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 올해로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3년이 되었다. 2022년 10월 29일, 핼러윈 축제의 들뜬 거리에서 159명의 소중한 생명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날 이후 우리의 일상은 달라졌다고 믿고 싶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도 “무엇이 달라졌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참사는 끝났지만, 안전 의식의 부재와 공적 책임의 결여라는 사회적 과제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잠시 3년 전을 돌이켜보면, 사건 직후 정부와 지자체는 재난 대응 체계 전면 점검을 약속했고, 학교와 기관에서는 추모 행사를 열었다. 그러나 지난해 2024년에도 대전 병원 화재, 오송 지하차도 침수, 군산 주점 폭발 등 인재(人災)는 반복되었다. 제도는 존재했으나, 책임 있는 실행과 예방의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사회는 언제든 또 다른 이태원을 맞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태원 참사는 단순한 군중 사고가 아니었다. ‘누구의 잘못인가’라는 공방보다 중요한 것은, 그날 현장에 있던 수많은 시민들이 구조를 요청했지만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고, 관계 기관들은 서로의 책임을 미루었다는 점이다. 국가와 사회가 개인을 보호하지 못한 참사, 그것이 우리 사회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본질이다.
이 사건은 또한 ‘안전’을 개인의 문제로만 여겨온 우리 사회의 의식 구조를 드러냈다. 재난은 언제나 “누군가의 일”로만 생각하는 태도, 위험을 예감하고도 “내 일이 아니다”라고 지나치는 무관심이 사고를 키운다. 그러나 진정한 안전은 각자의 영역을 넘어설 때 가능하다. 길 위의 혼잡을 미리 관리하고, 불안정한 구조물을 사전에 점검하며, 위험 상황을 발견했을 때 “괜찮겠지” 대신 “함께 막자”고 말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진정한 선진국이고 성숙한 안전 공동체다.
올해 3주기를 보내면서 서울시는 추모식에서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밝혔다. 하지만 ‘기억’은 단지 슬픔의 반복이 아니라 변화로 이어질 때 진정한 추모가 된다. 예컨대, 2023년부터 서울시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캠페인을 기획해 ‘안전지도’를 제작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등굣길이나 축제 장소의 위험 요소를 조사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하는 프로젝트형 수업이었다. 이는 단순한 추모 행사를 넘어, ‘내 주변의 안전을 내가 책임진다’는 시민의식으로 확장된 사례라 할 것이다.
한편,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등장한 ‘시민 구조대’의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현장 경험자들이 모여 위급 상황 대처법과 인파 안전교육을 직접 시민들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이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돕는 시민이 되자”고 외친다. 이 움직임은 공공 시스템의 미비를 시민 참여로 보완하려는 실천이며, 공적 책임을 개인의 실천 속에서 회복하려는 시도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개인의 선의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재난은 구조적 대응 체계의 실패일 때 더 큰 피해를 낳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 기업은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시스템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축제나 대형 행사에는 단순한 인허가 절차를 넘어, 인파 분석, 응급 대응 인력 배치, 실시간 통신망 점검 등이 철저히 준비되어야 한다. 공공기관의 의무와 시민의 참여가 균형을 이룰 때만 진정한 ‘공적 책임 사회’가 완성된다. 여기엔 책임 있는 기관장들과 정부 고위 관리들의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려는 남다른 의식이 먼저 리더십을 통해 발휘해야 하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교육 현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학생들에게 안전교육은 더 이상 단발적 캠페인이 아니라 삶의 기본 문해력으로 다뤄져야 한다. 교실에서 배우는 수학 공식만큼, 비상시의 행동 요령·집단 속 질서 유지·타인을 돕는 윤리의식이 체화되어야 한다. “안전은 배워서 실천하는 문화”라는 인식과 교육이 자리 잡을 때, 우리는 비로소 또 다른 이태원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 3주기를 보내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문장은 단 하나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안전은 개인의 몫이 아니라 공동체의 약속이며, 공적 책임은 누군가의 직책이 아니라 모두의 역할이다. 길 위의 한 사람, 축제 속의 한 시민, 교실 속의 한 학생이 서로를 지켜줄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단단해질 것이다.
159명의 이름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기억하라, 그리고 행동하라.” 기억이 제도와 문화로, 슬픔이 변화의 에너지로 이어질 때 우리는 진정으로 희생자들의 목소리에 응답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묻지 말자,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를. 그대신 물어야 한다, “나는 오늘, 이 사회의 안전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그 물음이 이어지는 한,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것이 이태원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이다. 당장 이번 주말, 이태원 및 홍대 거리 등 사람 밀집(각 10만 명 예상) 지역에 대한 주의와 경계, 관리가 우리 모두의 안전 의식과 책임 의식으로 무사히 지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