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다른 말은 '자유'
몇 달 전 나는 수십 년 만남을 가져왔던 모임을 탈퇴했다. 정치적인 신념이 다른 친구가 섞여 있는 모임은 즐거움 대신 스트레스를 안겨 주기에 충분했음에도 몇 년을 참다가 결국 탈퇴한 셈이다. 그동안에는 멘탈이 강해서 잘 견뎠으나 점점 모임 후에 오는 불편함을 감내할 수 없었다. 노년의 모임은 친목 이상의 수준을 넘어서면 서로에게 부담이 된다. 되도록 종교나 정치적 신념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마음이 편하다.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어떤 대화나 토론으로도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는 분야이니 감정을 상하기 쉽다. 특히 나이가 들면 자기 주장이 강해져서 고집으로 변모되니 조심해야 한다. 선을 넘는 지경으로 가서 감정이 상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이 피하거나 양보를 해야 한다. 마음 편하게 만나 담소를 나누고 간단한 식사와 차를 마시는 자리가 오히려 부담이 된다면 생각해 볼 문제다. 목소리를 높여가며 싸워본 경험이 없는 나는 불편한 자리는 내쪽에서 피하며 살아 왔음을 상기하고 미련 없이 미리 피하는 선택을 했다.
학창 시절이 몇 년 되지 않은 탓에 동창 모임도 적었기 때문에 수십 년 모임을 탈퇴하기는 쉽지 않아서 몇 년이 걸렸다. 최소한 일흔 살까지는 만나자고 했었는데 앞당겨진 셈이다. 탈퇴의 변을 조심스럽게 알리면서 그간의 고마움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문자로 대신했다. 그 뒤 몇 번의 전화를 받았지만 응하지 않으니 그대로 끝났다.
하나 둘, 모임을 없애가면서 빈 가지로 선 겨울나무가 되기를 반복하는 동안 홀가분해졌다. 외로움도 따랐지만 그보다는 자유로움이 더 컸다. 오고가는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경청만이 강요되는 만남은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불러왔는데 참 많이도 참고 견뎌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지유를 원한다면 외로움은 부수적인 것이다. 노년의 외로움은 자유인의 다른 말이다. 관계의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해지니 삶이 단순해서 좋다.
2024년의 단어, ‘뇌 썩음’(brain rot)
2022년에 '사회적 규범을 거부하는 뻔뻔한 태도'를 뜻하는 '고블린 모드'(Goblin mode)를 선정했던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판부가 2024년의 단어로 ‘뇌가 멍해지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브레인 롯’(Brain rot)을 꼽았다. 이 단어는 “저급한 온라인 콘텐츠, 특히 소셜미디어의 과잉 소비로 초래되는 영향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고 소개하며 사소하거나 하찮게 여겨지는 자료를 과도하게 소비한 결과, 정신적 지적 상태가 퇴보하는 현상이라고. 특히 ’뇌 썩음’이라는 표현은 1854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저서 <월든>에서 사용되었다니 그는 선견지명이 대단한 지성인이다.
며칠 전 뇌 썩음을 뜻하는 ‘브레인 롯’(Brain rot)을 처음 접하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날부터 의식적으로 짧은 영상(쇼츠)을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뇌가 썩어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함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주로 고양이나 강아지 영상, 정치 관련 숏폼을 즐겨 보곤 하는 편이다. 시간을 빼앗아 가는 주범인데 남는 것은 별로 없으니 뇌에 피로감을 안겨주고 생각 없이 보게 하니 퇴화되는 건 당연하다.
