓰레기통 소라 껍데기는 한 채의 집이다. 사랑을 나누고 움직이고 자라던 산 것의 몸이고 동시에 집이다./소라 껍데기 모든 우연은 필연이 몸을 감추는 방식이며, 또한 몸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여행은 땅과 공명하고 사람과 공명하는 여정이다./여행 작가 김선우는 시인의 눈으로 사물의 영역과 경계를 허물고 생각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내밀하고 깊은 관찰이 글쓰기의 기본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글을 읽으며 내 주변의 사물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게 그리고 따뜻하게 바라보았는지를 반성하였습니다. 그녀의 시 ‘연두의 내부’, ‘단단한 고요’, ‘감자 먹는 사람들‘을 읽다보면 얼마나 사물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로 이어지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녀의 시에서 보여주던 시적 언어가 다시 산문의 언어로 변하여 꽃잎 같았던 시어는 배추흰나비가 되어 날아다님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처서를 지나고 확연히 달라진 들판 풍경과 확실히 더 잘 들리는 벌레소리들은 큰 걸음으로 다가서는 가을을 느끼게 합니다. 먼 곳에서 시를 쓰는 벗에게 가을이 왔다고 엽서 한 장을 쓰렵니다. 모두 행복한 가을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김선우의 사물들』, 김선우 지음, 단비, 2012
교총이 4대 비위 징계자의 교장(감) 승진임용을 ‘영구’ 배제하는 교육부의 ‘교장승진임용제청강화방안’(지침)을 즉각 폐기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교총은 최근 교육부, 시도교육감협의회, 국가인권위원회에 공식 건의서를 전달하고 “징계 시기, 경중, 기록 말소 여부 등을 고려하지 않고 승진제한기간 없이 모두 배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공무담임권 침해”라고 강조했다. 특히 상위법령인 현행 교육공무원임용령이 승진제한기간을 강화하며 개정 시행일(2011년 11월30일) 이후 비위 징계자에게만 적용하도록 한 데 반해, 교육부가 내부 지침을 통해 징계 시기와 관계없이 영구 배제토록 규정한 것은 헌법상 교원지위 법정주의, 과잉금지, 소급행정입법금지의 원칙 등에 위배된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했다. 교총은 또 “국가공무원 복무․징계관련 예규 상 ‘말소된 징계로 승진 등에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 등에도 반하는 지침”이라며 폐기를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고법 행정3부는 2015년 3월 경기도 A교사가 교육감을 상대로 낸 ‘교감승진 임용 제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징계 말소 기간이 지난 후에도 같은 비위 사실로 승진을 제한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지난 2월 판결한 바 있다. 현재 교육청은 대법원에 항고한 상태다. 또 2015년 3명의 교원이 해당 지침에 대한 위헌심판 청구를 제기해 심리가 진행 중이다.
정부가 사실상 간선제를 유도해 온 국립대 총장 선출방식이 앞으로 대학 자율에 맡겨진다. 이를 위해 선출방식과 재정지원사업을 연계하는 제도를 폐지한다. 교육부는 29일 발표한 ‘국립대학 총장 임용제도 운영 개선방안’을 통해 총장 후보자를 직선제든 간선제든 대학이 자율 선택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대학특성화사업(CK) 등 7개 재정지원사업에 포함된 국립대학의 ‘대학구성원참여제 운영’ 관련 가점 지표 및 미이행에 따른 사업비 환수조치를 내년부터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개선방안 발표 후 선출방식을 전환한 대학에 대해서도 사업비 환수 등 불이익 조치 적용이 배제된다. 또 그간 대학이 무순위로 후보자를 추천하던 방식에서 1,2순위를 정해 추천할 수 있도록 하고, 교육부는 대학의 우선 순위를 반영해 임용 제청하기로 했다. 아울러 대학이 후보자를 추천하는 단계에서 2순위자 임용 수용여부에 대한 의사를 표시하게 하고 교육부는 이를 반영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후보 추천이 완료돼 절차가 진행 중인 금오공대, 부산교대, 목포해양대, 춘천교대, 한경대에 대해 2순위자 임용 수용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대학이 총장 임기 만료 3개월 이내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을 경우에는 장관이 직권으로 후보자를 제청하는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교총은 “그간 재정지원사업 연계 폐지 등 대학 자율성 보장을 촉구해 온 만큼 이번 개선안을 환영한다”면서 “다만 장관 직권 제청은 대학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고 코드인사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에드워드 H.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이 역사의 연장선 일제강점기 수탈의 현장 군산에 보물섬남해독서학교 아이들이 호흡을 같이했다. 말복을 넘긴 다음 날 팔월의 태양에 달구어진 대지는 열을 내뿜는다. 두어 시간여 만에 금강하구와 서해를 보며 군산 시내로 들어선다. 군산은 1899년 5월 1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개항되기 전 옥구군에 딸린 조그만 포구였다. 하지만 강화도조약 이후 일곱 번째 개항되어 호남 곡창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내는 거점이 됐다. 개항 당시 500명이 채 안 되는 인구는 8,000여 명의 일본인이 건너오고 소작에 나선 조선인들까지 합쳐 북적대는 도시가 됐다. 조금 이른 느낌이 들지만 북적거리는 시간을 피해 바다와 가깝다는 빈해원이란 중국식당으로 첫 일정을 시작한다. 이 집은 군산에서 65년 된 중국집으로 원주인은 대만으로 가고 아들이 운영하고 있는데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촬영지로 유명세를 탔다. 소박한 중국집이지만 가운데 긴 홀이 있고 홀 양쪽으로 죽 늘어선 이층복도와 아치형 천정은 중세 성당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탁류를 집필한 소설가 백릉 채만식 문학관으로 향한다. 채만식은 1902년 전북 옥구에서 태어나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중퇴했다. 