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설 때면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마지막 시구를 떠올리곤 한다. 30년 동안 교사로서 살아온 나에게 ‘관리자’라고 불리는 교감 혹은 교장으로의 승진을 향한 길은 ‘가지 않은 길’이고, 시인의 말처럼 나도 먼 훗날 한숨지으며 ‘사람들이 덜 걸어간 길(the one less traveled by)’을 선택한 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달라졌다는 그것이 개인적으로 나에게 더 나은 것일지 아닐지 결국 알 길은 없을 것이다.
요즘 이르면 30대 중·후반부터 교사들은 관리자가 되기 위해 점수를 쌓을 것인지, 교사로 끝까지 남을 것인지 두 갈래 길에서 고민한다. 두 길 모두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고, 주어진 책무를 다하는 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 일이다. 문제는 교사로 남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인정의 결여이며, 관리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역량을 측정하는 공정하고 타당한 지표의 결여이다.
전자는 인식의 문제이고 후자는 제도의 문제라고 달리 볼 수 있지만, 사실은 후자를 해결할 수 있다면 전자의 많은 부분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관리자로서의 역량과 교수학습 전문가로서의 교사역량은 중첩되는 부분이 없지 않으나, 서로 비교될 수 없는 다른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가산점평정의 한계
학교교육과정 설계와 운영 및 수업 장학에 관련된 전문적 역량을 기반으로 학교공동체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 교장은 관리자를 넘어서 다양한 전문적 역량을 갖춘 리더여야 한다. 그러나 경력·근무성적·연수성적·가산점평정이라는 정량적 요소로 평가받고 임용되는 현행 승진제도는 이러한 역량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적인 열망 없이 다양한 온라인 연수를 1.5배속으로 켜놓고, 별개의 멀티태스킹을 하며 쌓은 직무연수 이수실적이 과연 어떤 역량을 평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특히 소수점 차이로 최종 승진을 결정짓는 가산점평정과 관련해서는 형평성과 타당성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도입 취지와 달리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의 사기와 교사 전문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는 가산점평정 요소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 크기에 따라 조금씩 항목을 달리해 왔다. 실제로 선택가산점 일몰제 혹은 가산점 항목 통폐합 등을 통해 교사 간 가산점 경쟁을 완화하고 학생을 잘 가르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려는 교육당국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산점평정의 합리적 개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 보인다.
첫 번째 한계는 가산점평정 요소의 타당성과 공정성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내가 근무하는 지역에는 ‘기숙학생 사감 지도’ 항목이 있는데, 기숙사 운영교는 고등학교 세 곳밖에 없다. 운 좋게(?) 기숙사 운영교에 발령이 난 교사만 받을 가능성이 있는 점수이므로 당연히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솔직히 사감 경력이 행정전문가로서의 교장 역량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의견을 덧붙이자면, 교사가 기숙사 사감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한정된 에너지를 밤새 사감 지도에 할애하고 나면 다음 날 교사의 본업인 수업과 학생지도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가 바닥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중학교 교사를 차별하는 ‘고등학교 근무경력’, 일반적으로 공통교과(국·영·수·사·과) 교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순회교사 근무실적’, 과밀학급 지도가 힘든 시 지역을 고려하지 않는 ‘농어촌학교 근무경력’, 중등의 경우 특정 교과교사에게 유리한 각종 연구 및 탐구대회 수상 실적 등 공정성과 타당성의 근거가 애매한 가산점 항목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시·도교육청마다 지역적 교육환경 특성에 따라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거나 기존 항목을 삭제한다 하더라도 가산점평정 요소의 공정성과 타당성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이 될 것이고, 모두가 만족하는 합의를 도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두 번째 한계는 현행 가산점평정 요소가 교육의 본질인 교수학습에 대한 교사 전문성을 담아내거나 격려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핀란드와 같이 교장이 일정 시수의 수업을 담당하고, 교사들에 대한 교육적이며 수평적인 장학과 평가를 담당하는 경우에는 교장 선출과 임용에 있어서 교사로서 쌓아 온 교수학습 전문성이 중요한 평가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현장에서는 교과 전문성을 키우며 교실수업에 전념하고 교사 공동체 속에서 수업을 나누는 교사보다 정해진 승진가산점 쌓기에 열의를 가진 교사에게 승진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많다. 이 때문에 수업이나 학급경영 등 교사 본업에서의 수월성과 역량 계발을 격려하지 않는 가산점평정 요소는 교사들에게 ‘잘 가르쳐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수업 개선이나 교수역량 개발을 위한 연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교사들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세 번째 한계는 가산점평정 요소가 미래 교육을 책임질 교장에게 필요한 리더십의 본질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많은 교사가 기피하는 어려운 업무를 했다는 것에 대한 ‘보상적’ 개념의 승진가산점은 성격 자체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또한 특정 업무를 했다거나 특정 학교(Wee스쿨·지역사회학교·재외국민교육기관·연구학교 등)에서 근무했다는것 자체가 행정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고양하는 것에 어떤 식으로 이바지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그리고 가산점평정 요소에는 가산점을 부여받는 해당 교육기관에서 교사가 얼마나 그 학교 목적에 맞게 성실히 근무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교장의 역할이 관리(management)에서 리더십(leadership)으로 바뀌어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산점평정을 포함한 현행 교원 승진제도는 이러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가산점평정에서 항목이나 배점을 부분적으로 개선하는 것으로는 현행 승진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고, 미래 교육을 선도할 교장 리더십을 담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미래 교육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역량 프로그램 개발’과 같은 소극적이고 부분적인 개선책으로도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미래 교육에서 필요한 교사의 역량을 장기적 안목에서 새롭게 정의해야 하고, 그 정의에 맞게 역량을 평가하거나 고양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