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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슈 1] 논·서술형평가 발목 잡는 두 가지 유령

 

자녀의 ‘등급’ 앞에서 ‘소송’도 불사하는 학부모
과학 서술형평가를 둘러싼 논란이 화제다. 시험문제는 ‘전류의 세기를 크게 하도록 솔레노이드 도선을 감는 방법을 한 가지만 서술하시오’이다. 교사가 생각한 정답은 ‘많이 감는다’이고, 학생이 쓴 답안은 ‘촘촘하게 감는다’이다. 국어학적 관점에서 ‘많이’와 ‘촘촘하게’는 엄연히 다르다. 과학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왜 ‘많이’는 답이고 ‘촘촘하게’가 답이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교사가 학생 답안을 0점 처리했다는 것이다. 


이후 진행과정엔 한국교육의 특징이 집약돼 있다. 학생은 전교 ‘1등’이고, 해당 문제를 틀리면 ‘2등급’이 된다. 화가 난 학부모는 ‘서울대’ 출신 ‘교수’ 친구와의 대화를 근거로 ‘촘촘하게’가 더 맞는 답안이라고 주장한다(실제 서울대 교수 친구가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학부모는 소송까지 고민한다. 어떻게 해서든 ‘촘촘하게’를 정답으로 만들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학부모는 이 모든 과정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한다.


이 논란은 왜 한국교육의 축소판일까? 학부모는 등수와 등급이라는 ‘서열’에서 자신의 자녀가 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학벌’과 ‘직위’를 내세운 권위를 인용한다. ‘민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송’도 불사한다. 이처럼 서열·학벌·직위가 만든 공고한 위계시스템은 한국의 학부모들을 투사로 만든다. ‘민원’과 ‘소송’으로 무장한 학부모의 등쌀은 이제 익숙하기까지 하다. 단언컨대 이 학생의 목표는 분명 서울대일 것이다. 위계시스템의 정상에 올라가는 것일 테다.


최근 교육부는 논·서술형평가 확대 방침을 발표했다. 논·서술형 문항만으로 내신평가가 가능하게끔 제도를 개선한다는 내용이다. 할 수 있게끔 판을 깔아 줄 테니, 막무가내로 부딪쳐 보라는 것일까? 물론 어느 정도 일관성 있는 정책도 포함됐다. 절대평가에서는 한발 물러섰지만, 5등급 내신체제를 도입한 결정에서 나름의 고민이 엿보인다. 학교 안에서만큼은 조금이나마 경쟁을 줄여 보겠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타협안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이를 바라보는 교육 공동체의 불신이다. 교사·학부모·학생의 반응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교사는 부담과 두려움을 호소하고,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를 의심한다.

 

한국에서 논·서술형평가 안착이 불가능한 본질적 이유
논·서술형평가가 교육과정 문서에 등장한 지도 10년을 훌쩍 넘겼다. 서술형평가는 6차 교육과정 문서에, 논술형평가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등장한다. 이후 논·서술형평가는 2차례에 걸쳐 확대 시행되었다. 2011년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에 따라 단위학교에 서술형평가가 의무화되었다.

 

2015 교육과정 이후 과정중심평가 흐름을 타고 논·서술형평가가 다시 한 번 강조된다. 이제 세 번째 분기점을 맞이한 듯하다. 이 긴 시간 동안 대체 무엇이 논·서술형평가의 안착을 가로막았을까? 유럽과 미국은 가능하지만, 한국은 불가능한 본질적인 이유를 고민할 때다.


이는 한국교육을 지배하는 두 가지 유령, 객관성과 공정성 패러다임 때문이다. 전자는 학생의 능력이 한 치의 오차와 오류 없이 측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후자는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유불리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객관성 패러다임은 한국교육이 선다형 지필평가 중심으로, 공정성 패러다임은 한국의 모든 교육정책이 사교육 억제를 중심으로 맞춰지는 데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 두 가지 패러다임을 뛰어넘지 못하면 논·서술형평가가 성공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논·서술형평가가 객관적이지 않으며, 사교육 부담을 증가시키리라 단언하기 때문이다.