흔히 채만식을 풍류 문학가 또는 불란서 백작이라고 부른다. 비록 수중에 돈은 없지만 언제나 곤색 상의에 회색 바지를 깨끗이 입고 모자까지 쓰고 다니는 신사풍의 그를 보고 주위 사람들이 붙여준 것이다. 내성적인 성격과 외곬은 배타적인 면, 한번 잘못 본 사람은 끝까지 미워했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은 장편 소설인 '탁류'인데 부조리에 얽힌 1930년대의 사회상 풍자와 군산을 무대로 일제강점기 시대의 억눌린 서민들의 삶을 기록한 수작이다. 문학관 2층에서 금강하구를 바라본다. 시선이 닿은 곳은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와 금강이 만나는 하구라 짙은 회색빛 펄이 박무 낀 날씨와 닮아있다. “에두르고 휘몰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 째 얼려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탁류의 한 부분이다. 맑던 물도 군산에 이르면 탁류로 변한다는 암시적인 표현을 통해 일제 수탈의 역사가 서린 군산을 말하고 있다. 문학관에서 시대적인 상황을 이해한 아이들은 이영춘 가옥으로 향한다. 이 가옥은 일제강점기 시절 전국 5대 갑부 중 하나인 일본인 대농장주 구마모토가 1920년경 조선총독부 관저와 비슷한 건축비를 들여 만든 초호화 건물이다. 미터법을 사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물로 외부형태는 유럽식 벽난로와 다다미는 일본식, 침실은 한식 온돌을 설치한 특이한 아름다운 가옥이다. 그리고 1935년 33세의 젊은 나이에 자혜의원 원장으로 부임하여 농촌 의료에 헌신한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이영춘 박사가 해방 직후 구입하여 진료소로 이용하다 지금에 이르고 있다. 좁은 공간에 약간 불편한 면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일본의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으로 수탈에 메말라져 간 우리 소작 농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한 장씩 담는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은 시내를 통과한다. 차창 밖으로 길게 줄을 선 인파 사이로 이성당 빵집의 상호가 보인다. 이 빵집 또한 일제의 흔적으로 그 시작은 일제강점기 이전 일본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70년을 합치면 족히 100년을 넘는다. 지금은 그 비법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고 있는데 단팥빵과 야채빵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역사의 눈물을 머금은 그 빵이 달콤할지 의문이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일정이 시작된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어느 곳도 일제의 수탈을 피할 수 없었다. 그 모습 하나하나를 모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군산 하면 뜬다리부두가 유명하다. 군산 내항에 있는 뜬다리는 모두 7개였었는데 지금은 3개만 있다고 한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안의 물 수 위에 따라 물이 들어오면 수위가 높아지면서 다리가 떠오르고 물이 빠지면 다시 다리가 가라앉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수탈의 편리성 때문에 뜬다리가 만들어졌지만 과학적 원리는 높이 살만하다. 일본은 이 군산 내항을 통해 호남지역에서 생산되는 200만 석이 넘는 쌀을 수탈해갔다. 일본이 그 쌀로 배가 터지도록 먹을 동안에 우리 민족은 먹을 것이 없어서 배를 곯아야 했다. 보릿고개까지 겹치는 계절이 올 때는 고통이 배가 됐을 거란 생각에 숙연해지며 분노에 저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기록이라고 했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현재의 거울이자 살아가게 될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이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민족, 계급, 종교와 같은 갈등요소로 첨예하게 대립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역사 인식의 출발점이다. 이번 군산 독서여행을 통하여 미래의 주인인 아이들이 긍정의 역사 관점에 비판 정신을 더하여 혁신과 개선으로 인류 발전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사고의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되기를 모아본다.
EBS가 지난 8월 15일 제72회광복절 특선으로 ‘동주’를 방송했다. 2016년 2월 17일 개봉한 영화이니 1년 6개월 만에 지상파 TV 전파를 탄 셈이다. 비교적 빠른 TV 방송인데, 이제서야 보게 됐으니 지각 관람이랄 수 있다.방송이 낮 12시 10분부터라 점심식사 시간과 겹치는게 부담스러웠지만, 윤동주 생각으로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길 겸 시청을 강행했다. 사실 월간 ‘한울문학’ 3년 연재를 마치고난 후론 영화감상의 날이 그만 무뎌지고 말았다. 그때그때 영화를 보지 않고 그냥 넘어가곤 해서다. 가령 6월 28일 개봉한 ‘박열’을 달포가 지나서 보는 식이다. 감상=집필이란 나름 공식을 견지하다보니 빚어지는 현상이라 할까. 쓰기 위해 영화를 보는 뭐, 그런 경우가 되고만 것이다. ‘동주’는 5억 원 규모로 만들어진 흑백영화다. 이준익 감독은 “막대한 자본을 들여 윤동주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게 소박한 삶을 지향했던 고인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중앙일보, 2016.2.2.)며 저예산 흑백영화인 이유를 설명했다. 아다시피 이준익 감독은 ‘동주’ 직전 해인 2015년 총제작비 96억 원의 사극 ‘사도’를 연출, 흥행했다. ‘동주’는 민족저항시인 윤동주(1917~1945)를 주인공으로 한 최초의 영화이다. 평전이나 연구서가 여러 권 출간된 것에 비하면 일견 의아한 일이다. 이를테면, 오히려 늦은 윤동주 영화인 셈이다. 2016년 3월엔 KBS가 다큐멘터리 ‘불멸의 청년 윤동주’를 제작⋅방송한 바 있다. 그뿐이 아니다. 70주기를 맞아 윤동주에 대한 조명이 활발했는데,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 공연도 그중 하나이다. 고교에서 윤동주를 가르치던 나도 특별히 유념한 것이 있다. 