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수련(Water Lilies, (1919)>은 평생에 걸친 수련 연작 가운데 말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후기 모네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한 예이다.
모네가 돌보던 빛의 정원 <수련>
인상주의 거장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말처럼, 정원은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자 살아있는 작품 그 자체였다. 모네는 말년에 “내 정원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걸작이다”라고까지 자부했는데 실제로 그는 자신이 가꾼 정원을 수백 점의 그림에 담아냈다. 이렇듯 정원은 화가의 눈에 캔버스 밖으로 확장된 팔레트였을 뿐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교감하고 사색해 온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한 폭의 회화와 한 폭의 풍경 정원에 깃든 예술적 미감과 사유의 깊이를 함께 느껴보자.
시간과 빛을 그리는 예술, 인상주의
모네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1874년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를 발표하여 인상주의라는 명칭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평생 빛과 자연의 순간을 포착하고자 했다. 그는 풍경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변모시켜, 인상주의 화법을 새롭게 정립하였다. 예를 들어 빛의 조건에 따라 같은 장면을 여러 차례 반복해 그리는 연작(series) 기법은 모네가 고안하여 발전시킨 독창적인 표현 방식으로, 인상주의 전반의 특징이 되었다. 그는 야외에서 직접 자연을 관찰하며 그리기를 실천했고, 날씨와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대기의 효과를 집요하게 캔버스에 담아내려 했다.
전통적 아카데미의 역사·신화를 소재로 하기보다는 현대 도시, 교외의 삶, 야외 풍경 등을 다루었던 인상주의 화가들은 이동식 이젤과 튜브 물감 등 새로운 도구를 활용해 바깥에서 직접 관찰하고, 순간의 시각적 인상을 담아냈다. 그들은 형태와 배경의 분명한 선보다는 짧고 분절된 붓질, 전통적 구도를 벗어난 구성, 밝고 순수한 색조를 선호했다. 기존 풍경화에서 보던 어두운 색조 대신, 인상주의자들은 빛의 효과를 표현하기 위해 그림자에도 푸른색이나 보라색 등 풍부한 색채를 묘사했다. 대상의 묘사에 집중하기보다는 찰나의 분위기와 감각적 인상을 화면에 담았다. 이러한 즉흥적이면서 감각적으로 보이는 화풍이 사실은 치밀한 관찰과 과학적 사고가 바탕이라는 점은 의외다. 이처럼 인상주의는 전통을 거부하고, 현대성을 추구했다.
수평선이 사라진 풍경
모네 작품의 미학은 수련과 연못의 표면 위에 떨어지는 미묘한 감각적 경험이다. 새로운 차원의 시각적 경험 자체에 몰입하도록 유도하려는 모네의 구성이라 볼 수 있다. 화면은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연못의 물빛, 수련의 색이 다채롭게 겹쳐 있다. 연못을 이루는 주된 색조는 부드러운 연녹색과 청색의 다양한 톤 그리고 하늘빛과 구름을 암시하는 옅은 자주색과 회청색 등으로, 이들이 어우러져 물결과 빛의 떨림을 만들어낸다.
수면 위에 떠 있는 수련잎과 꽃은 밝게 빛나고, 전체적으로 볼 때 부드러운 녹색과 보랏빛 안개 같은 색층 속에 노랑과 분홍색의 꽃잎들이 반짝이는 모습은, 한낮의 햇살 아래 반짝이는 연못의 인상을 환기시킨다. 특히 작품의 중앙에서 비추어 물 위에 드리운 햇살과 하늘빛의 흔적들이 화면에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이 작품은 해 질 무렵 연못 위에 반사된 석양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고도 한다. 실제로 화면 오른쪽 상단의 녹색과 주황을 머금은 붓질에서 저무는 햇빛의 잔영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물 위에 떠 있는 수련잎과 꽃, 그리고 빛의 조각들만이 끝없이 펼쳐진다. 미술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모네의 후기 작품들이 “지평선도 해안도 없는 끝없는 물결”로 추상미술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모네는 점차 사물의 형태를 해체하고 색채와 붓질로 감각의 회화를 완성해 나갔다. 그의 붓놀림은 빠르고 자유로웠고, 물감의 두터운 질감과 색채의 다양함은 감상자를 연못 어딘가에 함께하게 한다. 이처럼 <수련>(1919)은 관람자에게 풍경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색채 속으로의 몰입을 준다.
정원, 마음의 회복을 꿈꾸다
프랑스 지베르니의 아침은 늘 물안개와 함께 찾아온다. 클로드 모네가 정성스레 일구었던 정원, 그 가운데 놓인 연못에도 여지없이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연못 위 수련잎들이 마치 조용한 숨결처럼 일렁이며 햇살을 반사할 때면, 그곳은 더 이상 정원이 아니라 색과 빛의 찬란한 교향곡이다. 모네는 자신의 정원을 두고 “내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걸작”이라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수련 연못을 조성하고 식물을 심으며, 자연과 어우러지는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고통 속에서 모네는 정원과 연못의 수련을 그리며 자신의 불안을 달랬고, 결국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 정부에 거대한 수련 연작을 기증하였다고 한다. 그의 작품이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방문하여 명상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될 것이다.
모네의 정원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모네가 정원을 가꾸듯, 우리는 교육자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누군가를 돌보는 역할을 한다. 모네의 정원과 인상주의 예술의 교차점에서 우리는 마음을 돌보는 일의 중요성을 생각해 본다. 우리 주변의 꽃·나무·연못 등 정원 속에서 삶의 새로운 미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인상주의 미술이 섬세한 순간의 포착을 추구했듯이, 우리도 섬세한 눈으로 자연을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하면 어떨까.
교실이란 공간은 아이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정원이다. 교사는 정원사처럼 학생들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보며, 섬세한 관찰과 애정으로 그들이 자연스럽게 꽃피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모네의 정원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통찰은 감각의 회복이다.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어가던 모네는 끝까지 자신만의 색채를 추구하며 아름다움을 놓지 않았다. 이처럼 교사도 자신의 감수성을 일깨우고, 세상의 다양한 색채와 감각을 경험하면 좋겠다.
모네의 <수련>(1919)은 단지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교육에 깊은 영감을 준다. 그림 속에 담긴 고요한 빛과 색은 오늘도 우리 마음의 정원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금, 그 정원을 가꾸기 위해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