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어느 탄광촌 학교 때 추억이다. 하반신이 부자연스러워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겨우 등하교하는 6학년 쌍호라는 학생이 있었다. 형제마저 여럿인 쌍호네는 윤사월 보릿고개가 얄미울 만큼 야속했을 것이다. 그러나 쌍호의 희망은 높고 컸다.
굶는 일이 허다하고 끼니라고 해봐야 멀건 죽 한 그릇이 고작인 가세였지만 쌍호는 학교공부가 뛰어났다. 쌍호네 퇴색한 방벽은 각종 상장으로 도배가 돼 있어서 어쩌다 와보는 아주머니들을 놀라게 했다. 눈비 쏟아지고 추울 땐 친구들 도움을 못 받아 집에서 혼자 노는 날이 많은데 어찌 공부는 그리도 잘해 저렇듯 상장을 휩쓸까.
어느덧 5월 소풍날이 왔다. 탄광촌 자연환경은 어디를 가나 그만그만하고 좁다한 지역이니 누구나 안 가본 데가 없다.
“얘들아, 옥녀봉 골짜기라는데 괜찮겠지? 이번 봄소풍은 여러분들로선 어쩌면 마지막 나들이일지도 모르니까 한 사람도 빠지지 말자.”
나의 당부에 대답들이 우렁차다. 그런데 6학년이 되도록 한 차례도 소풍을 가본 일이 없다는 쌍호를 어떻게 참여시킬 수 있을까. 남달리 매사에 열성적인 반장을 불러 고민을 털어놔봤다. 궁리 끝에 불거져 나온 생각 하나.
“기마전해서 함께 가면 어떨까요?” “그것 참 좋다.”
비 내린 끝의 시골길과 논두렁 여기저기는 질퍽질퍽 빠지고 젖었지만, 기마전 위의 쌍호 얼굴은 그래도 밝고 화사하다. 겨우겨우 목적지에 당도한 기마전 일행. 얼굴은 상기되고 목덜미는 굵은 땀으로 범벅이 됐지만 양날개 역할을 맡은 아이들은 기분 좋다며 저린 팔을 휘돌린다.
울퉁불퉁 오르락내리락 두어시간 걸려 목적지인 옥녀봉 깊숙한 골짜기 느티나무 아래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넓적넓적한 바위들이 같은 높이로 정갈스레 쫙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쌍호 아빠와 엄마가 은공을 갚자며 새벽시간을 몰아 이렇게 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기마전 놀이에서 내려온 쌍호는 충혈된 눈 속에 철렁한 눈물이 고인 채 ‘고맙다, 고마워’ 한마디로 무겁고 깊은 마음 속 인사말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