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에 두 가지 화두가 있을 법합니다. 하나는 잊고 싶지만, 피부에 와닿아 자꾸 떠오르는 이야기라면, 다른 하나는 잊지 말아야 하지만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뒷전으로 밀리는 주제입니다. 전자는 어려워진 오늘날 교직상황을 걱정하는 하소연이고, 후자는 본격적인 챗봇시대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입니다.
“에이구, 너무 힘들다.” 새 학기에는 이런 하소연은 하지 맙시다. 교직이 훨씬 어려워진 건 사실입니다. 학생 대하기가 어려워졌고, 학부모 대하기는 더 힘겨워졌습니다. 다루어야 하는 학내 문제의 심각성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래서 교단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하소연이 나오는 건 충분히 이해됩니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면 억눌렸던 감정이 분출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알리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부정적인 면도 존재합니다. 하소연은 숨통을 트여주되 일시적일 뿐, 시간이 지나면 되레 부정적인 감정이 증가하게 됩니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마치 감기 걸렸을 때 재채기하면 시원하더라도 옆 사람들이 전염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더 심각한 부작용은 본인을 스스로 피해자로 여김으로써 의도치 않게 가해자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누가 자신이 가해자라고 자인할 리 없겠지요. 어쩌면 본인이야말로 진정한 피해자라고 반격할 수도 있습니다. 공존하고 상생해야 할 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손가락질하고 갈등이 증폭되고 모두가 괴로워지게 됩니다. 서로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누고 갈라치는 순간 협력과 평화는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하소연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충동을 조절해야 하겠습니다. 개인 차원에서 스트레스를 담아내는 회복탄력성 역량을 높이거나 동료와 연대하여 서로 지켜주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 단계 더 나가 하소연에 낭비되는 시간을 교육시스템을 혁신하기 위한 노력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그 투자의 대상이 바로 ‘에이아이(AI)’입니다. AI 이전 시대를 위해 지어졌고 이제는 철 지나서 고물이 된 교육시스템을 인위적으로 생명 연장하는 바람에 교육이 많이 망가졌지요. 이와 함께 교직의 가치도 하락했습니다. 학생들도 괴로워하고, 학부모도 힘겨워하고, 이젠 교사마저 신음하는 교육시스템을 그대로 놔두고 교직의 위상을 드높이는 방법이 있을 수 있나요? 저는 모릅니다.
제가 아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우리가 AI시대를 위한 교육에 몰두할 때, 그래서 교육이 다시금 학생에게 희망과 학습의 즐거움을 선물할 때, 우리가 존중받고 존경받고 권위를 되찾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AI시대를 위한 교육을 준비해서 교육에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 우리는 거대한 변화를 일구어낸 경험이 있습니다. 한 30년 전입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대대적으로 등장하면서 산업화시대가 정보화시대로 본격적으로 이동하던 시점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한국 전체가 정보화 혁신에 매진하던 때를요. 교사 재교육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고, 모두가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Communications Technology)을 배웠습니다. 신규교사만이 아니라 교장선생님들도 ICT 연수를 받았습니다. 깡촌마을학교에도 인터넷이 연결되고, 컴퓨터가 설치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화 기반 교육시스템을 이루어내고 새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양성해 냈습니다.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 기술기반 문제해결능력(Proficiency in problem solving in technology-rich environments)에 대한 2013년도 OECD 보고서입니다. 여기서 기술기반은 ICT를 뜻합니다. 대한민국 성인(55~65세)의 ICT 능력은 세계 최하위권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16~24세(학생) 경우에는 세계 최고였습니다.
기술에 관해서 가장 무지한 세대가 가장 유능한 기술을 지닌 후세를 양성해 냈다는 건 기적입니다. 기적의 비결은 바로 교사의 재교육에 있었습니다. 교사의 정보화 기술력(How skilled are teachers in ICT and problem solving)에 대한 2016년도 OECD 보고서가 말해줍니다. 당시 한국 평균 대졸 직장인마저 ICT 능력이 세계 최하위였지만, 한국 교사 집단만 별도로 평가하면 세계 최고였습니다. 상위권이 아니라 단연 세계 일등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30년 전 교사들이 먼저 ICT 교육을 대대적으로 받은 덕분에 ICT에 능한 인재를 양성해 낼 수 있었고, 국가가 선진국 대열에 우뚝 올라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때 우리를 난민 취급하던 나라들이 지금은 대한민국 여권만 지니면 국경을 활짝 열어주고 환영합니다. 우리가 심지어 일본보다 더 부유하게 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통쾌하고 신나는 일입니까.
AI는 우리가 그저 선진국 대열에 턱걸이하지 않고 이참에 확실하게 자리를 굳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열강 틈에 끼어 있어도 불안해하지 않고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AI가 데이터 기반 기술인 만큼, 기록물 활용 전쟁인 만큼, 중국의 역사와 문화 왜곡에 맞설 수 있을 것입니다.
디지털 정보화는 컴퓨터와 인터넷 활용법을 배우는 것으로 유효했지만, 우리가 현재 당면한 AI 과제는 추상적이어서 좀 더 도전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세계적인 AI 생태계와 경쟁력을 갖췄습니다. 디지털 정보화가 하드웨어 혁신이라면 오늘날 AI는 소프트웨어 혁신입니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도 막강합니다. 이제 이에 걸맞은 피플웨어만 구축하는 일이 남은 셈입니다.
지난 1월에 AI 선구자인 샘 올트먼이 자신의 블로그에 ‘10년 안에 인간을 능가하는 AI가 등장할 것’이라는 의견을 올렸습니다. AI의 다음 단계로 볼 수 있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와 ASI(Artificial Super-Intelligence)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인재의 개념도 다음 단계로 빨리 진화해야 하겠습니다. 수능시험 만점이 더는 인재의 기준이 될 수가 없습니다.
AI시대에는 학생들이 NRS(Non-routine skills)를 갖추어야 합니다. 정답이나 방정식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뜻입니다. 흑백 논리력보다 퍼지(fuzzy) 사고력이 중요합니다. 호기심·모험심·자신감·효능감·방향감 등 감각적(정의적) 역량을 비롯하여 영성적 역량이 추가되어야 합니다. AI시대에 인간 디자이너가 가야 할 길이 ‘영혼 담긴 디자인’(중앙일보 2025.2.4.)이라고 하듯이 학교교육에 논리와 이성을 초월한 영감과 통찰력과 지혜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이게 뭐지?”, “나더러 또 뭘 배우래?” 이런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AI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하더라도 머뭇거리지 맙시다. 하다 보면 무엇인지 알게 되겠지요. 우리가 못할 게 뭐 있겠습니까. 30년 전에 정보화가 도대체 뭔지도 몰랐던 선배교사들은 해냈지요.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무척 매정하게 들리겠습니다만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하소연한다고 현상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시각을 본인과 과거(원인 규명)로 돌리면 ‘탓하기’와 ‘각자도생’이란 고달프고 외로운 길로 빠집니다. 시각을 외부와 미래로 돌리세요. AI시대가 요구하는 교육을 지금 시작하세요. 그래야 학생도 살고, 나라도 살고, 우리도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