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동안 우리나라의 상징적 현판으로 걸렸던, “광화문” 현판을 바꾸는 것은 범국민적 합의와 타당성이 있어야 바꾸는 것이지, 문화재 청장 한 사람또는 한 부서의 의견으로 바꾼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광화문 현판” 교체사업은 문화재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재 청장이 결정한다고 돼 있으나, 벌써 문화재 청장은 현재 간판을 경북궁의 공간성격에 맞지 않고, 원래 한자 현판과 다르게 글씨방향도 거꾸로 돼 있다며, 오래전부터 교체를 검토해 왔다며, 8월15일 광복절에 교체를 완료한다고 한다. 이미 바꾸는 시기와 방법이 결정된 것으로 보도 돼 있다.
현판글씨를 교체하기 위해 모 서예가에게 부탁도 했다가, 고사하니 정조 어필로 집자해서 만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숭례문, 흥인지문, 대한문, 독립기념관 현판들도 문화재위원회의 의결만 일치하면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건물과 함께 사용되어져 온 현판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바꾸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고, 위험한 발상 일 뿐 아니라, 꼭 바꾸려는 그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대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꾼 현판은 언제고 또 바뀔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문화재 청장이나 문화재 위원회의 할 일은 새로 만들어지는 건물의 현판을 그 시점에서 가장 적절한 현판을 만드는데 필요한 협의를 하고 결정을 하는 일을 해야지, 37년간의 세월을 국민과 함께한 아무 탈 없이 걸려 보아온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광화문 현판”을 궁색한 이유, 즉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를 가지고 교체한다는 것은 문화의 단절과 파괴 그리고 행정의 남발이 아닐 수 없다.
현판이 공간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맞지 않는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이 국민 대다수 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바꿀 만한 이유가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현판글씨를 정조어필의 한자로 집자하고, 글씨 읽는 방향을 반대로 하면 공간성격에 맞는 현판이 된다는 말인가? 그럴 리 없다. 그 차이를 느끼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고, 그것 때문에 바꾼다는 것은 옳지 않다.
또 모 서예가한테 부탁했다 고사해서 정조어필을 집자해서 한다고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저명한 서예가는 부탁한 모 서예가 한 사람 뿐인가? 모 서예가 한 사람만 고집한 이유는 무엇인가? 또 역대 유명한 서예가들이 즐비한데, 역대 유명한 서예가의 글씨집자는 안된다는 말인가? 정조어필로 정한 것은 최상의 결정이라고 보는지 되묻고 싶다.
현재 일상적인 문자표기에서 한문보다 한글표기가 일반적인데, 광화문 한글현판을 한문현판으로 바꾸는 것은 시대흐름의 역행이다. 우수한 문자를 가진 나라로서 주체성 없는 행위이다.
문자표기의 순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의 표기가 외국이나 우리나라의 현재 사용하는 방식이므로, 옛날 한문표기식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의 표기로 바꾸는 것은, 내국민이나 외국인에게도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37년 전에도 전통적으로 읽는 순서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한다는 것 모를 리 없지만, 시대의 흐름을 생각해서, 여러 가지로 고심해서 일상사용하는 순서로 했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 잘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되어지는 판에 다시 순서를 옛 방식으로 바꾼다는 것은 매우 적절치 않다.
현재 광화문 현판 글씨의 예술적 가치도 그만하면 손색이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가 더러 있지만, 글씨의 격으로 봐도 손색이 없다. 서예가들 사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글씨 잘 쓰는 분으로 널리 인식되어 있으며, 특히 궁체. 판본체의 정형화한 서체가 아닌 개인 특유의 개성있는 글씨 즉 웅혼한 기상을 내포한 글씨로 궁체의 섬약함, 판본체의 규칙적인 반복의 지루함의 약점을 훌훌 털어 버린 훌륭한 손색이 없는 글씨이다.
광화문은 우리나라의 중심이며 관문 격이다. 그러므로 우리문자인 한글로 해야 함이 옳고, 현재 또는 과거의 서예가 글씨보다. 나라를 크게 발전시킨 대통령의 글씨가 더 상징적이며, 국민의 화합이나 외국인들에게도 한국 대통령의 친필 휘호라고 하는 상징적 효과도 클 것이다. 37년 사용되고 보아온 현판은 국민의 마음속에 광화문이라는 하나의 상징적 문화적 가치로 인식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
정조어필로 집자 한다고 하지만 정조어필이 “광화문”이라고 쓴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자한다면 글씨의 격이 떨어지고 조잡해 질 수 밖에 없다. 글씨는 행서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정자 글씨를 쓰더라도 한 사람이 주어진 세 글자를 쓸 경우에는 대소 강약을 계산해서 쓴다. 다음 글자를 생각해서 앞 글자를 쓰고, 앞 글자에 따라서 다음 글자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결정해서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씨에는 리듬과 강약과 호흡의 흐름이 살아 숨쉬는 것이다. 즉 글자의 크기, 방향, 굵기, 획의 무게를 전체적으로 계산해서 쓰게 되므로, 집자하면 그러한 글씨의 리듬과 강약의 조화와 흐름을 찾아볼 수 없게 되어, 예술적으로 죽은 글씨가 될 수밖에 없다.
문화재 청장에 따라 그분의 안목과 식견으로 37년 동안 있어온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현판을 바꾸는 것, 또는 만에 하나 정치적으로 바꾼 다 함은 문화의 단절이고 파괴행위이며 졸속행정이 아닐 수 없다. 인식과 정서의 인위적 차단이며 행정의 남발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누가 기존의 숭례문. 대한문. 흥인지문, 광화문의 현판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광화문 현판을 바꿔야 하는가를 반드시 공론으로 각계의 의견을 물어봐야 하고, 정조의 어필로 집자한 현판과, 현재의 한글 현판을 두고, 집자한 것으로 바꿔야 되는 가 여부를 비교 검토 해 보아야 한다. 분명 정조 어필 한자로 집자한다면 현 한글 현판보다 복고적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글씨의 흐름과 멋이 없는 글씨, 현대감각이 떨어지고, 친근감이 덜한 현판이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