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공립학교 B 교사는 수업시간에 학생으로부터 “선생님,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어느 후보에게 투표하실 생각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당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학생의 질문은 교원의 정치적 신념을 알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현행 법령에 따르면 B 교사가 수업시간에 학생의 질문에 공개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신념에 대해 말하게 되면 법령1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위반할 수 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교육이 국가권력은 물론 특정의 사회적·정치적·종교적 집단 또는 세력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하는 원칙을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학교라는 공적 영역에서 감수성이 왕성하고 신념체계가 단단하지 않아 어느 한쪽으로 경도되기 쉬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사의 말이나 행동이 청소년의 정치적 견해나 신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우리 사회와 교단에서 교사의 정치적 발언이나 정당활동에 대한 이슈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이 사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대법원판결(2012년 4월)과 헌법재판소의 결정문(2009헌바298)이 준거가 되고 있다.
교사의 집단적 의사표현 행위에 대한 법률적 판단
2012년 4월, 대법원은 공무원인 교사의 집단적 의사표현 행위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내렸다. ‘공무원인 교사의 경우에도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및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선언한 헌법 정신과 관련 법령의 취지에 비추어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한될 수밖에 없고, 이는 「헌법」에 의하여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인 교사가 감수하여야 하는 한계이다.’ 대법원은 교사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보장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범위 내에서 그 자유가 제한돼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물론 일정한 범위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고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필요성이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2012년 12월, 헌법재판소는 결정문(2009헌바298)에서 ‘교육공무원의 활동은 근무시간 내외를 불문하고 학생들의 인격 및 기본생활 습관 형성 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잠재적 교육과정의 일부분인 점 등 교사의 특성으로 비추어 보아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을 지원하는 정치활동과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것은 정당하다’라고 판결하였다. 헌법재판소는 학교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교사의 활동을 잠재적 교육과정의 일부로 간주하고 정치활동과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한편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은 대폭 바뀌었다. 2019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피선거권 연령이 18세로 하향되었고, 2022년 「정당법」 개정으로 정당 가입 연령은 만 16세로 낮춰졌다.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선거 피선거권 연령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부터 가능하고, 고등학교 1학년생이라면 정당의 발기인 및 당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정당법」 제22조에서는 총장·학장·교수·부교수·조교수를 제외한 사립학교의 교원 및 교육공무원은 정당 가입이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사립학교 교원과 교육공무원은 선거권자·피선거권자로서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일체의 선거운동이나 정치활동이 금지되면서 교원 간에도 기본권 행사에 차이를 두고 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20년 4월, 결정문(2018헌마551)에서 ‘초·중등 교육공무원이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하는 행위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관련 조항은 위헌이다’라고 판결하였다. 「국가공무원법」 제65조 제1항2에서 ‘그 밖의 정치단체’ 부분만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교육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원 등은 정당의 발기인 및 당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한 「정당법」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초·중등 교원과 달리 대학 교원에게는 정당 가입의 자유를 허용한다 하더라도 이는 기초적인 지식 전달이나 연구 기능 등 직무의 본질과 내용, 근무 태양(態樣)이 다른 점을 고려한 합리적인 차별이다’라고 판단하였다.
선진 외국에서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판단하는 기준
선진 외국에서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떻게 될까? 독일에서는 교사가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있으며, 수업을 비롯한 교육활동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공개하는 것이 허용된다. 그러나 교육활동에서 교사 개인의 정치적 견해나 신념의 공개 허용이 교사에게 학교 내에서 모든 정치적 행위를 허용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교사가 학교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홍보하는 등의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3 독일은 교육공무원으로서 교사가 지켜야 할 정치적 중립성과 교사 개인의 시민적 권리를 구분한다.
미국은 교사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해 폭넓게 허용하는 입장이지만,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범위와 정도는 주(洲)별로 차이가 있다. 예컨대 뉴욕주에서는 교사가 수업시간에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는 완장을 착용하여 학교에서 해고되었지만, 법원에서는 교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교사가 실질적인 분열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학교에서 언론 또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헌법상 권리를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는 교사가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교사의 정치적 표현 행위가 수업에 방해를 하지 않아야 하고, 강제성을 띠지 않아야 하며, 교사가 학생들을 교화시키려 노력하지 않아야 하는 등 세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1990년대 들어 「수정헌법」 제1조 언론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 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공무원의 정치적 권리를 원칙적으로 보장하여 정당 가입, 정치적 쟁점에 대한 의사표명, 후보자의 선거 지원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청소년의 정당 가입 및 피선거권 연령의 하향 조정 등 정치 지형에서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정치 지형의 변화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하여 새로운 기준과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법률적 판단 기준은 자칫 교사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평등권 보장과 상충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교사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교사는 사회적 가치와 규범을 교육하는 것은 물론 그들의 인격과 가치관 형성에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공적 영역, 즉 학교와 수업 중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신념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적 영역이나 학교 밖에서 교사 개인의 정치적 표현과 참여에 대한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약하는 것은 정치 지형의 변화를 도외시할 뿐만 아니라 법리적으로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선진 외국의 사례는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어떤 기준에서 판단해야 하는가에 대한 합리적 준거가 될 수 있다.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행사와 관련하여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독일의 사례와 헌법에서 규정한 언론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 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미국의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 앞으로 우리나라 교육계에서도 사회적 요구와 정치 지형의 변화에 발맞춰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전향적인 사회적 논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