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너무 큰 교육문제들이 발생해서 우리 마음을 너무 힘들게 합니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고 절망스럽습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는 소소한 교육이슈를 하나 언급하고자 합니다. 자그마한 문제이니 쉬이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소소하지만, 시시한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우선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떠올려 보지요. 첫째 시나리오는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던 아이가 넘어져 무릎이 까진 경우입니다. 다행스럽게 뼈가 상하지는 않았지만, 무릎에 피가 조금 흐릅니다. 친구들은 넘어진 아이를 구박합니다. 수비하다 넘어진 탓에 골 하나 먹었다면서요. 코치는 아이에게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합니다. 까짓것 피 조금 났다고 사람 죽지 않는다면서요.
만일 우리가 이 운동장 시나리오를 직접 목격한다면 혀를 차며 한탄할 것입니다. 아니, 아이가 피가 날 정도로 다쳤으면 빨리 응급조치를 해야지, 어떻게 구박하고 재촉하느냔 말입니까.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 아닌가요. 다행스럽게 한국 학교에는 보건실이 있어서 학생이 다치면 의료진이 재빨리 응급처치해 줍니다. 최소한 다친 부위를 소독해서 덧나지 않도록 예방합니다. 적어도 밴드를 붙여주어서 딱지가 생길 때까지 보호해 줍니다. 이게 선진국다운 모습이지요.
이제 두 번째 시나리오를 떠올려 보지요. 교실에서 친구와 말다툼하던 아이가 속상해서 울어버린 경우입니다. 하늘 무너지듯 통곡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눈에 눈물이 조금 흐릅니다. 옆에 있는 친구들은 헤죽헤죽 웃으며, 우는 아이를 은근슬쩍 놀립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같이 놀다가 기분 상할 때도 있는 법이니 그만 울라고 합니다.
두 번째 모습은 한국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체에 난 상처와 달리 마음에 난 상처에 대한 응급처치는 아쉽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처만 챙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에 대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과연 선진국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학교에 보건실(양호실)이 있듯이 감정양호실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상처가 나면 최소한 감정응급처치를 해서 우울증이나 분노장애로 이어지지 않도록 예방해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감정밴드를 붙여주어서 상처가 아물 때까지 마음을 보호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게 선진국다운 모습이니까요.
물론 학교에 이미 상담실이 있습니다. 심리상담 전문가가 배치되어 학생들의 생활지도와 문제해결을 위한 상담을 합니다. 그러니 굳이 감정양호실이 별도로 필요한가 싶겠지요. 그러나 현재 상담실은 세 가지 문제를 안고 있기에 추가 조치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아직 모든 학교에 상담실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학교 셋 중 둘에는 상담교사가 없습니다. 아마 예산문제와 전문인력 양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젠가는 해결될 문제이겠지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돈이 필요한 곳은 넘쳐나고, 전문인력은 빨리 양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상담실이 소위 ‘문제학생’이 불려 가는 곳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상담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학생들 사이에서는 별로 없지만, 학부모는 좋지 않은 기억을 지니고 있습니다. 학부모가 학생이었던 시절에 상담이란 문제행동 때문에 교무실이나 교장실로 불려가거나 방과후에 따로 남아서 선생님에게 야단맞는 일이었으니까요.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 약 10년. 위센터와 위클래스를 비롯하여 학교에 상담실이 설치된 시점과 비슷합니다. 문제학생을 대하는 기본방법이 체벌에서 치유로 옮겨진 지 겨우 10년밖에 되지 않은 셈입니다. 그러니 학부모는 오늘날의 상담실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은 다르게 기억합니다. 일부 학부모는 심지어 몸에 알레르기 거부 반응마저 나타나기도 합니다. 상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개선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문제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상담실은 ‘학생의 개인적 위기(범죄·가출·성·폭력 등), 가정적 위기(빈곤·부모의 이혼·다문화가정 등), 교육적 위기(학습부진·학업중단 등) 등 다양한 위기상황에 놓인 학생을 대상으로 ‘진단-상담-치유’ 지원을 위함’이라고 교육부가 말합니다.
이런 ‘위기’문제는 상담실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요. 학생이 불려간다고 달라지지 않고 자발적으로 잘 오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가벼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상담실에 진을 치는 바람에 실제로 심리상담을 받아야 하는 위기 아이들이 충분한 돌봄을 못 받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래서 저는 보건실(양호실) 옆에 감정양호실이 있는 학교를 상상해 봅니다. 신체에 상처 났을 때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찾는 보건실처럼 마음에 상처가 났을 때 찾는 곳이 당연히 감정양호실입니다. 보건실을 학교구성원 모두가 활용하듯이 감정양호실도 학생만이 아니라 선생님과 교직원도 찾아가는 곳입니다. 특히 부모가 학생이었을 때 보건실을 양호실로 불렀고, 좋게 기억하고 있어서 그 후광의 혜택을 받습니다.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교실 하나를 감정양호실로 개조할 수 있겠습니다. 상담실과 연계해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보건실과 통합해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마음의 양식을 채워준다는 도서관도 함께 운영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AI 발전으로 정보·지식에 대한 개념이 대폭 바뀌는 마당에 도서관이 파격적으로 변신해야 할 시점이 아닙니까.
어차피 학교에 상담실도 도서관도 필요한 전문인력을 다 갖추지 못했습니다. 저는 전문상담교사·보건교사·사서교사가 각자 흩어져서 일하기보다는 감정양호사와 함께 협력하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각자가 맡은 업무 외에 추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이미 맡은 일을 수행할 때 학생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감정양호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 감정양호를 위한 감정응급처치법은 모두가 비교적 짧은 교육시간으로 능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마치 시민 모두가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응급처치법을 배우면 좋듯이 감정응급처치법(감정양호) 또한 학교 교직원 모두가 지니면 좋은 기술입니다.
저는 모든 교직원이 함께 학생의 몸·마음·정신건강을 지키는 수호자로 힘을 합치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정양호실·보건실·상담실·도서관이 학교 구석진 곳에 각각 흩어져 있는 게 아니라 복합센터로 교정 중심에 자리 잡은 학교를 상상해 봅니다. 이렇게 되면 좋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감정양호는 학생의 정서지능 계발에도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감정양호의 핵심은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해하고,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역량이 바로 정서지능의 핵심과 똑같습니다. 그러니 감정양호는 아이의 정서지능 계발과 직결된 것입니다.
이제 인지지능(IQ)이 아니라 정서지능(EQ)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세상이 왔다는 건 챗봇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정서지능은 학교·직장·사회생활 등 모든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며, ‘행복한 아이가 지닌 지능은 일반적으로 IQ 테스트에서 측정되는 지능과는 다르다’하고, ‘행복한 아이는 정서지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학교는 아이가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 주는 곳이 아니던가요. 이제 학교는 타고나는 요소인 인지지능이 아니라 교육으로 계발되는 정서지능에 집중해야 합니다. 학교가 더 이상 ‘문제학생’이 아니라 ‘학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곳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