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교육공약 중 가장 주목받은 정책 중 하나가 바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다. 지역 거점 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10여 곳으로 육성한다는 것인데. 이는 수도권 중심의 대학 서열 구조를 완화하고, 지역균형발전과 교육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한다. 우리 교육정책의 숙원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고등교육 자원을 전국으로 분산시켜, 지역 간 교육 불균형을 해소하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우리 교육의 오랜 과제였다. 더 나아가 사교육 의존을 줄이고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하지만 이 같은 이상적인 목표와 달리, 현실적인 효과에 대한 의문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과연 서울대 수준의 대학을 지방에 10개 세운다고 해서 입시경쟁이 완화되고, 사교육 부담이 줄어들 수 있을까?
서울대 지방캠퍼스는 사교육 부담을 줄일 수 있을까?
일단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개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2021년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동명의 저서를 통해 본격적으로 제기한 이후, 2022년 대선과 2024년 총선을 거치며 정치권의 주요 의제로 부상했다. 주요 핵심 내용은 ‘브랜드 공유’, ‘재정 상향’, ‘법·제도 개편’이다. 이는 학벌 중심 사회를 넘어 ‘지역과 계층, 시대가 함께 설계한 지식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서울대라는 국가대표 대학의 기능과 상징을 전국적으로 만들어, 단일 위계 구조를 해체하고 지역을 자립 가능한 지식 거점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브랜드의 공유’는 서울대 이름을 공동학위제로 전국 10개 거점국립대가 함께 쓰는 구조를 말한다. 공동학위제를 도입해 ‘서울대 충남캠퍼스’, ‘서울대 전북캠퍼스’ 같은 구조로 이름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재정 상향’은 서울대 학생 수준의 재정지원을 각 지역 거점 대학에 분산 투자해 상향 평준화를 도모하여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70% 수준까지 올린다는 것이다. ‘법·제도 개편’은 대학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해 통합 관리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대학 통합 네트워크 속에서 총장을 임명하고 예산을 배분하는 법적 거버넌스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공교육 회복과 사교육 경감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도 함께한다.
정책입안자들의 입장에서 긍정적 측면을 보면 선발 경쟁이 분산될 경우, 입시 전략이 단순화되어 학원·과외로 집중하는 경로가 완화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또 지역 학생들이 지역에 있는 서울대급 대학에서 교육받을 수 있다면, 서울 중심 사교육의 수요가 일부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정원 확대 없이 경쟁만 분산되면 학원 시장은 기존 수요를 다른 대학으로 이전할 것이 분명하다. 사교육 구조만 복제될 수 있고 상위층 수요층은 여전히 차별화된 대입 전략을 선호하면서 사교육은 오히려 차별화된 서비스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하여 언뜻 드는 생각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사교육 부담을 일정 부분 덜어줄 수 있는 잠재성을 담고 있으나, 그 효과는 입시 병목 중심 상위권에서 일부 학생에게 제한될 수 있으며, 정책 대상 확대 및 교육내용 실질적 강화, 지역 산업과의 연계 등 후속 전략이 병행되지 않으면 사교육 시장 구조의 견고함을 깨뜨리기에는 미흡해 보인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사교육을 줄이기 어려운 이유
그럼, 구체적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사교육을 줄이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보자. 필자는 실제 교육현장과 사교육 시장을 고려할 때, 이번 정책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서울대급 대학의 숫자만 늘린다고 경쟁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사교육은 단순히 ‘좋은 대학이 부족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상대평가 경쟁’ 때문이다. 서울대급 대학이 10곳 생긴다 해도,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은 그대로 유지되며, 사교육은 그 경쟁에 적응하며 더 정교해지고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즉 서울대가 하나일 때는 그 한 자리를 두고 경쟁이 치열했다. 서울대가 열 개가 되면, 그 열 개의 자리를 두고 경쟁이 분산될 수는 있겠지만, 경쟁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급을 지방에 만들어도 결국 서울 중심 구조는 그대로 간다. ‘서울대급’이라는 간판이 또 다른 서열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는 단지 학문적 우수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성공, 경제적 안정, 정치·행정적 영향력까지 함께 상징한다. 여러 면에서 서울대 서울캠퍼스는 독점적 위치에 있어 학생들과 학부모는 여전히 ‘서울에 있는 서울대’를 목표로 삼을 가능성이 높고, 지방에 있는 서울대급 대학은 ‘차선책’으로 인식할 것이다. 이는 사교육을 줄이기보다, 지방에서도 서울 입시를 위한 사교육을 확대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해외 사례에서도 이런 구조는 반복된다. 미국의 주립대 시스템, 예컨대 캘리포니아 대학교(UC) 시스템에는 버클리·UCLA·샌디에이고·어바인 등 여러 캠퍼스가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경쟁은 버클리와 UCLA에 집중된다. 입시 결과, 연구비, 교수진 수준, 취업 성과 등 모든 주요 지표에서 중심 캠퍼스가 다른 캠퍼스를 압도하고 있다. 이처럼 동일한 시스템 내에서도 중심축의 서열화는 피하기 어렵고, 한국에서도 서울대 본교캠퍼스와 지방캠퍼스 간 격차는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근본적으로 사교육 시장은 무척 빠르게 적응한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은 생기므로 새로운 입시 제도, 새로운 대학, 새로운 전형이 생길 때마다 사교육 시장은 곧바로 그에 맞춘 전략·컨설팅·강좌·패키지를 만들어낸다. 서울대 10개가 생기면, ‘서울대 지방캠퍼스 대비반’이 생길 뿐 사교육이 줄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오히려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또 다른 불안을 심어주고, 사교육 수요를 늘리는 원인이 된다.