군산여자상업고등학교나 전주공업고등학고 같은 특성화고 시험에서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답이 되도록 주관식 문제를 꼭 냈던 것. 곧바로 사회인이 되는 특성화고 학생들이 그 정도는 교양 차원에서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서거 70주기를 맞아 복간된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두 달 만에 5만 부가 팔렸단다. 그 열기는 영화 ‘동주’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거나 나타났다. 자그만치 117만 5143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였으니까. ‘동주’의 손익분기점이 27만 명쯤으로 알려졌으니 117만 5143명은 완전 대박인 수치라 할 수 있다. ‘동주’는 28세라는 짧은 생애의 윤동주(강하늘)를 객관적으로 그린다. 1943년 취조 장면으로 시작해 1935년 북간도에서의 중학생 시절을 회상하는 나라따아즈 방식이다. 경성의 연희전문 시절과 일본으로의 유학과 검거, 그리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의 취조와 죽음이 펼쳐진다. 그 중간중간에 유명한 시 ‘별헤는 밤’⋅‘서시’ 등이 낭송된다. 사실 ‘동주’는 재미와는 거리가 먼 일종의 다큐영화이다. 그런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허구적 인물인 연희전문 여학생 이여진(신윤주)과의 교유나 일본에서 그를 돕는 일본인 쿠미(최희서) 이야기는 그 때문인 듯하지만, 내가 보기엔 윤동주와 상당히 대비되는 사촌 송몽규(박정민)의 삶이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한다. 그만큼 송몽규의 비중이 크게 그려졌다. 공산주의, 혁명, 상해임시정부 등 실천하는 독립운동가인 송몽규와 반대 지점의 윤동주 삶이 현란하게 대비되어 지루할 틈이 없는지도 모른다. ‘동주와 몽규’를 제목으로 해야 맞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때 흑백화면은 엄혹한 일제침략기를 상징하는데 안성맞춤으로 보인다. 송몽규와의 현란한 대비는 윤동주의 부끄러움을 비춘다. “그림자처럼 따라가기만 한게 부끄러워 서명 못한다”는 윤동주의 절규가 가슴을 저릿하게 하지만, ‘개죽음’을 떠올리게도 한다. 송몽규처럼 적극 나서지 못한 자신을 시를 통해 부끄러워하고 있을 뿐인데,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다니! 새삼 일본제국주의의 잔혹함이 전율을 일으킨다.
경기 소안초(학교장 오이영)는 생활경제 교육으로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경제 개념을 심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시장(가게)놀이, 금융 강사 초청 경제 교육, 금융기관(농협) 방문 등의 체험 경제 교육을 통해경제의기본개념을이해하고생산과소비의과정을쉽게이해할수있도록하고있다. 현장체험학습도 저학년은 키자니아, 고학년은 잡월드를 선택해서 학년별 수준에 맞는 경제 교육을 실시한다. 생활경제교육은 경제의 기본개념 뿐 아니라 진로교육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교육이다. 학교 폭력이 없는 행복한 학교, 체험 경제 교육으로 21세기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소안초등학교는 지역의 명문 초등학교로 자리메김하고 있다.
구운동 주민센터에는 주민들로 구성된 단체들이 있다. 주민자치위원회, 통장협의회, 새마을부녀회,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체육진흥회, 방위협의회, 바르게살기위원회 등 모두 12개의 단체가 조직돼 있다. 마을만들기협의회도 주민센터 산하 단체이다. 이 단체들은 매월 1회 정례회를 갖고 사업을 의논하고 좀 더 좋은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의 구운동 마을만들기협의회(회장 서평임) 어떻게 구성됐을까? 작년 회원들의 사임이 이루어지고 신입회원들의 자발적 입회가 있었다. 그 결과 작년 총무가 회장이 되고 신입회원인 나는 총무가 됐다. 협의회라는 조직체를 운영하려면 당연히 회장 총무가 있어 일을 맡아 처리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회장과 총무는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아야 한다. 그리해 단체장 회의에 나란히 참석해 활동사항을 보고하기도 했다. 협의회 구성원이 바뀌니 활동내용도 작년과는 다르다.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이 ‘2017 마을만들기협의회 회의록’이다. 활동에 따른 기록을 남기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역사가 된다. 총무의 일거리는 늘어나지만 꼭 필요하다고 보았다. 자체 회비는 월 2만원으로 했다. 통장번호를 SNS로 안내하고 자발적 납부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단체 카톡방과 밴드도 운영하고 있다. 이것은 구성원들 간의 소중한 교류와 소통 창구가 된다. 그동안 협의회의 활동을 보면 타 단체원들과 함께 하는 꽃길 가꾸기, 봄맞이 대청소, 방범순찰, 경기민속예술제(9.22) 참가 연습 등이 있었다. 자체적으로는 건강 100세 경로당 만들기 사업으로 미용·이발·염색·네일아트 봉사를 비롯해 운영 세칙 수정보완, 마을만들기 사업 브레인스토밍, 어린이 공원 자연보호활동, 어르신 복달임 행사, 현장에서 답을 찾기 위한 골목길 탐방, 타 지역 마을만들기 우수 사례 공유, 권선구 마을만들기 협의회 참관 등을 했다. 이것으로 협의회 활동이 잘 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사업을 추진하려면 구성원 간에 마음이 맞아야 한다. 월 1회 만나 회의하고 점심 먹고 헤어지는 것으로는 조직은 답보상태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해 구상한 것이 자체 워크숍이다. 나는 총무로서 회장, 부회장과 만나 구상을 이야기 하니 아이디어가 좋다고 대환영이다. 이후 회원들의 의사를 물으니 모두 긍정적인 반응이다. 이렇게 해 워크숍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시기, 기간, 장소 등은 모두 회원들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여기에 소요되는 경비는 모두 회원들 각자 부담이다. 어찌 보면 마을만들기 공동 목표는 같으나 서로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남남이다. 인위적으로 맺어진 조직이다. 회원 9명 중 수술 중인 회원과 직장에서 도저히 빠질 수 없는 두 분을 제외하니 7명이 참석했다. 기존회원 4명이고 신입회원 3명이다. 1박2일 일정에 이 정도 참석률은 높은 편이다. 장소는 지인이 추천해 준 대부도의 000펜션으로 정했다. 사전 답사도 마쳤다. 