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공부만 하는 학생이 되고 싶은가?
타임슬립(Time Slip: 시간여행을 하는 초자연 현상)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는 늘 흥미롭다. 만약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닌 실제로 당신이 타임슬립으로 다시 초등학생이 된다면 안정적인 미래와 부를 위하여 학원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는 학생으로 살고 싶은지 묻고 싶다.
이미 수십 년을 살아온 성인들은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확률이 높은 것은 맞지만, 공부를 잘하더라도 바른 인성과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능력, 배려하며 협력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기 힘들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올해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첫해였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은 미래 인재가 갖추어야 할 역량 중심 교육, 학생의 삶과 연계된 깊이 있는 학습, 질문과 탐구 중심의 학생 주도적인 수업이다. 우리 교육의 목표는 우리가 삶을 통해 배웠듯이 지식과 암기 위주의 학습이 아닌 학생들이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으로 성장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교육과정이 재정립되어 교육이 대전환되는 이 시점에 아이러니하게도 공교육 밖에서는 여전히 ‘초등의대반’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이 지식 중심으로 학습해야 성공하는 삶으로 교육하고 있다.
초등의대반, 무엇이 문제인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을 중심으로 개설된 ‘초등의대반’은 2~6학년 초등학생들이 의대를 목표로 미적분이 포함된 고등학교 수학을 학습하고 있다. 초등학생들은 학교가 끝나는 3시 이후 학원에 들러 늦은 저녁까지 하루 2~3시간씩 중·고등 수학학습에 몰두한다. 이는 실제 학년보다 6~7년이나 선행학습을 하는 기이한 행태이다.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공교육에서 선행교육을 하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으며, 학부모·학생·교원에게 선행교육 및 선행학습 예방교육에 관한 연수를 매년 1회 이상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는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른 영재교육기관의 영재교육 및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조기진급 또는 조기졸업 대상자, 도시 저소득층 밀집학교의 방과후학교 과정 등 선행교육 금지 예외 규정 몇 개를 제외하고는 모든 초·중·고등학교 학생에게 적용되는 법령이다.
하지만 ‘초등의대반’은 공교육 정상(正常)화를 위해 시행된 법령을 무색하게 하였으며, 오히려 공교육이 학습자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하고, 사교육을 ‘정상(頂上)화’ 시키고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도입 의미와 현실의 모순 사이에서 교사와 학부모는 어떻게 아이들을 지도해야 할지 혼란에 빠진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주관 ‘2023년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에 따르면 ‘의사’는 초·중등학생 희망직업 중 2순위로, 매년 순위가 상승하였다. 2023년 통계청 조사 결과 학생들은 직업 선택 시 가장 중요한 기준 1순위로 ‘수입’을 꼽았고, 한국고용정보원 ‘2020 한국의 직업정보’에서는 2020년 평균 소득이 높은 상위 50개 직업 중 약 30%가 ‘의사’라고 밝혔다.
올해는 특히 의대 정원이 약 1,500명 증원됨에 따라 2025학년도 현재 3,118명을 선발하는 의과대학 수시모집 원서접수에 약 7만 명이 응시하였다. 의대 정원 증원의 영향으로 2024년 초등의대반 홍보물이 발견된 학원은 89곳, 개설된 프로그램은 136개라는 결과를 보니 ‘초등의대반’은 이미 열풍을 넘어 핵폭풍이 된 것 같다.
과연 ‘초등의대반’은 우리 교육방향과 합치하는가?
이 핵폭풍은 학생들의 인지·정서·사회 발달 수준을 무시한 채 국가가 지향하는 교육과정과 정반대로 향하고 있어 교육에 무리한 선행교육이라는 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 초·중등교육과정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으로 사회 변화와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며 지속해서 개정되었다. 최근 우리는 디지털 대전환, 감염병 유행, 기후위기 등을 갑작스럽게 겪으며 다양한 형태의 문제상황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러한 불확실한 미래사회에서 행위 주체성을 바탕으로 자기주도적으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인재가 되도록 교육과정을 개정하였다.
그렇다면 ‘초등의대반’은 어떤 면에서 우리 교육의 방향과 합치하지 않은지 질문해 보자.
첫째, 초등의대반은 미래사회의 불확실성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의 삶과 학습을 스스로 이끌어가는 주도성을 함양시키는가?
