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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떠나는 별자리 여행] 황소자리 이야기

백마 탄 왕자가 아닌 흰 소를 사랑한 에우로페 공주 

 

황소자리는 가장 오래된 별자리 중 하나이다. 구석기시대 유적지인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에도 황소자리와 비슷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을 정도이다. 황소자리에 얽힌 신화 역시 제우스가 등장한다. 페니키아왕 아게노르의 딸 에우로페(Europe)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한 제우스는 커다란 흰 소로 변해 접근했고, 잘생긴 흰 소를 발견한 에우로페 역시 다정하게 어루만지면서 등에 올라타고 놀았다.

 

그때 흰 소가 갑자기 바다로 뛰어들어 크레타섬까지 그녀를 납치한 후, 사랑을 나눈다. 특이한 점은 제우스의 다른 정부들과 달리 헤라에게 해코지도 당하지 않고, 한 나라의 여왕도 되어 잘 살았다는 점이다. 에우로페는 유럽이라는 지명의 기원이기도 하다. 황소자리는 제우스가 자신이 흰 소로 변신한 것을 기념해 만들었다고 한다. 
 

황소자리는 하늘에서 눈에 잘 띄는 커다란 별자리다. 토러스(Taurus, 황소자리)는 황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타우루스(Taurus)’에서 유래한다. 황도 12궁에 속하는 황소자리는 가장 오래된 별자리 중 하나이며, 2세기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분류한 48개의 별자리에도 들어 있다. 황소자리는 고대부터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기원전 12,000~15,000년경의 구석기시대 유적지인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나 기원전 9,600년 무렵 고대 터키 유적지 괴베클리 테페 건축물의 돌기둥에서도 황소자리 비슷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뮌헨 대학의 미하엘 라펜글뤽 연구팀은 라스코 동굴의 황소가 황소자리를 표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일찍이 선사시대 사람들도 황소자리를 알고 있었던 것이 된다. 그러나 이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오리온자리의 북서쪽에 있는 황소자리는 오리온자리와 마찬가지로 겨울철에 볼 수 있는, V자 모양의 별무리다. 오리온자리를 향해 뿔을 내미는 황소 앞모습의 형상이다. 옛사람들은 이 별자리에서 황소의 모습을 상상하고 이름 붙였지만, 구성하는 별들이 많은 것은 아니어서 소의 전체가 아닌 머리에서 앞발까지의 형태로만 만들었다. 황소자리 머리 부분에는 알파별인 1등성 알데바란(Aldebaran)이 오렌지색으로 빛나는데, ‘황소의 눈’ 부분이다. 


황소자리는 유명한 오리온 허리띠 부분인 삼태성 덕분에 쉽게 식별할 수 있다. 3개의 별을 오른쪽으로 연장하면 아주 밝은 별을 하나 찾을 수 있는데, 이 별이 바로 알데바란이다. 그 주변에는 히아데스성단이 있다. 알데바란은 ‘뒤에 따라오는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알데바란이 플레이아데스성단 바로 뒤에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황소자리에 있는 천체들
황소자리에는 플레이아데스성단·히아데스성단·게성운 등의 천체가 포진해 있다. 아름다운 푸른빛의 플레이아데스성단(Pleiades star cluster, M45)은 황소의 어깨 부분에 있다. 대부분 그 나이가 약 5천만 년밖에 되지 않은 젊은 별들이어서 온도가 매우 높고 푸른빛을 띤다. 좀생이별, 혹은 일곱 자매별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서쪽 하늘 별들의 지도자’로, 헤브라이에서는 ‘신의 눈’으로 불렀다.

 

이 성단은 수백 내지 수천 개의 별들이 허술하게 모여 있는 별들의 집단인 산개성단이다. 지구에 가장 가까운 산개성단 중 하나이며, 밤하늘에서 육안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성단은 그리스신화의 거인 아틀라스(Atlas)와 바다 요정 플레이오네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명의 플레이아데스 자매들과 연관된다. 