이 워크숍의 목표는 무엇일까? 마을만들기 회원 자질 향상, 구운동 마을만들기 방향 모색, 구운동 지역사회 이해 증진, 소속감 중진 및 애정 충만, 신입회원 적응력 강화, 회원 간 상호 이해와 친교, 화합으로 정하고 계획서를 공유했다. 당일 점심은 매식으로 하고 저녁과 아침은 자체 취사를 하기로 했다. 워크숍 주요 활동은 구운동장 초청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 증진, 구운동 마을만들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토의, 저녁 후 시간을 이용한 한여름밤의 꿈-포크댄스, 제2일 해솔길 걷기 등이다. 이 중에서 해솔길 걷기는 더위로 인해 시화호 조력발전소 견학으로 대체 됐다. 워크숍 출발에는 이 지역 시 위원의 배웅이 있었고 또 한 분의 시의원은 대부도를 직접 방문해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시의원의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구성원들이 밥을 같이 먹고 몸을 부대끼면 가까워진다는 것을 실감한 워크숍이었다. 특히 남성 회원이 식사 준비를 하기로 한 약속은 여성 회원의 너그러움으로 깨지고 말았다. 백○○ 회원은 장보기를 비롯해 요리에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다. 김치전과 부추전을 뚝딱 만들어 내고 옻닭 백숙, 가시오가피 백숙 등은 보양식 복달임으로 손색이 없었다. 상차림의 달인 수준이었다. 자리를 함께한 지준만 동장, 시 의원과 그렇게 오랜 시간 이야기한 적은 처음이었다. 모두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에서부터 출발한 이야기이니 공감대가 형성됐다. 여성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김치, 깻잎 절임 등 밑반찬을 준비해 식탁을 풍성하게 했다. 한여름 밤의 포크댄스에서는 너무나 즐거워 웃음의 도가니가 됐다. 구운동 마을만들기협의회, 역사는 짧지만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자 워크숍을 시도했다. 아마도 이것은 타 단체의 선례로 남을 것이다. 특강을 맡아 주신 동장과 격려를 해 주신 두 분의 시의원께 감사를 드린다. 무엇보다 리더십을 발휘해 주신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자발적으로 참가하고 식사 준비와 설거지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해 준 회원들께 감사를 드린다. 구운동 마을만들기협의회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
"한국인·일본인 이 사건 잘 몰라… '우키시마마루(浮島丸·우키시마호) 희생자 추모 15년 전부터 강연 하면서 알려요" 해마다 8월 24일이 되면 일본 교토 북부 마이즈루(舞鶴)시에서는 '우키시마마루(浮島丸·우키시마호) 희생자 추모 행사가 열린다. 이러한 행사는 일본인 요에 가쓰히코(余江勝彦·76) 회장이 주도하고 있다. 그는 40년째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의 조선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일본이 패망한 직후인 1945년 8월 21일 오후 10시,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에서 조선인 징용 노동자와 가족 등 3735명(일본 정부 발표)이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4740t)에 올랐다. 일제강점기 비인간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돌아가는 부산행 귀국선이었다. 그러나 3일 뒤인 24일 오후 5시 20분, 마이즈루 앞바다를 항해하던 우키시마호에서 의문의 폭발이 일어났다. 배는 순식간에 한가운데가 절단된 채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인근 마을 사람들의 구조 작업에도 524명의 조선인과 25명의 일본 승무원이 목숨을 잃었다. 마이즈루시의 한 주민은 "배에서 나온 기름이 바다를 검게 뒤덮었고, 주민들이 엔진도 안 달린 배를 타고 나가 밤늦게까지 사람들을 건졌다"고 전했다. 요에 회장은 지난 1978년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조선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동상을 건립하고 매년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마이즈루시에서 미술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조선인 희생자들을 기리는 동상을 만들어 달라"는 마을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동상을 만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며 "동상 제작을 위해 자료 조사를 벌이면서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잊지 않고 전하는 것은 억울하게 희생된 524명의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의 책임입니다"라고 힘줘 말한다. 그는 "전쟁만 아니었다면, 식민지 지배와 강제 연행만 없었다면 이런 비참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우키시마호 사건이 그냥 잊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했다. 요에 회장은 "추모 행사는 사상·신조·종교 차이를 초월해 인도적 차원에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열고 있다"며 "평소 대립각을 세우던 민단과 조총련도 이날은 한마음이 된다"고 했다. 15년 전 그는 퇴직했다. 퇴직한 후에는 일본 곳곳을 다니며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조선인 징용자들이 일본에 끌려와서 겪은 어려움과 억울하게 죽어간 사연을 담은 작은 그림책도 만들었다. 요에 회장은 "일본 사람은 물론, 한국 사람들도 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해 잘 모른다"며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가 역사의 진실된 내용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총이 17일부터 진행하고 있는 ‘교원 증원 촉구 및 기간제 교사·강사 정규직 전환 반대’ 청원에 열흘간 10만 5228명이 동참 한 것으로 중간 집계됐다. 교총은 교육부의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시급한 상황임은 인식해 회장과 참여자의 이름으로 청원서를 작성, 28일 청와대와 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에게 전달하고 근본적 해결책 마련을 촉구했다. 