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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벽 칼럼] 가짜를 가려내는 진짜 학교

요즘 가짜뉴스가 판치고, 딥페이크가 사람을 홀리는 세상에 무엇이 사실이고 허구인가를 가려내는 능력이 무척 중요해졌습니다. 바로 가짜의 속임수와 농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데, 이 능력을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라고 합니다. 미디어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고,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어떤 메시지를 수용할 것인가를 판단하고 가짜를 가려냅니다. 


무엇이 진짜이고 사이비인지 알아야 남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가 되지 않습니다. 깨어있어야 거짓에 선동되지 않는 자유인이 되어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진짜 인재가 될 수 있습니다. 과연 요즘 학생들이 이 중요한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나요? 아니면 온종일 스마트폰 자극에 반사반응만 하는 좀비처럼 지내고 있나요.

 

아주 오래전에는 학생이 나무 그늘 밑에서 책을 느긋하게 읽었고, 1,000페이지가 넘는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도 읽었습니다. 글을 음미하고 사색하고 성찰하고 판단하며 읽었습니다. 장면들을 상상하고 감상하느라 페이지 한 장 넘기는 데 몇 분씩 걸렸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읽기 대신 봅니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글보다 그림과 영상물이 주를 이룹니다. ‘그림 한 장이 천 마디 말보다 낫다’라는 영어표현에 따른다면 메시지의 농도가 1,000배 더 높은 셈입니다. 그마저도 동영상이나 ‘짤’로 이루어졌으니 1,000배가 아니라 천만 배라고 해야겠지요. 그럼에도 화면을 넘기는 손가락은 초 단위로 움직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보는지 알 수 없습니다. 생각이 아예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메시지를 누가 만들었고, 누가 보냈는가, 어떻게 나의 주의력을 끌었는가, 다른 관점이 존재하는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인식하는가, 메시지에 어떤 가치관이 내포되었는가, 왜 메시지를 보냈을까. 메시지를 접할 때 이러한 질문들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생각 없이 즉각 반응하고 마는 겁니다. 


미디어 메시지(내용물)를 접하고 소비하면 끝입니다. 판단과 평가는 오로지 메시지를 접한 후 말미에 ‘좋아요, 싫어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후기를 달아도 주로 한 줄 댓글이며, 이마저도 생각이라고 할 수 없고, 대체로 감정적 반응입니다. 감정을 색깔로 비유한다면 256 색채를 느끼지 못하고, 그냥 흑백으로만 구분하는 셈입니다. 아이는 내용을 소화해서 자신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으로 만드는 생산자가 못되고, 그냥 일회용 빨대로 단물만 빨아들이고 내버리는 소비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사실 생각으로는 메시지의 진위를 따지기 어렵습니다. ‘맞다, 틀리다’는 생각의 영역이지만, 아쉽게도 생각은 합리화를 참 잘합니다. 내가 비판적 생각으로 따진 후에 ‘맞고 틀림’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라, 먼저 ‘맞고 틀림’에 대한 본인의 선입견이나 편견에 따라 메시지를 해독합니다. 즉 믿고 싶은 내용을 더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합리적’과 ‘합리화’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생각의 최고 특성을 동원하여 정보를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반면 합리화는 이미 내린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유를 만들고 논리를 거꾸로 동원하는 방식입니다. 사고력을 악용하는 경우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생각은 해야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감정도 개입되어야 합니다.


메시지에 대해서 ‘좋아요, 싫어요’ 같은 감정적 반응이 나올 때 그 메시지를 대하는 자신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성찰하면 육감(六感)에 해당하는 직감 또는 영감을 만나게 됩니다. “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확신이 들지 않지만, 낌새가 좋지 않습니다. 이게 진위에 대한 촉이며, 기미이며, 작은 징조입니다. 촉은 직감과 영감 또는 직관으로 나타납니다.

 

직감은 희미합니다. 가끔 강하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지만, 흔히 직감은 순간적이고 흐릿하고 가물가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직감을 무시해 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직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감은 메시지 내용과 메신저 신상에 좌우되지만, 직감은 내면에서 무엇이 맞고 틀렸는가를 속삭여줍니다(흔히 하는 표현에서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 감정은 속이지 않는다” 등은 오감을 초월한 직감에 국한해야 합니다). 


직감이 ‘아니다’라고 속삭이면, 일단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을 동원해야 합니다. ‘감’의 집결지인 내 심장이 브레이크를 걸었는데, 그럴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은 머리가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니 생각과 감정이 협력해야 합니다. 이성과 감성이 합쳐져야 합니다. 논리와 심리가 합쳐진 상태가 합리적이고, 그 마음이 결정한 바에 따르는 게 사려 깊게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참고로 사려의 사(思)는 생각(田은 머리를 뜻하기도 함)과 감정(心은 오감의 집합지임)이 합쳐진 표현입니다. 직감·직관·영감을 동원하는 능력이 바로 사회·정서역량(SES, socio-emotional skills)입니다. 저는 사회·정서역량을 마음지능이라고 부르며, 이를 갖춘 사람이 진짜 인재라고 믿습니다.

 

마음지능은 가짜뉴스만 감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다보면 긴가민가한 상황이 매우 흔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배우자를 선택할 때, 집을 사고팔 때, 진로를 고민할 때가 그렇습니다. 생각대로 했다가는 미처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정보 때문에 오판하게 됩니다. 반면 기분대로 했다가는 낭패하기 일쑤입니다. 기분은 사라지고 변하는 요소이니까요. 이럴 때도 마음지능에 의지하는 게 좋습니다.


세계 최고 여성 갑부이며, 미디어 여왕인 오프라 윈프리는 “직감을 믿어라. 거짓말하지 않는다(Trust your instincts; intuition doesn’t lie)”라고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세상에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게 직감(The only real valuable thing is intuition)”이라고 했습니다. 스티스 잡스는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자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를 용기를 가져라(Hav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라고 했습니다. 일반인들도 영감에서 뜻밖의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흔합니다. 까막눈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듯이 아둔하게 살아가다가 갑자기 혜안이 생겨서 지혜로움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직관·직감·영감을 활용하는 방법을 아이들에게도 전해주세요. 모든 아이에게는 마음지능이 있습니다. 단지 온갖 정보와 스트레스 자극에 오감이 강하게 요동치니 직감이 잘 느껴지지 않을 뿐입니다. 오감이 시끄러운 소음이라면 직감은 정말 잔잔한 음악입니다. 소음을 꺼야 잔잔한 음악이 들립니다. 내면의 소리를 듣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스트레스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마음이 건강해야 마음지능이 제대로 활약할 수 있습니다. 

 

외부 세상이 가짜인지 진실인지를 알아차리려면 내가 먼저 마음이 건강하여 거짓이 없고 참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탁한 그릇에 물을 담그면 그 물이 깨끗한지 탁한지 알 길이 없습니다. 긍정심리학은 진짜로 살아가는 사람을 ‘authentic person’이라 칭합니다.

 

우리도 학생도 바로 그런 사람, 자신의 내면과 소통하며 진짜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온갖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우리 다 함께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고 마음지능을 높여주는 진짜 학교를 만들어갑시다. 그래야 우리 모두 진짜 인재로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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