이미 논·서술형평가가 자리 잡은 해외는 오차와 오류를 주관성으로 보지 않는다. 심각한 오차와 오류는 상호 주관성에 의해 보완할 수 있다고 본다. 학생이 쓴 글을 2명의 교사가 5점 만점으로 채점한다고 가정해 보자. 학생과 학부모는 2명의 평가자가 똑같은 점수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한 명은 3점, 한 명은 4점을 부여했다면? ‘서열’과 ‘변별’이 중요한 한국 교육시스템에서 이 같은 결과는 명백한 ‘민원’과 ‘소송’의 대상이 될 게 뻔하다. 그 과정에 ‘서울대’ 출신의 교수와 일타강사가 등장할 것이다. 해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바로 사회적 신뢰 혹은 과도한 주관성을 보완하는 채점 절차다. 프랑스의 경우 오래된 시험 전통으로 바칼로레아 채점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편이다1. 평가유형은 다르지만 구술평가가 일반화된 덴마크의 경우 교실단위평가에서도 학생·학부모 이의제기는 전무하다고 알려져 있다.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는 어떨까. IB의 경우 학교 내부평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나친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평가자료 일부를 외부 평가위원에게 보내 검토를 받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같은 방식을 한국교육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단기간에 사회적 신뢰를 쌓거나, 모든 학교에 외부평가를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설득이다
또 다른 방안은 없을까? 뉴욕주의 졸업시험인 리전트 시험(Regent Exam)을 살펴보자. 해당 시험은 역사가 100년이 넘었고, 공립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대다수 미국교사가 학생의 졸업시험 통과를 신경 쓴다. 그러니 교실단위평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3. 해당 시험은 어떻게 채점할까? 학교가 자체적으로 고용한 채점 인력 2명이 투입된다. 2명의 평가가 동일하면 해당 점수를, 1점 차이가 나면 평균을, 2점 이상 점수 차이가 발생하면 제3의 평가자가 추가로 채점해야 한다.

중요한 지점은 다음이다. 상세한 절차를 준수해 채점을 완료한 경우,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의제기가 어렵다. 이처럼 일정한 규정과 절차를 지켰을 경우 과도한 이의제기가 불가능하다는 제도를 만든다면? ‘점수’와 ‘등급’을 위해 소송까지 불사하는 학부모 민원을 막아 줄 방패막이를 조금이나마 만들어 준다면? 물론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설득이다. 논·서술형평가에서 발생하는 오차와 오류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임을, 이 오차와 오류가 교사의 ‘전문성’임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논·서술형평가 때문에 사교육이 확장한다는 논리 또한 허술하다. 안타깝게도 ‘서열’과 ‘변별’, ‘선발’과 ‘배치’ 중심의 현 교육시스템이 달라지지 않는 한 사교육은 줄일 수 없다. 상대평가와 등급이 존재하는 한 공교육의 내실화로 사교육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의미 없는 레토릭에 가깝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사교육은 모든 교육적 변화를 거부하는 가장 손쉬운 만능 근거가 된다. 수행평가를 확대하든, 학생부종합전형을 도입하든, 논·서술형평가를 확대하든 모든 교육정책을 반대하는 첫 번째 근거로 사교육이 등장하는 이유다. 모든 사람이 ‘사교육’을 한국교육의 가장 큰 문제로 뽑으면서도, 모든 변화를 가로막는 근거로 ‘사교육’을 든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동안 교육부가 이 두 가지 유령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문제진단을 잘못하면 처방은 늘 엇나간다. 지난 시간 교육부는 논·서술형평가가 안착되지 못한 이유를 교사의 평가역량 부족으로 단순하게 진단해 왔다. 그래서 평가역량 강화라는 기계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했을 뿐이다.

 

아무리 대규모 연수를 실시하고 자료집을 배포한들 두 가지 유령을 없애지 않는 한 교사의 평가역량이 나아질 리 없다. 교사는 단순히 평가지식과 기술을 쌓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평가를 둘러싼 사회·정치적 맥락을 수용하고 해석하는 평가 정체성(Assessment Idendity)이 바뀌지 않는 한 본질적인 변화는 일어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논·서술형평가를 비롯한 모든 교육적 변화가 경쟁과 서열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 미래교육의 방향임을 설득하지 못하는 한, 사교육이라는 반대 근거 앞에 모든 노력은 수포가 될 것이다.

 

논·서술형평가를 제대로 하기 위한 선결조건
그러나 희망은 있다. 한국에서는 이상적이지만, 핀란드에서는 현실인 상황을 가정해 보자.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 교사는 핀란드 교사보다 주당 5배 넘는 시간을 행정업무에 쏟아 붓는다. 한국 교사가 모든 근무시간을 수업·평가·연수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평가결과에 대한 과도한 이의제기를 막을 수 있다면? 일찌감치 5등급 체제 혹은 절대평가가 도입되어 서열·변별·경쟁이 줄어든다면? 단언하건대 논·서술형평가는 정착되고도 남았을 것이며, 이미 K-바칼로레아가 시행 중일지도 모르겠다. 


현장교사들도 언제까지나 ‘객관성’과 ‘공정성’ 패러다임에 갇혀 변화를 거부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미래형 인재에게 필요한 능력이 ‘고차원적 사고능력’임을 부정하는 교사는 없을 것이다. ‘취지에 동의하나,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대 근거로만 버티기도 힘든 때가 왔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수업과 평가라는 교사 본연의 임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소리쳐야 한다. 이를 위해 행정업무 경감, 과도한 민원 금지, 평가 자율성 보장 등을 주장할 때다. 이후 진행될 교육부·평가원·교육청의 고민 없는 연수에도 쓴소리를 날려야 한다. 교사의 수준과 역량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일괄적인 연수에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할 때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다. 조금 양보하고 많이 받는 것이다. 먼저 구체적으로, 크게, 요구하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효과적인 밀당전략을 구사할 때다, 논·서술형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이를 위해 제대로 된 환경이 필요하다고, 그러니 수업과 평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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