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헌법」 제31조 제4항).’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기존의 법률적 해석은 교육과 정치의 관계를 분리하여 논하여 왔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른 경로진화적 관점에서 교육의 본질적 목적 중 하나가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2020년 1월 「공직선거법」 개정, 2022년 1월 「정당법」 개정 이후, 16세의 고등학교 1학년 학생도 선거권을 행사하고 정당 가입이 가능하게 되었다. 반면 교사에게는 정치적 자유가 거의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치적 ‘자기 검열’로 정치적 의사표현이 제한되는 교원들이 정치적 기본권 행사가 가능한 학생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을 하는 현실은 역설적이다. 이제는 교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개념에 대한 재해석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헌법」 제11조).’
헌법이 추구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정당 정치적 중립성’을 의미한다. 즉 교육은 외부 정치 세력의 압력이나 개입 없이 진리 탐구(전문성)를 자유롭게(자주성) 하도록 법률로써 보장한다는 뜻이다. 이는 특정 정치세력이나 국가권력에 의해 교육이 도구화되거나 지배받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교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다시 말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해석으로 인하여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은 교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이 일체 금지되는 측면만 강조되었다. 특히 초·중등교원과 대학 교수 간의 정치 참여 차이는 교육에서 학생의 발달단계상 정치적 중립성을 실현하는 수준과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게 적용되었다.
교원은 성장과정 중에 있는 학생들에게 편향적이지 않고 균형 잡힌 사고력을 키워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따라서 교육 본질에 반하는 정치 행위는 배제하되, 교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재규정하고 재해석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다. 교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을 바르게 교육할 책임 수행을 위해서도 보장되어야 한다.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제한에 관한 쟁점들
●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vs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헌법」 제7조 제2항).”
교원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공직자 신분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은 교원에게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교원의 정치적 의사표현 제한을 정당화하는 근거 중 하나는 「헌법」 제7조 제2항의 규정이다. 교원이 교육활동 직무를 수행하며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중립적인 공직 윤리를 준수하는 선에서 교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보장되어야 한다. 교원의 정치적 활동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원칙에 따라 제한된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교원도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쟁점과 관련하여 교원에게 국민으로서 의사표현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교원은 사회 현안에 대하여 어떠한 의견도 개진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참여와 소통, 자치와 숙의의 장을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교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 공무원 범위 및 교원의 직무 관련 과잉 금지 쟁점
대한민국의 모든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을 준수해야 한다. 「국가공무원법」에서는 모든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적용함에 있어 공무원의 범위 및 직무 관련 여부를 공무원 직무에 따라 구분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다. 즉 국가 정책 관련 직무를 수행하거나 고위 공무원, 선거 관련 직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표현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금지 원칙을 모든 교원에게까지 적용하여, 교원 본연의 직무와 관련이 없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까지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교원은 교육공무원인 동시에 사적인 국민의 한 사람이다. 따라서 법적 근무시간과 직무수행 중이 아닌 경우, 사인으로서 교원은 기본권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교원이 근무시간 중 특히 교육과정과 수업에서 특정 당파 선전 및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마땅히 제한되어야 한다. 그러나 근무시간 외, 직무수행과 관련이 없다면 교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마땅히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 다른 나라의 사례 _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 경향
일본·독일·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과 관련하여 교육활동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보장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교원의 정치활동을 엄격하게 제한하였는데 최근 이와 관련하여 기본권 침해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리고 독일의 경우, 교원이 「헌법」 질서를 위배하지 않도록 제한하는 선에서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특히 독일 교육은 보이텔스바흐 협약1을 근거로 초등학교부터 주 2회 사회 현안 토론수업을 하고 있다. 이러한 독일의 정치교육은 통일 후 사회 통합의 근간이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교원은 공무원 신분으로서 학교조직 운영에 혼란을 가하지 않는 선에서 정치적 활동이 가능하다. 이처럼 다른 나라의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 실태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에서도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경로 진화적 측면에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교원의 잃어버린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하여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해석과 적용 과정에서 교원들은 그동안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잃어버렸다. 단적인 예로 교육감 주민직선제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과도하게 해석하고 적용한 결과, 교육의 수장을 뽑는 상황에서조차 교원은 교육정책에 대한 의사표현과 참여가 배제되고 말았다.
교육감 주민직선제가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하는 과정이라면, 교육감의 교육정책에 대한 이해 당사자인 교원이 직·간접적으로 교육감 선거에서 의사를 표현하며 정당하게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마땅하다. 교사 개인의 편향적 정치성향에 따라 교육과정과 수업에서 학생에게 특정 이념과 가치를 주입하는 위법 행위는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교원도 국민의 한 사람이기에 근무시간 이후, 그리고 직무수행과 관련이 없다면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갖는다(「헌법」 제10조).’
「헌법」 제10조에서 말하는 ‘모든 국민’에 교원 역시 포함된다. 교원 역시 모든 국민의 한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원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면 학교현장에서의 제대로 된 민주시민 양성교육은 기대하기 어렵다. 학교교육과정에서 정치 현안을 바탕으로 민주시민교육이 이루어질 때에는 앞서 제시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원칙에 따라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교원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고, 근무시간 외에 직무와 상관없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정반합(正反合)의 원리가 법적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