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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중학교에서 근무 중인 교사입니다. 얼마 전 이 지면에서 모둠 활동과 관련한 다른 선생님의 사연을 읽고, 저 역시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고민이 있어 상담을 드리게됐습니다. 수업에 들어가면 꼭 태도가 불성실한 학생들이 있습니다. 엎드려 자거나, 수업 중에 딴짓을 하는 경우입니다. 강의식 수업을 할 때는 다른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할 정도로 끼어들거나 문제행동을 하는 상황이 아니면 그냥 감당하고 수업을 진행하면 됩니다.
문제는 모둠 활동을 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모둠 활동을 하게 되면 불성실한 학생들 때문에 기대한 만큼 잘 진행되지 않습니다. 참여를 권장하면 아예 입을 닫고 있거나 심지어 "싫은데요?"라며 무례하게 반응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학생만 데리고 수업을 진행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솔직히 화가 나고 미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업을 방해하거나 자는 학생들을 모두 빼고 열심히 하는 학생만 모아서 수업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모둠 활동을 완전히 없애고 진행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야 입시 준비로 피곤해 학교에서 조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중학교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제가 스킬이 부족한 건가 싶고 답답한 마음에 사연을 보냅니다. (사연자: 이경원(가명) 교사) |
사연에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답답함’이었습니다. 수업이 무너지는 답답함, 아이들 앞에서 아무 말도 통하지 않는 것 같은 무력감, 그리고 그 와중에 교사인 자신만 계속 애를 쓰고 있다는 느낌까지. 이 고민은 단순히 몇몇 학생의 태도를 어떻게 지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요즘 중학교 교실에서 많은 선생님이 공통으로 부딪히고 있는 장면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강의식 수업에서는 엎드려 있거나 딴짓을 하는 학생이 있어도 큰 흐름만 유지되면 교사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둠 활동은 다릅니다. 참여하지 않는 학생 한 명의 태도가 그대로 모둠 전체의 분위기를 흔들고, 그 부담이 다시 교사에게 돌아옵니다. 학생이 “싫은데요?”라고 말하는 순간 교사 입장에서는 단순히 무례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해당 학생의 발언 때문에 수업의 맥이 끊기는 경험을 하게 되니까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선생님 마음에 화가 치미는 것과 ‘왜 나만 이렇게 애를 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학생 무기력, 관계와 경험서 오기도
많은 교사가 이 상황에서 자신을 돌아봅니다. “내가 더 재미있게 했어야 했나?”,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기술이 부족한 건가?” 하지만 여기서 분명히 짚고 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마주하고 있는 학생들의 무기력은 수업 기법 하나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특히 중학생 시기의 무기력은 학습의 문제이기 이전에 관계와 경험의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 보면 그냥 하기 싫어서 엎드려 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미 여러 차례의 실패 경험을 겪고 학업에 대한 학습된 무기력이 오랜 시간 누적되었을 수 있습니다. 학업에 대해 어떠한 필요도 못 느끼고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또는 공부뿐 아니라 삶 전반에서의 힘든 히스토리 때문에 노력할 의지를 전혀 갖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학생이 선택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입니다. 이 지점에서 교사가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저 아이를 어떻게든 참여시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상적으로는 모두가 참여하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그 목표가 오히려 교사를 더 지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참여를 강요할수록 학생의 저항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교사의 감정은 소모됩니다.
여기에 더해 교사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교사가 알 수 없는 교실 안의 사정들입니다. 같은 모둠에 앉아 있어도 이미 갈등이 쌓여 있는 관계일 수도 있고, 이전 시간에 주고받은 말 한마디로 마음이 닫힌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특정 친구와 같은 모둠이 되는 순간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미리 결정해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관계의 맥락은 교사가 수업 시간에 모두 파악하기 어렵고, 그래서 교사는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내가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라는 무력감에 더 쉽게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학생의 무기력은 교사의 지도에 대한 거부라기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는 것만으로도, 교사가 느끼는 분노와 자책의 방향은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참여’ 아닌 ‘같이’에 주목
이 상황에서는 목표를 조금 낮춰 잡으면 어떨끼요. 지금 이 학생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적극적인 참여가 아니라, 완전한 이탈을 막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좋고, 결과물에 기여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고, 모둠을 방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오늘 수업에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것으로 보는 기준을 교사가 먼저 세워야 합니다. 이런 관점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으면 교사는 열심히 노력하고서도 자신이 계속 실패한 수업을 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지만 생각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요? 학생들을 모두 수업에 참여시키고 학생들을 모두 특정 기준에 도달하게 하는 것만이 교사의 전문성이 아니라 학생의 현재 상태를 고려해 수업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달리 보는 것도 교사의 전문성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은, 모둠 활동이 언제나 ‘협력’과 ‘배려’를 경험하게 하는 장치로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관계가 불안정한 아이들에게 모둠 활동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하고, 비교가 일어나고, 자신의 무기력이 더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이럴 때 교사는 활동의 완성도보다 교실의 안전감을 우선에 두는 선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느끼는 또 다른 어려움은 성실한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일 것입니다. 참여하지 않는 친구 때문에 모둠이 늦어지고, 그 불만이 교사에게 향할 때, “차라리 열심히 하는 아이들만 데리고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교실은 늘 다양한 상태의 학생들이 함께 있는 공간입니다. 교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모두를 같은 속도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 붙들어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교사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둠 활동이 반복적으로 어려운 반이라면, 활동의 빈도나 형태를 조절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입니다. 모든 수업에서 모둠 활동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짧은 개인 활동, 때로는 교사 중심의 설명이 더 적절할 때도 있습니다.
스스로를 위한 여유도 필요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느끼는 분노와 미움에 대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감정은 교사로서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 안에서 올라오는 분노와 미움은 교실을 포기하지 않고 싶기 때문에 느껴지는 감정일 수 있습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너무 많은 이해심은 무관심 일 수도 있는 것처럼, 정말로 교사가 학생들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화도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이 수업을 진행시켜 보려 하고 아이들을 놓지 않으려 애쓰고 계시기 때문에 좌절감도 경험하고 화도 나는 것입니다.
너무 무기력한 나머지 모둠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에 대한 기대를 현실적으로 조정한 것처럼 선생님께서도 모둠 활동이 잘되지 않는 날에 대해 조금 여유를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어쩌면 일 년 내내 어떤 학생은 끝까지 엎드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수업을 멈추지 않고, 학생을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따뜻한 시선으로 격려하는 마음으로 바라봐 주는 것은 학생에게 분명 어떤 흔적을 남길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지금 느끼는 답답함이 선생님 개인의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지금 이렇게 고민하시고 사연을 보내주시는 것부터가 여전히 교사로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드린 답변이 조금이나마 선생님의 답답한 마음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봅니다.