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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교육공동체 간 신뢰 깨지 않으려면

올해 초 대법원 1부는 학부모에 의한 교실 내 몰래 녹음 내용을 아동학대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냈다. 불법 도청이 횡행하고, 교실에서 교사가 감시당하는 일이 빈번한 상황에서 교육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수업 중 언제든지 본인의 발언이 녹음돼 유포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웹툰 작가 자녀를 아동학대했다는 혐의로 피소돼 재판에 넘겨진 경기 모 초등 특수교사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기 때문이다. 당시 수원지방법원은 불법 몰래 녹음을 증거로 채택했다.

 

대법원의 판결에 반한 결정이 내려지면서 교육 현장은 다시금 혼란에 빠졌다. 재판부가 해당 학생이 장애 학생이기 때문에 몰래 녹음을 증거로 채택했다고 설명하면서 기준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장애 학생은 다 용인되는 것인지, 장애 학생이 아니어도 스스로 대변할 수 없는 어린 학생이면 되는 것인지, 학교폭력이 의심스럽거나 하는 일정 조건이라면 허용되는 것인지 불분명했다. 무책임한 판결이 불안을 가중시켰다.

 

현장 교원들의 고통도 계속됐다. 자녀 휴대폰에 앱을 설치하고 주변 소리 듣기 기능을 이용해 수업 중인 교사, 학생들의 목소리를 무단 녹음, 실시간 청취, SNS 공유 사례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 자체로 불법인 몰래 녹음으로 인해 사제 간 불신이 깊어지고, 교사의 교육 열정은 송두리째 빼앗겼다.

 

교실 내 몰래 녹음 증거 인정 안 돼

교원 불안 결국 교육 약화로 이어져

 

지난 5월 한국교총이 전국 교원 1만13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원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몰래 녹음에 대해 걱정된다’는 응답이 93%였으며, 온라인에서 판매 중인 ‘몰래 녹음 방지기’를 구입하겠다는 교원도 63.7%에 달했다. 성능도 확인 안 된 기기까지 구매하려 할 만큼 하루하루가 두렵고 절박한 것이다.

 

아동복지법 등은 당초 가정학대 근절을 취지로 제정됐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 적용되면서 수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1심 판결과 같이 몰래 녹음 외에 방법이 없다는 논리라면 가정에도 도청 장치를 달아야 하는 것일까? 교실 내 아동학대 여부는 몰래 녹음이 아니라 학부모의 교육 참여와 합리적 민원 절차, 교육청의 사안 조사 및 교육감 의견 제출 제도, 조사·수사 기관을 통한 합법적이고 교육적인 방법으로 이뤄지는 것이 마땅하다.

 

17일 해당 사건의 항소심 재판이 시작됐다. 같은 날 교총을 비롯한 교원단체들은 법원 앞에 모여 특수교사에 대한 무죄를 촉구했다. 단체들은 전국 모든 교실을 불신과 포기의 장으로 만드는 불법 녹음 자료 증거 능력 배제, 교육을 중심으로 정서적 아동학대를 판별할 수 있도록 정서학대 구성요건 마련 등을 강조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한 개인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전국 교원의 염원으로 만든 교권 5법이 사실상 무력화되고, 교원생활지도 고시 및 교권침해행위 고시의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는 현실을 막고자 나선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교사가 됐다’는 교단 분위기를 바꿀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이 붕괴되지 않도록 학교 현실과 교육적 목적을 반영한 법원의 신중한 판단을 기대한다. 정부, 국회도 모호하고 포괄적인 정서학대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아동복지법 개정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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