예전에 텔레비전을 '바보 상자'로 부르며 되도록 멀리 하라고 했던 것과 비슷하다.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나 신문과는 달리 주어진 정보를 무분별하게 그대로 받아들이므로 텔레비전에서 시작된 과도한 영상 매체는 인간에게 바보 상자를 선물하여 왔다. 한술 더 떠서 휴대폰의 편리함과 신속함은 인간 자체를 서서히 바보로 만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요즈음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모습들은 바로 '뇌 썩음'의 증거가 아닐까. 내 생각이나 이성을 통한 합리적인 판단 대신 나보다 우월해 보인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거나 믿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종속되는 현상을 가져오고 있지 않은가. 때로는 그들이 시키는대로, 선동하는대로 광신도들처럼 몰려가서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법적인 제재나 처벌을 받고서도 반성은커녕 합리화 하며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니 큰일이다.
문제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행동을 하면서 거액의 돈을 버는 일부 유투버들이 버젓이 활개를 치며 선동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는 현실은 무섭기까지 하다. 정치와 종교는 가족간에도 쉽게 타협하지 못하는 분야임을 생각하면 사회 전반에 끼치는 해악은 매우 심각하다.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대신 남들이 먹고 배설한 찌꺼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추종하는 것도 모자라서 시키는대로 원격조종되는 좀비인간이 등장한 세상은 '뇌 썩음'의 증거가 분명하다.
인류 역사의 과물인 히틀러의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여 유태인 600만 명을 가스실로 보낸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 ~ 1962)은 독일 나치스 친위대 중령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를 받은 전범이었다. 그는 독일을 떠나 도망쳐 아르헨티나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약 15년간 숨어 지내다가 1960년 5월 11일 이스라엘 비밀조직에 체포되어 9일 후 이스라엘로 압송되었다. 그는 1961년 4월 11일부터 예루살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그해 12월 사형판결을 받고 1962년 5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악의 평범성'은 어디에나 있다
미국 정치학자 해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 1975)는 『뉴요커』라는 잡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이 재판 과정을 취재한 후 출간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1963)이라는 책에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히틀러의 부하들처럼,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저지하기는커녕 반대도 못하고 입을 다문 국무위원들과 군 장성, 경찰 수뇌부는 한국판 악의 평범성을 지닌 아이히만이 분명하다. 그 정도의 자리에 오르려면 전문적 지식과 일반상식이 풍부하여 대통령의 지시나 명령이 국가를 위한 것이 아님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부당한 지시임을 알면서도 국가의 미래를 담보로 위험한 일을 벌인 책임은 모두 그들 몫인데 피해는 국민들이 당하고 있다.
권력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극우 유투브 영상에 매우 심취하고 있었음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최소한 대통령이라면 반대편의 목소리도 들어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느 한 편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사고력의 결여가 분명하다. 믿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 주장만 편향적으로 받아들여 신념화 시킨 그는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통치수단이라는 궤변도 아무렇지 않게 떠벌인다. 심지어 몇 달 전부터 틈만 나면 말해온 것도 사실도 드러났다.
헌법재판소에 출석하는 자리에 가서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거짓말과 궤변을 늘어놓고 있으니 사고력이 결여된 사람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미 그 증거가 차고 넘치는 데도 말바꾸기를 하거나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의 사고력과 판단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죄는커녕 오히려 지지자들에게 애국하라며 선동하기를 서슴치 않으니 얼마나 두려운 현상인가! 맹목적으로 폭동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애국자를 자처하며 사회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이렇게 뇌가 썩어가는 사람들을 교화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정치와 종교는 마약과 같아서 한 번 중독되면 스스로 빠져 나오기는 힘들고 특단의 조치로 치료를 받거나 교정 프로그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설득하고 교정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불확실할 것이다.
대통령이 파면되어도 '뇌 썩음'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으니 걱정이다. 그들은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지 반발하고 사회 불안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극단의 극우 세력, 폭력적인 수단을 합리화 하면서 준동하는 이러한 현상은 이미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되도록 어려서부터 불건전한 유투브 영상이나스마트폰의 역기능에 노출되지 않도록 부모와 학교, 국가의 노력이 절실하다.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편리함 속에 숨겨진 무서운 역기능이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으니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게 진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