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격변의 시대를 산 키케로
늙는다는 것, 그리고 노년이라는 삶의 시기는 아주 먼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시대에 따라 노년의 의미, 노년의 삶은 다르기 마련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대동소이하다.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과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삶의 과정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 이에 따라 우리는 고대 사상가와 작가들에게 노년에 관한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로마 최고의 문인이자, 웅변가이며, 정치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기원전 106~43). 그는 유명한 카이사르(기원전 100~44)의 시대를 살았다. 카이사르는 키케로를 자기편으로 삼고자 했지만, 키케로는 전제 군주가 되려는 카이사르의 야심에 반발했다. 키케로는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은둔생활을 하다가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뒤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하지만 권력을 장악한 안토니우스 역시 전제정치를 펼치며 반대파를 처단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키케로는 원로원에서 안토니우스에 반대하는 연설을 행했다. 결국 안토니우스가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가 <노년에 관하여>를 집필한 시기는 정계에서 물러나 은둔생활을 하며 노년에 이른 예순한두 살 경이다.
사려 깊음과 판단력은 노년에 더 풍부해진다
키케로는 이 책에서 화자(話者)로 여든다섯 살까지 장수한 로마의 대정치가 카토(기원전 234~149)를 내세웠다. 기원전 150년 여든네 살이 된 카토가 30대 중반의 전도유망한 인물 라일리우스 및 소(小)스키피오와 대화를 나누고 노년에 대한 생각을 펼치는 설정이다.
“노년이 되면 일을 할 수 없고, 체력이 약해지며, 쾌락을 즐길 수 없고, 드디어 죽음이 멀지 않게 된다.”
<노년에 관하여>는 노년이 불행하고 외로운 이유를 이렇게 네 가지로 제시한다. 이러한 이유 각각에 대한 반론이 책의 골자다.
먼저 첫째, ‘노년이 되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반론이다. 책에서 화자인 카토, 즉 사실상 키케로는 젊은이의 체력을 지녀야 해낼 수 있는 일은 당연히 노년이 되면 할 수 없다고 인정한다. 대신 육체는 쇠약해져도 정신으로 이뤄지는 노인의 일거리는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항해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 다른 자들이 배의 돛대에 오르고, 배의 통로를 뛰어다니고, 갑판의 물을 배수시킬 동안 그는 키를 잡고 조용히 고물(船尾)에 앉아 있지. 그는 젊은이들이 하는 일을 하지는 않지만, 더욱 중대하고 유익한 일을 하고 있지. 큰일은 육체의 힘이나 재빠름이나 기민함이 아니라, 사려 깊음과 영향력과 판단력에 의해 행해진다네. 노년이 되면 이러한 특징들이 빈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풍부해진다네.”
지금의 나 자신을 잘 다스려 나가라
둘째, ‘노년이 되면 체력이 떨어진다’는 엄연한 사실에 대해 키케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노인이 된 나는 젊은이의 체력을 바라지 않는데, 젊었을 때는 황소나 코끼리의 힘보다 더 많은 힘을 바라곤 했지. 그러나 갖고 있는 힘을 이용해서 그 힘에 맞춰서 하려고 하는 바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네.”
체력이 떨어졌어도 자신의 체력에 맞게 일을 적절히 조절해 나가면 된다는 뜻이다. 야구에 견주면 20대에 시속 150km 이상 강속구를 던지던 투수가, 30대 중반 이후 강속구보다는 코너워크와 변화구로 완급을 조절하며 선수생활을 성공적으로 이어 나가는 모습이다. 키케로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만약 노년이 스스로를 지켜나간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것들을 다스려 나간다면, 노년은 매우 영예로운 인생의 한 시기라네.”
스스로를 지켜나가고 자신의 것들을 다스려 나간다는 것.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젊은 날을 그리워하지 말고 지금의 나 자신을 잘 다스릴 때 노년의 노년다움이 빛을 발한다는 조언이다.
세 번째는 ‘노년이 되면 쾌락을 즐길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의견이다. 키케로는 노년의 그러한 현실이 비난이나 비관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칭찬할 거리, 자랑해야 할 거리라고 말한다. 쾌락을 추구하며 탐닉하는 젊은 시절에 비해, 노년은 그런 추구와 탐닉에서 벗어나 평정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키케로는 말한다.
“노년은 연회나 음식이 쌓여 있는 탁자나 가득 찬 술잔과는 거리가 멀지. 따라서 술에 취함도 소화불량도 불면도 없다네. 플라톤은 쾌락을 ‘악(惡)을 낚는 미끼’라고 절묘하게 불렀거니와, 마치 물고기가 낚이는 것처럼 인간들이 쾌락에 빠지기 때문이지. 노년은 거창한 잔치를 벌일 수 없으나 조촐한 주연(酒宴)을 즐길 수 있다네.”
욕망의 전쟁을 멈추고 배움을 이어 나가라
마지막으로 네 번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이 멀지 않다’는 것에 대한 키케로의 생각이다. 키케로는 ‘자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좋은 것으로 생각하라’고 말한다. 죽음은 불가피한 자연 현상이자 일종의 법칙이니, 그 법칙을 따르는 것을 불행하다고 비관하지 말라는 것.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짧지만 훌륭하고 영예롭게 살기에는 충분히 길지. 봄철의 달콤함이 지나간 후 농부들이 여름이나 가을이 오는 것을 슬퍼하는 것보다 더 슬퍼할 필요는 없다네. 봄은 청년기를 뜻하고 농부에게 미래의 열매를 약속하지만 남은 시기도 열매를 추수하고 저장하는 일에 알맞기 때문이라네. 노년의 결실은 앞서 이루어 놓은 좋은 것들에 대한 풍부한 기억이라네.”
키케로는 우리의 인생이 욕망·야망·다툼·불화·열망과의 전쟁과 같다고 본다. 노년은 그런 전쟁이 끝난 후 ‘내 마음이 나 자신 곁에 있게 되는’ 시기라는 것이다.
“내 마음이 나 자신과 함께 사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연구나 배움을 이어 나간다면 어떠한 것도 한가한 노년보다 더 즐겁지 않다네.”
정년을 마친 뒤 새롭게 배움을 시작하는 분들이 드물지 않다. 그 배움이 학문적 연구이든, 춤이나 노래이든 그 어떤 것이든 소중한 배움이다. 그 배움의 가치를 강조한다는 점에 키케로의 노년에 관한 지혜가 있다. 초고령사회로 유례없이 빠르게 진입 중인 우리 사회에서 절실한 질문이다. 어떻게 나이 듦에 대처할 것인가? 건강뿐만 아니라 정서적·정신적·지적 측면에서. 이상 글에서 인용한 문장들은 오흥식 옮김 <노년에 관하여>(궁리, 2002년)에 따른 것임을 밝혀둔다. 천병희 옮김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도서출판 숲, 2005년)도 읽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