교총은 청원서를 통해 “기간제 교사와 강사의 정규직 전환은 교육법정주의에 위배되며, 전환에의 법적 근거도 없다”며 “정규직 교사와 강사의 정규직 전환은 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교원이 되기 위한 임용시험을 통해 채용된 교사와 여러 해 동안 교원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예비교사를 역차별하는 형평성 문제를 야기시킨다”고 지적했다. 또 교원 증원에 대해서도 현재 ‘임용절벽 문제’는 정부의 교원수급 정책의 실패를 예비교사들와 교육 현장에 떠넘기려는 비교육적이고 비정상적인 처사로 규정했다. 이어 교원 1인당 학생 수와 학급 당 학생 수 등 전반적인 교육 여건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수준에 못 미치고 있는 만큼 1만 6000명 증원 약속을 조속히 이행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하윤수 교총 회장은 “불과 열흘 만에 10만 5000명이 넘는 인원이 교총의 청원에 동참한 것은 무엇보다 교육현장에서 교원증원과 기간제교사‧강사 정규직 전환 불가라는 청원과제 실현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청와대와 교육부는 청원에 참여한 전국 교원과 예비교원, 학부모들의 뜻을 무겁게 인식해 문제 조속히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활동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교육부 정규직심의위원회에도 청원에 참여한 전국 10만 5228명의 뜻을 전달하고, 마지막까지 기간제 교사‧강사 정규직 전환 불가 관철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할 계획이다. 한편 정규직전환심의원회는 당초 이달 말까지 회의를 마무리하고 가이드라인은 마련하려 했지만 당사자 간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데다 교총 등을 중심으로 반대 입장이 거세게 일고 있어 심의 기간을 9월 초까지 연장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교총(회장 하윤수·사진 오른쪽)은 29일 서울 서초구 소재 교총회관에서 NH농협은행과 장학기금 전달식을 개최했다. 이날진재혁NH농협은행양재남지점장이 참석해어려운 환경에서도 학업에 대한 열정을 놓치지 않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장학기금 1500만원을 전달했다. 교총은 지난 1971년 한국교총장학회를 설립해 매년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NH농협은행은 2012년부터 매년 교총에 장학기금을 기부해오고 있다.
오늘 종일 비올 구름으로 하늘을 덮고 있다.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아직 여름인 것 같은데 구름이 더위를 날리는 역할을 단단히 한다. 구름의 한 몫이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보니 구름은 보람을 느낄 것 같다. 이 시간에는 좋은 선생님이 어떤 선생님인지 생각해 본다. 좋은 선생님은 자신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보람된 삶이 될 것이고 이런 선생님을 좋은 선생님이다. 우리 선생님에게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한두 명이 아니다. 수십명, 수백명이다. 이들에게 행복한 삶을 살게 해줄 수 있으니 선생님은 자신이 먼저 행복자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언제나 내 주위에는 나의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이들로 가득 차 있으니 감사할 일이다. 좋은 선생님은 깨끗한 삶은 사는 것이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주위가 다 깨끗해진다. 자신의 고결한 인품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면 그 삶은 보람된 삶이 되고 그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 된다. 돈 때문에 더러워지는 세상이다. 돈 때문에 자유를 잃게 되는 세상이다. 깨끗한 삶은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에게도 평생 깨끗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된다. 좋은 선생님은 봉사의 삶을 사는 이다. 아무리 실력이 있고 재주가 뛰어나고 가르침에 대한 열정과 의욕이 많이 있어도 이웃과 어려운 이들에게 눈을 돌리면서 그들에게 봉사의 삶, 헌신의 삶을 산다면 정말 의미 있는 삶이 되고 보람 있는 삶이 된다. 이런 선생님은 모든 이들로부터 좋은 선생님이라 평판을 얻을 수 있다. 좋은 선생님은 희망을 가진 선생님이다. 희망의 선생님은 좌절의 학생을 희망의 학생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선생님이 희망이 없다면 실의에 빠진 학생들에게 어떻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겠는가? 희망은 자신을 건강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많이 애들에게 희망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학생들 중에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외롭게 살아가는 이도 있다. 학생들 중에는 가정의 파탄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도 있다. 어떤 학생은 친구들로부터 외면을 당해 괴로움을 당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선생님의 눈에는 잘 띈다. 그러면 이들을 외면하면 안 된다. 이들에게 희망을 가득 담아서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선생님은 보람을 느낄 수가 있고 많은 학생들의 희망으로 인해 자신은 더욱 힘차게 학교의 생활을 할 수가 있다.
충남 서산 서령고(교장 한승택)는 28일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교육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헌혈을 실시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50분까지 전교생과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헌혈에서 총 333명이 적합 판정을 받고 헌혈을 실시해 이웃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실천했다.
