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처음 만나던 날, 우리는 바짝 긴장했다. 깔끔한 감색 양복을 입은, 후리후리하면서도 다부진 체격의 선생님은 말수가 적으셨고 함부로 웃지도 않으셨다. 키 순서에 따라 번호를 정하고 자리를 배정해 주시는 동안 떠드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이 또렷한 말투로 원칙 준수를 강조하실 때는 참 무서운 선생님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아니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선생님은 자상하고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셨다. 제자 누구에게나 친절하셨던 선생님은 청소시간에는 늘 우리들과 함께 빗자루를 드셨고 야외수업에 나갈 때면 철부지 아이들을 하나하나 보살피셨다. 방과 후엔 아직 한글을 깨치지 못한 애들을 위해 받아쓰기를 시키셨다. 앞산 그림자가 교실 창문에 어른거릴 때까지…. 수업 시간이면 선생님은 꼭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오성과 한음 이야기, 강감찬과 이순신이 나라를 구한 이야기,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진다는 피노키오 이야기 등 한 해가 다 가도록 선생님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호기심 많았던 나는 그 얘기들 속에서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포부를 가다듬었다. 선생님처럼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월이 흘러 나 또한 교사가 되었다. 오랜…
2015-04-16 16:55환경 보존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환경을 배려한다는 의미인 ‘친환경’이라는 말이 여러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에코’나 ‘그린’이 대신하는 일이 있다. ‘에코(eco)’라는 말은 ‘친환경’ 또는 ‘환경친화’로 쓰면 된다. ‘그린(green)’ 또한 ‘친환경’ 또는 ‘녹색’으로 바꿔 쓸 수 있다. (1) 에코(eco), 그린(green) → 친환경, 환경친화, 녹색 요즘은 자동차도 복합동력차(←하이브리드카, hybrid car)나 전기차와 같은 저공해 또는 무공해 친환경차(그린카, green car)가 많이 이용되고 있다. 운전을 할 때도 급가속, 급제동 등의 운전 습관을 개선해 연료절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환경도 보호하는 경제운전을 ‘에코드라이브(eco-drive)’라고 하는데, 이는 ‘친환경운전’으로 바꿔 쓸 수 있다. (2) 하이브리드카(hybrid car) → 복합동력차 (3) 그린카(green car) → 친환경차 (4) 에코드라이브(eco-drive) → 친환경운전 도시의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여가활동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농촌체험을 하고 농가에서 숙박도 하는 여행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는데…
2015-04-09 18:43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면 으레 무슨 대책이라는 것이 나온다. 국민의 살림을 위한 ‘서민경제 살리기 대책’, 집 문제가 불거지면서 나온 ‘주거대책’, 뿐만 아니라 노령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고령화대책’은 물론 재난과 재해 근절을 위한 ‘재해대책’ 등이 대표적이다. 국가나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궁리하고 실행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필요에 의해서 이런 대책들이 나왔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교육청에서 해괴망측한 대책 하나를 요란 벅적 내 놓았는데 바로 ‘촌지대책’이다. ‘단돈 1원만 받아도 징계가 가능하고 이를 제보한 사람에게는 최대 1억 원까지 포상한다’는 내용의 촌지대책은 견문발검(見蚊拔劍)의 극치를 보여준다. 먼저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학교에서는 촌지를 받지 않겠다고 그렇게 떠들어대더니 다 거짓이라고 단정해버릴 것이 확실하다. 또 얼마나 많은 액수를 받으면 최대한이라고는 하지만 1억 원까지 포상금을 준다는 말이냐고 할 것이기에 학부모·일반 국민에게 촌지는 앞으로도 근절할 수 없겠다는 각인을 심어준 결과가 되고야 말았다. 우리 교육자들의 심정은 어떤가? 물론 일부의 잘못된 촌지수수가 사회적인 물
