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수익보다 교육기업 본업에 충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재 육성 집중
슈퍼맨처럼 살아야 하는 교사 안타까워
학교 업무 부담 해소에도 기여하고 싶어
1948년 대한교과서주식회사로 출범한 ㈜미래엔은 우리 역사와 궤를 같이한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교육기업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교과서와 수능 시험지가 태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아 미래엔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고 있는 신광수(사진) 대표 이야기를 들어봤다.(정리=강중민 기자)
-미래엔 대표 6년 차다. 유구한 역사의 교육기업 수장을 지낸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본격적인 교육 출판 기업에서 근무한 것은 미래엔이 처음이어서 긴 역사와 전통에 누가 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컸다. 출판이나 교육, 교과서에 대해 잘 몰라서 부담이 있었지만, 결국 기업은 본업에 충실한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미래엔이 78년간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고객인 선생님과 학생들이 믿을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콘텐츠는 어쨌건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저자, 가장 좋은 편집자를 모시는 데 많이 집중했다.
-기업 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미래엔은 서책 기반의 기업이었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디지털 전환에 대해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긴 역사에 기대 변화를 주저하면 회사가 경직될 수 있다. 그래서 변화의 필요성을 이해시키고,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인쇄 공장의 경우 문제점을 숨기지 말고 다 드러내 해결하도록 주문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게 먼저이기 때문이다. 안전한 환경이 되면 생산 효율성이 좋아진다. 문제가 생긴 후 고치는 게 아닌, 예방이 중요하다. 부품을 아껴서 하루 이틀 더 쓰기보다 셧다운을 예방하는 게 기업 측면에서도 이익이다. 젊은 세대를 들어오게 하려면, 배울 게 있는 직장이 돼야 한다. 직원들이 평생 우리 회사만 다닐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직도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회사의 의무다. 미래엔 출신은 보지도 않고 뽑는, 그런 인식을 갖게 해주고 싶다. 미래엔이 가장 가고 싶은 회사 가장 역량 있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 됐으면 한다.
-디지털 전환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AI를 통한 디지털 대변혁 시대다. 그러나 이는 '종이'라는 지식 전달 수단이 '디지털'이라는 수단으로 변화하는 것이지, 궁극적으로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개발한다는 교육기업의 사명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좋은 콘텐츠를 더 효과적인 수단에 담는 것이다.
미래엔의 대표적인 디지털 교육 서비스로는 교수활동지원서비스 '엠티처'와 온라인 초등 전과목 플랫폼 '디지털초코'를 꼽을 수 있다. 2012년에 오픈한 ‘엠티처’는 현직 선생님 15만 명이 활동하는 무료 자료실이자 소통 공간이다. 초·중·고 교과서 관련 콘텐츠와 수업 혁신 자료를 꾸준히 업데이트한다. 특히 성취도별 추천 학습과 학생별 분석 리포트를 제공하는 'AI클래스'의 반응이 좋다. 2023년 11월 첫선을 보인 '디지털초코'는 합리적인 구독료로 초등 전과목의 핵심 개념 이해를 돕는 '초코팝'과 '달달독해', '달달수학' 등 심화 학습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학교 등 교육기관의 학습 관리를 지원하는 '초코클래스'는 수업 전·중·후 활용도가 높아 현재 150개 초등학교에 도입돼 2만 명의 학생이 사용한다.
“회사의 운영에 있어서는 문교부를 비롯한 각 관계 당국의 적극적 지도 감독하에 공평정대(公平正大)를 기할 것이며, 국민된 양심에 비추어 최우량 교과서를 최저 가격으로 최단 시일에 생산 공급하여 국민 교육 완수에 미성(微誠)을 다하고자 하는 바이다.” - 대한교과서주식회사 창립 발기문 발췌
-디지털초코의 이용료가 무척 저렴하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창업주 김기오 선생님은 미래엔의 전신인 대한교과서 창립 발기문에서 최고의 품질 못지않게 최저의 가격을 강조하셨다. 교육 사각지대 없이 누구나 보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바람이었다. 이런 취지로 디지털초코 이용료를 교육 바우처로 쓸 수 있는 범위에 맞췄다. 학습과 연관성이 낮은 콘텐츠를 걷어냈기 때문이다. 공부와 상관없는 콘텐츠로 가격을 올리는 것은 기업에 이익이겠지만, 교육적으로는 맞지 않다. 디지털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저렴해야 한다. 모든 IT 혁신은 비용을 낮추는데 교육이 반대로 가면 안 된다.