1993년 7월 4일, 217번째 맞는 미국의독립 기념일을 기억하며. 당시독립을 축하하기 위한 각종 행사로 미 전역이 떠들썩하다. 우리 나라의 국가적인 기념일과는 달리 이곳은 이런 날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다. 너나 할 것 것없이 행사장으로 모여 축제 분위기를 한껏 북 돋운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Wilson Park이라는 넓은 공원이 있다. 그 곳에서도 매 해 독립 기념일 행사가 열리고 있다. 각종 쇼와 게임이 하루 종일 계속되고 저녁에는 불꽃놀이를 한다. 낮에 교회에서 오다보니까 그 넓은 공원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공원 군데군데에서 춤을 추고, 수영복 차림으로 물에 빠뜨리기, 각종 공놀이 등의 게임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잔디에 않아 가족끼리 식사를 하기도 했다. 표정들이 모두 밝다. 국가가 독립된 날이기 때문에 저렇게들 기쁜 모양이다. 우리는 게임 등에는 별 관심이 없고 저녁에 불꽃놀이나 보려는 속셈으로 집으로 돌아와 일찍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차를 몰고 공원쪽을 향했다.그러나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서길이 막혀 버렸다. 경찰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길을 막아 버린 것이다. Park에서 꽤 되는 거린데 거기까지 자동차가 꽉 차서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웬만큼 가까우면 차를 세우고 걸어서라도 가보겠는데 도저히 걸어갈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행사 시작 한시간 전에 나왔는데도 이렇다. 공원이 워낙 넓고 들어가는 길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 혹시 하는 마음으로 차를 몰고 이리저리 돌아 보았다. 그러나 공원으로 통하는 길은 한군데도 열려 있지를 않았다. 공원에서 꽤 먼거리에서도 사람들은 불꽃놀이를 보려고 자리를 깔고앉아 있었다.엄청난 인파가 거리를 메우고있다.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만큼인 것을 보면 공원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모여있을 것 같다. 미국에 와서 처음보는 인파다. 평소에는 사람들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거리인데... 우리는 어이가 없었다. 그까짓 불꽃놀이 한번 보자고 이 난리들을 치다니... 남가주에서 불꽃 놀이는 희귀한 것이 아니다. 디즈니랜드에서 매일 밤 엄청나게 많은 불꽃을 터뜨린다. 그 흔한 불꽃놀이 만을 보려고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돌아가 버릴까?" "그래도 애써 나왔는데..." 결국 우리는 돌아가지 않고 차의 행렬 들이 있는 맨 뒤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공원쪽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두살 난 아들에게 이곳의 독립기념일 풍경을 보여 주고 싶기도 하고사람들이 불꽃놀이에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드디어 하늘에서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폭죽 소리가 딱총소리만큼 밖에 들리지 않는 먼 곳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 한다. 우리 아이도 덩달아 좋아한다. "세상에 할 일도 없다. 저거 한번 본다고 그 야단들이니." "우리도 마찬가지지 뭐" "우리야 처음이니까 호기심에 나왔지. 내년부터는 않나오겠다." 아무래도 우리들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우리야 미국에 와서 처음 맞는 독립 기념일이고 저녁에 불꽃놀이를 한다기에 그저 무언가 새로운 일이구나 싶어 집을 나섰지만, 이 사람들은 매 해 보는 일일 텐데도 이 고생을 하며 불꽃놀이를 구경하려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미국인들은 개인주의적인 성격이 어느나라 사람들보다도 강하다.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영역을 설정해 놓고 그 영역을 고수하려 애쓴다. 그 영역을 타인이 침범하는 것도 좋아하지를 않고, 자기도 그 영역 밖의 일은 무관심한 편이다. 어쩌면 그런 개인주의적인, 혹은 가족 주의적인 성향은 사회 자체가 특별한 욕심이 없는 한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도 무리없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되어있는 사회 제도세서 기인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곳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그렇게 살다가 가는 사람이 많다.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별로 염려할 것이 없다. 젊어서 열시히 일하고 나이가 들면 나라에서 노인들의 생활을 다책임져 주기 때문에 공연히 몸 상할만큼 신경쓰며 살지를 않는다. 그런 생활이기 때문에 주변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지가 않다. 그저 스스로 먹고 즐길 만큼만 벌어서 살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 생활 형태 때문인지 사람들이 참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물론 얼굴 표정은 그렇게 다정해 보일 수가 없다. 낯선 사람을 거리에서 만나도 항상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는 것을보면 세계 어느 민족보다 정겨워 보이지만, 그네들의 그런 친절은 어디까지나 일정한 한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정하게 웃었다고 해서 한국에서 처럼 자기에게 호감을 갖고 있거나상당히 가까워 졌다고 생각하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그네들의 인사는 그저 만나서 반가운, 그것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와는 그다지 밀접한 관련이 없는 것 같은 불꽃놀이에그처럼 열광하는 것이 이상스럽게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환호하는 그네들을 보며 또 다른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한국은 어떤가? 그리고 나는 어떤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애국에 대해 읽고 들어왔다. 누가 보면 세계에서 제일 애국심이 강한 나라로 착각할 정도다. 하지만 내심 그렇지가 않았다. 정이 많고, 협동심 강하고, 이웃에 대해 자기가 망해 가면서라도 구해 주려는 마음을 가진 것 같은 우리들이과연 우리의 국가는 얼만큼이나 사랑해 왔는지 의심스럽다. 부끄럽게도 나는 한번도 국경일에 이들만큼 환호해 본적도,이들만큼 기뻐해 본적도 없다. 나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이 작은 나라로 머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민이 사랑하지 않는 나라는 클 수가 없다.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세계 어느나라 사람들보다 넉넉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개인은 더 할 수 없이 강해 보인다. 그러나 국가는 아직 말할 수 없이 약해 보인다. 한국 밖에 나와보면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하게 가슴에 와닿는지모른다.국민이 국가를 사랑하지 않는데서기인된 것임을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은 개인들은 그다지 강해 보이지를 않는다. 경제적으로도 한국 사람들보다 넉넉하지를 못한 편이다. 그러나 미국은 어느나라 보다 강하다. 