둘째, 초등의대반은 학생 개개인의 인격적 성장을 지원하고, 배려하며 협력하는 공동체의식을 함양시키는가?
셋째, 초등의대반은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학습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적절한 시기에 학습할 수 있도록 학습자 맞춤형 교육과정 체제를 구축하는가?
대답은 모두 ‘NO’이다. 피아제(Jean Piaget)는 기존의 지식에 새로운 지식이 더하는 과정에서 불평형과 조절을 통해 인지발달이 이루어진다고 말하였다. 만약 기존의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새로운 지식이 들어온다면 인지과정은 바르게 작용하지 않게 되어 새로운 지식을 학습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또한 인지발달은 나이와 신체적 성숙, 환경적 경험으로부터 점진적으로 결정되고 특히 아동기는 사람의 발달과정에서 핵심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므로 교육은 아이들에게 단순히 지식을 주입받는 수동적인 학습자가 아닌 스스로 세상을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동적인 학습자로서 자신만의 속도로 경험하고 탐색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초등의대반은 구체적 조작기(만 7~11세)에 해당하는 학생들에게 형식적 조작기(만 12세 이후)에서 학습이 가능한 가설적·과학적·체계적 사고의 문제들을 제시하기 때문에 아이가 비록 그 선행학습을 따라간다고 해도 그 개념 자체를 이해했다기보다는 무의미한 모방일 확률이 높다. 또한 동화와 조절이 되지 않은 선행학습으로 기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심화학습에 어려움을 겪거나 정서·사회발달에 불균형을 가져올 수 있다.
교육본질 회복 성찰의 기회 삼아야
독일은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계속해서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발표와 토론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독일교육에서 선행학습은 학습을 오히려 방해하는 요소이다. 독일도 한때 선행학습을 했었지만, 선행교육이 폭력성과 우월주의를 야기하여 나치와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여기기에 다시는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초등교육 또한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모든 평가는 서·논술형, 보고서, 구술, 포트폴리오 등 과정 중심의 수행평가로 진행되며, 같은 반 친구들과 경쟁하는 상대평가가 아닌 학생의 학습결과가 성취기준에 도달하였는지를 측정하는 절대평가로 진행된다. 수업시간은 주제 중심의 프로젝트학습을 통해 친구들과 협력적 소통을 하며 공동체역량을 키우고 질문과 탐구 중심의 깊이 있는 수업으로 변화하였다.
이렇듯 ‘초등의대반’은 우리나라 교육의 흐름을 정면으로 역행하는 행위이자 공교육을 불신하게 하고 교권을 하락하게 만드는 빌런이다. ‘빌런’은 원래 악당이라는 뜻이지만 최근에는 신조어로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도덕적으로는 지탄받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현재 「공교육정상화법」은 ‘첫째, 교원은 지도하는 학생이 사교육에 의한 선행학습으로 학교수업에 영향이 있거나, 신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 학부모 등에게 필요한 교육적 조언이나 상담을 할 수 있다. 둘째, 학원·교습소 또는 개인과외교습자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광고 또는 선전해서는 아니 된다’라는 항목으로 사교육 선행학습을 소극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또한 사교육 선행학습을 단속하기는 하지만 처벌기준이 없어 실효성이 없고, 교육청에 정식 등록된 학원만 단속 대상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규제는 어렵다. 이 때문에 한 정당에서는 「초등의대반 금지를 위한 공교육정상화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한 상태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을 돌려주자
매년 학생의 현재 수준을 넘어서는 선행학습을 하지 말라고 배부되는 학교 안내장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는 본인이 경험했듯이, 혹은 내가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자녀들에게 ‘큰 꿈을 품어봐’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정말 소중한 ‘현재의 소박한 꿈’은 꾸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사교육은 학생의 발달수준에 해당하는 교육과정을 잘 학습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미리 결말을 알고 있는 책은 다시 펴보고 싶지 않다. 이미 학원에서 학습을 마친 아이들에게 학교 수업은 재미있지 않다. 친구와 함께하는 학교 수업이 재미있지 않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초등의대반’ 열풍은 우리 사회에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깊은 성찰이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미래를 위한 준비와 현재의 균형 있는 성장 사이에서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해 보인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을 돌려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