정책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현실에서 ‘또 다른 경쟁’으로 읽힌다면 사교육은 오히려 더 정교해지고 체계화될 수 있다. 결국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정치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사교육 문제해결에 있어서는 근본적 접근이 아니다. 내신·수능·대학별고사가 존재하는 한 그 매력도는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사교육 경감의 실질적 보완책과 정책
단순히 ‘서울대 10개를 만든다’는 정책만으로는 사교육을 줄이기 어렵다는 한계가 명확하다. 그렇다면 보다 건설적으로 이 정책을 사교육 경감의 실질적 수단으로 만들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보완책과 병행 정책이 필요하다.
첫째로, 입시 전형의 간소화가 필수적이다. 지금의 입시체계는 지나치게 복잡하며, 이에 따른 정보 격차는 사교육 의존을 더욱 심화시킨다. 새롭게 설립되는 서울대급 대학들은 수능 100%, 혹은 내신 100% 중심의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전형을 채택해야 한다. 학원에 가지 않고도 입시를 준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고교 교육과정과 대학 입시의 유기적 연계가 필요하다. 현재는 고등학교 수업만으로는 입시에 대비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로 인해 학교 수업은 형식화되고, 실질적인 학습은 학원에서 이뤄지는 왜곡된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요즘 말 많은 내신과 수행평가도 잘만 운영되면 대학이 고교 내신과 수행평가를 중시하고, 지역 고등학교와 연계한 맞춤형 입시 프로그램을 도입한다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학교 수업에 집중하게 된다.
셋째, 지역 교육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동반되어야 한다. 지방의 교육환경은 여전히 수도권에 비해 열악하다. 교사의 수업역량, 학교시설, 진학지도 체계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서울대급 대학이 있는 지역에는 공교육을 지원할 수 있는 전담센터나 고교-대학 연계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교수진이 고등학교 교육에 일정 부분 참여하거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고급 강좌를 제공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넷째, 지역 중심의 취업 및 생활 기반 마련이 중요하다. 부모들이 사교육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장’을 얻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서울대급 대학이 있는 지역에 기업·공공기관·연구소를 유치하여 취업 루트 제공하고 ‘서울에 가지 않아도 충분한 기회가 있다’는 구조가 생기면, 서울대 서울캠퍼스 몰림 현상도 줄고, 사교육 유인도 약화될 것이다.
지방에 서울대 수준의 대학이 있어도, 졸업 이후 일자리를 얻기 위해 다시 서울로 떠나야 한다면, 수도권 집중은 여전히 지속된다. 대학과 지역 산업체·공공기관이 연계한 인턴십 프로그램이나 취업 연계 협약을 활성화하고, 졸업생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의 교육 분권이 가능해진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서울대를 나와야 성공한다’, ‘수도권 대학이 최고다’라는 서열 중심의 사고방식은 교육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선 단순히 대학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성공의 모델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함께 형성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 기반의 창업 성공 사례나 지방 공공기관 채용 확대 등을 통해 서울대가 아니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진정한 교육개혁은 간판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일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은 이상적으로는 지역 간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외국의 다캠퍼스 사례처럼, 중심 캠퍼스에 인재와 자원이 집중되는 현상은 반복되어 왔다. 서울대 서울캠퍼스는 여전히 최고의 상징성과 자원을 가질 것이며, 이는 지방의 ‘서울대급 대학’이 실제로는 서열의 하위 구조로 인식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교육정책이 성공하려면 대학의 간판뿐 아니라, 그 대학을 둘러싼 사회적 구조 자체의 개편이 병행되어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누가 보아도 이상적인 방향을 향한 시도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사교육을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분명히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교육평등과 지역균형을 위한 매력적인 전략이다. 하지만 간판만 늘린다고 사교육이 줄지는 않는다. 진정한 해법은 경쟁을 유발하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 있다. 입시제도 개혁, 공교육 강화, 지역 인프라 확충, 사회 인식 전환이 동반되지 않는 한, 이 정책은 단지 ‘또 다른 경쟁’을 낳고 사교육 시장을 자극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진정한 교육개혁은 간판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일이며, 그 구조 속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불안을 덜고 신뢰할 수 있는 공교육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사교육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다. 다시 원론으로 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