역시 국민이 사랑하는 나라이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 살면서 미국에 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좋다고 대답한 사람들이 상당히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사회보장 제도가 잘되어있기는 해도 살아가는 것은 누구보다 힘들기마련인 장애인들도 86%가 미국에 사는 것이 만족스럽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생활 조건을 보면 미국이 한국보다 좋아야 할 이유가 그다지 많지를않다.경제적으로도 어렵고 각종 범죄, 형편없는 도시들을 보면, 한국의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에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넓은 국토와 웅장한 자연조건은 한국이 따를 수가 없지만 곰곰살펴보면 한국의 자연환경도 미국에 못지 않게 정겨운 느낌을 주는 곳이 많다. 그 외에도 한국의 좋은 점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그런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살기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믄인 것 같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한다면 정치를 그렇게 하지를 않을 것 같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한다면 교육을 그렇게 하지를 않을 것 같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한다면 사업을 그렇게 해나 갈 것 같지가 않다. 애국심에 바탕을 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나라가 점점 어려워져가는 것이다.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살만한 나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살만한 조건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사막에서 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은 미국에 오기 전까지는 사막에서만 살았다. 물이 나오는 샘 근처에 텐트 하나로 살아왔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자기 나라를 죽어도 못잊어 했다. 어느 나라는 그 도시를 지나갈 때 한 시간 안에 소매치기를 당하지않을 수가 없고, 만약에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으면 소매치기 보다 더 지독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나라도 있다.그런 살기 힘든 나라에 사는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축복 받은 나라인가. 우리가 알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한국도 국경일에 국민이 한마음으로 기뻐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화덕같은 캘리포니아의 뙤약볕에 일사병으로 쓰러져 가면서도 폭죽, 그 독립의 기쁨을 환호하기 위해 온종일을 자리 깔고 기다리는데...
요즘 남가주의 이민 사회에는 우리 2세들이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날로 높아가고 있다. 부모들의 한국에 대한 뿌리 의식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데다, 2중 언어가 가능하면 직장을 얻는데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세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한국어가 서툴다. 부모들이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낮에는 한국어를 대할 기회가 거의 없고, 일을 마치고 돌아온 부모들은시간이 좀 난다해도 지칠 대로 지쳐있어 자녀들과 다정스럽게 앉아 대화를 나눌 여유를 갖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학교에서 미국 친구들하고만 얘기를 할 수밖에없어 한국어를 배우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실정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미국의 각 한인 교회에서는 2세들을 모아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의 한국학교는 대부분 만원이다. 부모의 권유로 억지로 공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의 학생들은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 스스로 한국학교를 택해공부를 한다.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국에대한 사랑이 깊어지는 우리의 2세들을 보면 뿌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미국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내가 소속되어있는 선교회에서 모임 안내장 하나가 왔다. 모 회원 집에서 가라오께를 준비했으니 모이라는 내용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가라오께라는 것을 말만 들었지 한번도 본적이 없다. 관심도 없었고 기독교인으로 그런 것을 접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해보지를 않았던것이다.기독교와 가라오께, 도대체 걸맞지를 않게 느껴진다. 그렇게 신앙이 돈독한 우리 회원들이 가라오께를 한다니... 마음에 좀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혼자 빠질 수도 없는 일이어서 회원 집을 방문했다. 식사를 마치고 막상 가라오께라는 것을 시작했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퇴폐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엄청나게 큰 TV에 비디오 테입을 넣자 정겨운 한국의 풍경이 화면 가득 채워지고, 아래 면에는 우리의 아름다운 한글 자막이 이어져 갔다. 고국을 떠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한국이 저렇게 아름답고, 한국어가 저렇게 정겨운 것임을 해삼 절실하게 느꼈다. 회원들이 화면에 나오는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부른다. 매우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모 집사님도 목이 터져라 노래를부른다.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일이다.그런데도 그렇게 나빠 보이지를않았다. 고국에 대한 절절한 향수가배어있는 표정이 오히려 안타까움을 일게 할 정도다. 회원들은 노래를 잘도 불러댔다. 어떻게 그 많은 노래들을 배웠는지 자막을 보지 않고도 능숙하게 불러댄다. 우리 부부만 노래도 잘 모르는 데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지를 않아 멍하니 앉아 있다. 우리 때문에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이 미안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가요를 부르는 분위기가 한국 안에서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흥에 겨워서, 혹은 기독교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세상작인 분위기에 취해 부르는 것이 아니라, 고국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부른다.그 만큼 우리 나라를 사랑하는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민 1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을 한번도 가보지 않은 우리의 2세들도 비록 말은 서툴러도 우리의 말 우리의 정서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우리 교회 목사님의 아들은UCLA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공부하는 틈틈이 조용필의 노래를 듣고 한국의 비디오를 보는 것을목사님은 자랑을 하신다. 