 

 

히아데스성단은 황소자리 방향으로 153광년 떨어진,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산개성단이다. 지구에서 볼 때 히아데스성단은 황소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이 자리에서 성단의 밝은 별들은 보다 밝은 알데바란과 함께 ‘V’자 모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밤하늘에서 매우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알데바란은 이 산개성단의 구성원이 아니다. 우연히 같은 시선 방향에 있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이 성단은 티탄 신족 아틀라스와 맑은 상공의 여신인 오케아니스 아이트라의 다섯 딸인 물의 요정 히아데스(Hyades)와 연관된다. 다섯 명의 자매는 남동생 히아스가 사냥 사고로 죽은 후 슬픔에 잠겨 흐느끼다가 하늘로 올라가서 별들이 되었다. 신들이 자매들을 하늘에 올려놓고 영원히 슬픔을 쏟아붓게 했는데, 이 때문에 이들은 이후 비와 연관되었다. 잉글랜드 지역 사람들은 이 성단을 4월에 내리는 소낙비와 연결시켜 ‘4월에 비를 내리게 하는 자(April Rainers)’라고 불렀다.


게성운(Crab Nebula)은 황소자리에 있는 초신성 잔해다. 게성운이란 이름은 19세기 영국 천문학자인 로스 백작이 이 성운을 관측한 뒤에 스케치하면서 지은 것이 유래다. 게와 별로 닮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게성운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가운데의 모체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것이 게의 등딱지와 거기에 붙은 다리처럼 생겼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영어로 ‘암’을 의미하는 ‘cancer’도 원래 게자리를 일컫던 말이다. 암의 종양이 여기저기 가지치기하듯 뻗어나가는 것이 게 등딱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에우로페를 사랑한 흰 소, 흰 소를 사랑한 에우로페
황소자리는 여러 신화와 연관돼 있지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그리스신화의 제우스와 에우로페 이야기다. 화창한 봄날, 페니키아왕 아게노르의 딸 에우로페(Europe)가 시녀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놀고 있을 때, 지상을 산책하던 제우스가 그녀를 보고 그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게 된다. 늘 변신술로 여인들에게 접근하곤 했던 제우스는 이번엔 커다란 흰 소로 변해 왕의 소 떼에 섞여 공주 일행에게 접근했다.

 

소의 무리에서 잘생긴 흰 소를 발견한 에우로페는 곁으로 다가가 다정하게 어루만지고 등에 올라타며 놀았다. 그때 흰 소가 갑자기 바다로 뛰어들어 크레타섬까지 그녀를 납치한다. 크레타에 도착한 제우스는 에우로페에게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목걸이를 선물하며 구애에 성공해 사랑을 나눈다. 섬에 유배된 공주는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미노스를 비롯한 삼 형제를 낳았고, 이후에는 크레타의 왕 아스테리오스와 결혼해 여왕이 된다.

 

제우스의 다른 정부들과 달리 헤라에게 해코지도 당하지 않고, 한 나라의 여왕도 되어 잘 살았으니, 운이 좋은 여인이었다. 에우로페(영어식으로는 유로파)는 유럽이라는 지명의 기원이기도 하다. 이는 크레타 문명, 나아가 유럽 문명이 에우로페와 우주의 통치자 제우스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 고귀한 문명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제우스는 자신이 흰 소로 변신한 것을 기념해 황소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에우로페 이야기는 티치아노·베로네세 등 르네상스 화가들에서부터 현대 화가들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 동안 유럽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화가들은 에우로페의 납치를 다채로운 장면으로 묘사했다.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는 티치아노의 영향을 받아 정교한 구성과 화려한 색채의 작품을 그린 16세기 베네치아 화파의 대가다.