2015-04-09 18:19'재승박덕(才勝薄德)’이란 ‘재주는 뛰어나지만 재주만을 앞세우고 덕이 부족한 사람’을 나타낸 말이다. 동양의 영원한 고전, ‘삼국지(三國志)’를 보면 전장을 누비는 용맹한 인물에서부터 지혜와 경륜을 가진 지략가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영웅호걸이 등장하고 또한 사라져갔음을 알 수 있다. 유명한 ‘계륵(鷄肋·닭갈비의 고사를 남긴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의 어록을 남긴 양수(楊修)도 자신의 주군이자 뛰어난 모략가인 조조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는 비상한 재주를 가졌다. 하지만 그를 시기했던 조조에게 꼬투리를 잡혀 결국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다. 후세 사람들은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되 덕이 부족해 국가 경영에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파멸 또는 비운의 죽음을 맞아야 했던 사람을 ‘재승박덕’이라는 사자성어로 비유하곤 했다. 우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재주가 뛰어나고 지위와 명성이 높았으나 덕이 부족한 인물들이 결국 어떻게 마지막을 맞는지 익히 알고 있다. 덕이 없는 재주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아 비참한 말로로 귀결됨을 자주 목격했다. 요즈음 우리 사회 각계각층 지도자들의 비윤리적인 성문제와 관련해 시끄럽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나 학생들에게 바른 인성을 지도해야…
2015-04-03 15:32소매가 없는 옷을 ‘나시’라고 하는데 소매가 없으니 ‘민소매’라고 하면 된다. 추울 때는 목이 긴 스웨터나 니트를 입는데 이것을 ‘폴라’라고 한다. 목이 긴 니트라는 뜻으로 ‘자라목니트’로 바꿔 쓰면 된다. (1) 나시/소데나시(そでなし)→민소매(옷) (2) 폴라(pola←poloneck)→자라목니트 추운 날에는 솜이나 오리털을 넣어 누벼서 만든 ‘패딩’을 입는다. 패딩은 누벼서 만든 옷이니 ‘누비옷’이라고 하면 된다. 반대로 더울 때는 얇고 비치는 소재로 만든 옷인 이른바 ‘시스루룩’을 입기도 한다. 이것은 속이 비치는 옷이니까 ‘비침옷’이라고 하면 된다. 비가 올 때는 ‘레인코트’를 덧입는다. ‘레인코트’는 말 그대로 ‘비옷’이다. (3) 패딩(padding)→누비옷 (4) 시스루룩(see through look)→비침옷 (5) 레인코트(raincoat)→비옷 모자는 여러 용도로 쓴다. 햇볕을 가리려고 ‘선캡’을 쓰기도 하고, 멋쟁이 신사는 ‘중절모’를 쓰기도 한다. 선캡은 ‘볕가림 모자’이고, 중절모는 꼭대기의 가운데를 눌러쓰는 모자니까 ‘우묵모자’이다. 납작하게 눌러 쓰는 ‘도리우치’도 있다. 이것은 ‘납작모자’라고 하면 된다. (6) 선캡 → 볕가림
2015-04-02 19:57‘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삶엔 말도 많다’는 노랫말처럼 지난 한 해는 참으로 다사다난한 해였다. 마음 졸이며 애태운 순간도 많았고, 가슴 저린 장면에 눈물지은 적도 있었으며, 내 주변의 무탈함에 가슴 쓸어내리며 안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 은화가족과 함께 호흡하며 나눌 수 있었던 더 없이 소중한 만남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상처가 상처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모모’와의 만남은 내게 아주 특별했다. 아이를 통해 나는 누군가에게 작은 미소만 지어도, 손만 내밀어 준대도 베풂이 될 수 있으며, 또 그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관심과 따뜻한 말 한 마디도 고마운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그 관심과 사랑은 늘 나를 필요로 하는 내 가장 가까운 만남 쪽으로 열려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만남이라는 스승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깨우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바삐 달려온 지난 시간 중에 나무가 되고 싶다며 글을 쓰고 싶도록 부추기면서 줄곧 곁에서 페이스 메이커처럼 함께 뛰어준 모모에게, 그리고 뜻밖에 수상의 벅찬 기쁨까지 듬뿍 안겨준 분들께 깊이 감사한 마음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멈칫거렸던 성장
2015-03-31 13:4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듣고 또 들어도 참으로 절묘한 말이다. 세상 온갖 꽃들은 그 한 송이 한 송이 화사한 절정을 위해 모진 비바람과 현기증 이는 뙤약볕, 으스름 밤, 오소소한 냉기까지도 고스란히 견뎌내야만 했으리라. 어디 꽃만 그러하겠는가? 요즘 학교들을 속속 들여다볼라치면 그 속에는 회오리치는 소용돌이도 있고, 크고 작은 울림소리들이 섞인 채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수학교인 우리 학교는 유난스레 더 뒤흔들리며 힘겹게 피어나야 하는 꽃봉오리들이 참말이지 많다. “선생님, 오늘은 모모 때문에 참 속상해요. 이젠 훔치기까지 하는 걸요.” 중학교 2학년 ‘모준식’(가명). 훤칠한 키에 날렵한 외모로 달리기를 잘하는 지적장애 학생이다. 소설 속 주인공 ‘모모’와는 별 연관이 없는데도 내가 준식이를 ‘모모’라 부르는 건, 순전히 이름을 듣는 순간 좀 드문 성씨인 ‘모’의 반복 음이 뜀박질처럼 내 머리 속에 들어와 박혔기 때문이다. 모모와 달리기 최강 라이벌인 같은 반 ‘재훈’(가명). 둘 다 산만하기 짝이 없는데다 늘 만났다 하면 투닥투닥 몸싸움을 하는 바람에 선생님을 곤혹스럽게 해오던 터이다. 그러던 게 이젠 다른 친구의 물건에 손대는