목사님 아들 뿐 만이 아니라 많은 청소년, 혹은 청년들이 한국의 비디오, 혹은 노래 테입을 통해 한국어를 배우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한국어를 배워가는 과정을 보면 우스운 일이 많다. 존댓말은 말 끝에 '요'를 넣는다고 가르쳐 주면'나 밥 먹었다요' 라고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로는 목사님을 가리키며 '쟤가 우리 목사님이다' 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우리도 미국에 와서 아이들에게 별의별 이상한 호칭을 다 듣게 된다. 한국에서 같으면 꾸중들을 만한 말들을 아이들은 아무에게나 해 대는것이다.모르고 하는 말이니 야단 칠수도 없고... 우리 이웃에 사시는 분의 경험담을 들으며 한바탕 웃은 일이 있다. 그 분은 충청도에 살다가 20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오셨다. 아이들 셋을 두고 있는 데 모두 한국말이 서툴다. 그 동안에는 생활에 쫓겨 아이들 돌볼 겨를이 없어 한국어를 가르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요즘에 생활이 좀 펴서 엄마가 직장을 파트 타임으로만나가고 남는 시간에 집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직접 가르친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한국어를 배울 만한 학교도 흔치를 않아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를 못했었는데 엄마가 집에서 한국어를가르쳐 주게 된 것에 대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 좋은 대학에서 법학과 의학을 전공하고 있는 착하고 성실한 두 딸은 하루가 다르게 한국말이 늘어간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계집애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조금 눈에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귀여워하는 표정으로 '지랄하네' 라는 말도 곧잘 사용한다. 아이들이 그 말이 무슨 말이냐고 묻자 기분 나쁠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일러주었다. 엄마의 불충분한 설명은 엉뚱한사건을 만들고 말았다. 어느 날 엄마가 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자 대뜸 "엄마 계집애야, 그러지마!" 라고 쏘아 붙였다. 엄마는 너무 기가 막혀서 말을 못할 정도였다. 하루는 손님이 있는데서 엄마에게 '지랄하네' 라고 말했다. "아니, 너 그거 무슨 말인 줄 알고 엄마한테 하는 거냐?" 엄마가 기가 막혀서 물었다. "기분 나쁜 행동을 하면 하는 말이라며." "그건 심한 욕이야." "그럼 엄마는 왜 나한테 그런 나쁜 욕을 했어?" 엄마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손님까지 잔뜩 와 있는데서 이게 무슨 망신인가. 엄마가 딸에게 계집애, 지랄하네 라는 말을 들으면서 살아가야 하다니...그러나 그런 얘기를 우리에게 한탄하듯 털어놓으면서도 별로 싫은 표정이 아니다. 한국말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배워가는 기특한 딸들을 자랑하고픈욕심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 집 딸 아이 하나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돈을 많이 받는 미국 직장과 얼마 안돼는 한국의 은행 지사 중에서 그 학생은 임금이 낮은 한국의 은행을 선택했다. 이유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한국어를 더 많이 배우고 싶어서다. 이곳의 실정으로 보아 임금이 낮은 직장을 선택한다는 것은 비록아르바이트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몇 센트 싼 곳을 찾기 위해 주유소를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니는 게 이곳의 실정인데 월급의 차이가 심한 직장 중에 낮은 곳은택한다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열망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를 잘 알 수가 있다. 직장에 다니면서 한국말을 못하기 때문에 고객으로부터 모국어도 잘 모르면서 은행에서일하고 있다는 꾸지람을 듣곤 한다.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한국의 은행에서 일하잖아요." 애교스럽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 찌푸려졌던 고객의 표정이 금새 펴지곤 한다고 한다. "너 왜 그렇게 한국말을 배우려고 안달을 하니?" 어느 날 한국어 책에 매달려 있는 딸을 보며 엄마가 물었다. "시집 잘 가려고." "네 신랑도 어차피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을 얻을 것 아니니?"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영어를 모르면 어떻해. 나는 시부모님 모시고 살 거야. 결혼은 둘 이만 하는 게 아니잖아. 한국어 열심히 배워서 시부모님하고 잘 지내야지." 기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엄마뿐만이 아니다. 전해 듣는 우리들도 가슴 훈훈하기 그지없다. 평소에 보아온 그 학생의 사람됨됨이로 보아 시부모 모시고 착하게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선다. 우리 말 사랑, 시부모 섬김, 나라 사랑하는 마음, 한국의 젊은이들에게서 살아져 가고 있는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그 학생은 어디에 그리도 곱게 간직하고 있었을까.
한국교총(회장 하윤수)이 교원증원 및 기간제 교사.강사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청원서를 28일 오후 청와대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 전원에게 전달했다. 교총은 지난 17일부터 기간제 교사.강사 정규직 전환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해 27일 현재 교원, 예비교사, 학부모 등 10만5000여 명이 동참했다고 밝혔다. 전달된 청원서에는 “기간제 교사.강사 정규직 전환은 교육법정 주의에 위배되며, 전환의 법적 근거가 없다”며 정규직 전환 불가 등을 명시하고 있다. 서명운동은 31일까지 진행된다.
제1회 교육자치정책협의회가 28일 서울 삼각산고에서 진행됐다. 협의회에는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이재정 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을 비롯해교육부, 교육청, 전문가위원, 학교관계자등 19명이 참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교육자치 및 학교자율화 추진계획,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기능 강화 등이 논의됐다. 회의 초반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의 협의회 성격과 운영규정, 안건 등의 불명확성 등에 대한 이의 제기로 1시간으로 예정됐던 회의가 난항을 거듭하며 지연되기도 했다.
충남 서산시가 23일 예천 사거리에 재해예방 전광판을 설치하고 본격 가동한다고 밝혔다. 시 홍보과에 따르면 2억 1천만원을 들여 지난 5월초부터 이달 초까지 가로 6m, 세로 4m의 최신형 전광판을 설치하고 테스트 기간을 거쳐 이번에 본격 가동하게 됐다. 전광판에는 폭염과 집중호우, 태풍 등 각종 재난 발생 시 국민행동요령과 안전수칙을 문자와 동영상을 통해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기상특보나 재난상황 발생 시에는 각종 상황 및 대응요령을 전광판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가 가능하다. 시 관계자는 “재해예방 전광판으로 재난관련 정보를 즉시 제공하고 재난발생 시 신속하게 상황을 전파해 시민의 인명 및 재산피해 최소화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치 이유를 밝혔다. 학교에도 이런 재난을 알리는 전광판을 설치하면 여러 모로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