 

호화로운 장식적 특성과 풍부한 색상은 다음 세대 바로크 양식에 유용한 자산을 제공했다. 1570년 작 <에우로페의 납치>에서 두 시녀가 에우로페가 황소에 앉도록 돕고 있다. 에우로페의 표정은 다소 혼란스럽고 불안해 보인다. 화가는 황소가 이제 곧 바다로 뛰어들어 멀리 납치하기 직전의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에우로페의 노란 망토와 벨트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어 그녀가 부분적으로 옷을 벗고 있음을 암시한다. 황소는 욕정을 참지 못한 듯 그녀의 발을 핥고 있다. 베로네세는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 등장인물들의 에로틱한 성적인 긴장감을 팽팽히 표현하려고 한 듯하다.


시몽 부에(Simon Vouet)는 루이 13세의 궁정 화가이자 리셜리외 추기경 등 부유한 후원자를 위해 종교화·역사화·초상화·프레스코화·태피스트리 등 다채로운 작업을 한 17세기 프랑스의 거장이다. 밝고 화려한 프랑스풍 바로크 양식을 발전시켰다. 1640년 작 <에우로페의 납치>는 에우로페가 황소의 뿔 주변에 화관을 씌우고 등에 앉으려고 하는 순간을 묘사한다.

 

에우로페는 순하고 아름다운 황소에게 완전히 마음을 놓은 듯하며, 옆에서 시녀 하나가 그녀의 팔에 꽃 화환을 매주고 있다. 에우로페의 드러난 한쪽 가슴이 그림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어 관람자의 시선을 끈다. 화가는 노련한 솜씨로 파랑·노랑·빨강의 기본 색조로 인물의 튜닉과 망토를 채색했다. 황소의 흰색과 전경에 있는 두 여성의 창백하고 빛나는 밝은 피부색은 하늘을 배경으로 그린 짙고 어두운색의 나무들과 대비를 이룬다. 부에는 황소의 주둥이에서 흘러내리는 침과 다소 음탕한 표정을 통해 성적 욕망을 암시하고 있다. 


18세기 로코코 화가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의 <에우로페의 납치>는 한층 더 강탈의 주제를 미화한다. 작품에서는 납치당하는 여성의 어떤 불안이나 고통도 보이지 않는다. 에우로페는 애교스럽게 살짝 몸을 비틀어 앉아 상냥한 미소를 짓는 사랑스러운 여인의 모습이다. 이 작품은 가볍고 경쾌한 로코코풍 회화의 특징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로코코는 바로크 양식에 이어 1700년경부터 프랑스에서 등장해 루이 15세 치하 귀족사회의 취향을 저격했고, 18세기 말까지 유럽을 휩쓴 미술양식이다. 강력한 왕권과 장엄한 문화양식을 확립한 루이 14세 사후, 귀족들은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근거지를 옮기고 자유롭고 감각적인 삶의 기쁨을 추구했다. 로코코 미술양식은 이런 귀족들의 취향에 부합해 남녀 간의 사랑과 같은 유희적 소재를 중심으로 경쾌하고 쾌락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특히 부셰의 작품은 삶의 즐거움과 관능에 중점을 두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에우로페 소재의 작품들은 대부분 납치와 강간이라는 주제를 에로티시즘, 혹은 남녀 간에 일어나는 로맨스로 묘사했다. 강제로 제우스에게 납치되는 순간에도 에우로페는 그다지 공포심을 느낀다거나 필사적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심지어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로 묘사된다.

 

오랫동안 미술사에서는 ‘에우로페의 납치’뿐만 아니라 ‘레다와 백조’나 ‘사빈느 여인의 강탈’과 같은 ‘강간’ 주제의 미술작품들이 있었다. 예술가들은 강간·성폭력을 에로티시즘, 혹은 성애의 측면으로 그리고 조각했다. 사람들은 미술작품들 속에 예술의 이름으로 숨겨진 성폭력적 요소도 알아채지 못했다. 오랫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성문화, 왜곡된 성의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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