-‘초코툰’은 어떤 서비스인가?
미래엔의 아동 출판물, 특히 학습만화 시리즈는 국내외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살아남기 시리즈는 일본에서만 누적 판매량이 2500만 부에 이른다. 일본 서점들이 기존에 없던 학습만화 코너를 새로 만들 정도다. 양질의 학습 내용을 만화로 풀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학습만화는 ‘새로운 배움, 더 큰 즐거움’이라는 미래엔의 모토에 잘 부합하는 사업이다. ‘초코툰’도 그런 관점에서 출시했다. '흔한남매', '에그박사', '내일은 실험왕', '살아남기', '보물찾기' 시리즈 등 인기 학습만화를 웹툰 형식으로 재구성해 디지털 환경에서 더욱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기획했다. 디지털초코의 '초코팝' 학습 후, 교과 연계 학습만화로도 추천한다. 학습하며 쌓은 마일리지로 이용할 수 있어 학습 동기 유발에도 도움이 된다.
-최근 한국교총장학회에 장학기금을 기탁했다.
미래엔은 ‘교육은 인재를 만들고, 인재는 미래를 만든다’는 고 김광수 명예회장님의 신념을 바탕으로, 1973년부터 '목정미래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의 이익은 반드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뜻을 이어받아, 교육의 공공성과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는 게 목표다. 이번에 한국교총장학회에 장학기금을 기탁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교총장학회는 우리 재단과 유사한 시기인 1971년에 설립되어, 오랜 시간 교육 현장에서 같은 가치를 실천해 온 기관으로 알고 있다. 교총장학회와 함께 학생들의 배움의 기회를 넓힐 수 있게 되어 더욱 뜻깊게 생각한다.
-올해 11회를 맞는 미래교육상 등 다양한 공모전을 열고 있는데?
이 역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다. '목정미래재단'은 장학사업과 함께 건강한 교육 문화 발전을 위한 공모전을 진행한다. 선생님의 수업 역량 개발을 돕기 위한 '미래교육상'과 지난해 시작한 '우석교사상'이 대표적이다. 올해는 '어린이창작동요대회'를 통해 학생들의 예술적 소양과 감수성을 높이고자 준비 중이다. 미래엔에서 자체 진행하는 공모전도 여럿이다. 학생들이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돌아보도록 기획한 '손글씨·창작글감 공모전'이 대표적인데, 여기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의 글씨체는 폰트로 만들어 미래엔 교과서에 수록된다. 창작글감 공모전 수상작은 미래엔 도서 출판 기회를 얻는다.
-끝으로, 현장 선생님들께 전하고 싶은 말은?
사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선생님들을 뵐 일이 없었다. 미래엔에 오고 나서 다시 만났는데, 예전보다 많이 힘들어 보였다. 학생, 학부모와의 관계도 그렇고, 새로운 교육 도구도 많이 들어와서 신경 쓸 게 너무 많다. 예전에는 학생만 잘 가르치면 됐는데, 지금은 무슨 슈퍼맨처럼 살아야 하는 느낌이다.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람이다. 결국 교육이 가장 중요한데,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해줄 수 없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선생님들의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도구 개발도 주문했다.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업무 부담 해소에 기여하고 싶다.
신광수 대표는…
한솔그룹과 보스턴 컨설팅 그룹을 거쳐 웅진북센, 웅진홀딩스, 웅진에너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020년부터 미래엔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