2015-03-31 13:43지난 해 어느 봄날. 창밖을 내다보다고 서 있다가 선현들의 마지막 날 장면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책상에는 ‘퇴계집’이 펼쳐져 있었다. 이황(1501-1570) 선생의 문집이다. 한 인물의 생애를 알고자 할 때, 연보처럼 편리한 자료도 없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엮어서 처음부터 읽을 것도 없다. 선생의 생애 마지막 해인 경오년. 임종 전후의 기사를 보다가 눈길이 멈춘 곳은 서거 5일 전의 기사다. ‘12월 3일. 자제에게 남의 도서는 목록을 작성하여 돌려주라 지시하셨다(命子弟 錄還他人書籍).’ 이 기사의 다음에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내용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조선 최고의 학자가 70세에, 그것도 임종을 눈앞에 둔 날에, ‘빌려온 책들은 빠뜨리지 말고 잘 돌려주라’는 당연한 말을 유언으로 남긴 것이다. 옛말에 ‘책을 빌려주는 이도 바보, 빌린 책을 돌려주는 이도 바보(借書一癡, 還書一癡)’라는 말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떠돌던 때가 있었다. 책을 가진 이는 이 말을 구실 삼아 빌려주지 않아 책이 필요한 학자들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 바보 치(癡)자는 술단지를 뜻하는 치(瓻)자와 글자의 모양이 비슷해 와전된 것이다.
2015-03-30 17:39외출을 위해 화장을 마쳤으니 옷을 골라 입어야겠다. 옷차림이나 옷맵시와 관련한 말에도 외래어나 외국어가 많다. 여성들은 속옷(←언더웨어)에도 꽤 신경을 쓴다. 정장을 입으려면 여성용 속옷(←란제리)도 갖춰 입어야 하고, 꼭낀바지(←빽바지)나 짧은치마(←미니스커트)를 입을 때는 팬티선(←팬티라인)도 신경 써야 한다. (1) 언더웨어(underwear) → 속옷 (2) 란제리(←lingerie) → (여성용) 속옷 (3) 빽바지(tight pants) → (꼭)낀바지 (4) 미니스커트(miniskirt) → 깡동치마, 짧은치마 (5) 팬티라인(panties line) → 팬티선 ‘스커트’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지만 ‘치마’면 충분하다. ‘쓰봉’이라는 일본말을 이제는 거의 ‘바지’로 대체해서 쓰지 않는가. ‘스커트’라는 말이 ‘치마’를 대신하지 않기를 바란다. (6) 쓰봉/즈봉(←jubon, jupon) → (양복)바지 (7) 반쓰봉/반즈봉 → 반바지 반쓰봉을 ‘반바지’로 잘 바꿔 쓰고 있는데, ‘쇼츠’나 ‘쇼트 팬츠/숏팬츠’가 그 자리를 넘보고 있다. 더 짧은 ‘핫팬츠’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8) 쇼츠(shorts), 쇼트 팬츠(short pants) → 반
2015-03-26 19:25적절한 치료 받지 않으면 만성으로 물 자주 마시고, 술·커피·담배 피해야 A교사는 최근 목감기로 보름 이상 불편한 생활을 했다. 쉼 없이 나오는 기침 때문에 밤잠도 설치고 목에 통증이 심했다. 또 오랜 기간 심하게 기침을 하면서 목소리가 쉬었다. 그런데 감기가 다 나은 후에도 목소리가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아 병원을 찾아 받은 후두내시경 결과 후두염으로 진단받았다. 항상 큰 소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건강 이상 소견중 목, 즉 목소리는 취약한 신체 부위다. 목소리 발성은 후두에 위치한 성대의 떨림을 통해서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성대는 남성의 경우 초당 120~150번, 여성은 200~250번의 진동을하며 목소리를 낸다. 이런 진동이 매끄럽게 이뤄지도록 후두나 성대의 점막은 항상 촉촉한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데, 말을 많이 하거나 건조한 환경에서는 점막의 점액질이 부족해지면서 목소리가 갈라지거나 거칠어진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커지고 건조한 바람이 불 때는 신체의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병원체에 감염되기 쉽다. 후두염은 후두기관에 포함되는 후두개(성문상부), 성대(성문을 이루는 기도), 피열연골주름 등에 염증이 생긴 상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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