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떠올려보자. 기숙사 유리창을 노트 삼아 수학공식을 적고, 친구들과 놀러간 술집에서 수학이론을 찾아내고, 20살에 학계 저명인사가 된 주인공 존 내쉬를.
루트원과 악어컴퍼니의 연극 ‘프루프’(원작 David Auburn·연출 김광보)는 수학자 존 내쉬의 생애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연극은 정신병으로 고통받던 천재 수학자의 삶 대신 그의 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학교수 로버트는 이미 20대 초반에 수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이론들을 발견해낸 천재이다. 그러나 그의 정신상태가 점점 불안정해지자 딸 캐서린은 학교도 포기한 채 곁에서 아버지를 돌본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장례식날, 아버지의 제자 해롤드는 그가 남긴 노트 속에서 가치 있는 연구성과를 찾는 작업에 몰두하고 아버지의 천재성뿐 아니라 광기까지 물려받았을까봐 두려운 캐서린은 그런 해롤드가 거슬리기만 한다.
제목 ‘프루프(proof)’는 ‘증명, 증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불확실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확실한 증명을, 분명한 증거를 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증명의 출발점은 바로 의심이다. 의심은 증거를 필요로 하고 증거는 밝히고 싶은 진실을 증명해준다.
캐서린은 해롤드가 아버지의 노트를 빼돌릴 것이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그의 진심을 알게 된 후 캐서린은 확신이 서지 않아 내놓지 못한 자신의 연구물을 제일 먼저 그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에는 해롤드가 캐서린이 아버지의 연구노트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속인다고 의심한다. 아무리 애써도 진실을 증명할 수 없는 캐서린은 분노하고 절망한다.
인생이란 수학처럼 딱 떨어지는 정답이 있는 것도, 공식을 통해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학공식은 차가운 이성만으로 풀 수 있지만 인생공식은 때때로 뜨거운 감성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희생도 집어넣어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3월 13일까지. 문의=02)764-8760, www.goproof.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